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 25일 주일예배
[징계를 두려워하지 맙시다: 히 12장 4-13절]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을 다루시는 일에 있어서 많은 이들이 오해하고 힘들어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고난, 고통의 문제입니다. 성경에 보면 고난이 여러 목적으로 사용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과응보로서 고난, 연단과 교육을 위한 고난, 의인이 받는 고난,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유 없는)에서의 고난 등 다양하게 볼 수 있습니다.
고난의 다양한 용도를 배워 알고 있어도 막상 어렵고 힘든 일들을 만나면 그것을 감당해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다루고 계신다고 생각해도 힘든 거예요. 이 고난 앞에서 많은 사람이 영적인 내상을 입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하나님이 사랑과 은혜로 보호하시고 긍휼히 여겨주셔야지, 이유야 어쨌든 고난은 맞지 않다고 보는 거죠. 믿음의 관점으로 보는 것이 싶지 않은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하고, 심지어 떠나기까지 합니다.
그렇다고 매번 고난의 문제로 넘어질 수는 없습니다.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행동할 수도 없습니다. 그건 너무 솔직하지 못한 거예요. 고난은 우리가 피해 갈 수 없습니다. 이 상황을 통해 하나님은 일하시고 우리에게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 본문은 우리를 다루시는 하나님에 대한 바른 이해를 제공해 줄 겁니다.
히브리서가 기록될 당시 다시금 유대교로 돌이키려고 하는 유대 그리스도인들도 박해로 인한 고난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벽에 부딪히자 그들은 가던 길을 포기하려고 했던 거예요. 그러나 저들이 처한 상황은 극한 상황, 예를 들어 순교하거나 하는 극단적 상황까지 간 것이 아니었던 겁니다. 감당하기 버거운 고난 앞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히 12:4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그런데 이 길을 포기한다, 다시 옛것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옳지 않다고 지적하는 것입니다. 아직 제대로 된 높은 파도가 밀려오지도 않았는데 지레 겁먹고 뒤로 물러서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게다가 이들은 중요한 사실을 잊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은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의미 있는 메시지들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닥치는 상황들을 가볍게 여기지 말고 자기감정대로 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히 12:5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히브리서 저자는 잠언 3장 11~12절 말씀을 인용하면서 성도는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고난이나 시련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겪는 어려움은 우리를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시민으로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의 훈육 수단으로 사용하시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은 이후 우리가 밟아가야 하는 과정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영적 유아기가 있습니다. 이때는 오직 사랑받아야 하는 시기입니다. 은혜로 채워지는 거죠. 하지만 성숙한 단계에 이르러 하나님 나라를 섬기려고 하면 성장을 위한 연단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이 우리를 훈련하십니다. 훈련의 고통 없이 어떻게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겠습니까? 교회공동체는 그런 의미에서 훈련과 양육이라는 한 축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징계라는 단어가 여러 번 쓰이고 있는데 이것의 어원을 잘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문자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뭔가를 잘못해서 그 대가를 치르는 것이 아니라, ‘교육하다’라는 의미로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고난이나 시험이 견디기 힘들 만큼 아픈 것은 사실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이것을 계속해서 자신에게 말씀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파라클레시스’ 즉 훈육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사랑하시기에 우리를 올바르게 세워가고자 하시는 거죠.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은 우리를 훈육하십니다. 6절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들으면 학대 수준입니다. 하나님은 메조키스트에요. 여기에서 징계라는 단어는 양육, 훈련, 지시, 징계, 교정 등의 의미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런 점에서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는 표현을 자녀를 위한 양육의 모습으로 보아야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아동학대의 수준으로 보아서는 하나님의 마음을 전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이런 표현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자녀를 온전하게 세워가고자 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녀가 건강하게 성장하기를 기대하는 부모의 마음으로 우리를 양육하십니다. 사랑하는 아들 딸이기에 방치하지 않으신다는 거죠. 히 12:7-8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금지옥엽, 금쪽같은 내새끼라는 표현이 있어요. 자식을 애지중지하는 겁니다. 그렇게 사랑만 부어준다고 해서 잘 자라는 것은 아닙니다. 잘못될 확률이 높습니다. 얼마나 올바르게 키우느냐에 따라 그 아이가 건강하게 성장하는지, 아닌지가 판가름 납니다. 이를 위해 적절한 부모의 훈육이 필요합니다. 그런 부모의 마음, 진정 사랑으로 훈육하는 엄마 아빠의 마음을 아이들이 모를까요? 혼날 때는 섭섭하죠. 하지만 다시 따뜻하게 안아주는 부모의 품에서 아이들의 마음이 풀어집니다.
아동학대가 의심되어 그 가정에 가면 먼저 해당 아이들의 태도를 살핀다고 해요. 방문 요원들은 그 관계가 보이는 겁니다. 부모와 눈도 마주치지 않거나 그들이 볼 때 불편한 느낌을 받는다고 합니다. 자기를 학대하는 부모를 무서워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부모로 공경하겠습니까?
그러나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를 훈육하는 것이 자신을 위한 것임을 알고 느낀다면 무서워하거나 미워하겠습니까? 비록 그 과정에서 자녀들은 어렵고 힘들지만, 부모를 공경하지 않겠어요? 그렇듯 하나님이 우리를 다루시는 진심을 알게 된다면 우리 마음 또한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거죠. 9절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하나님이 우리를 훈육하는 목적은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참여하도록 그 목표를 삼고 있습니다. 10절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이렇게 굉장한 영적 성장, 거룩함으로의 초대 다 좋습니다. 긴 연단과 훈련의 터널을 지나가는 길은 즐겁지만 한 것은 아닙니다.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리다가도 한탄하고 하소연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건 과정일뿐이라는 거죠. 물론 짧지않은 시간일 수도 있었요. 하지만 결국은 어려움은 지나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훈련과정을 통해 연단 받은 이들은 열매를 맺습니다. 바로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습니다.
비록 그 당시는 어렵고 힘들고 슬퍼 보이지만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히 12:11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이것을 우리가 알고 겪고 보게 된다면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지금의 상황을 소망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12절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그러면 침체한 우리의 믿음을 다시금 세울 수 있습니다. 참으로 힘든 시간을 보낸다고 해도, 그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는 이것들을 이겨내고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진정 이 길을 가다 보면 참으로 많은 에너지가 소진되기도 합니다. 마음이 상할 때도 있습니다. 믿음이 침체의 늪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에 함몰되어 주저앉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을 다시금 세워 믿음의 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런 우리를 주님은 붙잡아주시고 새롭게 달려갈 수 있도록 힘을 주실 것입니다.
그와 함께 곧은 길, 우리의 가야 할 길을 바로 세워야 합니다. 13절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앞으로 가는 길에 우리에게는 시련으로 인해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거룩한 목표를 위해, 하나님 나라를 향해 곧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고난을 이기고 나아갔던 이들의 고백을 마음에 새기십시오. 고난 중에 있던 욥은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욥 23:1) 하였습니다.
시편 기자는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 119:71) 라고 고백하였습니다. 벤저민 디즈레일리는 “어떠한 교육도 역경만 한 것이 없다”라고 했어요.
우리의 구원은 고난을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그러기에 우리 인생을 다양한 환경으로 일깨우시고 다루어가시는 하나님의 뜻을 인정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를 하나님 영광의 자리로 이끌어가고자 우리를 훈련하실 때 우리가 낙심하여 주저앉는다면 어떻게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매 순간 격려해주시고, 보혜사 성령을 통해서 모든 과정을 이기도록 새 힘을 공급해주십니다.
그와 동시에 매일같이 우리에게 도전하십니다. 우리의 터를 흩으시는 거죠. 이것이 우리를 사랑하는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현명한 부모처럼 적절한 훈육을 통해 우리를 키우실 것이라고 기대해야 합니다. 이걸 잊지 말고 기억합시다. 이 사랑에 감사합시다. 그리고 이겨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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