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동영상

[오만과 편견의 벽을 깨고: 행 10장 1-23절]

최수근 2017. 6. 27. 14:35

2017년 6월 25일 주일설교동영상

[오만과 편견의 벽을 깨고: 행 10장 1-23절]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예수생명교회 최수근 목사

어제 신문을 읽다가 씁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장관에 내정되신 한 분이 자신이 2년 넘게 고문으로 재직하며 받은 고액의 자문료에 대해 논란이 일자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 세계에는, 그런 세계가 있어요. 일반 사람들이 이해하기가 조금 어렵죠. 일반 서민들한테는...” 저에게는 이 말이 찌질 한 서민들에게는 큰돈이지만 특별한 자신에게는 평범한 액수라는 이야기처럼 들렸습니다. 가진 자의 오만일까요?

언제쯤 우리는 이렇게 구별 짓기를 좋아하는 오만하고 편견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이 아니라 진정 사람들의 마음을 보듬어 줄 수 있는 따뜻한 사람들이 넘쳐나는 세상이 될 수 있을까요?

이건 세상뿐만 아니라 마음 아프게도 교회 안에서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어떤 교회들을 보면 자기들만의 울타리를 치고, 세상을 향한 사명은 잊고 있습니다. 자기 아성을 쌓기도 하고, 특정한 계층의 사람만 모이기도 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자리 잡지 못하고 결국 밀려나는 일이 교회 안에서도 버젓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자기들만의 천국에 거하다보니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되라고 하시는 명령은 순종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그곳에는 사랑과 은혜가 아니라 다른 이들을 향한 오만과 편견이 꽈리를 틀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에게 복을 주사 그로 말미암아 모든 족속이 복을 받으리라는 하나님의 계획과는 너무도 멀리 나아가 버린 것입니다. 복음은 확장되어야 하는데, 확장성을 잃고 정체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가로막고 있는 오만과 편견의 벽을 우리는 하나하나 깨고 나아가야 합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순종하기 위해 초대교회 안에도 넘어서야 할 벽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특별히 인종적 종교적 차별이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까지 복음이 전파되었지만, 이방 민족에게로 복음이 흘러가려면 유대인들이 갖고 있던 이방인에 대한 오만과 편견으로 인한 인종적 종교적 차별의 벽을 깨야만 했습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두 사람을 준비시키셨습니다. 한 사람은 고넬료라고 불리는 로마 군대의 백부장이었습니다. 2절에 그의 평가를 보면 그는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그로 인하여 온 집안이 하나님을 경외하였고, 구제에 힘썼고, 항상 기도하였습니다. 물론 그는 유대인으로 개종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방인으로서 하나님을 섬겼던 자입니다. 그러기에 고넬료는 여전히 이방인으로서 이스라엘 맺은 하나님의 언약으로부터 제외되어 있었습니다.

본래 하나님께서는 한 가정을 택하여 부르시고 복 주심으로써 이 땅의 모든 족속에게 복을 주시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스라엘 민족은 이 선택의 교리를 편애의 교리로 왜곡시켜서 인종적 교만과 증오에 가득 차게 되고, 이방인들을 개라고 멸시하고 그들을 격리시켜 왔습니다.

이런 이유로 진정 유대인라면 누구나 이방인, 심지어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인의 집이라 해도 그 집에 결코 들어가거나 그들을 자기 집으로 초대하지 않았습니다. 이방인들과의 모든 친밀한 왕래는 금지되어 있었고, 경건한 유대인으로 이방인과 함께 식탁에 앉을 수 없었습니다. 어찌 거룩한 백성이 이방인과 함께 할 수 있겠는가 하는 오만방자한 생각의 결과입니다.

그러기에 이방인이 유대인과 대등하게 기독교 공동체에 받아들여지기 전에 그리고 교회가 진정으로 다인종적이고 다문화적인 사회가 되기 전에 초대 교회 안에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있는 오만과 편견은 극복되어야만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유대인들의 편견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고넬료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구제에 힘쓰고, 유대인들의 관습을 따라 하루에 세 번 기도했습니다. 3절에 보면 어느 날 여느 때처럼 그가 제 9시쯤(오후3) 되어 기도를 할 때 환상 가운데 하나님의 사자가 그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듣습니다.

고넬료가 두려워하여 주여 무슨 일이니까물었을 때, 천사가 대답합니다.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여기에서 우리는 왜 고넬료였을까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왜 하나님이 그를 주목하셨을까요? 하나님의 사자는 말하기를 그의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뚜렷한 구원의 길을 가고 있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 앞에 경건한 삶을 올려드리는 진솔함이 있었고, 그 자세를 하나님은 바라보셨던 것입니다.

그의 삶은 끊임없는 영적 갈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은혜를 갈망할 때 주께서 은혜를 주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사자의 지시를 받은 백부장 고넬료는 즉시 이 명령에 순종하여 하인 두 사람과 군인 한 사람에 자신의 겪은 일을 다 이야기하고 욥바로 보냈습니다. 전 이 일이 대단한 행동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또한 유대인에 대한 편견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방인을 개 취급하는 저들이 이방인의 초청에 쾌히 승낙할까 따질 것 없이 순종하여 유대인인 베드로에게 사람을 보내는 것 자체가 그 스스로 유대인에 대한 편견을 깨뜨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구속사의 반쪽 퍼즐을 준비시키셨습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다른 반쪽 퍼즐도 준비시키셨습니다. 하나님은 구원역사를 위해 어느 곳에서나 고넬료와 같은 이들을 준비시켜놓으십니다.

다른 반쪽 퍼즐은 베드로였습니다.

고넬료가 보낸 이들이 욥바에 도달할 쯤에 베드로도 기도하려고 그 집에 편평한 지붕에 올라갔습니다. 기도 중에 그는 환상 속에서 하늘이 열리고 큰 보자기 같은 그릇이 땅으로 내려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릇 안에는 네 발 짐승, 땅에 기어 다니는 것들과 공중의 새들로 모두가 유대인들이 부정하다고 여기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오기를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으라는 것입니다. 이에 베드로는 화들짝 놀라며 거절하였습니다. “주여 그럴 수 없습니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 이것은 베드로의 속에 있는 철저한 유대적 사고를 그대로 반영한 것입니다.

두 번째 소리가 있어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베드로가 정결과 부정이라는 유대 규범에 매여 있는 것을 하나님께서 철저하게 파괴하신 것입니다. 정결과 부정은 음식에 관한 것이 아니라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이런 대화가 세 번이나 오고 간 후에 큰 보자기 같은 그릇이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이처럼 세 번은 베드로가 부정한 것을 먹지 않으려고 얼마나 철저했는가를 보여줍니다. 이것은 이방인을 받아들이기에 아직도 철벽이 그 안에 놓여 있는 상태를 보여줍니다. 식사의 법도는 예의나 어떤 특이한 요식요리상의 관습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이 법도는 유대인들의 생존과 신분상의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베드로로 하여금 그 철벽을 넘어서도록 요청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십자가로 모든 분열과 차별을 끊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강력한 메시지를 통해 베드로가 곰곰이 생각하고 있을 때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시몬의 집을 찾아와 베드로를 찾았습니다.

그 때 성령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두 사람이 너를 찾으니 일어나 내려가 의심하지 말고 함께 가라 내가 그들을 보내었니라.”

이에 베드로가 지붕에서 내려가 그들에게 말하였습니다. “내가 너희가 찾는 베드로인데, 어떤 일로 온 것이냐?” 그들이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며 고넬료의 집으로 초청할 때 베드로가 그들을 불러 들여 그 집에 유숙하게 합니다. 그들이 할례 받지 않은 이방인들이었는데 함께 하룻밤 같은 집에 머문 것입니다. 이방인을 향한 오만과 편견의 벽을 깬 것입니다.

이방인 고넬료와 유대인 베드로를 통해 하나님은 복음의 역사가 온 세상으로 흘러들어가도록 기초작업을 하셨습니다. 한 사람은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베드로에게 사람을 보내어 초청하였고, 한 사람은 환상 가운데 하나님 나라를 위해 그 자신이 갖고 있는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놓여 있는 오만과 편견의 벽을 허물어야 함을 깨닫고 이방인 고넬료에게로 향합니다.

이 중심에는 하나님의 주권 앞에 순종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하나님 잘 섬기고 있는데 왜 이렇게 목숨처럼 여기던 장로의 유전까지 버려가며 이렇게 해야만 하냐고 하소연 하며 자신의 길을 고집한다면 어떻게 복음이 흘러갈 수 있었겠습니까? 벽을 허물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복음이 모든 족속에게로 흘러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독교는 경건하게 살고, 구제하고, 기도한다고 해서 구원에 이르는 종교가 아닙니다. 아무리 경건한 고넬료이지만 그에게는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꼭 오셔야합니다. 유대인들의 경건함, 즉 겉으로 보여지는 것을 추구하는, 그렇게 경건한 삶을 악세사리처럼 여겼더라면 그는 하늘의 음성을 들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헌데 고넬료는 그 가운데서도 갈망했기 때문에 그 영적 갈망을 채우기 위해 성령님의 소리에 순종했고,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우리 안에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오만과 편견을 깨지 않는 한 우리는 생명의 길 되시는 예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귀한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현장에서 우리 자신의 오만과 다른 이들과 세상을 향한 편견을 버리고 진정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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