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동영상

[ 황금률 : 마7장12절 ]

최수근 2014. 12. 13. 16:14

2014년12월7일 주일설교동영상

[ 황금률 : 마7장12절 ]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예수생명교회 최수근 목사

세상의 의

랍비 힐렐은 말하기를. “네가 하기 싫어하는 그 일은 남에게도 하지 말라. 이것이 토라의 전부다. 그 외의 나머지는 모두 이 토라에 대한 해석이다.” 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율법만의 독특한 규율이 아닙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랍비 힐렐과 같은 말을 많은 이들이 했습니다. 스토아 철학자들도 말하기를 당신 자신에게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일을 남에게 하지 마시오.” 라고 했고, 유대인으로 헬라 철학자인 필로도 네가 원치 않는 것을 그에게 행치 말라 고 했습니다. 동양으로 넘어와서 공자도 자기가 원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소위 세상적인 의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소극적인 의의 삶입니다. 세상의 법들이 갖고 있는 정신이 바로 이것입니다. 악을 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른 이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일이 어려운 일일까요?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일은 쉬울 수 있습니다. 반면에 남을 위해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고, 사람을 살리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습니다.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인간은 전적으로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입니다. 이 완악한 인간들의 마음에 균열을 가져오도록 예수님은 그들의 이기적인 마음에 도전을 하셨습니다 

세상보다 더 나은 의

7:12은 산상설교 본론부를 정리하는 구절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이 구절은 소위 황금률이라고 불리며, 특별히 주목받는 말씀입니다. 그때까지 세상적인 의는 사람들을 해치지 않도록 하는데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분히 율법적이고 도덕적인 의입니다. 하지 말라는 부정적인 명령들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것을 긍정적인 표현으로 새롭게 전환시키셨습니다.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사람이 범죄를 피함으로써 율법의 소극적인 형식을 준수할 수는 있지만, 적극적인 형식의 준수는 우리에게 행동을 요구합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철저한 제자도의 열쇠입니다. 그 점에서 황금률은 능동적인 선과 긍휼의 기초가 됩니다. 하지만 이것은 너희가 받기 위해 주라는 규정과는 구별됩니다. give and take가 아닙니다.

본래 예수님이 제시하신 율법의 요약은 내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받기 위해 주고자 하는 황금률이라면 이것만으로는 세상보다 더 나은 의,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말씀을 실행할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이 규칙을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보다는 인간적인 지혜에 기반을 두고 생각한다면 이것이, 그래서 인간 중심적이고, 단순한 이기주의에 기초하게 된다면 본래 하나님이 말씀하신 목적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 것입니다 

복음의 관점

황금률이 정말 황금이 되기 위해서는 이것을 복음의 관점에서 해석해야만 합니다. 그러기에 다른 복음서에서 어떻게 이 말씀이 자리 잡고 있는 지를 보아야 말씀의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631절에서의 황금률은 원수를 사랑하고 보복을 삼가라고 가르치는 단락의 중간에서 하나의 요약으로서 나타납니다. 그 점에서 네가 지금 대접받고 싶은 대로 행하라는 말은 이제 자신의 이익을 계산하는 것을 훨씬 넘어서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의 이기적인 마음을 아시기에 누가복음 634절에서 너희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꾸어 주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그만큼 받고자 하여 죄인에게 꾸어주느니라.” 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 나라의 의로 살아간다고 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35절에서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행하라고 예수님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황금률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데 있어서 궁극적인 실마리는 이 단락을 끝맺는 절에 제시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336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그러므로의 윤리

산상수훈의 여타 명령들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황금률의 윤리도 말씀의 상관관계에서 이해되고 적용되어야 하는 그러므로의 윤리입니다. 황금률의 윤리적 의무의 근거는 빈틈없는 자기 이익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한량없으신 은총입니다.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 두 구절의 관련성은 황금률을 실천하는 데 있어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어떠한 대접을 받기 원하는가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대접받기를 기대하는 만큼 우리의 이웃에게 베풀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웃에게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면서 어떻게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풀어 주실 것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기에 우리가 우리의 지체들을 어떻게 대접 하는가 와는 아무 상관이 없이 우리의 간구에 대한 응답을 기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세상의 사람들이 우리를 대접하는 방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접하는 방법에 의해서 우리의 행동을 결정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사람들을 대할 때 거듭나지 않은 세상 사람들이 우리의 관대함을 부당하게 이용하여 우리에게 손해를 입히게 할 거라는 사실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자비로우심을 본받아 먼저 자비로운 자가 되면 되는 것입니다. 이게 먼저입니다. 그러면 복음 안에서 적용되는 황금률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권리를 주장할 때는 대단히 단호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권리는 무시합니다. 만일 형제들을 대하는 우리의 행동이 그리스도인의 신앙고백과 모순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예배를 받지 않으실 것입니다.

이기심은 이웃에 대한 우리의 의무를 이행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방해가 됩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기심조차도 공의와 사랑에 공헌하게 만드십니다. 예수님은 이 황금률을 통해 우리에게 이웃과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보고 우리의 권리가 무엇인가를 알고, 이 권리가 침해를 당한다면 얼마나 부당하겠는가를 생가해 보라고 말씀하신 후에 이웃에게도 그의 권리가 있는데, 우리가 그 권리를 빼앗는다면 우리는 부당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관심을 가져주시기를 바라는 것처럼 이웃에게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를 도와주기를 소원해야 하고, 그의 행복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율법의 목적은 우리로 이렇게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율법은 찬양받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실천되기 위해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산상설교를 말씀하신 것은 우리가 율법을 논평하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실천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거룩한 교제의 자리에서

예수님은 황금률을 말씀하시면서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하셨는데, 이 말씀은 새롭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본래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요구하신 거라는 의미입니다. 황금률은 십계명의 두 번째 돌판의 요약이고, 이것이 요구하는 의무들의 요약입니다. 하나님은 이 말씀을 듣고 지켜 행할 것을 반복하셨습니다. 하지만 이 실천이 우리 혼자만의 힘으론 가능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타락한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서 우리를 인도하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온전한 교제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과의 온전한 교제 가운데 있을 때 이웃을 향해 적절하게 행동할 마음의 준비를 갖추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웃들과 교제할 때에 은혜와 의의 영이 작용하는 것은 오직 빛과 사랑이 되시는 하나님과의 끊임없는 교제에 의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의 힘으로 먼저 남을 대접하는 것이야말로 이 땅에서 세상보다 더 나은 의를 행하는 삶입니다. 이와 같은 삶은 예수님의 제자들로서 우리가 외적인 율법적 순종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수용함으로써 경험했던 하나님의 순전한 사랑을 다른 이들에게 구체적으로 확장시키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 힘은 지금 이 땅에 왜곡된 복음의 모습을 회복시켜 많은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되는 힘이 되게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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