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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동영상

[왕으로 오신 예수님 앞에 나는 어떤 자인가?: 눅 19장 28-48절]

by 최수근 2018. 3. 26.

2018년 3월 25일 주일설교동영상

[왕으로 오신 예수님 앞에 나는 어떤 자인가?: 눅 19장 28-48절]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예수생명교회 최수근 목사

오늘 교회력으로 종려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평화의 왕으로써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날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오늘 누가복음 19장에서는 그 당시 예루살렘의 분위기를 자세히 묘사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왕이신 예수님의 오심을 대하는 다양한 부류의 모습들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어떤 일이든지 모든 사람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기가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많은 사람들이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관심조차 갖지 않습니다. 변화의 바람의 불 때 지금 자기 일에 파묻혀, 혹은 자기의 작은 유익에 심취되어 있다면 변화로 인해 새로운 세계가 구축되었을 때 도태되고 말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영적인 범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해 오셨던 죽음을 위해 예루살렘에 들어가실 때 나귀새끼를 타고 들어가셨습니다. 그것은 구약 예언의 성취, 스가랴 99절의 성취로서 예수님이 세상의 왕이 아닌 평강의 왕으로 자신을 내어주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모습이었습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이 때 제자들에게는 소유한 나귀가 없었는데, 예수님께서 제자 둘을 보내시며 맞은편 마을로 가면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하여 갖고 온 나귀새끼를 타신 것입니다. 나귀 주인이 허락도 없이 나귀를 가져가려는 제자들에게 당신들 뭐냐고 할 때 주께서 쓰시겠다는 말에 그 사람은 나귀새끼를 그냥 내어드렸습니다.

이 사람은 잘 알지 못했지만 주의 오심을 예비하는 자입니다. 강탈수준처럼 보여 자원함으로 한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나귀새끼를 드림으로써 섬겼습니다. 나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섬기는 자입니까? 주님을 위해 내어드릴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아니면 여전히 움켜쥐고 있습니까?

두 번째 부류는 예수님을 열렬하게 환영했던 제자들과 무리들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겉옷을 길에 펴며 나귀를 타고 가시는 예수님을 섬겼습니다. 다른 복음서를 보면 많은 사람들이 종려나무가지를 그 앞에 펼치며 예수님의 입성을 환영하는 일에 열광적으로 동참하였습니다. 제자들은 하나님을 찬양하며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서는 평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외쳤습니다. 제자들은 왕 되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죽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것은 인지하지 못했고, 온 몸으로 막아섰습니다. 결국 주께서 잡히시던 밤에 이들은 모두 도망가 버립니다. 무리들 또한 군중심리에 맥없이 쓰러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들 중에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쳤던 자들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세 번째 부류는 예수님을 연호하며 소리치는 제자들을 보면서 예수님께 이들을 책망하라고 말했던 바리새인들입니다. 그들은 반대하는 무리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생활을 깨뜨리고 들어와 신랄하게 그들은 비판하는 예수님이 싫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이 왕으로 오시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나는 예수님 앞에서 반대를 위한 반대자로 전락되어 있지는 않는지요? 사람들이 하는 일이 못마땅하고, 그로 인해 사람들을 정죄하곤 합니다.

네 번째 부류는 주님이 오시든 말든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성전에서 장사하고 있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지금 바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 날 더 많은 이익을 내는 것이 더 중요하였습니다. 그런 그들을 향하여 주님은 분노하셨습니다.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그들은 대제사장과 결탁하여 백성들에게 제물을 비싸게 팔기도 하고, 성전세를 내기 위해 환전할 때 높은 수수료를 받았기에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하시는 겁니다.

주님의 오심 앞에 여전히 자신이 움켜쥐고 있는 것들을 놓지 못해 여전히 불평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자신을 내려놓고 주를 쫓으라고 하셨는데, 여전히 내려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섯 번째 부류는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죽이려고 꾀하던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방법을 찾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자들입니다.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구속사에 반대편에 서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반대편에 서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자리하고 있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눈물 흘리시며 안타까워 하셨습니다.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그들은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보지 못했습니다.

바리새인들처럼,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처럼,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자들처럼 우리의 눈을 가리고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요?

아니면 나귀새끼를 드린 주인처럼, 잠깐 배반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환영하고 그 분과 함께 하기를 기뻐하는 제자들처럼 예수님 앞에 서시겠습니까?

이것은 우리 자신의 결정으로부터 시작될 수 있습니다.

주님이 왕으로 우리에게 오심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고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께 우리 자신의 것들을 내어드리고, 그 분을 높여드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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