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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동영상

황금률: 마 7장 12절

by 최수근 2022. 5. 15.

2022년 5월 15일 주일예배설교동영상

[황금률: 마 7장 12절]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말하기를 사람은 남을 대하는 그 태도에서 행복이 결정된다라고 했습니다. 다른 이에게 잘하는 이가 행복할 수 있다는 말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 플라톤이 틀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지나오면서 사람들을 함부로 대하는 이들이 많아졌습니다. 특히 정치인들과 같은 이들은 그렇게 사람들을 하대하여 행동하면서도 희희낙락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렇게 남의 불행이 자기 행복이거나 다른 이들을 괴롭히면서 즐거워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함부로 말하고, 함부로 비하하고, 성 인지 감수성도 현저히 낮아 여성들을 아무 생각 없이 대해 피해를 주고, sns상에는 언어폭력이 수없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기들이 무엇을 하는지 몰라요. 다른 이들을 불행하게 만들고 자기들은 행복해합니다. 이렇게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은 그 비수가 자기에게 되돌아오리라고 상상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상 이치도 그렇고 성경도 결국 뿌린 대로 거둔다고 말하고 있어요.

이렇게 자기중심적인 인간들의 마음에 어떻게 해야 균열을 가져오고, 타인을 위한 태도가 달라질 수 있을까요? 오랜 시간 인간에 대한 가능성을 갖고 이 땅의 위대한 스승들은 노력했습니다. 이들이 말한 중심주제는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도록 하는 것들입니다.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일은 쉬워 보입니다. 최소한 그런 행동을 하지 않으면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세상은 단지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일을 그치는 것만으로는 변화되지 않습니다. 타자를 위해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고, 그들을 살리는 일이 일어나야 하는데 그런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면서 세상의 나라와 이 땅에 임한 하나님의 나라가 충돌하였습니다. 새로운 하나님 나라 백성들은 참으로 급진적인 삶을 살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은 마태복음 5-7장의 산상수훈을 통해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행동의 급격한 전환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고서는 우리가 하나님 나라 시민으로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마태복음 712절은 이와 같은 산상수훈 본론 부를 정리하는 구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7: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이 구절은 소위 황금률이라고 불리며, 특별히 주목받는 말씀입니다. 그때까지 세상의 의는 사람들을 해치지 않도록 하는 데 있었습니다. 그것들은 다분히 율법적이고 도덕적인 의였습니다. 무엇 무엇을 하지 말라는 부정적인 명령들로서 다른 이들에게 해를 끼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법들이 지닌 정신이 바로 이것입니다. 악을 행하지 말라는 겁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새롭게 전환을 시키신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사람이 범죄를 피함으로써 율법의 소극적인 형식을 준수할 수는 있지만, 적극적인 형식의 준수는 우리에게 행동을 요구합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철저한 제자도의 열쇠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너희가 받기 위해 주라는 규정과는 구별됩니다. 단순히 give and take가 아닙니다. 결코 누군가에게서 되돌려 받기 위해 주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런 마음이라면 이것이야말로 다분히 이기적인 생각입니다.

본래 예수님이 제시하신 율법의 요약은 마 2237-40절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받기 위해 주고자 하는 황금률이라면 이것만으로는 세상보다 더 나은 의,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말씀을 실행할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부정적인 접근을 해볼 때, 황금률에 의하면 남이 나를 미워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내가 남을 미워해도 좋다는 셈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다른 문화권의 사람을 단지 우리가 대우받고 싶은 대로 대할 때, 문화적인 차이로 인해 우리의 행동이 오히려 무례한 행동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 점에서 내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나도 남을 대접하는 것은 인간을 이웃 사랑으로 잇는 하나의 교량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의를 실천할 수 있는 절대적인 원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더군다나 이 규칙을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보다는 인간적인 지혜에 기반을 두고 생각한다면, 그래서 인간 중심적이고, 단순한 이기주의에 기초하게 된다면 본래 하나님이 말씀하신 목적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인하여 황금률이 진짜 황금이 되기 위해서는 이것을 복음의 관점에서 해석해야 합니다. 그래서 단순히 마 712절만을 놓고 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복음서에서 어떻게 이 황금률이 자리하고 있는지 보아야 12절 말씀의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631절에서의 황금률은 원수를 사랑하고 보복을 삼가라고 가르치는 단락의 중간에서 하나의 요약으로서 나타납니다. 그 점에서 네가 지금 대접받고 싶은 대로 행하라는 말은 이제 자신의 이익을 계산하는 것을 훨씬 넘어서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이 말씀의 의미가 원수 사랑과 복수하지 않음을 통해서 설명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의 이기적인 마음을 아시기에 누가복음 634절에서 너희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꾸어 주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그만큼 받고자 하여 죄인에게 꾸어 주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 나라의 의로 살아간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35절에서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행하라고 예수님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황금률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데 있어서 궁극적인 실마리는 이 단락을 끝맺는 절에 제시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 636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분명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우리는 도저히 그런 사랑을 실천할 수 없습니다.

황금률의 윤리적 의무의 근거는 빈틈없는 자기 이익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한량없으신 은총입니다. 그 은총을 우리가 입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7:11b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7: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 두 구절의 관련성은 황금률을 실천하는 데 있어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어떠한 대접을 받기를 원하는가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대접받기를 기대하는 만큼 우리의 이웃에게 베풀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웃에게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면서 어떻게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풀어 주실 것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이기적으로 살아가면서 어떻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관대하게 대해 주실 것을 기대할 수 있겠어요?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필요로 하는 바로 그런 일에서 우리도 하나님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우리의 지체들을 어떻게 대접하는가와는 아무 상관이 없이 우리의 간구에 대한 응답을 기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만일 인간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마귀처럼 행하고 있다면, 하나님 앞에서 거룩함으로 기도하는 것들이 의미 있는 일이 될 수 있겠어요? 아무 의미 없습니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이 자기의 권리를 주장할 때는 대단히 단호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의 권리는 무시하기 쉽습니다. 자기가 비난을 받을 때는 몹시 분개하면서도 다른 사람의 허물에 대해서는 쉽게 입을 엽니다. 자신이 곤경에 처해 있을 때 친구들이 동정해 주지 않는 것을 불쾌하게 생각하면서 이웃의 슬픔에 대해서는 무관심합니다.

만일 형제들을 대하는 우리의 행동이 그리스도인의 신앙고백과 모순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예배를 받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경건한 행위에 있어서 우리에게 진실하기를 요구하실 뿐만 아니라 시민으로서 지켜야 할 모든 의무도 양심적으로 이행하기를 요청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믿음과 삶이 일치하지 않을 때 우리는 불행하게도 많은 것을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세상의 사람들이 우리를 대접하는 방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접하는 방법에 따라서 우리의 행동을 결정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사람들을 대할 때 거듭나지 않은 세상 사람들이 우리의 관대함을 부당하게 이용하여 우리에게 손해를 입히게 할 거라는 사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자비로우심을 본받아 먼저 자비로운 자가 되면 되는 것입니다. 이게 먼저입니다. 그러면 복음 안에서 적용되는 황금률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 점에서 이 규율은 다른 이들을 용서하는 일에 적용될 수 있어야 합니다. 331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우리의 이웃들이 나의 뜻하지 않은 실수를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기를 원한다면 우리도 똑같은 태도를 길러야만 합니다.

이기심은 이웃에 대한 우리의 의무를 이행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방해가 됩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기심조차도 공의와 사랑에 공헌하게 만드십니다. 예수님은 이 황금률을 통해 우리에게 이웃과 처지를 바꾸어 생각해 보고 우리의 권리가 무엇인가를 알고, 이 권리가 침해를 당한다면 얼마나 부당하겠는가를 생각해 보라고 말씀하신 후에 이웃에게도 그의 권리가 있는데, 우리가 그 권리를 빼앗는다면 우리는 부당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관심 가져주시기를 바라는 것처럼 이웃에게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를 도와주기를 소원해야 하고, 그의 행복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주님이 산상수훈을 말씀하신 것은 우리가 율법을 논평하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실천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 점에서 다른 사람들에 의해 잔혹하고 불공평한 괴로움을 당해본 사람들이 이 말씀을 이행하지 않는다면, 그러한 괴로움을 당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이 말씀을 이행하지 않는 것보다 더욱더 사악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말씀을 들어 아는 것과 실천에는 여전히 틈이 존재합니다. 황금률을 비롯한 산상수훈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 우리 힘만으론 가능하지 않아서입니다. 우리가 만일 세상 사람들 관점에서 이 명령에 접근한다면 이 명령을 지킬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서 우리를 인도하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가 먼저 하나님과 온전한 교제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과의 온전한 교제 가운데 있을 때 우리는 이웃을 향해 적절하게 행동할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웃들과 교제 할 때 은혜와 의의 영이 역사하는 것은 거룩하신 하나님과 끊임없는 교제에 의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하나님과 예수님과 동떨어져 역사하는 분이 아닙니다.

이렇게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의 힘으로 먼저 남을 대접하는 것이야말로 이 땅에서 세상보다 더 나은 의를 행하는 삶입니다. 물론 이 과정이 어렵고 힘들 수도 있습니다. 손해 보고 피해를 보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세상 사람들이 대하는 태도에 상관하지 않고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 안에서 그 과정을 묵묵히 이기고 나갈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전혀 다른 차원의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벧전 1:22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이와 같은 삶은 예수님의 제자들로서 우리가 외적인 율법적 순종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수용함으로써 경험했던 하나님의 순전한 사랑을 다른 이들에게 구체적으로 확장시키는 원동력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황금률을 말씀하시면서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고 말씀하신 겁니다. 본래 하나님께서 율법을 통해 말씀하신 목적입니다. 이 힘은 지금 이 땅에 왜곡된 복음의 모습을 회복시켜 많은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되는 힘이 되게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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