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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동영상

[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 마5장7절 ]

by 최수근 2014. 7. 20.

2014년7월20일 주일설교동영상

[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 마5장7절 ]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예수생명교회 최수근 목사

왜 사람들은 쉽게 용서하지 못하는 걸까요? 왜 상대를 향한 증오의 불길을 꺼보려고 노력하지 않는 걸까요? 왜 공존하려고 하지 않는 걸까요?

용서는 요원한가?

우리들의 일상적인 삶에서 과연 우리를 힘들게 하는 이들을 용서하고, 그들을 품고 갈 수 있을 가의 문제는 생각처럼 쉽지 않은 일입니다. 누군가에 의해 내가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피해를 입었다면, 그래서 마음이 상하고, 재정적으로 손해보고, 자신의 인생이 힘들어지기라도 했다면 그런 사람들을 너그럽게 용서하며 긍휼의 마음으로 품을 수 있겠습니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고 긍휼히 여기기가 어렵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팔복을 포함한 예수님의 산상수훈은 우리에게 먼 나라의 이야기일 뿐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야 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에서 드러나야 할 마음과 품성들을 말씀하시고, 그것들을 어떻게 적용하며 살아가야 할지를 자세하게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앞에 세 가지 복은 죄인으로서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 서야 하는 가를 보여줍니다. 그와 함께 네 번째 복인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에게서는 그와 같은 마음 상태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오는 인간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의의 약속을 담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자들은 사람들 앞에서 세상의 사람들과는 다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내적인 힘을 소유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다섯 번째 복에서부터 나오는 항목들은 이와 같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점진적으로 그리스도의 온전한 모습으로 재창조되어 가는 사람의 변화된 성품이 무엇인가를 보여줍니다. 

긍휼히 여기라

다섯 번째 복의 선언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구원의 의를 맛본 인간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나타나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긍휼입니다. 7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요

구약시대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성품을 긍휼로 인식했습니다. 히브리어로 이 말은 헤세드입니다. 이것은 보답을 전혀 기대하지 않고 베푸는 사랑, 고통 받는 사람들을 향해 드러내는 사랑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의 최고점은 십자가입니다. 하지만 그 시대 유대인들은 그 뜻을 거의 알지 못했습니다. 유대인들은 로마인들만큼이나 자비가 없었습니다. 이기적이며, 독선적이었고, 비난하길 좋아했습니다. 죄지은 자는 그저 율법대로 돌로 쳐 죽이고자 했습니다. 남이야 어떻든 오직 자기 자신만 경건한 자로 하나님 앞에 서려는 이기적인 신앙의식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이렇게 유대의 선민사회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인애와 자비는 잃어버리고 무섭게 경색된 정죄와 비판과 배타주의 종교 풍조에 갇혀버렸습니다. 그런 완악하고 강퍅한 세상을 향해 예수님께서는 타인을 향한 용서와 긍휼을 강조하셨고, 긍휼의 본이 되셨습니다 

긍휼의 근거

이것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보여주신 성품이며, 성령의 열매이고, 우리 안에 살아계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나타나는 결과로서 그리스도인의 의무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긍휼히 여김을 경험했다면 당연히 우리도 다른 사람들에게 긍휼을 베풀어야 할 의무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긍휼은 단순한 연민의 정이 아닙니다. 자신을 불쌍한 처지에 있는 사람과 동일시하는 능력입니다. 물론 긍휼의 행동이 쉽게 일상의 삶에서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거듭난 이후에도 여전히 옛사람의 본성을 따라 행하기에 무시되고, 분쟁하고 갈등하기도 하지만, 우리가 진정 그리스도를 닮아가기 시작한다면 긍휼은 우리의 삶에서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하고, 확장되고, 지속되게 됩니다.

자신이 손해를 보고, 어려움을 당해도 그 모든 원인을 제공한 자들을 용서하고, 품어주고, 기도해줄 수 있는 마음을 성경은 긍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말할 수도 있습니다. “어찌 그럴 수 있냐? 사기를 당했고, 손해를 보았으면 정당한 자기 권리를 행사해서 찾을 것은 찾아야 하고, 벌할 것은 벌해야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공의로 풀어가자는 것은 맞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의 기준 또한 우리가 어떻게 회피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아무 자격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셨고,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세워주셨는데 말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하나님께로부터 긍휼히 여김을 받은 우리로 하여금 다른 이들을 긍휼히 여기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랑을 실천하되 효과적으로 실천하려고 한다면 언제나 긍휼과 정의의 균형을 유지해야 합니다 

긍휼의 실체

그렇다면 오늘 우리들의 삶에서 긍휼은 어떻게 열매로 드러나야 하겠습니까? 대개는 평범한 행동들입니다. 누군가에게 위로의 편지를 쓰고, 어려운 이들에게 물질적으로 인색하지 않고, 악으로 악을 갚지 않고, 다른 사람의 약점을 결코 들추지 않고, 다른 사람의 실패를 이용하지 않고, 누군가의 감정을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 난처한 상황에서도 입을 다물기도 하고, 누군가의 죄를 함부로 떠벌리지 않고, 누군가에게 격려의 말 몇 마디를 건네주거나 친절한 미소를 지어보이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도 호의를 베풀고 , 연약한 자들을 불쌍히 여기고, 누군가가 실수를 하거나 잘못된 판단을 하거나 설령 빚을 갚지 않거나 빌린 것을 돌려주지 않더라도 그를 용서하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 백성의 성품, 즉 긍휼의 마음으로 사는 법입니다. 그 점에서 긍휼은 다른 인간 존재에 대한 헌신이며 때로는 고통과 고뇌, 물질적인 대가까지 야기 시키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그들의 영혼에게까지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점입니다. 긍휼이란 상대방이 받을 자격이 없음에도 먼저 베푸는 것입니다.

이처럼 긍휼히 여기는 이들을 향해서 예수님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도덕심, 인간의 마음 자체를 축복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생명으로 인해 배부르면 배부를수록 그리스도인들은 아직도 세상에서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들, 여전히 죄와 허물 가운데 죽어 있는 사람들에 대해 더욱더 따스한 관심을 보이게 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이런 애정 어린 관심은 하나님의 은총 안에서 자신의 삶으로 다 되돌아오게 됩니다. 이렇게 천국의 사람들로 부름을 받은 것을 예수님은 축복하시는 것 입니다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가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요.” 이 말씀은 우리가 긍휼히 여김으로써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긍휼히 여김을 받게 된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베푸는 긍휼이 하나님의 긍휼의 필연적 근거가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긍휼이 우리 자신의 긍휼에 대한 보상으로 주어진다면 그것은 참된 긍휼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긍휼을 베풀어야만 긍휼을 받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아무도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을 겁니다. 그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긍휼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의 강조점은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긍휼을 입었기에 그 긍휼하심을 본받아 우리의 삶에서도 긍휼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순서에 주의를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본문을 통해서 진정으로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긍휼히 여김을 받았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가 계속해서 긍휼히 여김을 받을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또한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긍휼히 여김을 베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긍휼의 옷을 입으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보여주신 하나님의 긍휼하심은 상상도 못할 만큼 큰 것입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긍휼을 힘입어 오늘 우리가 죄로 인해 자격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었기에 우리도 이 땅을 살아가며 긍휼의 옷을 입고, 긍휼의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긍휼히 여기는 자로 살아가고자 할 때 오늘 성령께서 긍휼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우리 마음을 만져주시고 도와주실 것입니다.

물론 여전히 세상 사람들은 용서와 긍휼보다는 보복과 심판이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들에게 용서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런 자들을 대표하는 이가 일만 달란트 빚진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갚을 수 없는 빚을 긍휼히 여기셔서 탕감해주셨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헤아릴 수 없는 긍휼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것을 돌려받기 위해 자기에게 고작 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세상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이렇게 긍휼을 잃어버린 삶은 결국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부터 영원히 소외되게 만듭니다. 그러나 우리가 만일 오늘 이 시대에 자신의 대가를 지불하고 사람들에게 긍휼을 베푸는 길을 걸어간다면 마지막 그날에 주님께서 우리를 긍휼로 대하실 것입니다. “긍휼이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이 여김을 받을 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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