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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동영상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 벧후 1장 1-4절]

by 최수근 2018. 3. 12.

2018년 3월 11일 주일예배설교동영상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 벧후 1장 1-4절]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예수생명교회 최수근 목사

수많은 이들이 여전히 예수님을 믿고 있지 않은데, 내가 예수님을 믿고 있다는 사실이 저는 참 신기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성적인 추론에 의해서 하나님을 믿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저를 부르셨고, 저는 그 분의 부르심에 응답했고, 지금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분들은 아무리 믿으려고 해도 안 믿어진다고 하소연합니다. 불신과 부정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립니다. 지금도 수많은 무신론자들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덧없음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만들어진 신이라는 책을 쓴 리처드 도킨스는 신은 허구에 불과하다고 주장 합니다. 이처럼 21세기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수많은 반기독교적인 이야기들과 환경들이 널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다. 심지어 전혀 믿을 것 같지 않은 분들이 자신의 죄인 됨을 인정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우리 자신의 노력으로만이 아닌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로서, 믿음에 이르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운 결정입니다. 오늘 1절 말씀도 우리의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받은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어요. 그런데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그와 같은 믿음에 수식어가 붙습니다. 보배로운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 특히 무신론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우리의 믿음은 하찮은 것이 아닙니다. 보배로운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를 살리는 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주신 복음의 내용을 믿음으로써 우리에게 구원의 선물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 엄청난 선물 앞에서 우리는 당장 겪는 매우 조그마한 불편함 때문에 우리 자신의 믿음을 소홀하게 여기는 어리석음이 드러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부르심으로부터 시작된 믿음의 길에서 하나님은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하기를 원하십니다. 그 성장은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신적인 지식, 즉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써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아는 만큼 누릴 수 있고, 아는 만큼 성장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앎의 과정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수많은 선물과 영적 자산을 주셨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첫 번째 은혜와 평강의 충만함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2절에서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앎으로써 은혜와 평강이 충만하게 될 것이라 하였습니다.

우리 믿음의 지식이 보다 더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우리는 은혜와 평강의 자리에 거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이루신 놀라운 사실들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자격 없음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하신 은혜를 안다면 우리는 아무리 이 땅의 삶이 버겁고 힘들어도 진정한 샬롬의 자리에 설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영적 지식이 빈곤하니까 염려하게 되고 불안해하고 힘들어하는 것입니다.

3절에서는 우리가 우리를 부르신 예수님을 알아감으로써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은혜로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렇게 영생의 선물을 받은 자로서 하나님을 예배하며, 하나님 나라를 섬기는 자로서 살아가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먼 훗날의 이야기 아닙니다. 지금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가 믿음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이와 같은 부요함을 누리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배로운 믿음인 것입니다.

이와 같은 현재적인 은혜뿐만 아니라 4절에서는 미래에 이루어질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주셨다고 하였습니다. 4절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이 약속은 무엇입니까? 어떤 힘을 발휘합니까?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심으로 이루어주시는 구원의 완성입니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서서 낱낱이 우리를 드러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다시 오심에 대한 약속을 분명히 믿는다면 우리를 지옥의 입구로 이끌어가려고 하는 모든 썩어질 것들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함으로써 지극히 큰 약속의 상속자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썩어질 것을 피함으로써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도록 부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좋은 사람, 선한 사람, 성실한 사람 등과 같은 매우 성품 좋은 사람을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부르심에는 그런 도덕적 우위에 있는 한 인간을 요청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도덕적 인간이라고 해도 결국 모든 인간은 죄인입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로 덧입고 그 분의 거룩한 광휘 가운데 젖어들도록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한 성품에 참여할 자로 우리를 부르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안에 신적인 성품에 다다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신기한 능력’ ‘신의 성품이란 헬라어 표현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즐겨 사용하던 초기 헬라의 철학적 종교적 관용어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당시 그들이 주장했던 것처럼 인간의 내면에 본래부터 신과 같은 거룩한 성품이 있어서 이것을 잘 개발하면 성인이 되고 거스르게 되면 악인이 된다는 사실을 시사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와의 참된 연합을 통해서 성령의 교제로 신의 성품에 참예하게 됨을 시사합니다. 하나님의 성도에 대한 기대와 성도를 부르신 목표는 그가 구원받아 천국 가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데까지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말로서만이 아니라 열매 맺는 제자이어야 하고,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이루실 궁극적인 목표는 온전하고 최종적인 구원에 이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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