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27일 주일예배
[회복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시편 80편 1-7절]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우리에게 2020년은 어떠한 해로 기억이 될 수 있을까요? 사스, 메르스 때와는 달리 코로나 19가 모든 것을 블랙홀처럼 빨아드렸습니다. 손을 쓸 틈 없이 우리 삶의 현장은 초토화되고, 전 세계가 고통받고 있습니다. 어제 12월 26일 기준으로 코로나 19 감염환자가 전 세계적으로 총 78,140,249명, 사망은 1,735,980명이나 됩니다. 아마도 행정력이 미치지 못해 수에 합산되지 못한 환자들까지 합치면 더 많은 수가 늘어나겠지요? 의료기술이 발달 되었다고 하는 21세기인데 바이러스 앞에서 속수무책입니다.
세상이 이러니 현 상황과 무관하게 개인의 삶이 좋을 수 없습니다. 가다 서기를 반복하면서 삶의 터전이 무너지고, 많은 것들이 제약을 받으면서 사람들의 마음도 점점 황폐해지는 것 같습니다. 쉽게 분노하고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일들이 쉽게 눈에 띕니다. 편의점 안에서 음식을 먹으면 안 된다고 하는 직원에게 먹던 샌드위치와 우유 팩을 던지거나 뺨을 후려치는 이들의 모습에서는 살기가 느껴질 정도입니다. 심지어 미국에서는 마스크쓰라는 소리에 기분 나쁘다고, 흉기로 찔러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뭔가 불편한 행동을 하는 이들을 향해 눈길을 돌리기가 두렵습니다. 봉변을 당할 것 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2020년 새해가 시작될 때 기대와 소망이 있었습니다. 개인의 삶에서, 일터와 사업의 자리에서, 교회에서, 선교지에서 이루어가실 그림을 상상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소망, 기대와는 거리가 멀어졌습니다. 실은 좋아질 전망이 당장은 보이지 않습니다. 다른 나라들은 백신을 접종하기 시작했는데, 우리에게는 백신도 없습니다. 창궐하는 바이러스로 인해 기약 없이 가다 서기를 반복할 때마다 사람들이 무너질 것입니다.
교회도 당장에 올 한해 대면 예배와 비대면 예배를 반복하며 드리다 보니 개인 영성이 무너지는 것을 봅니다. 일상에서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를 이루어가는 예배훈련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단독자로 하나님 앞에 서본 적이 없으니 모이지 못하는 상황에서 약한 믿음에 균열들이 일어나는 거죠. 이런 여진은 교회 공동체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입니다. 여러 교회에 심각한 균열을 일으키리라 예상합니다. 그것은 이 땅에 교회 안에 하나님 나라의 윤리와 스피릿이 충만하지 않고 세상의 논리와 자본주의적인 요소가 팽배해 있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 제가 평소에 좋아하는 목사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포항에서 15년 동안 한 교회에서 섬기고 계신 분이신데, 전화를 받는데 그날따라 목소리가 좋지 않으신 거예요. 말씀하시는 데 마음이 아주 힘들다고 하면서 장로들이 찾아와 교회를 사임하라고 했다는 겁니다. 오직 교회에 전적으로 마음을 쏟아부어 섬긴 분인데, 말씀의 영성도 깊은 분인데, 단지 교회가 부흥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15년을 한결같이 섬긴 목회자를 내치고자 장로들이 의기투합한 거예요. 저는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이런 일을 교회 안에서 쉽게 자행 할 수 있는 것은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 된 생명 공동체임을 부정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몸이라면 어려움과 문제가 생기면 서로를 돌아보고, 서로 짐을 지고 몸이 살아나기를 위해 마음을 합하여 사랑 안에서 그 위기를 넘어설 겁니다. 그러나 몸인 교회로 보지 않고 세상 기업처럼 부흥하지 못하면 CEO를 바꾸는 그런 논리라면 교회를 단지 이익창출을 위한 기업으로 보는 것입니다. 이 비극적인 일은 비단 이 교회에서만 일회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아마도 위기가 계속되면서 수많은 교회에서 이런 강퍅한 일들이 벌어지리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런 모습들이 사사기 시대의 암흑과도 같았던 그 시대에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나 자기 소견대로 행한 결과와 같다고 봅니다. 언약 백성이 하나님을 떠나서 영적 타락과 도덕적 타락이 그 땅을 덮어버렸습니다. 그로 인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돌이키시기 위해 심판 막대기를 드셨습니다. 이방 민족들의 압제를 당하게 되면 그제서야 백성들은 하나님께 부르짖죠. 살려달라고, 구원해달라고. 그러면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으시고 그들을 구해주셔서 평화를 되찾으면 얼마간은 하나님을 바라보다가 다시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고, 타락의 길로 접어듭니다. 이 일이 다람쥐 쳇바퀴 돌 듯이 반복되고 반복됩니다.
사울 다윗 솔로몬으로 이어지는 통일 왕국 시대를 지나 분열왕국시대에는 이것이 극에 달해 결국은 북 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주전 722년에 멸망을 합니다.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인데 말입니다. 이에 사람들은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구원과 회복을 위해서 말입니다.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습니다. 위기의 사인을 지속해서 주실 때는 쳐다보지 않고 딴청을 부리다가 다 끝난 다음에 기도하곤 합니다. 북 왕국은 완전히 끝난 것입니다. 남 왕국 유다의 주축인 유다 지파를 제외한 모든 지파가 흩뿌려졌습니다.
저는 올 한해가 위기였기도 하지만 단순히 위기로만 볼 것이 아니라, 이 위기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 경고의 메시지를 들어야 하고, 이 땅의 회복과 구원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은 본래 어떤 분이십니까? 1-2절의 기도 가운데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유추해낼 수 있습니다. 1절 “요셉을 양 떼 같이 인도하시는 이스라엘의 목자여 귀를 기울이소서 그룹 사이에 좌정하신 이여 빛을 비추소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목자이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통치 안에서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목자가 양의 음성을 들으시는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의 부르짖음을 들어주셨습니다. 그와 함께 하나님은 그들의 빛이셨습니다. 삶에 빛을 비추어주시는 등불이셨습니다.
2절 “에브라임과 베냐민과 므낫세 앞에서 주의 능력을 나타내사 우리를 구원하러 오소서” 하나님은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이 위기 가운데 부르짖으면 그들에게 오셔서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이와 같은 분이시기에 하나님의 능력과 성품에 기대어 위기와 고난 앞에서 기도했던 거죠.
3절 “하나님이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주의 얼굴빛을 비추사 우리가 구원을 얻게 하소서” 하나님은 우리를 충분히 회복시키시고, 그분의 빛을 비추시고, 어둠의 권세로부터 우리를 구원 얻게 하시는 분이신 거에요. 회개의 마음을 누가 주십니까? 하나님께서 주셔야 합니다. 강퍅한 마음을 녹여주셔야 하는 거죠.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 안에 있으면 우리는 그분의 인도함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의 부르짖음을 들어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언제나 하나님을 향하여 서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하나님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 증거가 뭡니까? 기도가 막혀 버렸습니다. 주의 백성의 기도에 대하여 응답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4절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백성의 기도에 대하여 어느 때까지 노하시리이까” 관계가 깨어졌을 때 이스라엘이 올려드리는 예배를 하나님은 거부하셨어요.
사 1:11-12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그렇게 관계가 깨어지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통 가운데 눈물을 흘리게 하셨습니다. 5절 “주께서 그들에게 눈물의 양식을 먹이시며 많은 눈물을 마시게 하셨나이다.” 비참한 상황으로 떨어진 것입니다. 한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이 그들의 음료가 된 것입니다. 그러니 선민이라고 우쭐거렸던 이스라엘을 바라보던 이방 나라들이 어떻게 했겠습니까? 이스라엘이 고통받을 때 원수들은 비웃었어요. 꼴좋다는 겁니다. 6절 “우리를 우리 이웃에게 다툼 거리가 되게 하시니 우리 원수들이 서로 비웃나이다.”
코로나 정국에서 교회를 향해 사람들이 얼마나 비아냥거리고 있습니까? 여러 교회가 코로나 상황에서 대처를 잘못하는 실기를 범하는 횟수가 많아져서입니다. 물론 잘하고 있는 교회들은 억울한 측면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 한 몸이기에 같이 수난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교회가 힘을 잃고 소망을 잃고 간신히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단지 뉴노멀 시대에 생존법을 취득해가고자 하기 보다는 전폭적인 회복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이 땅의 회복과 교회의 회복을 위해서 말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먼저 우리의 한계를 깨닫고 다시금 회복과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될 것입니다. 7절 “만군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회복하여 주시고 주의 얼굴의 광채를 비추사 우리가 구원을 얻게 하소서”
시인은 만군의 하나님을 향하여 회복하여 주시라고 기도합니다. 우리의 회복은 천지를 만드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다른 것이 결코 우리의 회복을 이룰 수 없습니다. 백신이 있다고 회복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긴급재난지원금이 투입되었다고 해서 회복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약간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겠지만 전적인 회복과 구원은 만군의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더욱이 우리의 영적인 삶의 회복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우리 안에서 회복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회복과 구원의 출발점이신 하나님과 관계가 바로 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회복은 회개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회복은 회개를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돌이킨다 회복한다는 히브리말이 “슈브”라는 단어입니다. 3절 “돌이키시고”에서도 7절 “회복하여 주시고”에서도 같은 “슈브”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를 돌이켜주십시오. 가던 길에서 돌아서 여호와 편에 서 있게 하소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3절 “하나님이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주의 얼굴빛을 비추사 우리가 구원을 얻게 하소서”
근본적인 죄의 문제를 회개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것이 해결되었다면, 이제 우리는 매일 매일 우리 자신이 온전한 자리에 서 있는지를 점검하고,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니라면 곧 바로 돌이켜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가는 바른 과정입니다.
온전한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은 나 자신과의 회복, 이웃과의 회복으로부터, 나아가 나와 너의 연합인 교회의 회복으로부터 또한 이루어집니다. 그것은 부르심의 합당한 삶으로의 회복을 통해 이루어질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부르심의 합당한 삶의 근간은 교회의 하나 됨과 성도로서 삶의 거룩함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나갈 때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실 것입니다. 우리의 왜곡된 기도에 대해서 노하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이것 없이 나아가는 모든 행위는 예배가 아닙니다. 종교적인 행위일 뿐입니다. 그렇게 해서는 그 어떤 회복도 교회를 통해서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행동은 갈멜살산에서 엘리야와 기도대결을 펼쳤던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던 자들의 행동과도 같습니다. 그들에게 기도의 응답은 없었습니다. 오직 하나님 편에 서 있던 한 사람 엘리야의 기도에 하나님은 응답하셨고, 하늘로부터 불을 내려주셨습니다.
2020년을 참으로 힘겹게 달려왔습니다. 위기와 마주하여 걸어온 이 시간을 통해 여러분은 무엇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힘들었던 순간들만 보이십니까?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불편함으로 가득차 있습니까? 그냥 의미 없고 덧 없이 흘려버리기에는 2020년은 우리에게 너무도 많은 시그널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것을 정확히 해석해내지 못하고 2021년을 맞는다면 그것은 우리를 소망이 아닌 절망으로 치닫게 할 것입니다.
오직 회복과 구원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길이 하나님 편에 서 있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 편에 서 있지 않다면 돌이키십시오. 하나님께로 돌이키십시오. 이스라엘처럼 잠시 돌이켰다가 다시 우상으로 내달리던 것처럼 이 일을 반복하지 마십시오. 변함없이 하나님 편에 서 계십시오. 우리의 회복은 하나님으로부터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이켜 오직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여 그분의 능력으로 우리가 회복의 기쁨을 누리고, 나아가 코로나로 신음하는 이 땅이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속히 치유되어 일상에서 성도들이 함께 소리높여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는 축제의 날이 도래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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