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 29일 주일예배 설교동영상
[위로와 축복: 엡 6장 21-24절]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기대하는 일이 하나도 없다면 그건 사는 게 아닐 겁니다. 사람에 대한 기대, 일에 대한 기대, 소유에 대한 기대, 성공에 대한 기대, 소박한 기대로부터 매우 큰 기대까지 다양한 기대 속에 살아갑니다. 어떤 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기다리는 기대 심리는 우리 생활 곳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 기대가 이루어지면 하늘을 날아갈 듯한 기분이지만 그렇지 못할 때도 많습니다. 기대하는 바가 크면 실망 또한 큰 법입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낙심하고 더는 기대하기를 주저합니다.
이와 같은 기대 심리는 종교 생활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사람들이 종교에 귀의하면서 나름 기대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복입니다. 영적 축복보다는 물질 축복이죠. 이런 기대 심리를 충족시킨 것이 소위 “삼박자 축복”입니다. 요삼 1:2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대단히 성공적이었습니다. 수십만 명이 순복음교회로 몰려왔으니까요. 잘되기를 원하는 마음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보편적인 인간의 기대 심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쉽게 종교를 받아들이기도 하지만 기대 심리가 충족되지 못하면 쉽게 배교 할 수 있는 겁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과 무리에게도 나름 기대 심리가 있었던 것처럼 처음 교회가 세워지고 확장되는 시기에도 복음의 본질을 본 이들도 있었겠지만 다른 기대 심리를 가진 이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바울이 세 차례에 걸쳐 전도 여행을 할 때 곳곳에서 성령의 권능으로 이적들이 나타나기도 하고, 사람들이 놀랄만한 사건들을 통해 많은 이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고 곳곳에 교회가 세워지면서 많은 이들이 들어왔기에 그런 이들도 섞여 있었을 것입니다.
바울이 에베소에서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처음 세례를 베풀었을 때 12명이 성령 충만하여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였습니다. 그 이후 회당에서 석 달 동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가르쳤고, 따로 제자들을 모아 두 해 동안 두란노서원에서 날마다 주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다 한 사건이 일어나죠. 사도행전 19장에 보면 제사장 스게와의 아들들이 바울처럼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들린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내려 하였습니다. 그때 악귀가 말하기를 행 19:8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악귀 들린 사람들이 이들에게 달려들어 몸을 상하게 합니다. 결국 당해내지 못하고 벗은 몸으로 도망을 칩니다. 이 장면을 지켜보던 사람들로 인해 소문이 나고 많은 이들이 두려워하며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마술하는 사람들이 엄청난 양의 마술책을 모아 불사르기도 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에베소의 교회는 부흥하였습니다. 행 19:20에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저는 여기 상황에서 신적 전쟁에서 패하자 승자 쪽으로 몰려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봅니다. “예수가 더 강하네”라고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일종의 수호신을 바꾸는 것입니다. 삼 년 동안 예수님의 특별 교육을 받은 제자들도 하나님 나라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들이야 오죽하겠습니까? 보이는 것이 우선 전부일 테니까요. 이 사건 때문에 대적의 핍박도 물론 있었지만 그렇게 교회는 초기에 계속 부흥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이들에게 어려움이 닥칩니다. 그들의 영적 스승인 바울이 로마 당국에 체포되고 로마로 이송되는 작전이 시작되었습니다. 결국은 로마의 감옥에 갇힌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 상황을 바라보는 에베소의 성도들 마음이 편할 리가 없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교인들은 상당히 어려움과 실의에 빠져 옹기를 잃어버릴 위험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작금의 상황은 그들이 처음에 가졌던 기대하는 것과는 너무도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어서입니다. 그러니 낙심하고 걱정할 수밖에요. 그런 그들을 향해 바울은 낙심하지 말라고 전한 것입니다. 엡 3:13 “그러므로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하지 말라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
낙심한 그들의 기대가 무너지지 않도록 바울은 에베소의 교인들을 다독이고 위로해야 했던 겁니다. 이렇게 하는 바울의 목적은 에베소의 교인들이 지금 위로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 40:1에서 하나님은 위로할 것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오늘 떨린 마음을 다독거려야 할 상황이 닥칠 때, 우리 신앙의 삶에서 하나님의 위로가 필요합니다. 목자의 위로가 필요하고 성도 상호 간에 위로가 필요합니다. 이 길은 혼자 가다가 이겨낼 수 없습니다.
이 길은 우리가 함께 가야 하는 길입니다. 존 번연의 천로역정을 읽어보셔서 아시겠지만, 책 내용을 보면 1부는 크리스천이 혼자 가는 구원의 여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천로역정 2부는 크리스천의 아내 크리스티아나가 자녀들과 여러 순례자들이 서로를 격려하며 함께 가는 구원의 여정을 그려냅니다. 우리는 이 길을 혼자가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가야 합니다. 서로 위로하고 서로 격려하고 서로 돌아보면서 말입니다. 그것이 교회공동체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서로 대립하고 싸우는 것이 몸이 아닌 것입니다.
이렇게 서로 위로할 때 어떤 결과가 있겠습니까? 고후 1:6b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너희가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지금 처한 고난을 같이 이길 수 있게 합니다. 바울은 갇혀 있었서 에베소 교인들은 낙심했지만 바울은 소망이 있었습니다. 거기에서도 그는 하나님 나라의 증거자였습니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오히려 에베소의 교인들이 낙심한 상황에서 바울은 저들을 위로한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위로하며 막혀 있는 상황을 넘어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그들을 향해 1-3장에서 하나님의 구원 경륜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누리는 하늘의 신령한 복을 써 내려가면서 그들이 갖는 기대가 세상 사람들의 기대와는 다른 것임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이것은 절대 무너지지 않을 기대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무너질 것들에 대해 기대합니다. 그것으로 인해 실망과 낙심도 큰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의 복이 아닌 하늘의 신령한 복에 대한 기대 가운데 있어야 하는 겁니다.
이어서 4-6장에서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에 대해 말씀하면서 지금 진행되고 있는 영적 전쟁을 위해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할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지금 약해져서는 안 된다고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바울은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죄수의 몸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하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에베소서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였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하나님의 구원역사의 큰 그림을 보여주면서 예베소의 교인들을 위로한 것입니다. 그와 함께 마지막으로 바울은 23과 24절에서 저들을 향해 축복하고 있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 또한 우리는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23절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평안과 믿음을 겸한 사랑이 형제들에게 있을지어다.”
하나는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오는 평안과 믿음을 겸한 사랑입니다. 평안은 단지 어려운 상황을 넘어서서 그 어떤 잔잔한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샬롬은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과 화해하여 회복된 원만한 관계 안에서 누리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요동치지 않게 하는 힘입니다.
이렇게 평안과 함께 바울은 형제들에게 사랑이 있기를 기원하였습니다. 그 사랑은 믿음을 겸한 사랑입니다. 즉 믿음 안에서 진정 이루어지는 신적 사랑입니다. 믿음 없는 사랑은 아버지 하나님의 다함없는 사랑이 아니라 인간의 이기적인 사랑일 것입니다. 믿음을 겸한 사랑일 때 우리 공동체는 진정으로 사랑하는 공동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평안과 사랑은 우리 안으로부터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 아버지 하나님의 구원 경륜을 온전히 믿기 시작할 때, 그래서 구원에 대한 소망과 열정을 소유할 때 하늘로부터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어떤 자에게서 그와 같은 은혜를 볼 수 있을까요? 바로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변함없는 사랑이 요구됩니다. 24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
변함없이 그리스도를 사랑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첫 번째 축복의 결실이 있어야 합니다. 바로 믿음을 겸한 사랑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끝까지 그 사랑을 이루어가는 삶을 기대하시지요? 참으로 아름답고 신실한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변함없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언제나 변함없으신 분이십니다. 늘 마음을 바꾸는 것은 우리입니다. 변함없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성도가 됩시다. 우리는 평안과 사랑과 은혜 안에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이렇게 간절히 축복하며 기도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지체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 된 지체들로서 조화를 이루며 하나님과 우리 서로가 평화롭게 사랑 안에서 그분의 은혜로만 하나님 나라의 꿈이 이루어질 수 있음을 믿고 그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서로 격려하며 위로하며 함께 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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