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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동영상

복음의 말씀을 전하라: 행 8장 4-8절

by 최수근 2019. 1. 15.

2019년 1월 13일 주일설교동영상

[복음의 말씀을 전하라: 행 8장 4-8절]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예수생명교회 최수근 목사

교회는 하나님을 향한 예배와 이웃을 향한 전도의 의무를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셔서 예배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 주신 복음의 말씀을 증거 하는 공동체로 삼아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 나라의 무한한 가치를 인정하고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외하여 예배한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 역시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하나님을 알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이 예배는 증거로, 증거는 예배로 이어지면서 끊임없이 순환합니다. 존 스토트 목사는 만일 세상의 교회들이 이 일에 충성했다면 세계는 오래 전에 이미 복음화 되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구령의 열정이 끝까지 지속되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약함입니다.

더욱이 그때나 지금이나 기독교는 세상으로부터 환영받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쉽게 거부합니다. 보다 더 설득력 있는 가치들, 괜찮아 보이는 것들을 좇아가려고 합니다. 그런 점에서 요즘 같은 추세라면 더욱 예수님을 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안 믿으려고 하는 상대방을 설득시켜서 교회에 나오게 하려고 하니까 더더욱 예수님 전하기가 어렵습니다.

오순절에 성령강림이 있기까지 처음의 교회는 생각이 복잡했습니다. 공격적인 세상 앞에 위축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120명의 제자들이 오순절에 성령을 체험하고 놀라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이에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반응을 보입니다. 그때 베드로가 무엇을 합니까? 있는 그대로 그들 속에 일어난 일을 전합니다. 듣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듣는 사람의 문제입니다. 들을 귀가 있는 자들은 말할 것입니다. 형제여 우리가 어떻게 하랴? 베드로는 그런 동족들에게 회개하고 예수를 믿으라고 하였습니다. 이 때 무려 3000명이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여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건 유대교 지도자들에겐 충격이었습니다. 그들의 괴수인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는데 지금 순식간에 3000명이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여기에 대해 위협을 느낀 유대교의 종교지도자들은 사도들과 제자들로 하여금 복음을 전하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사도들을 옥에 가두기도 하고, 위협하기도 하고, 하지만 복음의 말씀을 제한할 수 없었습니다. 심지어 스데반 집사가 순교를 하고, 예수살렘 교회가 핍박을 받습니다. 성도들을 옥에 가두었습니다. 교회를 잔멸하고자 하였습니다. 교회의 씨를 말리려고 했습니다. 이에 사도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흩어졌습니다. 그러면 복음의 확산이 멈추어질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기대와는 달리 교회를 잔멸하려는 핍박가운데서도 복음의 확장은 멈출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막으려고 했던 일 때문에 복음이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습니다. 세상일들은 엄청난 세력이 막으면 힘을 쓸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복음은 세상이 막을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그 복음을 믿는 다른 사람이 일어나 심지어 목숨 걸고 나가 그 복음을 전하는 것이 복음입니다. 내가 복음을 믿지 않으면 나는 영원히 도태되지만 하나님 나라는 영원할 것입니다.

핍박받고 흩어진 성도들은 위축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두루 다니며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핍박을 받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핍박의 단초를 제공한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의 복음의 말씀을 사실대로 전했습니다. 실은 상식적으로 보면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 때문에 핍박받았는데, 흩어지면서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그 핍박을 또 불러들이는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교회는 진리를 추구하는 곳이 아닙니다. 진리를 추구하다보면 다른 일들로 인해 멈출 수 있고 왜곡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진리를 알고, 진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반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바로 그 사명을 수행하는 곳이 교회이며, 그 일이야 말로 성도로서의 소명입니다. 우리가 증인의 삶으로서 부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흩어진 성도들이 복음의 말씀을 전하자, 그로 인해 사마리아 땅에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이 듣기 시작했습니다. 듣고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사마리아 땅은 소외된 땅이었습니다. 어두움의 영이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복음이 전하여지면서 영적 전쟁이 일어났고 사마리아 사람들이 놓임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귀신들이 물러가고, 병이 치유되는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우리의 경험, 우리의 생각, 우리의 판단이 아닙니다.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그들 속에 전파되면 복음의 능력으로 인하여 이와 같은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 당시 사마리아 사람들은 시므온이라는 마술사에게 장악되어 있었습니다.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그의 마술에 놀라 그가 마치 하나님의 능력의 사람인 것처럼 믿었고, 시몬 또한 자칭 큰 자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 또한 시몬과 같은 이들에게 종속되어 있습니다. 그가 행한 일들에 놀라 하나님의 능력처럼 여기며 살아갑니다. 그게 최고인 것처럼 여깁니다. 그렇게 우리는 서서히 귀속되어 가는 것입니다. 종이 되고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와 같은 결박을 깨뜨려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힘으로 결코 되지 않습니다. 오직 복음이 전하여질 때 이와 같은 해방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 때 당연한 결과로서 사마리아 사람들이 전에 알지 못했던 기쁨이 생겼습니다. 복음의 말씀을 전할 때 그 곳에 사람들 속에 큰 기쁨을 가져옵니다.

환경이 변한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들 속에 기쁨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복음을 받은 사람이 변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진정한 기쁨을 줄 수 있는 것은 이 복음 외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어떻게 그런 기쁨을 줄 수 있습니까? 복음은 사람이 아닌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복음은 환경과 조건을 바꾸는 대신 우리 자신을 바꾸게 함으로써 기쁨을 줍니다. 기쁨의 샘을 우리 속에 만들어 줌으로써 더 이상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에 좌우되지 않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마음에서부터 기쁨이 솟아 나오기 때문에 환경을 영향을 받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의 치명적인 오류는 기쁨 자체를 직접 찾고 좇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쁨과 행복자체를 찾으면 결코 찾을 수 없습니다. 잠시 환희를 맛볼 수는 있겠죠? 그러나 곧 그 기쁨은 사늘하게 식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오히려 마약처럼 우리를 비참하게 만들고 맙니다.

하지만 기독교가 주는 기쁨, 복음의 메시지가 주는 기쁨은 세상과는 분명 다른 것입니다. 이것은 항상 진리를 믿은 결과로 찾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이 기쁨을 얻고 행복해 진 것도 빌립이 메시지를 믿은 결과입니다.

어떤 메시지입니까? 복음의 말씀입니다. 빌립은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였습니다. 예수야말로 그들이 소망하던 메시아이심을 전하였습니다. 바로 이것을 보고 믿었을 때 그들은 자신들에게 기쁨이 넘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에게 이 기쁨이 넘치고 있습니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하였습니다. 이것은 심리적인 구원이 아닙니다. 영육 간에 실제적으로 일어나는 구원입니다. 그들의 질병이 나았습니다. 그들을 속박하던 귀신이 쫓겨나갔습니다. 이 땅에서의 삶에 해방의 기쁨이 주어졌을 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미래가 분명해지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입니다.

이렇게 우리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 주실 영원한 미래에 관한 진리를 듣고 믿었다면 우리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하신 하나님 때문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찬송할 수 있고, 기뻐할 수 있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온 몸에 채찍을 맞고서 착고에 차인 채 감옥에 있으면서도 기뻐하며 찬송할 수 있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진정 복음의 말씀을 믿고 있다면 아직도 이 진리의 소식을 듣지 못하여 매일 사탄의 속박 속에서 힘들어하며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 나아가 복음의 말씀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불일 듯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기쁜데, 내가 이렇게 즐거운데, 어떻게 나 혼자만 이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습니까? 죽어가는 우리 주변이 보여야 합니다. 그래서 저들에게 복음의 말씀을 전하여야 합니다. 내가 믿었더니 평안해졌어, 생활이 변화되었어. 이런 내 경험을 전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내 안에 역사하신 예수님을 있는 그대로 전하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너의 구원자이셔!”

그럴 때 복음의 능력으로 인하여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고, 사탄의 억압의 사슬이 끊어지고, 저들 속에 가득 찼던 고통의 문제와 근심이 떠나가고 하늘의 기쁨이 솟아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를 부르신 소명의 자리입니다. 이렇게 우리를 통해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지며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갈 때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자리에 서 있는 것입니다.

핍박을 피하여 흩어졌던 무리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하였던 것처럼 이렇게 모여 예배하며 하늘의 기쁨으로 충만하여 이제 곧 세상으로 흩어져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함으로써 구원의 역사와 삶의 기쁨이 곳곳에서 회복되는 일에 쓰임받기를 저와 여러분이 힘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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