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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마 6장 33-34절

by 최수근 2022. 4. 24.

2022년 4월 24일 주일예배설교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마 6장 33-34절]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비극적이고도 불행한 전쟁이 우크라이나 전역에서 계속되고 있습니다. 침공 초기에 며칠 내로 신속하게 종결될 거라는 침략자 러시아의 주장과는 달리 두 달 가까이 전쟁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우크라이나의 많은 국민이 목숨을 잃고, 수많은 삶의 터전이 파괴되었습니다. 우크라이나의 국민이 흘리고 있는 피눈물을 우리 하나님께서 닦아주시고 위로해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번 전쟁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몇 배 전력을 준비하고 침공을 했습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군대에 비해 엄청난 인적 물적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에 대해 각종 전쟁 전문 매체들과 전문가들이 여러 의견을 내놓고 있습니다.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는 이야기들을 들어보면서 저는 한 가지 중요한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러시아의 군인들에게서 이 전쟁은 명분 없는 전쟁이었습니다. 애국적인 발로가 아니었습니다. 전쟁터에 와서야 우크라이나라는 것을 알았다는 군인들도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러시아 군인들은 약탈과 민간인 살해, 성범죄 등 각종 전쟁 범죄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게다가 월급도 제대로 지급되지 않고, 모스크바 상부의 계속되는 무리한 전쟁 투입에 항명 사태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이런 싸움에서 죽는 것이 의미 없기에 러시아 군인들은 여차하면 탱크, 장갑차, 고가의 무기들을 버리고 도망가기 급급했습니다.

반면에 우크라이나 군인들은 이 전쟁에 임하는 자세가 달랐습니다. 개인의 생명보다는 가족과 국민이 살아갈 나라가 우선되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든 자신의 나라를 지키기 위해 열악한 상황에서도 목숨을 바쳐 싸우고 있습니다. 대통령으로부터 국민, 군인에 이르기까지 하나가 되어 있으니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나라를 위한 진솔한 마음은 전쟁에서 두 나라 군인들을 다르게 싸우도록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과 특히 우리 신앙에서도 이 차이는 다른 양상을 만들어내리라 생각합니다. 사람들의 종교로의 귀의 목적을 보면 처음에는 개인적인 목적들이 태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중에 웰빙은 최고의 목적입니다. 그러나 모든 종교적 신앙이 이 땅에서 웰빙을 100% 보장하지를 못합니다. 이로 인해 생각했던 만큼 만족하지 못하면 사람들은 개종하거나 종교를 떠납니다. 자기 필요에 따라서 왔다 갔다 하면서 사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그 길에는 늘 염려와 근심, 걱정도 졸졸 따라다닙니다. 이건 신적 권위와 숭고한 종교적 가치를 바라보고 섬기는 개념이 아니어서입니다. 단지 자신의 안위를 위해 물질을 쫓고 있는 것입니다. 물질을 숭배하는 것이죠. 물질이 삶의 우선순위 제일 높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이와 같은 문제에 직면해서 그들의 우선순위가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이 문제는 21세기 기독교 안에서도 자유롭지 못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의 발목을 붙잡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하나님과 맘몬 사이에서 잘못된 선택을 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 우리의 마음과 시선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경고하시는 겁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는 세상 사람들과는 달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더 고귀하고 거룩한 것, 그가 최선을 다해 추구할 최고선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물질적인 것이 아닙니다. 영적인 가치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유익을 우선하지만,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유익이 우선 되어야 합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하나님의 의가 먼저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33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런즉이라고 하셨어요. 앞의 내용을 담고 있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앞에서 자신의 개인적인 채움, 이 땅에 보물을 쌓는 일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라고 하셨어요. 대신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겁니다. 하늘 아버지가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우리의 공급자가 되어주실 것을 믿고, 그분을 신뢰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마음이 하나님 안에서 든든하게 된 자들이라면 다른 차원의 것, 즉 영원한 것을 구하라고 말씀하는 겁니다.

구하라는 단어는 현재 명령형으로 계속적인 의무 이행을 명하는 말씀입니다. 제자로서 우리는 끊임없이 지금 여기에서 하나님의 주권에 복종하고,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위해 일할 수 있어야 합니다. 띄엄띄엄 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 생명이 다하기까지 지속하라는 것입니다. 멈추는 순간, 그래서 우리의 시선이 흐트러지면 사탄은 즉각적으로 반격을 해 옵니다. 왜 시험에 듭니까? 왜 실족합니까? 가야 할 길을 계속 가지 못해서입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고전 10: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이것을 막기 위해 우리는 어떤 결단을 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나라, 즉 하나님의 통치 앞에 전적인 충성과 헌신에 대해 매 순간 먼저 응답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 나라의 규범은 하나님의 의입니다. 하나님의 의 가운데 살아가기를 갈망하고,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의로 살기를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이 실천적 삶은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의보다 나은 의여야 하는데, 우리 만의 삶으로는 다다들 수 없습니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무엇이겠어요. 그리스도 안에, 그분과의 연합 가운데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여전히 이 땅에 국한되어 있습니다. 사람, 물건, 목표, , 즐거움 등 모두가 우선순위를 차지하려고 다투고 있습니다. 이런 삶의 패턴에서 여러분은 자유로우십니까? 우리가 만일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께 첫 번째 자리를 내어드리기로 적극적인 선택을 하지 않는다면 지극히 불행한 일이 벌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마음에 자리하고 있는 것들이 재빠르게 하나님을 우리 삶에 첫 자리에서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할 겁니다. 그건 맘몬에게 지배당하고 중독당하는 일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고자 지금 우리가 안고 있는 의식주의 문제를 위해 전혀 기도하지도 말고, 노력하지도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의식주는 현세를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당연히 필요한 것입니다. 그 점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먼저의 문제이지 배타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다른 것들을 다 버려야 되는 일이 아닙니다. 이것을 지혜롭게 구별하지 못해 우리에게 소명으로 주신 삶의 자리를 힘들게 만들 때가 참 많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33절에서 먼저란 말씀을 하시며 우선순위를 세우도록 하신 겁니다. 이렇게 이 땅이 아닌 하나님 나라를 향해 우선순위를 바로 세울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우리의 마음, 우리의 시간, 우리의 노력이 먼저 주어진다면 우리들의 삶을 위해 필요한 부분들 또한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실 거라는 약속입니다.

우선순위와 순서는 아주 다른 문제입니다. 우리는 대개 사용 가능한 시간과 다른 것과의 협력, 그리고 많은 변수에 따라 해야 할 일의 순서를 정합니다. 그러나 다른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우선순위가 분명하면 어찌 되겠습니까? 그것을 중심으로 일상의 순서가 정해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가족과 친구 일 그리고 여가를 대하는 방법들이 모두 변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 나라가 우선순위에 있다면 하나님의 통치와 하나님의 법이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 있어 우리들의 노력을 결정짓고 지도할 것입니다. 만일 실제로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하나님 나라나 의를 먼저 구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구한다고 하는 것은 말로만 돼 뇌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 삶을 살아가는 순종이 따라야 합니다. 우리 삶의 모든 부분 하나하나에서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되기를 구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께 복종하는 것으로 드러납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통치하심 안에 거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곳 사람들 가운데 확장되기를 소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이 사람들에게서 합당한 영광을 받기를 열렬히 바라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구속받은 교회 공동체는 하나님의 의가 실현되는 공적 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세상에 하나님 영광의 빛을 비출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 점에서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복음 전도 책임과 사회적 책임을 포괄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향한 삶의 우선순위가 세워지면 내일에 대한 염려는 자리 잡을 수 없습니다. 34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날로 족하니라.” 내일은 나의 영역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미래에 대해 염려하는 것은 오늘의 짐을 더 무겁게 할 뿐입니다. 무엇보다도 내일에 대한 온갖 걱정이 그 결과를 바꾸지 못합니다. 우리가 할 일은 분명합니다. 내일을 주님께 맡기고 오직 오늘 우리가 구해야 할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정확하게도 반대로 가고 있습니다. 영적이어야 할 그리스도인들조차도 생활의 무게에 짓눌려 살아가기 급급합니다. 그래서 삶의 가장 큰 관심은 어떻게 먹고 살아갈까에 있습니다. 염려는 이런 급급한 마음을 뚫고 들어와 시작됩니다. 이에 예수님은 그 순서를 바꾸라고 하시는 거예요. 하나님과 먼저 바른 관계를 맺으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살아갈까를 고민하기에 앞서 하나님과의 우선적인 관계를 올바로 세워가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의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한 삶의 회복을 이루어가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확인해야 합니다. 진정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하나님께 집중하고 있는지, 의에 길에 서 있는지,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 안에 있는지를 말입니다.

분명하게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자라면 이 세상에서 수고하는 그 어떤 사람보다도 자유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생명을 향한 책임이 우리를 창조하신 아버지 하나님께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염려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길은 하나님의 인도를 따르고 하나님의 은혜로운 공급을 신뢰하는 것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주인이시고 공급자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내일의 삶을 하나님께 맡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염려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방해하고 불신하고,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만듭니다.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들에 에너지를 낭비하도록 합니다. 쉬 지치게 돼요. 이것을 넘어서 굳건한 믿음의 길에 들어서려고 하면 우리의 마음, 우리의 시선은 분명 달라져야 합니다. 우리 삶의 목적 또한 새로워져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개인을 위한 부르심이 아닌 하나님 나라를 위한 부르심입니다. 우리 삶은 단순히 개인적 삶이 아닌 공적 삶의 자리에 서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위한 야망을 가질 수도 있지만 하나님을 위한 뜨거운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어서입니다. 이것을 아름답게 수행하고, 우리 삶에 임마누엘의 이름으로 함께 하시는 주님과의 동행이 이루어지기 위해 우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지속적 삶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주실 때도 자기의 필요가 아닌 하나님을 위하여 먼저 기도하게 하신 겁니다. 6:9-10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그리고 나서 11절에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라고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분명하게 해야 합니다. 우리 지성과 감성과 욕망에서 이 우선 순위가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에게 명하였습니다. 3:1-2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우리에게는 우리 삶 속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그리고 의롭게 행동하며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속에 머물고자 하는 것으로부터 나오는 조용한 불꽃과 광휘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 것들이 제자리에 있을 때, 그리스도인의 삶은 암흑으로 둘러 싸인 곳에서 밝게 빛나는 햇불처럼 두드러지게 될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를 바라보고 계신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지켜주시고, 세워주실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과 다른 영적 풍성함과 함께 이 땅에서의 풍성한 은혜와 사랑을 맛보게 해 주실 것입니다. 이 구원의 큰 그림을 품고 오늘도 믿음의 온전한 길에 서서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함으로 아버지의 영광스러운 자녀로 살아가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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