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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동영상

[당신에게 예수님은 누구이십니까? 마 16장 13-20절]

by 최수근 2018. 10. 12.

2018년 8월 26일 주일설교동영상

[당신에게 예수님은 누구이십니까? 마 16장 13-20절]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오늘 여러분에게 예수님은 누구이십니까?

예수님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질문을 던지십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 질문에 여러분은 어떻게 답하시겠습니까?

아마도 이 대답은 이곳에 나와 있는 각자의 목적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

분명 모든 이들이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예수님께로 나오는 목적이 예수님 자신을 찾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그분으로부터 나오는 다른 것들, 즉 복에 대한 기대를 갖고 나오는 것입니다.

선물을 주시는 분보다 선물 자체에 마음이 잡혀 있습니다. 얼마나 쉽게 이런 식으로 주님을 대하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우리는 예수님을 알아가고 그 분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삼아가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합니다.

자신의 기대, 자신의 목적에 미치지 못하면 예수님은 중심에서 밀려나게 됩니다. 더 이상 효용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결국 겉돌게 되고 불행하게도 그것으로 끝이 납니다. 또 다른 대체 종교를 찾아가거나, 교회를 떠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통해서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겪은 오류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은 오랜 동안 주변 열강의 식민지배 하에서 신음하면서 매우 비범하고 탁월한 인물인 한 메시아가 올 것이라는 약속을 여러 예언자들을 통해 하나님께로부터 받았습니다. 하지만 긴 고통의 시간이 이어져 왔지만 고대하던 메시아는 오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메시아를 기다리며 지쳐가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먼저 예수님의 오심을 보고 예수님의 오심의 목적을 알아본 자가 바로 세례 요한입니다. 요한복음 1장에서 세례 요한이 예수님이 오심을 보면서 이야기합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그와 함께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습니다.

그랬던 세례 요한이 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분봉왕이었던 헤롯왕이 동생의 아내를 왕비로 삼은 것을 옳게 여기지 않고 지적하자 옥에 갇히게 되었던 겁니다. 그렇게 한동안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예수님에게 두 제자를 보내어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이 우리가 그렇게 오랜 동안 고대해왔던 그 메시아이십니까? 아니면 그렇게 생각하는 우리들이 틀린 것입니까? 그렇다면 우리들이 다른 메시아를 찾아보아야 하는 것인지요? 혹은 아직 오지 않았다면 앞으로 오실 다른 이를 기다려야 합니까?”

분명하게 예수님을 인지했던 세례 요한이지만 아마도 감옥의 열악한 환경 때문에 침체에 빠졌을 것입니다. 참으로 메시아라면 감옥에 갇혀 있는 자신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을 거고, 구원해 주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이 그를 힘들게 만들어 예수님께 제자들을 보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여기에 대해 요한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하셨습니다.

이것은 구약의 메시아 예언에서 메시아가 와서 행할 일들에 대한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본대로 나는 바로 그 메시아이다 라고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어서 하시는 말씀이 중요합니다. 11:6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그때도 마찬가지이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로 나아가는 자가 있고, 수많은 장애물들로 인해 나아가지 못하는 자가 있습니다. 그런데 의심하거나 다른 여러 이유들로 인해 넘어지지 않고 마침내 예수님께로 나아가는 자가 복이 있다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입니까? 만약 예수님이 메시아인 것이 사실이라면 그분을 믿는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긴급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내 영혼의 영원한 구원을 결정하는 중대한 일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 분을 직접 주목하기보다는 자기의 생각, 자기의 분석을 우선시하고, 자기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때 걸려 넘어져 실족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결국 그렇게 실족하여 예수님을 믿지 못했습니다. 메시아이시라고 분명하게 선포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생각했던 메시아의 틀에 맞지 않는다는 판단의 결과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물었을 때 세례 요한, 엘리야, 예레미야 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고 제자들은 대답했습니다. 메시아로 오셨음에도 사람들은 구약의 예언자 정도로 여겼던 것입니다.

오늘도 교회에 오가지만 여전히 우리 자신이 예수님을 온전히 알지 못하면, 그 분에 대한 바른 신앙의 고백이 없다면 좋은 영향을 주시는 한 인물로밖에 자리 잡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인생의 가장 긴급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냥 시간만 허비할 뿐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우리 자신의 확고한 예수님에 대한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물었을 때 베드로가 대답하죠.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어떤 의미에서 성경은 우리들이 그리스도에 대한 만족할 만한 해답에 이를 때까지는 우리들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 것에 대해 말하지 않습니다. 특히 신약성경은 그리스도에 대한 문제를 끝까지 붙잡고 우리들 앞에 내세우며 도전합니다. “당신이 어떻게 그런 삶을 살 수 있는지를 논하기 전에 먼저 당신이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해 보십시오. 예수님이 당신의 인생관과 이 세상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무엇입니까?

기독교는 일차적으로 교훈도 아니고 철학도 아닙니다. 어떤 새로운 생활 방식을 선포하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기독교는 그 무엇보다도 한 인격체와의 관계입니다. 그 점에서 기독교는 근본적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것입니다. 성경의 모든 메시지는 예수님을 중심으로 합니다.

마가복음은 11절에서 선포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성경은 세 가지를 분명하게 선포합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내려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오직 예수님만이 이세상의 구주이시며 세상을 구하시려고 이 땅에 오셨다.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구원도, 천국도 없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성령을 받고 수많은 대중들 앞에서 분명하게 선포했습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그러기에 나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나의 구원자이심을 믿습니다라는 고백 없이는 실은 한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지금 이 고백을 할 수 없습니까?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이것을 알 수 있도록 고백할 수 있도록 하나님 도와 주십시오. 이것은 나의 이성으로 나의 지식으로 깨달아지고 이해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했을 때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말씀하셨고, 이것을 알게 하신 이는 바로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고 하셨습니다.

교회가 다른 데와 구별되는 것은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 위에 세워졌다는 것입니다. 기초와 목적이 다릅니다. 그리고 이것이 복된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삶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입니다. 음부의 권세, 즉 허무와 파괴의 세력이 우리를 틈타지 못할 것입니다.

다른 것이 다 해결되어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그것이 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우리들의 현재의 생활, 죽음 이후의 영원한 삶이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 고백에 달려 있습니다. 실족하여 넘어지는 자가 되겠습니까? 아니면 예수님을 통해 복 있는 자가 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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