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5월 8일 주일예배설교동영상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마 7장 7-11절]
사람들이 기도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요구와 응답이라는 단순한 틀에서 보기 때문입니다. 인출기에서 카드를 넣으면 잔액과는 상관없이 화수분처럼 나오는 그런 상상이라고 할까요? 물론 기도 응답에 대한 약속이 성경 곳곳에 있습니다.
요 14: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막 11: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그러나 무조건적 응답이라는 기도에 대한 이해는 우리 기도 생활을 왜곡시켜버립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로 나아가는 데 장애가 됩니다. 이걸 부모와 자녀의 관계로 보세요. 아이의 요구를 무조건 들어준다? 전혀 건강하지 못한 관계인 것처럼 하나님과 우리 사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와 함께 기도의 응답이 없을 때, 쉽게 기도의 끈을 놓아버릴 수 있습니다. 기도의 효력이 다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기도의 힘을 지속적으로 이루어가고, 그 과정에 하나님과의 소통이 깊어지려고 하면 오늘 마태복음 7장 7-11절에서 기도에 대해 말씀하시는 주님의 의도를 정확하게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제자들의 의가 바리새인보다 더 나은 ‘의’여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위해선 삶의 다양한 영역인 마음, 관계, 재물, 감정 등의 문제에서 저들과 구별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런 문제를 우리 힘만으로는 쉽게 해결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야만 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 앞에 이 문제들을 갖고 나와서, 감당할 수 있는 능력과 지혜, 그리고 길을 열어 주시도록 하나님께 간구하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기도의 출발점은 자신의 아쉬움을 채우고자 하는 단순한 욕망으로부터가 아닙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바로 하나님을 향한 영적 갈망으로부터 시작하는 겁니다. 이것이 세상 사람들의 간구와 구별되는 지점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적극적으로 기도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이루어놓으신 선물들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 7:7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가 충분한 끈기와 열정으로 기도하기만 하면 그 어떤 것이라도 얻을 수 있다고 단정적으로 약속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약속은 누구나 그의 영혼의 상태나 그의 삶이 어떠하든지 간에 관계없이 그가 원하는 만큼 써넣을 수 있는, 또한 하나님 은혜의 보좌 앞에 가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받아 주시기로 약속하신 일종의 백지 수표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모든 이에게 주어진 백지 수표가 아닙니다.
이 명령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기도의 자세와 마음에 있습니다. 기도는 절박한 영혼이 부르짖는 간절함의 소리입니다. 주시면 좋고 주시지 않아도 괜찮아 그게 아닙니다.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모든 갈망에 대하여 그것을 주시는 하나님께 마음을 돌리는 것이 기도입니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는 표현은 그와 같은 갈망이 표출되는 자세요, 마음입니다.
참으로 얻고자 한다면 끊임없이 구해야 합니다. 그렇게 구할 때 하나님께서 만나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예레미야 29:13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그러나 하나님의 임재에 도달하기 전에 먼저 우리가 포기할 때가 많습니다. 구하고 찾았는데 문이 닫혀 있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두드리라’라는 명령은 구하고 찾는 일의 인내를 포함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문이 닫힌 것 같아도 실망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너희가 바라는 것을 끊임없이 계속해서 두드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외면하시고, 자신을 감추시고, 그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낙심하여 물러서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간절함과 인내가 참으로 진실한 것인지 시험하시는 때이어서입니다. 그러니 그것을 이겨내고 응답해주실 때까지 끊임없이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 합니다.
이와 같은 예를 예수님은 누가복음 18장 1절 이하에서 불의한 재판관 앞에 원한을 풀어달라고 끊임없이 간청하는 과부의 이야기로 말씀하셨습니다. 눅 18:1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과부는 자신의 원한을 풀어달라고 재판관이 귀찮아할 정도로 쫓아다녔습니다. 그런 과부의 끈질긴 간청을 이기지 못하고 재판관은 원한을 풀어줍니다. 이 이야기를 마치시면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눅 18: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이렇게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는 기도의 명령은 기도에 있어서 인내와 간절함을 보여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면, 이어지는 8절의 말씀은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리라는 확증을 믿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마 7:8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기도의 응답은 특별한 소수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제자로서 예수님을 따랐던 모든 사람을 의미하는 ‘구하는 이마다’ 받을 수 있습니다. 응답에 대한 확신 없이 기도를 어떻게 지속할 수 있겠습니까? 가다가 멈추는 것은 확신이 없어서입니다. 반드시 응답하실 거라는 확신을 하기 바랍니다. 종교개혁자 칼뱅은 “우리 기도가 상달될 것이라는 충만한 확신보다 더 우리 기도를 일으키기에 적절한 것은 없다”라고 했습니다.
이와 함께 더욱 인내하며 확신하여 기도할 수 있도록 하는 더 놀라운 약속이 있습니다. 우리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 아버지 되신다는 약속입니다. 저 멀리 계신 무서운 신이 아니라는 겁니다. 친밀한 아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9절 이하에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이심을 선언하고, 그 아버지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를 대하시는지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의 아버지들에게 물었습니다. 마 7:9-10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하는 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하는 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정말 몹쓸 인간들을 빼놓고 부모라면 자녀에게 악한 것은 주지 않을 겁니다. 그게 부모의 마음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반문하십니다. 11절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하나님께서 세상 아버지들처럼 자녀들을 사랑하며 그들에게 좋은 것을 주려 하시는 분이라는 선포는 제자들에게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상상할 수 없었던 일입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함부로 가까이할 수 없는 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친밀하게 가까운 아빠 하나님이시라니 굉장한 일이 벌어진 겁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아버지라는 확신이 왜 중요할까요? 우리가 행하는 기도의 대상이신 하나님이 아버지이시고, 바로 그 하나님이 무한히 선하시고 인자하시다는 것을 확신할 때, 우리의 기도는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기도한다고 해서 우리가 구하는 것을 항상 얻을 수 없다는 것 또한 경험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종종 기도를 알라딘 램프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은 무조건적인 약속이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라는 약속이 어떤 단서도 달려 있지 않은 절대적 서약이라고,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라는 말이 예외 없이 모든 닫힌 문을 여는 주문이라고, 기도하면 모든 것이 주어지고 모든 꿈이 현실이 되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렇게 믿고 있기에 쉽게 응답 되지 않는 기도 앞에서 좌절하고, 시험에 들곤 하는 것 아니겠어요?
아버지 하나님은 예수님이 말씀한 것처럼 우리에게 절대 해로운 것을 주지 않으실 것입니다. 설사 그것을 우리가 떼를 쓰며 구해도 말입니다. 하나님이 자녀를 책임지시는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무엇을 구해야 하는가입니다. 우리가 좋은 것을 구한다면 하나님은 그것을 주실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좋지 않은 것을 구한다면 하나님은 주시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 차이를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누구보다도 가장 정확히 아십니다.
이런 연유로 우리가 자신의 필요를 구하고 찾고 두드리느냐의 여부만이 아니라 또한 우리가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서 바라는 것이 선한 것인가 아닌가에 따라 조건부로 채워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을 다 들어 주는 것이 아버지의 역할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어떤 상황에서든 감사하십시오. 하나님이 기도에 응답하시는 것에도 감사하고, 때로 우리의 요구를 거절하시는 것에도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기도하면서 사람들이 억울해하는 일이 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많은 사람이 기도하지 않고도 잘 지내는 것을 볼 수 있어서입니다. 그들은 기도하지 않고도 기도로 얻는 것과 똑같은 것들을 얻고 누리고 살아갑니다. 아니 반대로 우리는 기도로 구해도 얻지 못하는데, 저들은 기도 없이 척척 잘 얻는 것처럼 보일 때도 많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구하지 않는 많은 사람에게도 주신다는 이유로 불평하게 되고 기도가 불필요하다고까지 주장을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시편 73편에 보면 시인이 그런 투정을 하나님께 합니다.
시 73:7 “그들의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많으며”
시 73:12-13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들이라도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욱 불어나도다 내가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사람들이 기도하든 안 하든, 사람들이 믿든 안 믿든, 별 차이가 없다고 해서 기도가 필요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세상은 하나님의 보편적인 경륜 안에서 움직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호흡을 주십니다. 모든 사람에게 하늘에서 비를 내려 주시고 풍성한 열매를 맺는 계절을 주십니다. 자신의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똑같이 떠오르게 하십니다. 이 모든 선물은 사람들이 그들의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든 안 하든 그분께 기도하든 안 하든 상관없이 주어집니다. 부에 대해서도 하나님은 편파적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것들이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의 기도를 이 영역에만 국한 시킬 때 우리 기도는 샤머니즘의 주술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구원을 주시지는 않습니다. 구원 이후에 받는 축복들, 예수님과 하나님 아버지가 자신의 자녀들에게 주시는 ‘좋은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여기에서 말씀하는 것은 단순히 물질적 축복이 아닌 영적 축복입니다. 죄 사함, 악으로부터 구원, 평화, 믿음의 성장, 소망과 사랑, 바리새인보다 더 나은 하나님 나라의 의를 사는 것,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을 이루어갈 수 있도록 하는 하나님의 포괄적 축복인 성령님의 내주하시는 역사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눅 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우리는 이와 같은 선물들을 위해 반드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죄 사함과 악에서 구원받는 것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이러한 선물들이 기도에 대한 대답으로서 주어지고, 이런 선물들이 없으면 우리는 구원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무작정 부르짖는 것이 아닙니다. 구하기 전에 무엇을 구할 것인지, 그것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주실 수 있음을 믿고 응답받기를 간절히 바라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이시므로 아버지 하나님께 구하여 얻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구하고도 얻지 못했다면 그분이 진정 우리를 사랑하는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자녀를 위해서라면 끝까지 손에 쥐여 주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누릴 수 있는지 가장 잘 아시는 하나님이시기에 더더욱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이 최상이며 선한 길인지 알고 계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잘못 구하거나 해로운 것은 주지 않으실 것입니다. 바로 그런 이유로 하나님은 종종 우리가 구하는 것과 다른 방식으로 우리 기도에 응답해주시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좋은 아버지이십니다. 자녀들에게 좋은 선물을 주고 싶어 하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갖는 믿음과 기대로 하나님께 구하여야 합니다. 오직 우리가 약속받는 것은 우리의 기도가 우리의 궁극적인 선을 위해 응답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믿고 기도할 때 기도는 우리를 살리는 영의 호흡이 될 것입니다.
워렌 워어스비는 말하기를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를 알고 또 나아가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교제와 예배의 귀한 경험이며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서 누릴 수 있는 고귀한 특권 중의 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하나님께서 이루어가시는 놀라운 일들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 기도의 고귀한 특권을 올바르게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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