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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동영상

하나님 기뻐 받으시는 예배자의 삶으로: 히 13장 1-8절

by 최수근 2022. 11. 13.

2022년 10월 16일 주일예배

[하나님 기뻐 받으시는 예배자의 삶으로: 131-8절]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예수님이 우리에게 어떤 분이십니까? 사람들마다 다양한 생각을 하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것이 잘못되었다면 그의 신앙이 목적하는 바는 하나님의 목적과는 다른 곳으로 향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온전한 그림이 중요합니다. 히브리서는 12장까지 그 일을 진행해왔습니다. 우리가 바라보고 생각해야 할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말입니다. 바로 그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진리이시고 길이시고 생명이십니다.

이 예수님을 우리가 인격적으로 만났고, 그분을 점점 더 깊이 알아가고 있다면 우리 삶은 어떻게 될까요? 예수님으로 인해 우리 믿음이 이루어지고 흔들리지 않는 나라, 하나님 나라의 소망 안에 살아가고 있기에 그 내적인 힘이 외적인 열매를 당연하게 드러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신 믿음과 소망이 참된 것이라면 말입니다. 그것은 삶의 결실로 이루어지는 온전한 예배의 모습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겁니다.

히브리서 1228절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삶에 어떤 모습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만한 삶으로 드리는 예배일까요? 히브리서 13장은 이것들을 구체화하는 실제적인 내용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절에서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라고 말씀하였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형제 사랑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됩니다. 형제는 같은 믿음의 공동체 안에 지체를 의미합니다. 여기서 사용된 헬라어는 아가페가 아니라 필로스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수준은 범접할 수 없는 신적 사랑이 아닌 우리가 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사랑은 우리의 일상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계속하라. 그것을 멈추지 말라라는 개념을 나타내는 동사 시제를 사용함으로 형제 사랑에 대한 지속적인 우리의 행동을 요구하셨습니다. 우리의 예배가 거룩한 삶으로 드려지는 산 제사가 되려면 우리 삶에서 형제를 사랑하는 지속적이고도 거룩한 향이 주님께 올라가야 합니다.

이어서 하나님은 섬김과 사랑의 영역이 교회공동체를 넘어서도록 하십니다. 형제 사랑을 자기울타리 내에서만 편안하게 적용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세상으로 그 섬김과 사랑과 자비심과 동정심이 확장되기를 원하십니다. 2절에서 하나님은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공동체 안에, 그리고 가까운 이들에 대한 사랑을 넘어 다른 이들에게까지 확장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의도적으로 계속해서 손님 대접을 하라는 것입니다. 초대 기독교 공동체의 두드러진 특징이던 환대가 어디든 가능한 곳으로 확대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동정과 자비를 베풀어야 하는 일은 여전히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그런데도 세상 사람들을 향해 우리의 문을 열라고 하나님은 요청하십니다. 우리가 사랑을 나타내 보여야 하는 이유는 사랑이 복음 증거의 필수적인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사랑이시고 우리가 세상에서 하나님을 닮도록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타인에 대한 사랑은 우리와 하나님의 온전한 관계에서 흘러나오게 되어 있고, 우리가 받은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는 방법입니다.

더욱이 3절 말씀에선 너희도 함께 갇힌 것 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너희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받는 자를 생각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시 갇힌 자는 예수님에 대한 신앙 때문에 박해와 매질과 상처와 거부를 당하고 있던 당시 그리스도인들을 말합니다. 넓은 의미에서 말하면 온갖 종류의 고통스러운 환경에 처해 있는 사람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에 대한 배려를 강조합니다. 이것은 다른 이들의 고통을 바라보며 아파하셨던 예수님의 마음을 소유하라는 요청입니다. 힘들어하는 이들을 외면하지 말고, 저들의 선한 이웃이 되라는 주님의 명령입니다.

타인과의 친밀한 관계 회복은 민감하고 책임 있는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당연히 감당해야 할 일입니다. 예수님은 이 문제를 해결하고 나서야 하나님께 예배드려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 영역이 부실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 기쁨으로 섬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타자와의 관계를 말씀하신 하나님은 거룩한 예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의 거룩함을 요청하십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사랑은 거룩함과 함께 존재해야만 가치가 있습니다. 세상 사람 중에는 우리 그리스도인들보다도 더 이웃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큰 이들이 많습니다.

그러기에 프랜시스 쉐퍼는 하나님의 거룩과 사랑을 같이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고 선포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사실상 이중의 임무를 지닌다. 하나님의 거룩과 하나님의 사랑을 모두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거룩 없이는 하나님의 사랑이 없다. 하나님의 거룩과 하나님의 사랑을 동시에 균형 있게 보여주지 못하는 그리스도인 개인이나 단체가 행하는 일은 어떤 것이든 그들을 주시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존재하시는 하나님의 실물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서투른 모방을 보여줄 뿐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대행자가 되고, 하나님의 얼굴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면 우리는 우리의 의무를 이행하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거룩함은 우리를 세상으로부터 구별시키는 힘입니다. 오늘 본문 4-5절을 보면, 사람들의 성적인 타락과 결혼의 신성함에 대한 무시, 그리고 돈에 대한 탐욕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행동은 거룩하신 하나님에 대한 성별을 거부하는 행위입니다.

히브리서를 받아보는 초대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성의 왜곡과 탐닉이 만연해 있는 부패한 사회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서 그들의 거룩함을 지켜야 했던 거죠. 지금도 같습니다. 세속 문화 안에 이런 코드들은 깊이 파고들어 와 있습니다. 특히 웹소설 웹툰 등 젊은 세대들이 접하는 곳에 이런 풍조가 적나라하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이것들을 일상에서 접하다 보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인식도 못 하게 됩니다. 중독되는 거죠. 그러니 N 번 방 같은 일들이 계속되는 것 아니겠어요.

성의 경계가 속절없이 무너진 세속화 시대에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구별됨을 요청하십니다. 이 영역이 구별되지 못하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의미 없는 허수아비로 예배드리는 것과 같습니다. 4모든 사람은 결혼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 결혼은 하나님이 가장 먼저 제정하신 거룩한 제도이며, 교회와 사회의 초석입니다. 하지만 고결한 그 가치가 망가져 버렸습니다. 쉽고 가볍게 여겨버립니다. 그러나 성경은 경고합니다.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음란하게 깨뜨리는 자들은 하나님이 심판하신다는 겁니다.

또한 우리의 마음을 오염시켜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지 못하게 하는 것은 돈에 대한 사랑입니다. 이 질병 역시 성적인 타락과 마찬가지로 이 시대에 심각한 질병입니다. 세상의 문화 전체가 우리에게 번영을 추구하라고 가르칠 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이런 번영의 메시지가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물질의 복을 우선으로 찾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돈을 사랑하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 5a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우리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돈이나, 또는 돈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돈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이기 때문입니다. 돈은 행복을 약속합니다. 그걸 미끼로 사람들을 노예로 만들고, 결국에는 약속했던 행복을 제공해주지 않음으로써 사람들을 비웃습니다. 그런 점에서 돈에 애정을 품거나 돈을 늘리는 것을 삶의 목적으로만 삼는 일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합당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우상숭배가 되어 하나님으로부터 우리를 분리해버리기 때문입니다. 이 마음을 이겨내는 길은 자족하는 마음입니다.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현재 하나님께서 주셔서 누리고 있는 것을 만족함으로 더 많이 갖고 싶어 하는 우리의 욕심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로 더 많은 것을 원하도록 하는 것은 우리 안에 두려움으로 인해 시작됩니다. 사람들은 마음에 안도감을 더 가질 수 있기 위해 충분한 돈을 모으고자 합니다. 그렇지만 그와 같은 세상의 가치관을 갖고는 결코 만족할 수도 없고, 안도감을 느낄 수도 없습니다. 아무리 채워보았자 늘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안도감과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의 공급자이신 하나님을 향한 무한신뢰입니다.

5b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이 말씀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로서 모세가 차지했던 지위를 떠맡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어려움과 곤란함에 빠진 채로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함께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이 약속은 어떤 환경 가운데서도 함께 하실 하나님에 대한 기대로 하여금 우리를 안심할 수 있게 하는 기초가 됩니다. 이 분명한 약속을 붙잡고 간다면 우리는 어떤 역경에 직면해서도 믿음으로 반응할 수 있습니다. 6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하나님의 임재와 도움에 대한 인식은 큰 격려가 됩니다. 우리를 더욱 강하고 거룩하게 만들어갑니다.

더욱이 우리는 전혀 새로운 길을 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여 주던 이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나아갔는지, 그들의 삶을 하나님이 어떻게 기뻐하셨는지를 보면서 그들이 걸어갔던 거룩함의 길을 따라가면 되는 것입니다. 7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일러주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행실의 결말을 주의하여 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라.”

이렇게 사랑과 자비와 거룩함을 살아가야 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기준은 언제나 동일했습니다. 성경의 이야기와 가르침은 현대의 그리스도인에게도 전혀 부적절하지 않습니다. 고리타분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왜 그렇습니까? 진리는 영원한 것입니다. 8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오래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던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같은 목적과 목표를 요구하십니다. 처음부터 제자들에게 명하셨던 진리와 사랑과 정결을 오늘 우리의 삶과 우리 교회 가운데서도 동일하게 나타내기를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진리와 사랑과 정결을 통해 오늘 우리는 세상에 빛을 비출 수 있고, 이렇게 거룩하게 구별된 삶을 하나님께 올려드릴 때 우리 예배를 기뻐하시고, 우리를 받아주시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예배란 삶의 전 영역이 거룩해져야 한다는 확장된 개념입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예수님과 연합을 통해 우리의 사랑과 자비와 거룩함을 이루어 하나님께 나아가 우리 삶의 열매로 하나님께 예배드립시다. 이것이 오늘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 앞에 예배자로서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우리가 삶에 전 영역서 거룩함으로 드리는 예배를 흠향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 예배 안에서 하늘의 은혜로 채워질 것이고 극심한 세속의 물결을 뚫고 거룩함을 지켜나가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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