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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설교원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빌 3장 12-16절

by 최수근 2017. 12. 31.

2017년 12월 31일 주일예배 설교문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빌 3장 12-16절]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오래 전 포레스트 검프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주인공은 달리기를 참 잘합니다. 아무 생각 없이 앞으로만 뛰어가는데 주변 세상들은 바삐 변해만 갑니다. 또 주인공이 뛰어갈 대 다른 사람들도 한두 명씩 영문도 모른 채 검프의 뒤를 따라서 뛰기 시작합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저 사람 뒤를 쫓아가면 뭔가 있을 것 같다고...

어쩌면 우리도 포레스트 검프를 뒤따르던 사람들처럼 아무것도 모른 채 휩쓸려 가듯 그렇게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2017년 한해 숨 가쁘게 달려왔습니다. 무엇을 위해 지난 365일 달려오셨습니까? 그렇게 달려온 결과에 만족하십니까? 저에게는 참으로 감사한 한 해였고, 정말 최선을 다해 달려왔습니다. 좀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말걸 등등 지난 시간에 대한 아쉬움이나 후회는 없습니다. 지난 한 해 주님께서 이끌어주셨기에 여기까지 왔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지나 버린 시간보다는 새해에 하나님께서 펼쳐주실 일들에 대한 기대가 더 큽니다. 주님께서 새해를 어떻게 이루어가실지 그 길에 내가 어떻게 동행할까에 대한 생각이 앞서는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 발목 잡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그런데 주변에 보면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합니다. 잘한 일이든 못한 일이든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면 우리는 새로운 역사를 이루어갈 수 없습니다. 아직 우리는 목표점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여기를 향해 끝까지 갈 수 있어야 합니다. 많은 이들이 그저 조금 왔을 뿐인데 다 온 것처럼 착각합니다. 그래서 멈추어버립니다. 하지만 멈추는 순간 거기에서 만족하고 안주하는 순간 우리에게서 비극이 시작됩니다. 필연적으로 넘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바울도 한 때는 자신이 도달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빌립보서 36절에서 말했던 것처럼 바울은 과거에 자신을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가 회심한 이후로 자신을 새로운 눈으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자신 또한 여전히 이 길을 가야 함을 깨달았던 겁니다. 12절에서 말씀합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우리는 지금 완전한 자로서 나아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 여겨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온전한 구원의 자리까지 나아가야 하는 자들입니다. 그 과정에서 성도로서 우리는 어떤 목적으로든 그리스도께 붙잡혀 있는 것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목적한 계획이 있으신 것입니다. 의미 없는 부르심은 없습니다. 우리는 포레스트 검프처럼, 혹은 그 뒤를 함께 달리던 사람들처럼 그냥 달려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붙잡아 가고자 하시는 주님의 계획과 목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가 자기를 붙잡은 목적과 계획을 놓치지 않기 위해 달려간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이를 위해 바울은 끊임없이 달려갔습니다. 지난 시간 자신이 이루어놓은 수많은 것들이 있지만 거기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잊어버렸습니다. 13절에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하였습니다. 바울은 아직 잡은 줄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직 앞에 있는 것을 붙잡고자 달려갔습니다.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미래에 주실 축복을 내다보지 못하고 과거를 바라보는 어리석음에 빠졌었습니다. 결국 과거에 붙잡혀 그들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광야 길 40년 동안 그곳에서 쓰러져 갔습니다. 오늘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빠지는 오류가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뒤의 것을 보는 동시에 앞의 것을 잘 볼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참으로 붙잡아야 할 것들을 보고 앞으로 달려가기 위해선 바울처럼 과거에 머무르지 말고, 오직 뒤에 것은 잊어버리고 앞을 보고 나아가야 합니다. 무엇을 잊어야 하겠습니까?

우선 잘한 것들을 잊어버려야 합니다. 전에 무얼 잘했다는 것은 오늘 우리에게 의미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과거에 한 가지 추구한 것, 과거에 체험한 것을 붙잡고 놓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성장할 수 없습니다. 어느 순간 정체의 늪에 빠져드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교만해지기 십상입니다. 그저 오늘도 살아갈 수 있었음에 감사드려야 할 뿐입니다.

또한 지난날의 잘못한 것들을 잊어버려야 합니다. 잘못한 것에 집착하면 낙심하기 쉽고 전진할 수 없게 됩니다. 죄책감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주시고 용서하시고 사랑으로 품으시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함으로 우리로 하여금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잊어야 합니다. 버려야 합니다. 정죄는 사탄이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했습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들에 발목 잡히지 말아야 합니다. 뒤를 돌아보면 구원을 완성할 수 없습니다. 누가복음 962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우리는 지난 상황에 상관없이 지금 하나님께 헌신하고 집중함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오늘 하나님 앞에 어떤 모습으로 서 있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내가 하나님 앞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가 우리의 미래를 이끌어가는 것입니다. 지난 일에 얽매여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소용없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처럼 과거의 모든 자격과 업적과 자신의 허물과 함께 지난 과거를 잊어버리고, 오직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달려갔습니다. 바울 앞에 무엇이 놓여 있었습니까? 바울 앞에 언제나 푯대가 있었고, 그 푯대를 향하여 그는 달려갔습니다. 바울은 어느 때나 방향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14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바울은 과거의 승리 위에 서 있기를 과감히 거절하고, 오직 다가 올 영광을 열렬히 고대하며 나아갔습니다. 마치 달리기에서 결승선을 향해 힘껏 달려가는 선수처럼 푯대를 향하여 나아갔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뛰어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적인 목표는 분명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푯대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뿐만 아니라 그 분은 우리의 상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스도와의 더 완전한 연합, 그 분을 완전히 얻는 것, 그것보다 더 큰 상이 이 세상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 분으로 채워지는 인생은 이 세상 보화로 채워진 인생보다도 더욱 풍요로움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귀한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을 얻기 위해서 달려가는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여러분에게는 무엇이 푯대입니까? 무엇이 오늘 신앙의 목표가 되고 있습니까? 히브리서 121-2절에서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말씀했습니다. 우리 믿음의 주요, 우리를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 분을 얻기 위해, 그 분에게 붙잡힌바 되기 위해 믿음의 경주를 행하는 여러분이 되기 바랍니다. 위에서 주께서 우리를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없이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그 분만이 나의 구원의 보증이 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빌립보교회의 성숙한 성도들을 향해 이와 같은 믿음의 경주를 강력하게 권면하였습니다. 15a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온전히 이룬 자들은 완전무결한 신앙을 지닌 자를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이 성숙한 이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렇듯 믿음이 성숙한 자들은 복음을 왜곡하는 다른 세상의 소리에 귀 기울이거나, 부화뇌동하지 않고, 바울처럼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르심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야 함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실은 전혀 다른 길을 열심을 다해 달려갔었습니다. 그런데 다메섹 도상에서 듣게 하셨고, 보게 하셨습니다. 그런 경험이 있기에 빌립보 교회 안에 있을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에 대해서 비관적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달리 생각하는 자들에게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기보다는 하나님께서 그와 같은 진리를 분명하게 알려주실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15b “만일 어떤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사람이 아무리 주장해도 잘 먹히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결국 하나님이 깨닫게 해주실 때 그 완고함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견해의 차이뿐만 아니라,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의 영적수준은 서로 다른 단계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각자의 수준에서 충실하게 행해야만 합니다. 16절에서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하였습니다. 오직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은 바울이 전한 복음대로 각자가 어느 수준까지 이르렀든지 간에 같은 법칙으로 행할 것을 권면한 것입니다. 이 법칙은 바울처럼 그리스도를 추구해서, 그리스도 한 분만을 얻기 위해서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믿음의 목표를 향해 달려갈 때 그리스도인들은 자기들이 알고 있는 바를 가볍게 취급하지 말고, 이미 받은 것으로 자기들의 삶을 제어하면서, 계속 배우고 자라가야 합니다. 어느 수준에 이르렀든지 다 같은 법칙을 따라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리다고 해서 뭔가 적당히 가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많이 자랐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가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한분을 위하여 달리는 원칙은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야 할 원칙은 말씀 안에 다 있습니다. 우리를 성화의 길로 이끌어가는 것은 결국 말씀입니다. 우리가 함께 말씀을 배우고, 말씀을 기초로 살아가고자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게 하고 강화시켜 주시는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2017년 한해를 보내고 2018년 새해를 맞이하면서 우리는 주신 말씀을 토대로 우리 믿음의 레이스의 속도를 다시 한 번 끌어 올릴 수 있기 바랍니다. 오직 한 일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기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바울은 고백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울을 다메섹 도상에서 멈추게 하시고 그를 붙잡은 것은 바울을 통한 비전과 목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가 자기를 붙잡은 목적과 계획이 어긋나 그분으로 하여금 실망하시지 않도록 전 생애를 추구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성도는 누구나 어떤 목적으로든 그리스도께 붙잡혀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자기를 붙잡아준 그 목적과 계획을 실현하기 위하여 전 생애를 통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지금 그리스도께 붙잡힌 것을 성취하려 달려가고 있습니까? 그렇게 우리 주변을 정리하고 오직 푯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성실히 달려가노라면 그 경주 끝자락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의 상을 얻고 기뻐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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