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4월 3일 주일예배설교동영상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느니라: 마태복음 6장 21-24절]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요즘 정권교체기에 청와대와 인수위의 자리싸움이 점입가경입니다. 본질이 무엇이겠어요. 과연 나라와 국민을 위한 걸까요? 결국 양쪽 다 요직에 자기 사람을 앉히고자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서로 그 자리에 마음이 가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그냥 마음이 다 보입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저렇게들 싸울 일이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의 마음이 어디에 가 있느냐가 그래서 중요합니다. 그 마음 그대로 행동이 드러나기 때문이죠. 예수님은 그런 인간의 마음을 꿰뚫어 보셨습니다.
마 6:21 “네 보물이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하늘과 땅 중 어느 하나에 보물을 쌓고 있느냐”를 통해서 우리 마음이 어디에 가 있느냐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가장 소중한 보물이 있는 그곳에 마음이 가 있지 않겠습니까?
참 하나님의 자녀라면 마음이 하늘의 보물에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이 땅의 보물에 마음이 가 있으면서 그렇지 않은 척 행동한다면 하나님 앞에서 거짓된 것이고, 하나님은 물론 사람들까지도 속이는 겁니다. 하지만 그건 손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이 아닐까요?
우리 마음이 땅에 보물을 쌓는 일에 가 있다면 우리는 결국 이곳에서 무의미한 바벨탑을 쌓기 위해 동분서주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재물이 쌓여 가면 신이 나고, 내림세로 돌아서거나 허물어지면 낙망하고 낙심합니다. 세상을 다 잃어버린 것처럼 풀이 죽곤 합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가 결국은 맘몬의 소유가 되고, 지배당합니다. 마침내 종속되어버리면 우리는 돈의 진정한 주인과 또 그분이 우리에게 그것을 주신 목적, 그와 함께 재물이 영속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게 될 겁니다.
돈은 결코 그리스도인의 궁극적 목표가 아닙니다. 그러기에 자기를 위한 탐욕적인 재정계획으로 삶이 지배되고 조정 당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대신 우리는 하나님의 목적, 하나님의 목표, 하나님의 계획에 초점을 맞출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영원하고 영속적인 것을 선택할 때 거기에서부터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먼저 우리에게서 점검되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시각의 문제입니다. 지금 어떤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있느냐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제자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마 6장 22-23절에서 눈이 보이는 사람과 눈이 먼 사람을 대조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마 6:22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몸이 밝을 것이요.”
“눈은 몸의 등불”이라고 했습니다. 몸이 하는 거의 모든 일은 보는 능력에 좌우됩니다. 걷고, 뛰고, 일하고, 차를 운전하고, 다양한 행동을 하기 위해선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눈은 이렇게 몸이 손과 발을 통해서 하는 일을 비춰줍니다. 이것은 우리가 어떤 눈을 가졌느냐에 따라 살아가는 길이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반면에 눈이 어두우면 어떻게 될까요? 마 6:23 “눈이 나쁘면 온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
눈이 먼 사람들도 어려움에 대처하여, 비록 보이지 않지만 많은 것을 할 수 있도록 배우고 자기의 장애를 상쇄할 다른 기능들을 계발하여 오히려 더 훌륭하고, 멋진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즘 보면 눈이 성한 야당의 당 대표보다 눈이 먼 국회의원이 더 멋져 보이지 않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은 이런 가능성을 차단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원리에 대한 것을 말씀하시는 겁니다. 눈이 보이는 사람은 빛 가운데서 걸어가지만, 눈이 먼 사람은 어둠 속에 있다는 거예요. 이것을 통해서 말씀하고자 하는 의도는 단지 물리적인 장애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장애를 말씀하고자 하시는 겁니다. 우리의 눈이 건전하고 건강해야 한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 눈이 세속주의, 물질만능주의 등의 어둠에 의해 가리어지지 않도록 경고하시는 겁니다. 맘몬이라는 거짓 신에 의해 눈이 흐려지거나 먼다면, 그래서 탐욕에 의해 영적인 안목을 상실하여 하늘의 가치 의식을 잃어버린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삶 전체가 어둠 속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그로 인해 우리는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볼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점점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멀어질 것입니다. 결국 어둠 속에서 길을 잃고 파멸의 길로 들어갑니다. 예수님 말씀처럼 눈은 우리의 등불이기에 눈이 무엇을 보느냐에 의하여 그 몸이 가는 방향이 결정지어집니다. 세상의 것에 그의 시선을 맞추는 사람은 그의 삶이 세상을 향할 수밖에 없고 반대로 그의 시선이 하늘을 향하는 사람들은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시선이 하나님을 향해야만 우리 마음의 전부가 하나님께 드려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우리의 일부나 반쪽이 아닙니다. 우리의 전부, 내 마음 전체를 원하십니다.
출 20: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신 6:5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하나님은 전심과 일편단심을 말씀하는 겁니다. 다른 곳에 우리의 마음을 빼앗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백성, 자녀들에게서 이렇게 하도록 요청하는 하나님은 바로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어서입니다.
출 34:14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임이니라.”
이런 하나님의 반응에 대해 사람들은 둘 다 잘 할 수 있지 않을까요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반응에 대해 단호하게 둘 사이에 줄타기를 금하셨습니다.
마 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히브리적인 개념에서 ‘미워하다’라는 말은 ‘덜 사랑한다’라는 의미입니다. 누가복음 14장 26절에서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하는 말씀에서도 ‘미워하다’는 의미는 우선순위의 문제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제일 사랑하고 하나님을 위하여 헌신한 삶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기 위해 “미워하다”라는 단어를 사용하셨습니다.
재물이 하나님 아래 있지 않고 하나님 옆에 나란히 있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양자택일의 대상이 될 때 재물은 신격화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경쟁상대로 사탄의 권세를 갖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더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할 수 없습니다. 겉으로는 섬기고 예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음의 우선순위에서 이미 밀려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세상 사람들은 두 주인을 섬길 수 있다고 말합니다. 약간의 교묘함과 지혜와 타협만 있으면 가능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사탄이 주님께 엎드려 경배하라고 유혹한 것도 타협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타협의 유혹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지금도 계속 반복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하지만 우선으로 취하거나 선택하는 것이 바로 맘몬아닙니까? 마음이 양분되면 죄는 그 틈을 타고 들어와 우리 눈을 어둡게 하여 창조주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영속하지 않는 것에 마음을 빼앗기도록 만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행복하고 즐거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이 땅의 많은 것들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죄 때문에 그것의 노예가 되어 버렸습니다. 사람을 섬기도록 작정 되었던 것이 그의 주인이 되어버렸습니다. 비극적인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희미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그러면 다른 모든 것들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세상 가치의 동기들이 우리 마음속에서 역사하기 시작하고, 그것들을 바삐 쫓아다니다가는 결국 지쳐 넘어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다시 영적인 눈을 떠야 합니다. 사탄이 가리었던 것을 벗겨내고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새롭게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가 우리의 참 주인이신 하나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그리하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을 진실하게 섬길 수 없습니다. 그분을 만날 수도 없고, 그분 안에서 누리는 복 있는 삶을 살 수도 없습니다.
재물의 가치는 그 재물을 어디에 쌓아 두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땅에선 일시적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지만 영원하지 않습니다.
반면에 하늘에 보물을 쌓는 것은 그 가치가 영원합니다. 무엇보다도 재물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주어짐을 인정해야합니다. 그래야 세상적인 가치에 함몰되지 않고, 하나님께 우리 마음의 중심을 둘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재물에 마음을 두게 되면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삶의 자세를 잃어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사탄이 그냥 그 기회를 날려버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일상의 삶에서 손상되지 않는 하늘의 보물을 쌓아감으로써 이 땅의 가치들을 넘어 하나님 나라를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주님이 바라시는 제자의 삶입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 걱정이 생깁니다. 하나님만을 의존함으로써 내일의 끊임없는 고통에 빠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입니다. 사람들은 뭔가 자신이 할 것이 없다고 생각되면 불안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공급자이신 하나님만을 신뢰하며 그분께 마음을 드리고, 그분을 섬기며 하나님 나라를 살면 우리 삶에 대해 아버지로서 보살펴주신다고 하나님은 분명하게 약속하셨습니다.
신 11:13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내 명령을 너희가 만일 청종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섬기면”
신 11:14 “여호와께서 너희의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
신 11:15 “또 가축을 위하여 들에 풀이 나게 하시리니 네가 먹고 배부를 것이라”
이것은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씀드렸던 것처럼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마음을 돌이켜 다른 신을 섬긴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신 11:16 “너희는 스스로 삼가라 두렵건대 마음에 미혹하여 돌이켜 다른 신들을 섬기며 그것에게 절하므로”
신 11:17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하늘을 닫아 비를 내리지 아니하여 땅이 소산을 내지 않게 하시므로 너희가 여호와께서 주신 아름다운 땅에서 속히 멸망할까 하노라”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 주변에 만연된 맘모니즘과 번영신학, 기복신앙에서 마음과 시선을 돌이켜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섬기며 하나님 나라의 가치로 살 수 있어야 합니다. 복과 저주가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어느 것을 바라보고 가느냐에 따라 달리 주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 그런데도 주신 분보다 선물을 더 소중히 여기는 것은 최악의 반역입니다. 물질적 풍요를 쫓고 있는 세대는 이 점에 책임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양하기 위해 우리에게 맡기신 것들이 사실상 우리의 신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렇게 맘몬의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억압의 사슬에서 해방되어야 합니다. 그것을 우리는 십자가에서 끊어내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참 제자인가의 문제는 돈에 대한 그들의 태도에 의해 뚜렷이 구별됩니다.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은 그 점에서 참 제자입니까?
“하나님께 마음이 있다”라는 것은 하나님에 대하여 부요한 삶을 살기 위하여 노력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가치에 자신을 맞추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마음에 기쁨을 드리고자 살아가는 것입니다. 마음을 결코 분할 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마음이 분열되어버릴 뿐입니다. 오직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여러분의 마음을 한가지로 지키십시오.
지금 온전히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시선이 순전하게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만 이러저러한 모양으로 재물을 섬기는 것보다 하나님께 더 큰 모욕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너무도 쉽게 많은 이들이 이 죄에 빠져버립니다.
예수님은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건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닙니다. 타협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마음을 확인하고 정하십시오. 모든 것의 참 주인이신 하나님만을 섬기기로 말입니다. 그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우리를 위해 배열하신 세상 안에서 참 자유함을 누리며 오직 하나님을 예배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드리는 참 성도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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