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 15일 주일예배
[망각과 교만을 넘어서서 감사함으로: 신 8장 11-20절]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인간의 능력이 점점 확장되고 극대화 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할 수 없었던 영역이 많았지만, 오늘날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참으로 많아졌습니다. 사람들은 외치죠. “I can do it!” 불가능이란 없다고, 다 할 수 있다고 외칩니다. 이런 영향 아래 있는 세상을 보면 높아진 마음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것을 자신감으로만 보기에는 적절하지 않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교만입니다. 교만은 사람들이 감사한 삶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듭니다. 그것은 교만한 이들이 은혜를 필요로 하지 않고 마음의 빈 곳을 자기 지혜, 자기 능력으로 채우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의 노예 생활에서 해방되어 가나안으로 바로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40년의 재훈련 끝에 드디어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척박한 광야 생활은 이스라엘이 갖고 있는 한계가 너무도 많았습니다. 먹는 것, 마시는 것, 생활하는 것 하나하나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처럼 매 순간이 하나님의 은혜이었음에도 광야생활 내내 좋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번번이 하나님과의 관계에 균열이 생기곤 했습니다.
반면에 가나안은 어떤 땅이었습니까? 광야와는 다른 땅이었습니다. 자기들의 생활을 위해 인간들이 할 수 있는 영역들이 광야와는 태반 달랐습니다. 생활 자체가 농경생활이었습니다. 일년 내내 사람들이 노력한 결과를 얻어서 생활하는 겁니다. 물론 거기에서도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음을 자각하고 하나님께 의지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을 선택하지 않고 다른 길을 선택할 수도 있는 겁니다. 하나님만을 바라보던 시선이 땅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죠.
동시에 그 땅은 타락하고 부도덕한 종교로 유명하고, 새로운 유혹이 기다리는 땅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곳에서 불순종, 물질주의, 망각, 교만, 우상숭배의 유혹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상황에서 저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 예측하고 계셨습니다. 실제로 낯선 영토를 소유하고 거기에 기반하여 번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의 인도하심과 공급하심과 계명에 대한 태도가 달라지는 심각한 위험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새롭게 변화된 상황 속에서, 모세는 백성들이 언제나 처할 수 있는 두 가지 심각한 위험성에 대해 지적합니다.
하나는 망각의 위험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광야에서 보여주셨고, 베풀어주셨던 은혜, 자비를 너무도 빨리 잊어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어떤 자비를 베푸셨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을 종 되었던 이집트 땅에서 구속해주셨습니다. 14b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종의 자리에서 해방시켜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인도하여 위험한 광야를 안전하게 지나게 하셨습니다. 15절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건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위험한 광야 길을 친히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안전하게 보호해주셨습니다.
게다가 목마를 때 반석에서 물을 내어주셨고, 일용한 양식인 만나를 내려주셨습니다. 15b-16 “또 너를 위하여 단단한 반석에서 물을 내셨으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이것들 하나 하나는 참으로 잊어버릴 수 없는 엄청난 은혜로운 경험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하나님께서 인도하셨던 경험들은 그들의 기억 속에서 신속하게 사라져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고 감사도 하지만 그 유효기간이 짧은 거예요. 그래서 너무도 쉽게 하나님이 이전에 베푸신 자비를 잊어버립니다. 망각은 심각한 위험입니다. 그 끝은 관계의 파멸로 이어집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인도하시는 은혜를 잊지 않도록 주의를 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으로 들어 잘 알고 있는 것 같지만 현실은 잘 잊습니다. 성경의 여러 이야기들도 그것을 증명합니다. 사람들은 어려울 때는 하나님을 애타게 찾습니다. 하지만 풍성해지고 번창하면 눈빛이 달라지고, 하나님 앞에서의 삶의 태도가 달라져요. 사사기에도 이런 상황이 지긋지긋하게 반복됩니다.
또 다른 하나의 위험은 하나님의 계속적인 은총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자리를 꿰차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비옥한 땅에 정착하고 번창하게 되면서 이전에 가졌던 하나님을 의뢰하는 마음이 재빨리 사라져 버릴 것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광야에서 보낸 긴 시간 동안 그들은 매일같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의지할 만한 다른 존재가 전혀 없었습니다. 매일 같이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만나를 통해 그들은 살았습니다. 아침마다 규칙적으로 만나를 거둬들일 때,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리 자랑할 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주셨고, 그들은 단지 거둬들이는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단순한 행동의 반복에서 백성들은 하나님의 공급에 연명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가나안에 정착하자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광야는 지난 기억이 되었습니다. 더는 내려주실 만나를 기다리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매혹적인 지형과 풍성한 농작물, 풍부한 과일, 유용한 자원을 지니고 있는 아름다운 땅을 누릴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음식, 만나만을 먹다가, 간혹 메추라기도 먹었지만 풍성한 식탁에서 미각을 돋구는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목적은 이러한 복을 받아들이며, 백성들이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이 해주셨다고 하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인식하는 데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유익을 누리고, 유익을 주신 하나님을 예배하며,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인정한다면 하나님과의 샬롬의 관계가 이어지는 것이지요. 그리고 더욱 더 풍성한 은혜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와 같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잊어버린 채 복을 받기만 했습니다.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기억하기는커녕 잊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무시하기 시작하면서 하나님의 계명에 불순종했습니다. 그들은 오만하여지고 교만해졌습니다.
결국 이것이 지속되면서 마침내 하나님의 자리를 강탈하고 말았습니다. 17절 “그러나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
이런 최악의 상황이 시뮬레이션 결과 나타났으니, 모세가 그들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은 한 가지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거예요. 지난 시간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고, 그들의 길에 함께 하셨던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2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그와 함께 지금 누리는 많은 것들 또한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임을 분명히 하고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18절a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매번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도우셨는가를 생각하고, 그 기억의 자리에 서 있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어떻게 잊어버릴 수 있겠습니까? 이스라엘을 40년 동안 이끌어주셨는데 그 길은 하나님의 은혜로 걸어온 길이었습니다. 얼마나 세심하게 이끄셨는지를 4절은 말씀하고 있어요.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들이 가나안에서 누릴 풍요로움은 하나님의 약속이었고 그 약속대로 이루어주신 겁니다. 7-10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아름다운 땅에 이르게 하시나니 그 곳은 골짜기든지 산지든지 시내와 분천과 샘이 흐르고 밀과 보리의 소산지요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와 감람나무와 꿀의 소산지라 네가 먹을 것에 모자람이 없고 네게 아무 부족함이 없는 땅이며 그 땅의 돌은 철이요 산에서는 동을 캘 것이라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옥토를 네게 주셨음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하리라.”
하나님께서 풍성하고도 은혜롭게 공급하여 주셔서 잘 살아가도록 하셨지만, 인간의 마음 한편에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인정하고 그분의 이름을 높여드리기보다는 자신이 높아지려고 하는 마음의 위험성이 늘 도사리고 있기에,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으면, 그 분의 은혜를 매일매일 묵상하지 않으면, 그래서 떨리는 마음으로 감사와 찬송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우리의 마음 속에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드리기보다는 서서이 자신의 이름이 높아지기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런 간악한 마음을 간파하고 모세는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인의 속성입니다. 은혜를 쉽게 저버리는 속성입니다.
12-14절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우리의 영성은 배부를 때 위험수위가 높아져요. 교만이라는 바이러스에 취약해집니다. 사탄이 마음을 빼앗아가기 때문이죠. 우리는 사탄의 영적 작업을 차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11절 “내가 오늘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삼갈지어다”
내가 주어가 되려고 하는 교만한 마음을 버리고 하나님이 하셨음을 매일 매일 인정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인도하시고 우리의 삶에 공급자이신 하나님을 기억합시다. 잊어버리지 않도록 늘 기억합시다. 이를 위해 하루의 감사, 한 해의 감사를 기록해야 합니다. 기록한 것을 보고 또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늘 겸손하게 하나님의 행하심을 감사하고 찬송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자리를 우리가 결국은 꿰차게 되는 것입니다.
감사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면 어떻게 된다고 말씀하십니까?
19절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을 따라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면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멸망할 것이라.”
20절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멸망시키신 민족들 같이 너희도 멸망하리니 이는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함이니라”
하나님의 공의는 독단적인 선포가 아닙니다. 분명하게 선택에 대한 것을 말씀하시고 그 책임을 우리에게 물으시는 것입니다. 인간이 망하는 것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쉽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말씀 앞에 심각하게 서야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잊지 아니하고 늘 기억한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영원히 기억하실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하나님은 감사함으로 그 앞에 서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감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그 분의 이름을 높여드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 50: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합시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행하셨습니다. 우리가 한 것이 아님을 고백하십시오. 나의 나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나님을 높여드리십시오.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는 감사의 제사를 올려 드리십시오. 우리의 작은 감사와 찬송을 통하여 아버지의 이름이 높아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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