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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동영상

참된 믿음입니까? 행 18장 12-24절

by 최수근 2019. 2. 6.

2019년 1월 27일 주일설교동영상

[참된 믿음입니까? 행 18장 12-24절]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예수생명교회 최수근 목사

참과 거짓의 구별은 어떤 경우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사기꾼들도 나중에는 자기 확신 속에 자기가 하는 거짓된 것이 진실인 것처럼 믿고 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은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하지만 그 거짓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우리의 믿음도 그렇습니다. 여러분 진정 그리스도인입니까? 무엇을 보고 우리는 참된 그리스도인, 참된 믿음의 사람이라고 하나요? 그리스도인이 아니면서도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더 무서운 일은 없습니다. 평생 동안 자신은 그리스도인이므로 안전하다고 생각하면서 살다가 마지막에 가서야 스스로 속고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보다 더 무서운 일은 없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 거짓이 들어나는 일이야말로 은혜인 것입니다. 회개할 기회라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도행전 8장 사마리아에서 일어난 일을 통해 오늘 우리 안에 있을 수도 있는 거짓된 믿음을 보게 됩니다.

빌립을 통하여 복음이 사마리아에 전해졌고 그곳에서 놀라운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많은 이들이 복음을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저희가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그때 사마리아 백성들을 마술로 놀라게 했던 마술사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 말씀에 이야기하는 것으로만 보면 믿음을 가진 사마리인들이나 시몬이 다 같아 보입니다. 시몬은 스스로도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확신하고, 아마도 그것에 크게 만족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전심으로 따라다녔고, 표적과 능력을 보면서 놀라워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빌립이 복음을 전파한 결과 시몬을 포함해서 수많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복음을 믿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예루살렘교회는 베드로와 요한을 사마리아로 내려 보냈습니다. 이때까지는 성령님이 임하시지 않았는데, 베드로와 요한이 와서 사람들에게 안수하자 성령이 임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지켜보던 시몬이 놀라워하며 그와 같은 능력을 발휘하고 싶은 욕심이 들었습니다. 그는 주저하지 않고 베드로와 요한에게 돈을 주고 성령을 부리는 능력을 사려하는 돌출행동을 하고 맙니다. 어처구니없는 행동을 한 시몬을 베드로가 엄히 꾸짖었습니다. 어떻게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지고 말았을까요?

대부분의 사마리아 사람들은 빌립이 전한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즉 복음을 믿었습니다. 헌데 시몬은 믿고 세례도 받았지만,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다녔지만 그를 놀라게 했던 것은 복음 안에 이루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 은혜에 있지 않았단 것처럼 보입니다. 그가 빌립을 통해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그 일을 더 놀라워했던 것입니다.

물론 시몬도 나사렛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다고 했을 것입니다. 시몬이 이 모든 사실을 믿는다고 말하지 않았다면 빌립은 그를 받아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모든 것에 동의하였는데도 그리스도인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 경악스럽지 않습니까? 그리스도인이 아닌데도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분명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속이며 착각하는 경우입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스스로 속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기독교는 우리가 신조에 동의하느냐, 무엇을 했느냐 여부에 관심이 없습니다. 큰 관심은 우리가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로부터 해방되었느냐, 참으로 하나님과 화목케 되었느냐, 그리스도를 진정 주님으로 모시고 살아가고 있느냐에 있습니다.

지식적인 동의뿐만 아니라 감정적인 반응도 마찬가지입니다. 감정적으로 감동을 받아도 실제로는 아무 알맹이도 없고 가치도 없을 수 있습니다. 마음이 뜨거워졌다. 눈물을 흘렸다. 그러면 우리는 은혜 받은 것처럼 여깁니다. 시몬도 능력에 놀라워했습니다. 록 콘서트에서도 이런 감정적 경험은 풍성하게 일어날 수 있습니다. 더욱이 죄에 빠져 있는 우리의 상태와 마음의 거짓됨과 사탄의 궤계 때문에 착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심지에 세례를 받아도 그렇습니다. “세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다니며시몬은 교회 안에서 할 건 다했습니다. 분명히 그의 신앙고백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룻밤 결단하고 다시는 나타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그는 다음날에도, 또 그 다음날에도 연속적으로 나타났습니다. 남들과 똑같은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삶도 예전과 달라졌습니다. 그가 계속 마술을 했다면, 절대 교회에 들어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과거에 하던 모든 일을 포기하고 돌이켜 정기적으로 교회에 출석했고, 빌립이 행하는 기이한 일들을 보고 놀라며 경탄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렇게 교회 안에 들어와 있어도 그리스도인이 아닐 수 있습니다. 기독교적인 분위기에서 자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모태신앙도 그렇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그리스도인인 사람을 아무도 없습니다. 내가 오직 거듭나야만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믿음은 결국 거짓으로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불신앙과 거짓과 사이비 믿음은 항상 그 실체가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거짓 믿음의 실체는 대개 갑자기, 예기치 못한 순간에 드러납니다.

사람들이 시몬을 보면서 얼마나 놀라워했겠습니까? 어느 모로 보나 완전무결한 그리스도인처럼 보였습니다. 전에 이런 식으로 예수 믿고 간증하러 교회마다 다녔던 사람들을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시몬도 간증을 하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예루살렘에서 두 사도가 내려왔고, 그들이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안수하자 성령세례가 임했습니다. 사도들이 그렇게 한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그는 대뜸 말했습니다. “돈을 드릴 테니 저한테도 그 권능을 주시지요.” 그의 거짓되고 얄팍한 실체가 드러나 버렸습니다.

만약 시몬에게 복음의 내용에 대해 물었다면 올바른 대답이 나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급한 상황에 갑자기 말이 튀어나왔을 때 진정한 마음의 상태와 형편이 그대로 드러나 버리는 것입니다. 가리어졌던 그의 실체가 갑자기 표출된 것입니다. 예기치 못하게 닥치는 다양한 일들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참된 위치가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입을 열 때, 불쑥 말을 꺼낼 때, 무의식중에 말할 때 자신의 참 모습을 온전히 드러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그들이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니 자신이 능력을 발휘했던 마술처럼 베드로와 요한에게서도 성령을 받게 하는 능력을 살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돈을 들이밀었다가 베드로에게 책망 받고 만 것입니다. 21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 23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 바 되었도다.” 베드로는 그의 실상을 파악한 것입니다.

시몬은 사도들에게 이 말을 함으로써 자신이 본질적으로는 여전히 과거와 똑같은 사람임을 아주 명백하게 보여 주었습니다. 거짓으로 기독교의 외양을 취하는 자들의 문제가 항상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 그 자체는 전혀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일정한 것들을 추가하기는 하지만, 믿고 세례를 받고 교회 안으로 들어오기는 하지만 놀라움과 경탄으로 쳐다보기는 하지만 본질은 전혀 변하지 않습니다. 결국은 그 사실을 드러냅니다. 여전히 세상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는 세속적인 사람이라는 사실을 갑자기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 점에서 참 기독교 신앙은 옛 사람의 삶에 덧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새로운 피조물인 것입니다. 안 그러면 덧 된 것이 깨어지는 순간 고스란히 옛사람이 드러나고 말 것입니다.

시몬은 복음을 믿는다고 했고 마술도 포기했지만 전에 마술을 하게 만들었던 요소는 여전히 가지고 있었습니다. 똑같은 일을 다른 방식으로 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말뿐 아니라 삶의 전체적인 방향을 확인하고, 더 나아가 기독교를 어떤 식으로 구현하고 있는지 확인함으로서 자기 자신을 검증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났는지? 나의 우선순위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무엇이 나를 통제하고 있는지? 무엇이 나를 다르시고 있는지?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참으로 지켜보면 그리스도인이 아닌 것이 너무나 분명한데도 본인들은 그리스도인이라고 믿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기독교는 전적인 것입니다. 기존의 삶에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거듭남에 있습니다.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온갖 종류의 동기로 이런 잘못된 자리에 서게 됩니다. 시몬의 흥미를 끌었던 것은 사도들의 능력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능력을 돈으로 얻고 싶었던 것입니다.

남의 체험을 탐내고 흉내 내려고 하는 것은 신앙의 본질이 아닙니다. 인간의 마음은 너무도 간사해서 남의 체험을 탐내고 남의 능력을 탐냅니다. 시몬은 자신의 중요성과 대단함을 과시할 기회, 감탄의 대상이 될 기회를 노린 것입니다. 우리 안에 이와 같은 사욕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중요한 것은 경험, 체험이 아니라 예수님과 맺는 관계이며, 진리를 알고 그 진리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체험은 사람을 속일 수 있습니다. 주변을 보면 그 체험에 속한 잘못된 신앙의 틀에 묶여 사는 이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그의 가장 됨, 위선, 사욕이 드러나게 되었을 때 그의 신앙 됨됨이를 볼 수 있습니다. 사도의 책망에 대한 시몬의 반응은 곧 바로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회개가 아니었습니다. 그를 동요케 한 것은 형벌에 대한 두려움뿐이었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악한 죄를 지었는지 알지 못했고, 자기 속에 있는 거짓된 마음도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벌 받지 않게 기도해 주십시오라고 했을 뿐입니다. 이것은 거짓 신앙고백에 늘 나타나는 특징입니다. 진정한 관심은 세상에 두면서도 그 결과는 피하고 싶어합니다. 죄의 결과와 본성에 따라 사는 삶의 결과를 피하려는 바람만 있을 뿐입니다.

여러분께 묻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입니까?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확신합니까? 단지 믿는다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시몬도 믿었습니다. 그는 세례도 받았고, 교회에도 다녔습니다. 이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마술사 시몬을 보면 가식과 속임수와 임시변통과 거짓이 모든 것을 감찰하시는 하나님께는 전혀 통하지 않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 마음이 어디에 가 있는지, 우리의 시선이 무엇을 바라보는지에 따라 우리의 실체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의도되었든 의도되지 않았든 간에 그런 나의 위선, 거짓됨이 드러나게 될 때, 어떻게 보면 그것이 은혜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상화될 수 있는, 참된 믿음의 길에 설 수 있는 기회 인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그 즉시 회개해야 합니다. 그런 나의 허물을 인정하고 참된 믿음을 달라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무시하고 자기 길로 가려하면 우리는 점점 멀어질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바른 길에 서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돌아서야 합니다. 회개해야 합니다. 지금 뭔가 하고 있어 그리스도인의 행동처럼 비쳐지고 있는 자신의 모습으로 인해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위선과 착각, 자기 최면의 틀을 깨고, 철저하게 주님 앞에 서야 합니다. 그렇게 돌아서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참된 믿음으로 설 수 있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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