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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자료/현대인을 위한 신학

두번째 주제: 성경, 하나님의 말씀인가? 역사적 산물인가?

by 최수근 2018. 1. 9.

[성경: 하나님의 말씀인가? 역사적 산물인가?]

21세기 기독교가 직면한 가장 큰 위협은 성경의 권위에 대한 것이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권위를 상실하면 기독교는 기독교로서 존재하지 못한다. 기독교에서 성경의 권위는 매우 중요하다. 성경의 권위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절대성에 대한 권위를 뜻한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권위를 가진다는 의미이다. 역사적으로 지금까지 기독교에 대한 다양한 공격과 비판이 있었다. 그때 마다 때로는 외부적인 비판을 거부하기도 하고, 때로는 비판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기독교는 성경의 권위에 대해서는 결코 양보하지 않았다. 기독교의 각 교파는 공식적으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입장을 여전히 견지하고 있다.

계시 종교

기독교가 성경의 권위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기독교가 계시의 종교이기 때문이다. 계시는 열어서 보여준다는 의미를 가지는데, 하나님이 자신의 뜻을 인간에게 전해준다는 말이다. 기독교는 하나님이 계시해준 것을 받아들이는 종교이다. 하나님의 뜻이 기록된 것이 다름 아닌 성경이다. 따라서 성경의 진리의 근거가 된다. 인간이 진리를 찾아오는 구조가 아니다. 이처럼 계시종교의 특징을 가진 기독교는 자기 해탈을 추구하는 불교와 다른 구조를 갖는다. 불교는 인격적 신 개념이 약하고, 오히려 모든 중생이 각성을 통해 열반에 들어갈 수 있다고 믿는다. 또한 자연종교와는 다른데, 자연종교는 인간이 이성이나 자연을 통해 신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성을 통해 도달할 수 있다고 믿는 입장은 이신론을 발전했고, 자연을 통해 신을 발견하려는 입장은 범신론으로 나타난다.

기독교가 다른 종교나 철학과 구별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성경의 경전성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이 경전으로서의 위치를 상실한다는 것은, 즉 성경을 역사적 산물이나 문학적 작품이라고 본다면 성경은 절대적 가치를 상실하고, 무엇이 옳은지에 대한 근거도 상실하게 되며, 기독교의 토대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다.

경전성에 대한 의문

17-18세기 유럽 사상사에 큰 영향을 미친 계몽주의 운동이 일어났다. 이로 인해 인간이 이성이 강조되고, 이성에 바탕을 둔 합리주의적 사고방식이 보편화되었다. 계몽주의를 거쳐 현대로 오면서 성경의 권위는 상처를 받는다. 그것도 외부적인 공격에 의한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성경을 역사적 산물로 보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성경의 경전성에 대한 논쟁은 어떤 하나의 이유 때문에 나타나지는 않는다. 복합적으로 얽혀 시대의 흐름이라는 큰 변화와 함께 나타났다.

첫째, 계몽주의 이후 학문적 발전으로 인해 과거에 대한 이해의 능력이 증대하면서 성경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게 된다. 이런 학문의 영향으로 성경이 형성되고 교회가 형성되던 당시의 사회와 경제적 상황에 대해서도 많이 알게 되었다. 이로 인해 성경을 구성하는 자료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형성되었는지 활발한 연구가 일어났고, 이것은 결국 성경도 하나의 역사적 산물이라는 생각을 갖게 했고, 신학자들 가운데서도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않게 되었다. 특히 역사 비평학의 결과는 성경을 역사적 산물로 간주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은연중에 일반 교인들도 성경을 역사적 산물로 보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둘째, 다양한 분야에서 자료를 대하는 해석학이 성경 해석에 영향을 미쳤다. 근대 이전의 성경 해석학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전제 위에서 행해졌다. 하지만 성경을 하나의 텍스트로 보는 학문적 조류가 대세를 이루게 되자, 성경에 대해서도 다양한 해석학의 방법-역사, 문학, 철학, 심리학 등에서 나타난 해석학의 주요 방법-을 적용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인간이 성경 해석의 주체가 되었고,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두려움은 점차 옅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개신교 정통주의는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라고 교리적 입장만 반복했다. 새로운 시대정신 속에서 이런 고백적 선언만으로는 교인들에게 충분한 설득력을 가지지 못했다. 유럽의 교회들이 이 시기에 공신력을 많이 상실했다. 유럽의 교회들이 다양한 시대적 도전들 앞에서 적절한 응답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교회에서도 성경의 경전성에 대한 회의가 확산되고 있다. 급격한 시대정신의 변화 앞에서 성경의 경전성이 의심받고 있는 것이다.

경전 형성의 주체성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냐에 대한 논의는 다양하게 나타났다. 그중에서 가장 심각한 것은 성경 기록의 주체가 누구인지에 대한 문제이다. 전통적으로 기독교는 성경을 성령님의 감동으로 쓰여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뜻은 성경이 하나님만이 사용하는 신성한 기호로 기록되었다는 말이 아니다. 성경에는 기록될 당시의 역사와 문화라는 시대적 정황이 반영되어 있고, 복음서나 바울서신 등에는 각 저자의 개성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의 핵심은 성경의 내용과 의미,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주체가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따라서 성경의 경전 형성의 주체도 성령님이라는 것이다.

반면에 성경이 역사적 산물이라는 주장은 성경의 각 권은 저자나 저자가 속한 공동체에 의해 쓰였거나 수집되었고, 이 자료들이 역사적 과정을 거치며 교회의 의해 정경으로 인정받았다는 것이다. 즉 성경을 기록한 주체는 인간이 되고 경전으로서의 권위는 역사적 과정을 거치면서 교회에 의해 결정되는 구조를 갖는다. 이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결국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권위를 유지하기 어렵게 된다.

먼저 성경이 역사적 과정을 거쳐 교회에 의해 수집되고 경전으로 인정되었다는 주장을 요지를 살펴본다. 기독교공동체가 처음 형성되었을 당시에는 오늘날과 같은 성경이 없었다. 각 공동체는 구약과 복음서나 서신의 일부를 사용했다. 상당한 시간이 지나서 교회 공동체가 사용할 자료를 수집할 필요가 생겼다. 자료를 기록해야 할 필요는 첫째 예수님에 대한 첫 증인들이 줄어들고 있었고, 둘째 예수님의 재림이 지연되고 있었고, 셋째 이단이 출현하기 시작했고, 넷째 선교로 인해 교회가 확장됨으로서 문서의 중요성이 대두되었다.

이 필요에 의해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일정한 기준을 가지고 성경을 수집했다. 첫째 사도가 직접 저술한 자료인가? 둘째 사도에 의해 직접 기록된 것이 아닐지라도 사도적인 전승에 속하는 자료인가? 셋째 당시 기독교 공동체에서 높게 평가받은 자료인가? 넷째 기독교 공동체에서 인정한 기존의 자료와 유사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자료인가? 기독교 공동체가 이 기준에 따라 수집한 문서를 사용하다가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서 이 자료들이 경전으로 인정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교회는 공식적으로 397년 제3차 카르타고 회의에서 신약 27권을 채택했다. 그 후 몇 차례 교회 회의에서 27권을 재차 확인함으로 신약 정경의 범위가 최종적으로 확정되었다.

이 주장에 대한 근저에는 각 문서에 대한 수집과 평가, 그리고 경전으로서의 인정은 교회가 결정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이 주장 위해서 신약 자료에 대한 다양한 자료설과 역사비평학이 발전하였다. 이견해는 상당히 일리가 있다, 하지만 우리가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이 주장을 그대로 따르면 교회가 필요에 따라 경전을 수집하고 그 범위를 결정한 것이 된다. 결국 성경을 수집하고 경전으로 결정한 주체는 성령님이 아니라 인간 혹은 교회가 되는 셈이다. 성경의 경전으로서의 절대성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또 다른 하나의 견해는 정경은 교회를 대표하는 몇몇이 원탁회의에서 결정한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즉 성경의 정경화는 몇 세기에 걸쳐 기독교 공동체의 형성과 함께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카르타고에서 대표들이 한 것은 이미 여러 도처에서 사용되던 신약성경의 숫자를 확인하고 공식화하는 회의였다는 것이다. 다양한 교부들이 있었고 기독교 공동체가 여러 지역을 흩어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신약성경 각 권에 대한 종류와 범위를 선택할 때 서로 간에 어떻게 그런 높은 일치도를 보일 수 있었을까? 수집종류의 복음서가 있었는데 여러 지역의 교회가 사용한 복음서의 종류는 오늘 우리가 가지고 있는 네 복음서와 거의 일치한다. 이것은 대단히 신비로운 일이다. 이런 점에서 경전은 누군가에 의해 결정된 것이 아니고, ‘경전은 스스로 결정했다고 말할 수 있다. 성경이 스스로 경전성을 결정했다는 것은 성령님의 인도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의미이다.

인식의 주체성

해석학은 주어진 자료에 대한 해석의 방법을 가리키는 학문적 용어이다. 19세기 이후 발전되어 사용된 다양한 해석학에서 해석의 주체는 인간이다. 역사적 자료, 문헌, 시와 기호 등을 텍스트라고 말할 수 있다. 인간이 텍스를 연구한다. 인간이 텍스트를 읽고 인식한다. 텍스트를 읽고 인식하는 주체는 인간이다. 내가 읽고, 내가 이해하고 그렇다면 이해의 대상은 당연히 자료이다. 이러한 일반 해석학의 방법을 성경에 적용하면 성경은 나에게 이해되는 하나의 대상이 되고 객체가 된다. 즉 인간이 인식의 주체가 되고, 하나님의 말씀은 해석되는 대상이 된다. 인간이 어떤 해석 방법을 적용하느냐에 따라 성경의 뜻이 달라진다. 그러므로 성경이 경전으로서의 권위를 완전히 상실하게 된다. 계시의 말씀인 성경은 자신의 위치를 잃는 것이다.

인간이 주체가 되어 성경을 인식하는 구조가 은연중에 교회 안에 넓게 퍼져 있다. 목사는 자신이 주체가 되어 설교를 준비한다. 적절한 예화를 사용하고, 교인들의 수준에 맞춰 설교를 선포한다. 설교 선포의 주체는 목사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선포되는 대상이 된다.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다. 여기서 주체는 인간이다. 성경의 말씀은 인간이 이해하는 대상이 된다. 이는 비단 목사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작은 공동체에서 말씀을 전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된다. 인간이 주체가 되어 성경을 해석하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착각에 빠진다.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대로 해석하고 때로는 평가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선포의 주체가 인간이 되면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권위를 잃는다.

설교를 듣는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교인들은 선포된 말씀을 인식하는 주체가 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교인들에게 들려지고 이해되고 평가받는 대상이 된다. 교인들은 말씀을 듣고 감동이 되면, 설교가 끝난 후 목사에게 가서 훌륭한 설교를 들었다며 감사 인사를 한다. 반면에 말씀이 맞지 않으면 불평하기도 하고 비판하기도 한다.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이 크게 영향을 미친 이후, 인간이 주체가 되는 성경 해석학이 팽배했다. 이런 해석학이 신학계와 교회에 별 비판 없이 확산되었다. 그러다가 20세기 초에 성경을 다른 일반 텍스트와 동일한 기준에 따라 해석해도 되는지에 대한 반성이 나타났다. 성경은 인간의 언어로 해석되고 선포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 해석의 과정을 거치지 않을 수는 없다. 다만 성경에 가장 잘 맞는 해석의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성경 말씀을 인식하는 주체는 과연 누구일까? 사람들은 인간이 주체가 되는 기존의 성경 해석 방법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식했다. 그래서 말씀이 주체가 되는 해석학이 나타났다. 여기에는 신학자 바르트의 공헌이 컸다. 성경은 인간이 주체가 되어 말씀을 적당히 인식하고 마음에 드는 구절을 음미하고 윤리적 조항을 찾는 책이 아니다. 인간이 성경을 자기 경건을 위한 것으로 여기는 자세는 성경을 하나님의 계시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바르트는 성경은 인간이 주체가 되어서 하나님을 찾아가는 길을 기록해 둔 책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성경에서 주체는 하나님이며, 하나님이 어떻게 천지를 창조했고, 얼마나 인간을 사랑하며, 어떻게 그의 피조물을 구원하시는지를 밝히는 책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물론 형식적으로는 인간이 성경을 읽고 선포하고 인식하는 모양을 가진다. 하지만 인간이 주체로 있는 동안에는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 단지 인간의 말뿐이다. 그러나 인간은 단지 구원의 대상일 뿐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을 통해 선포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주체가 되어 그 말씀을 듣는 인간을 구원하는 것이다. 선포되는 말씀 안에서 그리스도가 주체로서 우리에게 다가온다. 인간이 자신이 말씀을 듣는 것 같지만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가 현존하면서 그가 주체로서 우리를 구원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결코 단 한순간도 인간 사유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인간이 말씀을 가지고 와서 자기 앞에 둘 수 없다. 오히려 인간이 말씀 앞에 서야 한다. 말씀이 주체이다. 구원의 능력이다. 우리는 말씀을 들어야 한다.

성경을 읽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계시의 말씀을 인식할 수 있는 것은 결국 나의 능력 때문이 아니고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말씀의 능력에 의해서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읽혀지고 우리에게 구원의 말씀이 되는 것은 인간의 인식 능력 여부에 달린 것이 아니다. 이는 전적으로 말씀이 가지는 능력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에게 인식되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 그러기에 말씀이 우리에게 인식된다면 그것은 오로지 은혜의 사건이다.

우리가 인식의 주체이고 말씀이 객체일 때 이 구조에서는 아직 말씀은 말씀이 아닙니다. 인간의 언어일 뿐입니다. 말씀이 주체가 될 때만이 말씀이 살아서 임재합니다. 바른 설교에서는 말씀이 주체가 되어 현재적으로 임합니다. 말씀 속에서 예수님이 살아나고 그가 주체가 됩니다. 내가 말씀을 듣고 이해하는 것처럼 생각되지만 말씀이 우리로 하여금 말씀을 인식하게 해줍니다. 말씀이 주체가 되어 인식되도록 허락하지 않으면 결코 인간이 말씀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결국 선포의 주체, 인식의 주체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말씀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주체라는 생각은 위험합니다.

말씀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역사는 말씀이 가지는 능력 때문이다. 그러기에 때로는 아무런 해석 없이 성경만 읽어줘도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항상 주의해야 한다. 우리가 명석해서 성경을 읽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것이 아니다. 성경을 읽을 때 지혜를 허락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지에 대한 학술적인 논의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이 성경의 권위와 경전성에 대한 도전 앞에서 당황해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지금까지 시대를 넘어 구원의 세계를 보여주었다. 우리는 21세기 위기의 시대를 살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 공허와 위기의 시대에 우리 모두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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