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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산에서 고난과 영광을 보여주시다: 막 9장 2-9절

by 최수근 2021. 2. 14.

2021년 2월 14일 주일예배

[변화산에서 고난과 영광을 보여주시다: 막 9장 2-9절]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성경의 중요한 원칙 가운데 하나는 심은 대로 거둔다는 것입니다. 67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전적인 은혜로 구원을 받았지만, 구원 이후 주님과 동행에 있어 우리의 책임, 의무가 수반되어야 합니다. 2:12에서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말씀하시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믿음의 길에서 고난과 영광은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예수님은 제자의 길에서 우리가 감당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말씀하셨습니다. 8:34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제자의 길에 대한 선택은 모든 시대, 모든 이들에게 활짝 열려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그 길에 들어서거나 완주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요구하시는 과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르심 앞에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이 땅에 권능으로 임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볼 것이라 약속하셨습니다. 9:1 “여기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이와 같은 말씀을 하신 지 6일 후에 예수님께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따로 데리시고 높은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거듭되는 이해 부족과 오해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으셨어요. 8장에서 예수님의 수난예고를 들었을 때 이해하지 못했던 열두 제자 중에서 따로 세 명의 제자를 데리고 예수님은 산으로 가신 겁니다. 높은 산에 올라가서 제자들이 예수님을 바라보는 순간 예수님은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변형되어 있었습니다. 성경은 그 상황을 3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더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그곳에서 예수님의 참모습을 보았습니다. 본래 하나님과 본체이신 영광의 주님을 본 것입니다. 또 율법과 선지자를 대표하는 두 인물인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예수님과 말씀을 나누는 장면도 목격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이들과 나누신 대화의 내용은 병행 본문인 누가복음 931절에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씀하셨다고 했습니다. 곧 일어날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죽음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신 거죠. 제자들의 눈에 보이는 것은 영광스러운 모습이지만, 정작 영광스럽게 변하신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셔서 고난받고 죽어야하는 이야기를 두 사람과 나누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변형과 위대한 지도자 모세와 선지자 엘리야를 본 제자들은 두렵고 무서웠습니다. 그 상황을 6절은 이는 그들이 몹시 무서워하므로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알지 못함이더라고 설명합니다. 사람은 당황하면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말문이 막힐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말실수를 하는 경우들이 종종 있습니다. 또는 그 사람 마음속에 숨겨져 있는 본심이 엉겁결에 나오기도 합니다. 베드로도 순간 예수님께 말하였습니다. “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두려움 가운데서도 베드로는 산 아래서 예수님이 고난받아야 할 자리가 아닌, 영광 받으시는 자리가 좋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곳에 초막 셋을 짓고 영광의 자리에 영원히 머물렀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이야기한 것이죠.

이 말을 통해 마가는 8장에 이어 베드로의 영적무지를 또 한 번 보여주었습니다. 베드로는 아직도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기에 산 아래서 예수님이 해야 할 일은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고난과 죽음의 길을 가야 할 인자의 길이 남아 있는데, 베드로는 성급하게 현재에 주저앉아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앞당겨 즐기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연스럽게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의 길을 거부하는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하는 것은 고난과 죽음의 관문을 통과해야 하는데, 베드로는 이를 무시하고 왕 노릇부터 먼저 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는 현재의 과제를 망각한 채 미래의 상급에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나머지 제자들도 주님이 말씀하신 제자의 길은 주저하였습니다. 반면에 그들은 지금 무엇인가를 얻기를 원했습니다.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능력을 갖기 원했고, 위대하게 되고 싶었고,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고, 주님을 따름으로 보상을 받고, 그의 영광의 오른편과 왼편에 앉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러나 정작 예수님과 공유해야 할 고난의 길은 회피하고자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 영광스러움의 모습을 짧은 시간 경험하게 함으로써 91절 말씀의 성취가 어떻게 이루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셨고, 다른 한편으로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신분, 예수가 누구냐를 인지 시켜주셨습니다.

베드로가 초막 셋을 짓겠다고 말할 때 급작스럽게 구름이 와서 예수님과 제자들을 덮었습니다. 그리고 그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났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이 말씀은 제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심을 제자들에게 확증해주셨습니다. 처음 예수님께서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올 때에도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음성은 예수님께 들려진 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세 명의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확인시켜주시는 음성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기서 강조되는 점은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제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할 것을 요청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자기들의 생각을 고집하지 말고, 예수님께서 고난 받고, 죽임당한 뒤, 무덤에서 사흘 만에 부활할 것을 예고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했습니다. 그렇지만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주의 깊게 듣지 않고, 자기들의 생각대로 나가고 있으므로 그의 말을 들어야 한다고 다시 한번 주의를 환기시켜주신 것입니다.

제자로서 우리는 하나님 아들의 영광에 대한 희망을 당연히 가져야 합니다. 하지만 그보다는 먼저 우리 자신의 과제인 제자로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쫓아가는 것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변화산에 초막 셋을 짓고자 하는 베드로를 통해서 우리는 고난의 십자가를 외면하고, 영광의 자리만을 선호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는다고, 주님의 뒤를 따른다고 하면서도 죄의 권세 아래 있던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고, 말한다면, 그리고 여전히 그곳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면, 우리도 주님 곁에서 매번 겉도는 제자들처럼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제는 하늘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들어야 할 소리의 진원지가 변화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제자들에게 그것을 강력하게 요청을 하셨습니다.

이처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말씀하는 하늘의 소리에 놀란 제자들이 다시 정신을 차리고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빛나는 예수님도, 모세와 엘리야도, 뒤덮였던 구름도 다 없어지고, 그곳에는 오직 예수님과 자기들뿐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잠시 허락되었던 하나님 나라 영광의 자리는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너무도 놀라운 일을 목격한 제자들을 데리고 예수님께서 산을 내려오실 때, 제자들에게 경고하셨습니다. 9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예수님은 의도를 가지시고, 제자들에게 변형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일은 세 명의 제자를 위한 자리였습니다. 지금은 형편없어 보이는 제자들이지만 결국 변화산에서의 경험이 제자들에겐 훗날 그들의 사역에서 매우 큰 힘이 되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경험들을 하도록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당장은 깨닫지 못해도 어느 순간에 그 영적 경험들이 우리에게 큰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이 그와 함께 함구령을 내리신 것은,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만약 그들의 입을 막지 않으셨다면 그것을 보여주신 의도와 상관없이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하던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만을 제자들은 사람들에게 이야기 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거기에 관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고난 받고 십자가를 져야하는 일은 관심 밖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그릇된 희망의 모든 가능성이 배제되기전에는 그것을 철저하게 차단하신 겁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변화 산에서 예수님의 영광을 보여주시며,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잠간이나마 경험하도록 한 목적은 분명해집니다.

첫 번째 목적은 고난의 길이 패배가 아님을 보여줌으로써 지금 가야하는 십자가의 길이 예수님뿐만 아니라 제자들에게도 영광의 길임을 깨닫게 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속 역사를 이루기 위해선 고난은 꼭 넘어야 할 과정임을 깨닫도록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죽음이 끝이 아님을 강력하게 보여주신 겁니다.

두 번째 목적은, 마가복음의 독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죽으셔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 버림받았기 때문이 아님을 확인시켜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사명과 목적이 달라진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수세 후에나 수난 예고 후에나 하나님은 항상 예수님과 함께 하시면서 예수님이 그의 유일한 아들임을 천명하셨습니다

세 번째 목적은 변화산 사건이 갈릴리에서의 예수님의 공생애와 예루살렘에서의 그의 고난을 이어 주는 중요한 교량 역할을 하도록 하는데 있었습니다. 11절과 111절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선포한 후에 독자들은 빠르게 전개되는 일련의 이야기들 속에서 예수님의 초자연적인 권능과 더러운 귀신들이 두려워하면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한 것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마가복음의 처음 여덟 장에 나타난 예수님은 모든 대적들, 마귀세력, 질병, 비판자들, 자연 등에 대하여 승리하였습니다. 그러나 복음서 이야기에서 전환점, 아니 실제로 위기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고난을 예고하실 때에 다가왔습니다. 예수님의 가야할 길과 뒤를 따르는 무리들의 길에 차이로 갈등이 일어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승리와 영광에 취해 있다가 막상 고난의 자리로 들어서려는 것은 받아들이기에 곤란했던 겁니다. 사람들은 그러면 다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반면에 오늘 변화산의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십자가의 길이 십자가로 끝나지 않는다는 확신을 갖고, 제자로서 예수님의 뒤를 쫓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고난과 죽음이 제자들에게 혼란스러움을 안겨줄 시점에 영광스러운 예수님으로 변형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미 이루어진 사실을 보여주셨습니다.

오늘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무엇을 추구하며 살고 있습니까? 우리가 푯대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가는 그 길은 마냥 좋을 수만은 없습니다. 그것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야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사람들이 축복, , 행복, 영광을 약속하고 있는 성경의 부분들만 기억하고 자기희생, 고난, 자신의 십자가를 질 것을 요구하는 말씀은 잊어버리거나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들은 고난은 건너뛰고, 영광의 앞선 자리로 나가고 싶어 합니다. 그것 때문에 수많은 성도들이 시험에 들었고, 결국은 실족했습니다. 그릇된 희망이 길을 망친 것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누리기 원한다면 영광의 자리가 먼저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겪으셨던 그 고난의 자리에 동참해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817절에서 그렇게 해야 할 이유를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요, 또한 상속자로서 고난 뒤에 주어질 하늘의 영광을 볼 수 있는 영적인 눈이 필요합니다. 또한 조급함이 아닌 참고 기다릴 수 있게 하는 영적 감성지수가 우리에게 요구되는 때입니다. 무엇보다도 영광만을 얻고자 하는 모든 인간적인 욕망은 버려야만 합니다. 고난을 통과하지 않은 영광은 주님의 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쫓지 않는 한, 그리고 십자가에서 나 자신이 죽지 않는 한 예수님과 함께 영광의 자리에 동참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참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우리 길을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 주님과 동행하며, 묵묵히 우리가 감당해야 할 자기부인의 길을,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그 길은 엄청난 희생을 요구하는 것도, 감당못할 고통을 요구하는 것도 아닙니다. 작은 나의 고집, 나의 편리, 나의 계획, 나의 주장, 나의 선호도를 내려놓고 주님과 함께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나의 이기심을 내려놓을 때, 우리는 주님께서 약속하신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풍성하게 누리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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