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 29일 주일예배
[선교적 삶을 위한 내적역량을 강화하라: 마 10장 26-33절]
새로운 삶에 대한 도전은 언제나 쉽지 않습니다. 이를 실행하기 위한 계획과 전략도 필요하지만,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의 방식으로서는 그와 같은 도전을 감당할 수 없어서입니다. 그래서 변화가 필요합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에서도 이렇게 변화하지 않으면 이룰 수 있는 게 없는데, 하물며 영적인 삶은 어떻겠습니까? 사람들은 이 일을 단순하게 생각합니다. 교회 생활을 지속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당연하게 되는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부르실 때 매우 급진적인 선택을 요구하셨습니다. 마 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그건 옛 자리에 머물러 염려하고 걱정하고 머뭇거리는 한 그 부르심에 응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청하신 겁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지난 삶의 자리에서 불러내셔서 하나님 나라를 위한 선교적 삶을 살아가도록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그 길에 서게 하셨을 때 그냥 내보내지 않으셨습니다. 제자들에게 권능을 주셨습니다. 마 10:1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맞서 싸울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랬던 것처럼 오늘 우리에게도 권능을 약속하셨습니다. 바로 성령의 권능을 주시는 것입니다. 행 1:8 “오직 너희에게 성령의 권능이 임하시면...”
그러나 힘을 주셨음에도 그 힘을 사용할 수 없도록 만드는 걸림돌이 우리 안에 자리하고 있다면 우리는 그 역량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두려움입니다. 두려움은 그 스펙트럼이 넓습니다. 아주 작고 사소한 일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죽음에 대한 두려움까지 늘 우리를 위축시키곤 합니다. 그중에 많은 그리스도인이 경험하는 것이 다른 이들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교적 삶을 살 때 부모가, 형제가, 친구가, 이웃이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일까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시면서 그들 속에 자리하고 있는 두려움을 제거하도록 요청하셨습니다. 움츠러들지 말고 당당하게 행동하라고 말씀하신 겁니다. 26절 “그런즉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예수님께서 메시아로서의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먼저 하신 것은 하나님 나라가 이미 도래했다고 선포하신 일이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감추어질 수 없습니다. 세상도 그것을 가릴 수 없습니다. 마 10:26b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그것을 받아들일 것인지 아니면 거부할 것인지 선택의 문제만 있을 뿐이지 하나님 나라는 이미 이 땅에 임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두려움을 떨쳐내고 제자들에게 더 용기 있게, 더 솔직하게 하나님 나라 복음을 선포하라고 권고하셨습니다. 마 10:27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 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말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 타인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면, 우리는 적극적인 증인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시각을 바꾸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당장 눈에 뜨이는 압박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죠. 그러나 우리의 길은 영적인 영역 또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시선을 넓혀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 세상으로부터 오는 두려움은 물리적인 압박으로 그것의 한계치를 갖고 있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은 그 한계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이점을 들어 진정 우리가 두려워하고, 우리가 의지해야 할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 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이 말씀은 우리에게 겁을 주려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과 인간, 죽음 그리고 이 땅에 어두움의 세력에 대한 모든 잘못되고 그릇된 공포로부터 우리를 해방 시키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영생에 대한 소망과 확신이 있으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모든 두려움은 넘어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고 죽는 것은 세상이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참새의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섬세하게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보여주셨습니다.
마 10:29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앗사리온’은 로마 화폐로 소액동전입니다. 노동자 하루 품삯인 한 데나리온의 1/16의 가치입니다. 오늘날 최저시급으로 치면 대략 5,500원 정도입니다.
이렇게 커피 한 잔 가격에 팔리는 하늘에 참새조차도 하나님이 허락해야 땅에 떨어지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은 우리를 하나님께서 얼마나 귀하고 소중하게 여기시겠어요?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마 10:30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하나님은 우리를 아시되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다고 했습니다.
아침마다 머리를 감을 때 숱하게 빠지는 머리카락을 보면서 대략 얼마나 될까 생각을 해봅니다. 솔직히 셀 수 없어요. 빠지기도 하지만 새로 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단지 대략적으로만 아는 거죠.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세심함을 넘어 우리를 완전하게 알고 계신다는 의미이며, 그 상태에서 우리를 주목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시간이 남아돌아서 그렇게 하셨을까요? 머리카락이 얼마나 되는지 숫자를 헤아리는 하나님을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참으로 존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을 표현하기 위한 은유입니다.
이렇게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모든 것이 달라질 것입니다. 부침이 심한 인간적인 자신감이 아니라 우리를 굳건하게 할 영적 자존감이 세워질 수 있어서입니다.
우리의 선교적 삶을 강화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영적 자존감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큰 사랑을 받고 있음을 알기에 어떤 상황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마 10:31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우리 믿음의 여정을 힘들게 하는 것이 뭔지 아십니까? 나 혼자 어렵고 힘들게 이 길을 가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면 의심이 싹터 오릅니다. “과연 하나님이 이런 나를 얼마나 생각하실까”, “하나님이 나를 외면하시기에 내가 이렇게 어렵고 힘든게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기 마련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해 하나님이 권력만을 휘두르는 엄위하신 분이 아니라 그들을 세심하게 바라보시고, 그들을 존귀하게 여기시는 분으로 각인시키고 계신 겁니다. 하나님에 대한 의구심에서 벗어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80억 인구 가운데 나를 기억조차 하실까?” 그런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귀하게 여기시는지를 알고 믿어야 하는 거죠.
그렇게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존재인지를 인지하였을 때 우리는 온전한 믿음의 고백이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것은 진실함과 진정성이 뒷받침되는 사랑의 고백입니다. 그 진실한 고백이 왜 중요한지 아십니까? 마 10장 32-33절은 예수님에 대한 진실함의 여부로써 제자들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사실을 회상시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자신의 주님이 되심을 시인하면 예수님도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증인이 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마 10:32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이건 이번 금요일 기도회에 종철 형제가 이야기한 어떤 분의 고백 “나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에요”와는 다른 차원입니다. 이건 단지 문화적 그리스도인이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참 제자도에 의한 성경적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마치 이런 것들을 위대한 신앙고백처럼 생각하고 그것으로 인해 자기는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여깁니다. 과연 그렇게 될까요?
고백의 진정성이 결여 되었다면 하나님 앞에서 그를 부인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마 10:33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그러나 오늘 많은 그리스도인을 어렵게 하는 것은 따로 있습니다. 예수를 부인하는 것도, 시인하는 것도 아닌 침묵에 있습니다. 선교적 삶에서 침묵은 우리를 이도 저도 아닌 매우 어정쩡하게 만드는 요인입니다. 정체성의 모호함은 하나님의 눈을 결코 넘어설 수 없습니다. 그것 또한 영적 책임을 비켜가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더는 침묵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이 나의 주님이 되심을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의 삶에서 어떤 일을 행하고 계시고 앞으로 이루어가실지를 다른 이들에게 진실하게 선포하십시오.
그것은 단지 말로서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삶으로 드러나야 하는 것이지요. 그러기 위해 우리는 세상이 아닌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바라보고, 그와 같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존귀하게 여기시는지를 알고, 주님에 대한 진정한 고백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2023년 주제가 “복음의 사람, 예배자의 삶을 살게 하소서”입니다. 이 주제처럼 삶으로 드려지는 온전한 예배의 모습으로 주님을 증거 할 때 우리는 진정한 선교적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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