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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동영상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벧후 1장5-11절]

by 최수근 2018. 3. 18.

2018년 3월 18일 주일설교동영상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벧후 1장5-11절]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예수생명교회 최수근 목사

 

사람들은 스스로를 속이는데 달인입니다. 마음만 먹으면 스스로 좋아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헌데 언제고 자신에 대해 만족해보았던 적이 있습니까? 잠깐 만족할 수는 있었겠지만 또 불만족의 자리로 돌아가곤 합니다. 그래서 우리 자신에게서 해결책을 찾으려고 하면 할수록 오히려 혼란과 실망만이 더 늘어나게 될 것입니다. 평생 가도 하나님의 눈에 흡족하기는커녕 인간적인 수준에서도 흡족한 수준에 이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하늘과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하늘로부터 내게 하나님의 영이 임해야 합니다. 우리는 신실한 삶의 자원을 우리 안에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구원받은 이후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심을 덧입음으로써 새로운 피조물이 되고, 바로 거기에서부터 즉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부터 우리의 신성한 성품은 발현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나로부터 시작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 약속의 성취는 영원한 나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고,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도록 요청하셨는데, 믿음에 따른 행위들은 자동적으로 수반되는 것이 아닙니다. 각고의 노력이 필요한 힘든 과정입니다. 나의 옛 사람의 본성을 끊임없이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자기부인의 행위는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는 선택 사항이 아닙니다. 비록 구원의 조건은 아닐지라도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순종으로 나아가는 기독교인의 삶에서 계속 진행되어야 할 의무조항입니다.

5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나오는 여덟 가지 덕목을 보면 이것은 한 단계를 끝난 후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순차적 진행이 아니라 모두가 하나로 어우러져야만 참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신성한 성품을 힘써 더하기 위해 우리는 그 반대적인 옛 사람의 성품을 끊임없이 비워야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124절에서 이방인을 향해 뭐라고 하십니까? “네가 원 돌 감람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슬러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으로 받았으니라고 하였습니다. 힘써 내려놓고 참 감람나무이신 예수님께 붙어 있지 않으면 매번 제자리가 되고 말 것입니다.

또한 우리 믿음의 참 여부도 삶의 열매로서 증명되는 것입니다. 그 점에서 신성한 성품의 참여는 지극히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성도들의 적절한 반응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자들은 그 당시 초대교회를 어지럽혔던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과 영향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부인하고, 그런 종말에 대한 무감각은 그들로 하여금 육체적 일탈과 부도덕한 생활에 빠지도록 만들어버렸습니다.

우리가 성도로서 갖추어야 할 여덟 가지 덕목을 말씀합니다. 첫 번째 덕목인 믿음은 모든 사람들로부터 그리스도인들을 구별시켜주는 시금석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요청되는 모든 덕목의 기초입니다.

덕은 고대 그레코-로만 세계에서도 칭송되던 도덕적 탁월성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윤리적 덕목을 말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믿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덕을 갖추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과의 사이에서 덕성에 근거한 바른 관계가 형성되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 역시 진실하지 못하다는 반증이기 때문입니다.

덕을 갖추었으나 지식이 없다면 어리석은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와의 바른 인격적 관계에서 얻어지는 지식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무지는 우리를 사욕으로 이끌 것입니다.

또 지식만 있고, 절제가 없을 때 그 지식은 남용되고 오용되어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믿음과 덕과 지식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절제가 요청됩니다. 절제는 감정, 충동, 욕구의 제한을 말하는데 특히 음식, , 감정 혹은 성적 욕망에 대하여 스스로를 극복하는 통제력을 말합니다. 소크라테스는 절제를 모든 덕성 중 보다 중요한 위치에 두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절제를 모든 덕성의 기초로 두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 덕성이 없는 사람이 어찌 선을 배울 수 있고, 선을 가치 있게 실행할 수 있겠는가?”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절제와 함께 인내가 수반되어야 합니다. 절제가 자신의 감정이나 욕구를 통제하는 힘이라면 인내는 외부적 압력에 대하여 그리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 견뎌내는 힘, 능력을 말합니다. 특히 종말론적 문맥에서 인내는 종국에는 반드시 신원되고, 보상받게 될 것이라는 확신과 함께 등장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덕목들을 갖추어 가다보면 본인도 모르게 자기 의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은 성숙으로 나아갈수록 언제든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경건은 하나님께 인간이 마땅히 돌려드려야 할 존중과 헌신입니다. 하나님께는 올바른 행실로 합당한 영광을 돌리고 그와 함께 하나님이 함께 살아가도록 맺어주신 자들에게도 적합하게 존중을 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경건의 이러한 성격은 경건에 형제 우애와 사랑을 더하는 근거가 됩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스피릿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와 같은 덕목들을 증진시키고 그들의 삶 안에서 풍성하게 해야 합니다.

8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신성한 성품이 풍부함으로써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자 하는 열심을 더욱 갖게 되고, 그리스도와의 연합 안에서 우리는 열매를 풍성하게 맺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성한 성품에 참여한다는 것은 끊임없이 우리 안에 옛 사람의 본성으로 내려놓는 작업들을 통해서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아예 출발조차 하지 않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이런 자들을 향해 멀리 보지 못하는 맹인이라고 하였습니다.

9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 멀리 보지 못하고 그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었느니라.”

5-7절의 덕목들이 결핍된 자들은 영적으로 눈이 멀게 되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모든 은혜들을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은혜를 저버리는 행동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전심전력하여 하늘의 거룩함에 참여함으로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고자 해야 합니다. 구원의 부르심과 택하심 앞에서 현재적 욕망에 갇혀, 죄 사함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종말의 심판하실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현실에 갇혀 있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죄 사함 받은 사실에 감사를 아는 자는 우리를 깨끗하게 하신 이를 닮아가고자 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잊고 죄 속에 살아가던 과거적 삶으로 회귀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는 것입니다. 6:1-4, 고전 6:9-11

따라서 우리는 더욱 힘써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해야 합니다.

10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더욱 힘써 굳게 할 것을 권하고 이것을 행하면 실족하지 않을 것이라고 신성한 성품에의 참여가 주는 은혜적 결과를 말합니다. 실족은 단순히 도덕적 실패를 지칭하는 것이 아닙니다. 종국적 구원까지 아우르는 개념입니다. 굳게 하지 못하면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선택과 부르심은 인간의 성취, 공로, 혹은 그들의 성격이 아닌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에만 근거할 뿐입니다.

따라서 다른 것에 휘둘리기보다는 자신의 소명과 선택 의식을 굳게 견지해야 합니다. 아무런 자격 없는 우리를 불러 선택하시고 하나님 자녀 삼아주시고 구원을 보장해주신 하나님을 기억할 때 우리들의 삶은 그릇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과 선택을 굳게 잡는다는 말은 단순한 심정적 인식이 아니라 행함이 그 택하심의 증거가 됩니다. “너는 이것을 행한즉조건을 답니다. 아무렇게나 살면서 은혜로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11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넉넉히 들어갈 수 있다는 약속을 받게 합니다. 신앙생활은 믿음 혹은 행함이라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상호 필수불가결한 요소임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궁극적인 선물로서의 믿음이 우선할지라도 믿음은 그리스도 안에서 요청되는 구체적 덕목으로 실천을 통해 그 믿음이 단순히 지적 동의가 아닌 살아 있는 믿음이라는 것을 증명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 이러한 덕목의 준비와 시행은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과의 충만한 교제로 이끌어 하나님 나라에 넉넉히 들어가도록 이끌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게으르지 않고 열매 맺는 신성한 성품의 참여로 주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할 때입니다. 게으름은 행위 없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과 택하심의 목표는 분명합니다.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되게 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나라에 넉넉하게 들어가게 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함으로 채워짐으로써 하나님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더욱 굳게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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