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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동영상

영적 각성을 위한 하나님의 도구들(1)

by 최수근 2018. 12. 14.

2018년 12월 2일 주일설교동영상

[영적 각성을 위한 하나님의 도구들(1)]

최수근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예수생명교회 최수근 목사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유일무이한 백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불행했고 혼란에 빠졌습니다. 숱한 곤경과 난관에 부딪쳤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이 위대한 백성임을 잊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임을 인식하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무엇을 주셨으며 무엇을 주시려하시는지 잊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하나님 주신 것보다 다른 나라들이 가진 것을 부러워했습니다. 이처럼 자신들의 진정한 독특성을 보지 못한 결과 불행하게도 탄식하고 반역하며 하나님을 떠나 방황하다가 돌아오는 역사가 되풀이 되었습니다.

이들의 약함을 아시기에 하나님은 그들이 누구인지를 상기시키는 여러 장치들을 두셨습니다. 그 중에 성막 지성소에 안치되어 있는 언약궤는 그들의 본질을 상기시켜주는 중요한 장치였습니다. 언약궤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맺은 약정의 증거로서 하나님은 그 안에 몇 가지 물건들을 보관하게 하셨습니다.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 난 지팡이와 언약의 돌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물건들을 언약궤 안에 보관케 하신 데는 몇 가지 사실을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영구히 상기시키시려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성전을 바라볼 때마다,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갈 때마다 이스라엘 자손은 언약궤와 그 안에 있는 물건들을 기억해야 했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정체성과 핵심 본질을 상기시키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이 순전히 세상적이고 인간적인 방식으로 자신들을 이해하려 드는 지속적인 성향으로부터 구해주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잘못된 이해들로 인해 겪게 되는 곤경과 재난에 짓눌리는 성향에서도 구해 주고자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물리적인 형태로 주어졌고, 오늘 우리에게는 영적인 형태로 주어졌지만 전달하는 메시지는 완전히 동일합니다. 이 세 가지 기념물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들의 신분, 즉 하나님의 백성 됨의 정체성을 떠받치는 절대적 토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장치들을 보면서 이스라엘에게 행하신 역사들을 기억하고, 그 역사적인 교훈들을 통해서 오늘 우리에게 어떤 모습, 어떤 삶을 기대하시는지를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기대에 우리 자신의 영적 수준을 맞추어가지 못하다 보면 우리는 점점 낮은 수준의 영적인 삶, 실은 세속적인 삶 밖에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동일한 수준, 동일한 경계 안에 있어 구별됨이 없는 데 어떻게 거룩한 그리스도인의 삶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첫 번째로 기억해야 할 것은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입니다. 출애굽기 16장을 보면 출애굽 한 후 둘째 달 십오일이 되면서 갖고 나온 양식들이 다 떨어졌습니다. 그 상황에서 백성들은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불평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그들을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같이 내리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약속대로 만나를 내려주셨습니다. 백성들은 아침마다 내리는 만나를 거두어 양식으로 삼았습니다. 만나는 그들의 여정이 끝날 때까지 내렸고 일정량을 거두어 언약궤 안에 보관하게 하셨습니다.

왜 만나를 언약궤에 보관하게 하셨을까요?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 만나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이겠습니까?

첫째, 만나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기적적이고 초자연적인 요소가 있음을 상기시키는 영구한 기념물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모든 삶과 그리스도인의 삶은 분명 다른 것입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른 나라가 경험하지 못한 일을 경험했습니다. 다른 모든 나라들은 자급자족하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자손은 만나를 거두어 살았습니다. 땅의 소산물이 아니었습니다. 하늘에서 양식이 내려왔습니다. 그 점에서 만나는 초자연적인 공급입니다. 하나님의 직적접인 행동으로 주어진 것이며, 기적적인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살아가는 삶의 핵심 본질이 여기에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초자연적인 공급 안에서 광야 40년을 살았습니다. 오늘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출발점부터 여타 나라들과 다른 나라였습니다. 하나님의 행동을 통해 창조된 나라였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과 그의 기적적이고 전능한 능력을 떠나서는 이스라엘 자손의 역사를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평범한 역사가 아닙니다. 단순한 인간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기적의 이야기입니다. 초자연적인 이야기입니다. 만약 일반적인 역사라면 굳이 돌아볼 이유가 없습니다. 언약궤 안의 만나 항아리는 이와 같은 중요한 사실을 상기시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그저 남들보다 조금 나아지고자 애쓰는 평범한 사람들입니까? 그저 남들과 조금 다른 사람들입니까? 그리스도인은 그 자신이 하나의 기적입니다. 완전히 구별된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스스로 행동하고 노력해서 그리스도인이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생명을 주신 것입니다. 만나를 주신 하나님이 친히 생명을 주신 것입니다. 좀 다르거나 좀 나은 존재가 아니라 완전히 다른 존재입니다.

출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후의 삶도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기원과 시작만 유일무이했던 것이 아닙니다. 삶도 유일무이하고 달랐습니다. 그들은 평범한 수단으로 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하늘에서 내려주시는 놀라운 떡으로 살면서 길을 갔습니다. 이것은 기독교의 핵심교리입니다. 기원과 시작이 유일무이하다면, 이후의 삶도 구별되고 차별되어야 마땅하지 않습니까? 우리의 삶은 초자연적인 것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기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이 초자연적으로 태어난 존재이며 이후에도 초자연적인 방식으로 양식을 먹고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잊은 채 삶을 이어가려 합니다. 세상의 수단과 방법으로 존속하려 들 때가 너무 많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영적 양식을 이미 주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이요 기도입니다. 그런데 지금 무엇을 의지하고 있습니까? 우리 영혼을 먹여 살리는 것은 하나님의 떡, 하늘의 떡뿐입니다. 살아있는 말씀과 기도가 없으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들이 없으면, 구원의 샘에서 계속 물을 길어 올리지 않으면 우리 영혼은 합당한 모습으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건강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우리에게는 만나가 필요합니다. 만나가 없으면 삶이 쇠약해지고 그리스도인의 특징으로 나타나야 할 활력이 사라집니다.

그와 함께 만나가 우리에게 상기시켜주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면에서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때에 맞게 돌보아 주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죄를 짓고 원망하며 거역하는 옛적 백성들도 친히 부양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이런 분이십니다. 이 하나님이 우리를 돌보시고 부양하시며 모든 필요를 채워줄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원은 무한하다는 사실도 기억합시다. 그는 끝도 없고 한도 없는 자원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도 곧 광야를 방랑하지 모릅니다. 이미 광야에 들어와 있을지도 모르고 곧 광야로 들어갈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만나 항아리가 있다는 사실, 여러분을 사랑하시며 모든 필요를 채워주시는 하나님이 계심을 상기시키는 기념물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배고프고 목말라 죽을 것 같을 때 만나가 내리고 샘이 터질 것입니다. 그가 여러분을 버리시거나 떠나시는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그는 영원한 사랑으로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전적으로 의지하면 때에 맞게 돌보아 주실 것이며, 그의 무한한 자원은 결코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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