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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동영상

영적각성을 위한 하나님의 도구들(2): 히9장 1-5절

by 최수근 2018. 12. 22.

2018년 12월 9일 주일설교동영상

[영적각성을 위한 하나님의 도구들(2): 히9장 1-5절]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예수생명교회 최수근 목사

우리가 그것의 모양이 어떠하든 간에 하나님이 아닌 무언가를 의지한다면, 그래서 그로 인해 안도감을 느끼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는 것은 우리가 그것에 대해 우상숭배적인 애정을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그런 것들은 우리 마음과 시간과 자원을 빼앗습니다. 우리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고 근거 없는 만족을 줍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우리를 궁극적으로 구원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기능적 구원자를 쉽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떤 이의 경우는 자기 파괴적 중동의 형태를 띠기도 하고, 어떤 이의 경우는 그것에 전적으로 의지하지만 않는다면 그 자체로서는 아무 해도 없고 심지어 유익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텔레비전, 가족, 친구, , 커피, 파티, 투자, 남들의 칭찬, 물질적 소유, 동료들 사이에서의 지위, 용모, 스포츠관람, 집 청소, 운동 등을 생각할 수 있고, 검소한 생활, 금욕주의, 기부, 심지어 선교 활동도 그런 범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자기가 기능적 구원으로 삼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면 다음 빈 칸을 채워보시면 됩니다.

나는 (      )에 몰두해 있다.

(       )만 있다면/한다면 나는 행복할 것이다.

나는 (       )에서 내 존재 의미를 느낀다.

나는 어떤 대사를 치르더라도 (      )를 지키고 보호할 것이다.

나는 (      )을 잃을까 봐 두렵다.

나에게 가장 큰 기쁨을 주는 것은 (       )이다.

(       )을 잃을 때 나는 화가 나거나 좌절하거나 불안하거나 혹은 우울하다.

내 삶은 (        )에 달려 있다.

내가 세상에서 그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      )이다.

공상할 때 내 마음은 (      )로 향한다.

아침에 (      )을 생각하면 얼른 잠자리에서 일어나고 싶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기능적 구원에 대해 강력하게 경고하셨습니다. 그것은 터진 물 웅덩이와 같은 헛된 것입니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2:13).스스로 판 웅덩이, 곧 기능적인 구원으로는 생명의 생물을 마실 수 없습니다. 이 웅덩이는 우리를 공허하게 목마르게 만듭니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우리의 영적 중심을 잡아줄 수 있는 가치들을 회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회기본능에 의해 옛사람의 자리로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번번이 자신들이 위대한 백성임을 잊어버렸습니다. 자신들의 진정한 정체성을 보지 못한 결과 탄식하고 반역하며 하나님을 떠나 방황하다가 돌아오는 역사가 되풀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누구인지를 상기시키는 여러 장치들을 두셨습니다. 언약궤 안에 몇 가지 물건들을 보관하게 하셨습니다.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 난 지팡이와 언약의 돌판입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정체성을 상기시키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장치들을 보면서 이스라엘에게 행하신 역사들을 기억하고, 그 역사적인 교훈들을 통해서 오늘 우리에게 어떤 모습, 어떤 삶을 기대하시는지를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기대에 우리 자신의 영적 수준을 맞추어가지 못하다 보면 우리는 점점 낮은 수준의 영적인 삶, 실은 세속적인 삶 밖에는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과 구별됨이 없는 데 어떻게 거룩한 그리스도인의 삶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지난 주 말씀드린 데로 첫 번째는 만나 항아리입니다. 첫째는 우리는 하나님의 것으로 살아가는 자들임을 깨닫게 합니다. 출애굽 당시 다른 모든 나라들은 자급자족하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만나를 거두어 살았습니다. 하늘에서 양식이 내려왔습니다. 하나님의 직적접인 행동으로 주어진 기적적인 역사입니다. 이스라엘은 초자연적인 공급 안에서 광야 40년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살아가는 삶의 핵심 본질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늘 양식을 먹고 살아가는 존재임을 잊고 살아갑니다. 그로 인해 세상의 수단과 방법으로 존속하려 들 때가 너무 많은 것입니다. 우리 영혼을 먹여 살리는 것은 하나님의 떡, 하늘의 떡뿐입니다. 살아있는 말씀과 기도가 없으며, 내게 그리스도가 공급되지 않으면, 우리 영혼은 합당한 모습으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우리에게는 만나이신 그리스도가 필요합니다.

그와 함께 만나는 우리에게 모든 면에서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사람들임을 상기시켜줍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돌보시고 부양하시며 모든 필요를 채워줄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원은 무한합니다. 끝도 없고 한도 없는 자원을 가지고 계십니다. 어떤 삶의 자리에서도 우리에게는 만나 항아리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그가 우리를 버리시거나 떠나시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전적으로 의지하면 때에 맞게 돌보아 주실 것입니다.

두 번째 물건은 아론의 싹난 지팡입니다. 이것은 민수기 16장에 기록된 구약의 사건에 비추어 이해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를 방랑하던 시절,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 세 사람이 모세와 아론의 권위에 반기를 들었습니다. “우리도 아론처럼 하나님께 향을 드릴 수 있고 제사를 드릴 수 있지 않느냐그들은 이렇게 반역하다가 하나님의 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민수기 17장에 기록된 지팡이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은 아론의 싹 난 지팡이를 언약궤 안에 보관함으로써 그에게 올바로 나아가는 법을 상기시키는 영구한 기념물로 삼게 하셨습니다.

기적적으로 생명을 얻은 그리스도인이 영적인 길을 걸어갈 때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는 어떻게 하나님께 나아갈까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점에서 어긋난 길로 가 버립니다.

아론의 싹 난 지팡이는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참으로 필요한 교훈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갈 때는 인간의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생각을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법만 유일한 방법으로서 하나님이 친히 그 방법을 제시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세세한 규례와 규범을 주셨고 본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방법에 이의를 제기하는 자들이 나온 것입니다. 오늘 현대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글쎄요, 꼭 그래야 할 것 같지는 않은데라고 쉽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계시보다는 인간의 견해, 생각을 앞세웁니다. 그러나 아론의 지팡이는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예배해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영구한 기념물입니다.

하나님이 거역한 자들에게 주신 말씀은 이것입니다. “내가 제사장을 세웠으니, 너희는 그 제사장을 통해서만 내게 나아와야 한다. 내가 아론을 불렀고 그에게 할 일을 알려 주었다. 너희는 오직 이 방법으로만, 즉 제사장과 제사를 통해서만 나아와야 한다.” 이 모든 일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방법이 하나밖에 없다는 것,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일을 통해서만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피 없이는 하나님의 보좌에 나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속죄제물 없이 나아오는 자를 받아 주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잖아요라고 말해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아론의 싹 난 지팡이는 하나님이 친히 이것만이 내 방법이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씀하셨다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하나님은 여기 내 대제사장이 있다. 내가 기꺼이 받을 유일한 제물이 있다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바른 길이니 너희는 이리로 가라”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전 3:11). 처음부터 끝까지 그의 피가 필요합니다. 출발만 갈보리에서 하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후에도 늘 갈보리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딤전 2:5)

마지막으로 살펴볼 것은 언약의 돌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자원을 누리며 살아가는 자임을 알았고, 또한 영광스러운 하나님께 나아가 동행하는 방법은 오직 하나뿐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 돌판들이 상기시키는 문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언약의 돌판들에 담긴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십계명을 통해 자기 백성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려주셨습니다. 그래서 언약의 돌판들을 언약궤 안에 보관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알려면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2:14). 대제사장이 자신을 드리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아들이 죄인들의 거역을 참으시며 십자가의 고통과 수치를 참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계속 죄를 지으면서도 쉽게 용서받게 하시기 위해서입니까? 아닙니다. 거룩한 백성이 되는 놀랍고도 영광스러우며 귀중한 특권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자신을 닮게 하시며 자신이 살았던 대로 살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죄에서 분리 해 내시고 하나님의 거룩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이처럼 우리를 거룩한 백성으로 만들기 위해 그는 죽으셨습니다.

언약궤에 담긴 언약의 돌판들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상기시켜 줍니다. 이것이 축복의 조건입니다. 행복한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다면, 신약성경이 제시하고 있는 충만한 영광을 전부 경험하고 싶다면,, 사도 바울처럼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라고 말하고 싶다면, 임종의 자리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라고 말하고 싶다면, 이 모든 복을 얻고 싶다면 하나님이 알려주신 거룩한 삶, 자신의 성령을 선물로 주어 가능하게 하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신분이요 그리스도인 됨의 의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저 남들보다 조금 나은 평범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새로운 피조물, 그가 친히 붙드시고 지키시며 부양하시는 백성, 그와 교제하는 영광스러운 운명으로 부름 받은 백성, 그때까지 거룩한 하나님께 합당한 거룩한 삶을 사는 백성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늘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를 지탱하는 영적인 가치들이 무엇인지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 그 무엇보다도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그리스도로 충만하여 살아갈 때 우리의 삶은 날로 새로워질 것입니다.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온전하게 세워져 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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