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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동영상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엡 5장 8-14절

by 최수근 2021. 6. 20.

2021년 6월 20일 주일설교동영상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엡 5장 8-14절]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은혜를 모르는 이들에게 사람들은 배은망덕하다는 소리를 합니다. “배은망덕이라는 말은 은덕을 잊고 배반한다는 말입니다. 소위 은혜를 원수로 값는 것입니다. 이게 얼마나 많으면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게 아니다라는 말을 하겠습니까? 사람에게 잘해 줄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이 은혜를 잊어버리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잊는 것뿐만 아니라 배신까지 하는 것은 도대체 뭔가요?

은혜를 잊지 않고 은혜에 감사하며 살 수는 없는 걸까요? 이것은 지금이 있기 이전에 자신이 어떤 상황이었는지를 늘 기억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 상황에서 누군가의 도움이 없었다면 참으로 어떻게 살았을지 막막했을 거라는 사실을 인정할 때 지금의 나를 있게 한 누군가에게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할 때도 동일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와 사망 가운데서 구원해주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어땠을까요? 오늘 에베소서 58절 말씀을 보세요. 5:8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전에는 우리가 어둠이었다고 하였습니다. 깜깜함 그 자체입니다. 많은 이들이 이것부터 인정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정하기 시작하면 그래서 주 안에서 빛이 되었음을 믿으면 그와 같은 위치의 역전을 이루어주신 하나님 은혜를 고마워하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어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고마워하고 감사할 때, 무엇보다도 한 단계 앞으로 더 나아가 우리를 빛 가운데 있게 하신 은혜에 감사하여 빛의 자녀로서 어떻게 사는 것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 아버지의 마음에 합당한 것인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저는 이것이 은혜 안에 있는 이들의 자연스러운 성장의 과정이라고 봅니다.

과거 우리는 어둠이었습니다.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빛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전환입니다. 우리의 힘으로 결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그렇게 빛이 되었다면, 그렇다면 이제 빛인 그리스도인은 어둠의 영역에서 벗어나 빛의 영역에 걸맞은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에베소의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권면합니다.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는 말씀이 빛인 척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빛의 자녀로서 행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해주셨어요.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 안에서 우리는 빛이라 하셨습니다. 우리는 더는 어둠이 아닙니다. 어둠은 예측불허의 삶입니다. 그러나 빛은 밝히 드러나는 것입니다. 숨길 것이 없는 삶이에요.

그러기에 빛의 자녀로서 행함은 결국 열매로 나타나야 거기에 진정성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59절에서 빛의 열매를 말씀합니다. 5:9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빛의 자녀로서의 열매를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착함은 하나님의 성품 가운데 하나입니다. 선함은 관용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너그럽게 받아들이거나 용서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어찌 되었겠습니까? 하나님의 선하심 안에 우리가 살아가듯이 우리도 하나님의 선하심으로 살아서 그 결과가 삶에 열매로 나타나야 합니다.

죄가 무서운 것은 죄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만 바라보게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향하여 무언가를 해 주고 싶어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그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려는 일에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이것은 어둠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끊어내고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선하셨듯이 같은 방식으로 모든 사람에게 선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두 번째 열매는 의로움입니다. 의로움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열매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도덕적인 행동과 법을 잘수행한다고 해서 의로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새로운 의이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 안에서 우리는 늘 주님의 의로 덧입혀져야 하는 것이지요. 그러기에 의로움의 열매는 도덕적이고 율법적인 열매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분 때문에 이루어지는 열매입니다. 내가 그리스도로 채워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결코 의로워질 수 없습니다.

세 번째 열매는 진실함입니다. 빛으로 살아야 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특징은 그 안에 속임이 없는 것입니다. 감추인 것이나 숨긴 것이나 정직하지 못한 것이나 위선적이고 외식적인 것이 없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빛이어야 하기에 사실 그대로이어야 하며 투명하고 명료해야 합니다. “책망 받는 모든 것이 빛으로 나타나나니 나타나는 것마다 빛이니라.” 우리가 빛이 비취는 곳에서는 아무것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이와 같은 빛의 열매가 맺히는 원리가 어떤가요? 열매는 갑자기 열리지 않습니다. 억지로 되는 것도 아니고 임의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성령 안에서 자연스럽게 맺혀지는 열매가 아니라 억지로 인위적으로 조작하여 만들어 행하고 보여줄 수도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이것을 하나님께서 모르시겠습니까? 이건 그리스도인의 참 모습이 아닙니다. 짝퉁이고 가짜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진정한 빛의 열매를 맺습니다. 달리 말해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열매는 나무의 생명의 결실입니다. 열매는 그 나무가 가진 성질에서 나오는 것이지요. 안에서 나오는 참된 본질의 표현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열매는 생명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속성 열매는 없습니다. 있다고 하면 거짓일 뿐입니다. 그 열매를 맺는 데는 언제나 성장과 발전, 성숙하게 하는 요소가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우리 생명의 근원되시는 예수님이 포도나무이시고 나는 가지일 때만 이루어지는 열매입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으로부터 맺혀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상상을 해보세요. 이렇게 빛으로 살아가며 열매 맺는 나로 인해 기뻐하실 주님을 말입니다. 주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셨습니다.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어둠에서 빛으로 옮겨주셨어요. 그래서 오늘 우리가 빛의 자녀답게 살기를 원하시는 거죠. 그렇다면 주가 기뻐하실 일이 무엇인지는 자명합니다. 우리에 대한 주님의 기대가 무엇인지를 알고 그 기대 안에 살아가면 되는 것 아니겠어요?

그러니 바울은 주가 기뻐하실 것이 무엇인지를 매순간 잘 판단하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5:10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세상 사람들은 대게 자신의 기쁨을 위해 살아갑니다. 반면에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동기는 자기를 기쁘게 하는 것이 우선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주님께 기쁘게 할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가 바로 자기를 사랑하사 자기를 위하여 자신을 드리신 주님께 빚을 졌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어둠이 자신의 부끄러운 행위를 가리어 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것이 드러나지 않는 한 어둠 가운데 은밀히 지속적으로 행합니다. 그렇지만 영원히 감취어질 것이 아닙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빛 앞에 다 밝혀질 것입니다. 그것을 알기에 그와 같은 부끄럽고 죄송스러운 자리에 서지 않도록 과거 어둠의 패턴을 끊어내라고 명령하십니다. 스스로 거부할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이 그 일에 거하지 않게 책망하라고 적극적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5:11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의 위대한 특징은 열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열매를 맺도록 지음 받은 존재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는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그것을 책망하라고 하신 겁니다. 책망한다는 것은 사람에게 그리고 그 사람이 처해 있는 전체 상황에 복음의 빛을 던져준다는 의미입니다. 그 사람을 신랄하게 정죄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 사람이 복음이신 그리스도의 빛 앞에서 그의 상황이 드러나도록 해야 합니다. 자신의 영적 자각이 일어나도록 말입니다. 그래야 그가 복음이신 예수 앞에서 자기가 어둠이고, 지금 어둠 가운데서 걸어가고 있고, 그로 인해 하나님과 모든 관계가 끊어져 있고, 그렇게 상황이 계속된다면 그 끝은 멸망이라고 깨닫고 회개하여 주님께 돌이키도록 도와야 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해야만 합니까?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고 거룩하신 아버지 앞에서 참으로 죄송스러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5:12 “그들이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운 것들이라.”

빛과 어둠은 공존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교회의 모든 비극은 바로 이러한 구분이 없어졌다는데 있습니다. 자기가 빛인지 어둠인지 확실하게 알지 못하면 어떻게 빛된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말씀에 귀를 기우릴 수 있겠습니까? 귀담아들을 수 없고, 점점 더 멀어지는 것 아니겠어요.

무엇보다도 우리가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빛으로 말미암아 어둠은 결국 드러나게 됩니다. 빛이신 예수님이 세상 가운데로 오셔서 그렇습니다. 5:13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은 빛으로 말미암아 드러나나니 드러나는 것마다 빛이니라.“

일반적인 경향은 행실의 문제를 전부 자라난 환경, 유전 등과 같은 것의 차원에서 설명하려고 합니다. 그들은 인간에게는 악의 원리가 있음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바로 그 악의 원리가 그들의 모든 판단력을 손상시켰기 때문입니다. 악을 악으로, 죄를 죄로 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안에 악을 향한 성향이 있지만 그들은 그러한 사실을 시인하지 않고, 다른 그럴싸한 것들로 풀어내려고 합니다. 사람을 죽여놓고도 대표적으로 핑계되는 것이 심신미약아닙니까? 법원도 그런 것들을 인정해주고 있어요. 이것은 죄가 죄로 판결되지 않는 비극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되는 순간에, 자신이 이 엄청난 전투와 싸움을 하는 장소임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죠. 자기 속에 싸우고 있는 이러한 세력들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로 그 자리, 어둠의 자리에서 깨어 일어나야 합니다.

5:14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

우리의 과거는 어둠이었지만 지금은 빛의 자녀입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전과 이제를 넘나들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에베소서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이 삶을 멈추라는 권면 앞에 섭니다. 이제 과거와 현재 사이를 반복하는 삶을 멈춥시다. 회심은 바로 잠에서 깨어나고,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며, 어둠에서 그리스도의 빛으로 나아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우리가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배은망덕한 것입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셨습니까? 그렇다면 그리스도 안에서 빛으로 살아갑시다. 그리스도인은 자기가 자기의 마음에 빛을 가진 것을 보여 주는 사람입니다. 그 빛은 어떤 빛입니까? 바로 빛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세상에 빛으로서 우리는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자입니다. 거기에 어떻게 어둠이 드리어질 수 있겠습니까? 빛으로 살아갈 때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의 빛을 세상 어둠 가운데 비출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빛의 자녀로 서 있는 우리를 하나님은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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