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28일 주일설교동영상
[사랑안에서 세워져 가는 교회:엡 4장 15-16절]
사자성어 중에 동상이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복음서를 읽다 보면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에서 또는 예수님과 군중들 사이에서 동상이몽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됩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던 그때와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 안에서도 동일하게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오늘도 너무도 다른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나님 나라를 통해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읽어낼 수 없다면 여전히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헛다리를 짚을 수밖에 없을 겁니다.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기 위해선 우리가 꾸는 꿈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예수님, 그리고 성령님이 그려가시는 거대한 구원의 계획에 우리가 따라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막 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과 군중은 끝까지 주님의 메시지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위해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는데, 제자들과 예루살렘의 백성들은 왕의 귀환으로 생각하여 예수님을 소리높여 맞이하였습니다.
마 21: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오늘은 바로 이날을 기념하는 종려 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사람들이 종려나무의 잎사귀를 예수님이 타고 가시는 나귀 앞에 깔아놓으며 예수님을 맞이하는 날을 기리는 날입니다.
그러나 제자들과 백성들의 기대와는 달리 예수님은 십자가 죽음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신 거죠.
종려 주일 이후 이어지는 한 주간은 제자들과 군중들이 기대하는 왕의 등극식이 아니었습니다. 십자가 고난으로 이어지는 죽음의 시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유대 종교지도자들에 의해 성금요일에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게 되죠.
십자가 고난 앞에 선 예수님은 제자들의 꿈을 바로잡기 위해 제자들 앞에서 마지막 행동을 행하셨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꿈을 무너뜨리는 행동이셨습니다. 섬김을 받는 자가 아닌 철저히 낮아진 종의 모습으로 섬김의 본을 보여주심으로써 제자들이 앞으로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할 모습을 친히 보여주신 겁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유월절 전 저녁 식사를 하시던 중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직접 씻어주셨습니다. 이런 행동은 그 당시 유대 문화 안에서는 불편한 사건이었습니다. 당연히 제자들이 선생님의 발을 씻어 드려야 하는 건데 선생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으니 제자들로서는 얼마나 송구하였겠습니까?
그래서인지 베드로는 절대로 씻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이런 베드로를 바라보시면서 “내가 너를 씻어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니까 베드로는 발뿐만 아니라 손과 머리까지도 씻어달라고 하였죠.
제자들의 발을 다 씻기신 후에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3장 14절과 15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요 13: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는 것이 옳으니라”
요 13:15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선생이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는 파격적인 행동을 통해 예수님은 그 당시 사회적인 질서를 깨고 제자들도 그와 같이 행하도록 강력하게 본을 보여주신 거예요.
이렇게 예수님께서 본을 보여주신 것이 너무나도 강력해서 초기 교회의 모습 속에서 이런 강력한 섬김의 모습들을 볼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의 섬김과 사랑은 사람들의 마음을 녹였고, 온갖 박해 속에서도 교회는 사랑 안에서 세워져 갈 수 있었습니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유월절 전 식사 시간에 행하신 에수님의 세족식 사건은 너무도 잘 알려진 감동적인 일입니다. 이 일을 통해 보여주신 의미도 매우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연유로 세족식은 각종 수련회, 아버지 학교, 어머니 학교 등 다양한 행사들에서 퍼포먼스로 가장 많이 행하는 이벤트가 되었습니다.
그 순간에는 감동적으로 눈물 흘리며 상대방의 발을 닦아 주지만, 실제 삶에서 그런 섬김과 사랑의 실천이 잘 안 되어서 문제입니다.
그러나 사랑과 섬김의 실천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분명하게 넘어야 할 과제입니다. 주님께서 제자들과 오늘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주시는 새 계명이기 때문입니다.
요 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사랑은 제자의 DNA 가운데 참으로 중요한 덕목입니다. 아무리 능력이 출중해도 다른 장점이 많다고 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가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꽹과리인 겁니다.
고전 13: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사랑이 없으면 아무 의미 없는 겁니다. 소리만 요란하지 보여주고 들려줄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들고 나가도 세상은 그 진리를 꽹과리 소리로밖에 듣지 않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할 때 모든 사람이 제자인 줄 알리라고 하셨어요.
요 13: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그것은 제자로서의 성숙함을 서로 사랑함을 통해서 넉넉하게 보여주었기에 이루어지는 자연스러운 결과입니다.
세상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지를 보기에 서로 사랑함의 열정이 보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무리 제자라고 주장하여도 세상은 우리를 제자로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숙한 변화가 있어야 제자입니다. 성숙한 변화는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랑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영원한 모델이요 멘토이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감히 선포하는 것입니다.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고 말입니다. 모든 것에 있어 예수님에게까지 우리는 자라 가야 합니다.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이시며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의 성장의 목표는 명확합니다.
하지만 어떻게 우리가 그에게까지 자랄 수 있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엡 4: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라고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라고 말씀합니다.
참된 것을 한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로 말할 수 있어요.
하나는 참된 생활을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참 진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두 가지 모두 같은 맥락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삶을 통해 진리이신 예수님을 보여주려고 해도 거기에 세상이 보여주는 사랑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이 녹아 들어가 있지 않으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고전 13: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건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오직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참된 삶을 살고, 진리를 말함으로써 삶의 모든 자리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본을 따라 성장하는 것입니다.
여기 성장의 과정에서 중요한 비밀이 있습니다.
엡 4:16 ”그에게서 온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교회는 각자도생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이기에 먼저 교회는 교회의 머리 되신 그리스도와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예수님에게서 온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 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합니다. 그 결과 몸인 교회가 성장하는 것입니다. 머리이신 예수님 없이 성장은 있을 수 없습니다. 또한 몸에 있음으로서 성장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교회는 유기적인 생명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비밀입니다.
그와 함께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누구의 사랑입니까?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바로 그 사랑입니다. 우리가 연합되어 있는 예수님이야말로 본질이 사랑이십니다.
우리는 그 사랑 안에서 세워져 가야 합니다. 그럴 때 교회는 바로 서 가고,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 사랑은 죽기까지 자기를 낮추시고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입니다. 인간적인 생각에서 누군가를 섬긴다는 것은 상대방보다 자신이 낮은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기에 알아서 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심 그 일을 통해 자신의 유익을 구하고자 합니다. 높은 사람들도 말이야 섬긴다고 하지만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권력자들이 섬기는 것을 보셨습니까? 오히려 더 찐하게 섬김을 받으려고 할 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상의 섬김과는 다른 것을 우리에게 명확하게 보여주셨습니다. 왕이신 예수님이, 우리의 영원한 주이신 예수님이 철저하게 낮아지셔서 섬겨 주신 사랑의 본이 우리에게 흘러와 우리가 그 삶을 살아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사랑은 어떤 전제도 셈법도 없는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그래서 제자라면 교회라면 머리가 아닌 뜨거운 마음인 예수님의 심장으로 세상에 서야 합니다. 그래야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바로 그 몸의 지체들이 예수님의 이 사랑을 온전히 보여줄 수 있다면 복음의 능력은 이 땅 가운데 편만하게 임하여 수많은 생명이 새 생명의 기쁨을 누리며 예수님과 동행 하게 만들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일을 위해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천하보다 한 생명을 귀하게 여기시는 긍휼하신 아버지의 마음으로 채우고 우리의 세상 선교지로 나갑시다.
거기에서 주님이 제자들을 섬기셨던 것처럼 세상 가운데 우리의 섬김이 필요한 이들에게 사랑으로 섬깁시다. 그리스도가 본을 보여주신 사랑이 우리에게 없으면 우리의 행함은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세상으로 나아가기 전 먼저 우리가 서로 섬기며 사랑합시다. 제대로 받을 줄도 알아야 하고 제대로 줄 줄도 알아야 건강한 관계가 됩니다. 받기만 하고 줄 줄 모르면 여전히 어린 아이인 것입니다.
예수생명교회는 물리적으로 볼 때는 작은 공동체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앵글이 아닌 하나님이 보실 때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섬김으로 충만하여, 그래서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강력하게 선포할 수 있는 선교적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것은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 새 계명의 실천을 통해 우리 모두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뿌리를 내리고 그 사랑으로 함께 성장하여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 헛된 욕심과 이기적인 마음으로 비롯된 이 땅의 꿈을 버리고 하늘의 꿈을 꿈으로써 사랑 안에서 건강하고 아름다운 교회로 세워져 가도록 섬기는 예수님의 제자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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