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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동영상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능력으로 삽시다: 행 3장 1-16절]

by 최수근 2018. 5. 20.

2018년 5월 20일 주일설교동영상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능력으로 삽시다: 행 3장 1-16절]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최수근

우리는 살아가면서 why? 라는 질문을 던지곤 합니다. why가 나를 이끌어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왜 구원하셨을까요? 나는 왜 부르심에 손들고 나왔는가? 하나님은 예배자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나는 예배자인가? 아니면 이 땅의 작은 기대로 손들고 나왔는가? 그것을 가르는 차이는 무엇일까요?

성전으로 들어가는 많은 문들이 있는데, 그 중에 미문 한쪽 편에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인 한 사람이 여느 날과 같이 사람들에게 구걸을 하기 위해 앉아있었습니다. 주의 성전으로 나아갔지만 그의 목적은 하나님에게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도움을 받는데 있었습니다. 그 날 그의 행복은 얼마의 동전을 받았는가에 달려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여느 날처럼 걸어오는 자들을 바라보면서 최대한 불쌍한 표정으로 구걸을 합니다. 그 때 마침 베드로와 요한이 지나갔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하나님께 기도하기 위해 성전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경건한 유대인들은 하루에 3, 6, 9시에 기도를 합니다. 이 그림에서 우리들의 위치는 어디라고 생각하십니까? 베드로와 요한처럼 성전으로 올라가는 자입니까? 성전 미문에 앉아 있는 자입니까?

베드로와 요한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는 자는 사람을 바라보았습니다. 구걸하는 자는 빵 한 덩어리 살 수 있게 도와주세요라고 외치며 머리를 조아리고 두 손을 모아 내 밀었습니다. 옛날 같았으면 베드로와 요한은 동전 몇 개 던져주고 거지를 지나쳤을 겁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을 경험한 지금은 달랐습니다. 두 사람은 구걸하는 거지를 바라보았습니다. 그에게 줄 수 있는 강력한 것이 그들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보라!”

대게 사람들이 동전 몇 개 던져주고 지나가지 거지에게 귀찮게 자신을 보라고 하진 않습니다. 거지도 굳이 사람들과 눈을 마주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런 거지에게 우리를 보라는 요청은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구걸하던 이가 순간 생각했습니다. “이거 뭔가 굉장한 걸 내게 주려나?” 얼른 베드로와 요한을 바라보았습니다. 하지만 베드로가 곧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말할 때 그는 실망했습니다. 하지만 실망하는 그의 귀를 다시금 솔깃하게 만드는 말이 곧 들려왔습니다.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그래 은과 금도 좋겠지만 당장 필요한 동전 몇 개라도 주겠지작은 기대를 하고 있던 거지에게 베드로가 힘 있게 외쳤습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로 베드로는 거지를 향해 외쳤습니다. 예전에는 감히 외쳐보지 못했던 외침이었습니다. 그는 다리를 못 쓰는 거지에게 고침을 받기 원하느냐고 묻지도 않았습니다. 곧 바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어나라고 선포하였습니다.

베드로의 명령은 나면서부터 한 번도 일어서보지 못한 거지로 하여금 당황하게 만들었습니다. 왜냐하면 거지에게 가장 절실한 소망이기도 했지만 지금까지는 불가능하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일어서라는 말은 그의 믿음을 요청하는 명령이었습니다. 순간 그는 망설임과 동시에 내가 일어설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아랑곳하지 않고 망설이며 주저앉아 있는 거지의 오른손을 붙잡고 힘을 주어 그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거지 또한 베드로 손을 꼭 잡고 그 힘에 의지해 일어서보았습니다.

그 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정말 작은 믿음이었을 텐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앞에 순종했을 때, 평생 걷지 못해 말라버린 그의 발과 발목에 힘이 생겼습니다. 거지는 자기도 모르게 용수철처럼 뛰어올라 두 다리로 섰습니다. 평생 걸을 수 없을 거라고 여겼는데 서 있는 자신을 신기해하며 걸어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치료를 경험한 그는 그 즉시 베드로와 요한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갔습니다. 걸어보기도 하고 뛰기도 하면서 벅찬 가슴으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는 더 이상 성전 문에 앉아 사람들에게 구걸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자신의 기막힌 인생을 탓하며 주저앉아 있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거지는 자기가 바라는 것 이상의 넘치는 은혜, 꿈에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은혜, 진정한 은혜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로 받았기 때문입니다. 거지는 그 날 살아갈 수 있는 돈을 구걸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가 원하는 것을 주지 않고, 그에게 꼭 필요한 것을 주셨습니다. 사람들에게 구걸하며 하루를 연명하던 의존적인 삶을 청산하게 하셨습니다.

회복된 그는 즉시 하나님의 능력을 찬송하는 예배자가 되었습니다. 이 거지는 단지 걷고 뛰며 치료의 기쁨을 만끽하는 것을 넘어 성전에 들어가며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모든 백성들은 예수님 생전에나 볼 수 있었던 기적으로 인해 심히 놀라워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심리적인 놀라움이 아니었습니다. 영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런 백성들에게 베드로가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했을 때 믿는 자가 남자의 수만 오천 명이 되었습니다.

우리 안에서 이와 같이 예수님의 이름의 능력이 회복 될 때 우리는 진정한 예배자로서 하나님께 설 수 있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이루어주시는 하나님의 회복은 일시적인 회복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우리에게 선포될 때 그 이름의 권세로 하나님은 우리들 삶의 근본적인 것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우리 자신의 필요를 채워가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채워졌을 때, 우리의 삶이 변화되고, 우리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기 시작할 때 우리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우리 안에 그 어떤 것으로도 우리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고, 그 어떤 사람에게도 진정한 도움을 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모시면서 우리는 그 이름의 능력을 소유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은 제자들입니다. 그러기에 베드로가 고백했던 것처럼 은과 금은 우리에게 없지만 그 어느 것보다도 귀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그 권세를 소유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권세로 사람들을 살리는 제자로 사시겠습니까? 아니면 그 날 겨우 필요한 자신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애쓰는 성전 문에 앉아 있는 앉은뱅이 거지처럼 사시겠습니까?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의 성령강림은 베드로와 요한, 제자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놓았습니다. 오늘 성령 충만하여 성령님의 이끌림 가운데 살아갈 때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새롭게 소유하게 될 것입니다.

불행한 크리스천이 어떤 이들인지 아십니까? 은과 금도 없고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도 없는 자들입니다. 더 불행한 크리스천은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는 없지만 은과 금을 믿고 큰소리치며 사는 이들입니다. 가장 행복한 크리스천은 은과 금은 없지만 모든 생활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를 풍성하게 누리는 자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이름을 은과 금보다 더 귀중한 자산으로 여기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는 주저앉아 있던 우리의 삶을 회복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16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예수님의 이름의 능력으로 회복되어, 그 권세 그 믿음으로 품고 세상으로 나아가 내 증인이 되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에 순종하는 제자들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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