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 12일 주일예배설교동영상
[그리스도인의 자기기만: 마 7장 21-23절]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보통 거짓말에서 속이는 사람과 속는 사람이 같을 수 없습니다. 속이는 사람은 진실을 알고 속는 사람은 몰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기기만에서 속이는 사람과 속는 사람은 똑같은 인물입니다.
우리 두뇌는 우리를 속여 사실이 아닌 것을 믿게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자기 능력에 대한 평가를 부풀릴 수 있도록 해, 다른 사람들보다 똑똑하다고 믿게 할 수 있고, 다른 사람들에 대한 우리 행동의 영향을 간과하게 만들어 자기가 매우 도덕적으로 행동하고 있다고 믿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자기기만은 자기 진실성에 대해 자신을 속여, 현실과는 다른 모습의 확신을 하게 합니다.
이렇게 자기기만에서 생겨난 잘못된 자신에 대한 망상은 사람들을 그릇된 길로 인도할 것입니다. 이런 위험성으로 인해 우리는 자기기만의 늪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스스로 속고 있는데, 자신의 현재 모습을 어떻게 제대로 읽어낼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자기 자신에 대해 조금도 의심을 하지 않습니다. 지금 너무도 잘하고 있다고 안심하고 확신합니다.
이런 자기기만은 우리 신앙생활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거짓 교사, 거짓 목자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이들 못지않게 자기기만과 자기 미혹에 빠진 그리스도인들의 문제를 직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좁은 길, 좁은 문으로 가는 것을 방해하고 어렵게 만드는 이들은 거짓 교사들뿐만 아닙니다. 사람들의 심각한 자기기만이 또한 신앙의 여정을 아주 힘들게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기만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지금 큰길에 서 있음에도 좁은 길에 서 있는 것처럼 믿고 자신의 신앙적 우월함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신앙 공동체 안에서 좀 과하거나 요란스럽게 말하고 행동하는 이들에게서 이런 경향이 도드라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과한 행동을 통해서 실상은 그렇지 못한 자신을 감추고자 하기 때문이죠. 그러면서 스스로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자기기만을 하나님께서 속고 넘어가시겠어요? 우리를 속속들이 아시는 분이 그렇게 눈감고 넘어가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자기기만의 늪에 빠져 있음에도 오히려 자신들의 정당성을 하나님 앞에서 도모하려는 이들에게 단호하게 경고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경고는 실은 소름 끼치는 일입니다.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일 수 있어서입니다.
21절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사람들이 예수님의 주되심을 믿고 고백하였습니다. 그것도 아주 열렬하게 고백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저들을 거부하셨습니다. 이들이 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어요. 대단한 환영을 기대했을 텐데 당혹스러운 일입니다. 지금 이들에게서 무엇이 잘못된 걸까요? 이들의 고백만으로는 도무지 잘못된 것이 없어 보이는데 말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이 보실 때 모든 것이 잘못되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말로 고백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주여 주여”라고 부르지 않는 사람들은 결국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바울은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구원의 출발점인 것은 맞습니다.
롬 10:9-10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그러나 예수님은 단순히 말로만 하는 신앙 고백이라면, 그래서 단지 “주여! 주여!” 외치는 것이라면 매우 위험이 크다고 보신 겁니다. 그건 실체 없는 고백이어서입니다. 예수님은 말하는 것을 말로써만 그치지 않고 행하고 있는지, 말로 하는 신앙 고백에 믿음의 순종이 수반되고 있는 지를 통해 우리의 진정성을 담보해야 함을 말씀하여주고자 하시는 겁니다.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모두 주를 열렬히 찾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앞에서 소리높여 주의 이름을 부르는데 사람들이 옳게 보지 않겠습니까? 경건하고 거룩한 이들이라고 말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모두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런 그들을 향해 주님은 강력하게 경고하셨습니다.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결국 우리가 주를 고백하는 신앙 고백의 진정성은 믿음의 순종으로 인해 드러나는 것을 가지고 확증되는 것입니다. 신앙 고백을 화려한 수사 어구를 동원해 말로썬 참으로 훌륭하고 아름답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그들의 삶과 관련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주 되심을 고백하였다면 그 분의 주권에 복종하거나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로서 극상품의 포도 맺기를 기대하시는 포도원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대로 좋은 열매를 맺는 자만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가짜와 진짜를 분별할 수 있다는 거죠.
분명 예수님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간다고 하셨지만, 자기기만에 사로잡힌 자들은 주님의 그런 평가에 억울해하며 달리 말합니다.
22절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이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들이미는 것은 그들이 행했던 일들에 대해서입니다. 행했던 일들로 자신의 신앙 고백을 속이려고 합니다. 이것은 말로 믿지 못한다면 우리가 행했던 이 일들을, 이 엄청난 일들을 좀 봐주시라는 하소연 아닐까요?
저들의 행한 일들이 대단합니다.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했습니다. 선지자와 같이 가르치는 역할을 했다는 거죠. 또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냈습니다. 아무나 귀신을 쫓아낼 수 없습니다. 대단한 일이지요.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였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이 보실 때 이것들은 자기를 위한 일이었던 겁니다. 전혀 그들의 행함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길과는 멀었습니다. 자기가 그 영광을 다 받았겠지요?
그런 연유로 예수님은 이들의 활약에 관한 주장에 대해서 아니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한 것,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낸 것,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있는 절대 자격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행동이 중요하지만, 행동만으로 하나님 나라를 유업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주장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제자들에게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마 5:20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무엇을 했다가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는가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좁은 문, 좁은 길에 서 있느냐입니다.
훌륭하게 보이는 사역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 삶에 나타난 열매가 어떤 열매인가가 하나님의 판단 기준입니다. 매우 신앙적으로 사려 깊어 보이는 언어와 사역은 멋져 보이지만, 능력이 넘쳐 보이지만, 그 가운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가 없다면 그 사역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이처럼 예수님을 주라고 부르고, 신성을 고백하면서도 예수님과 진정한 인격적인 관계를 맺지 않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얼마나 되리라고 생각하십니까? 극히 소수의 문제일까요? 예수님이 이 문제를 지적하신 것은 심각한 수준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자기기만에 빠져 자신의 의가 참된 의라고 여기고 있는 자들을 향해 말씀하십니다. 23절 “그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주님은 그들을 외면하셨습니다. 주님을 알고 믿고 있다고 하였지만, 주님의 이름으로 놀라운 이적들을 베풀었다고 했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나는 안다고 우기고 있는데, 주님은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하셔요. 이 말은 예수님이 그들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보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여기에서 안다는 말은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고, 특별한 관계가 있다는 뜻입니다. 자기기만에서 비롯된 고백이나 행동은 상호 간에 사귐이 배제된 것입니다.
게다가 한술 더 떠서 우리는 옳은 일을 행하고 있다고 철석같이 믿고 행했는데, 예수님은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라고 하셨어요. 우리의 힘을 빠지게 하는 주님의 말씀처럼 들립니다.
사람들은 사역에서 주의 이름으로 권능을 행했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매일 행하는 일들은 선하지 않고 악했던 겁니다. 그런 사람들이 입술에 그리스도의 이름을 올리는 것이 무슨 가치가 있겠습니까? 그들에게 엄중하게 경고하셨고, 예수님에게서 떠나가라고 외치셨습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 입술의 고백이나 열심히나 열정이나 행위를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속 사람 곧 마음을 원하고 있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주님은 “우리”를 원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영적 분별이 필요한 때를 살고 있습니다. 자기기만에 빠져 스스로 의인이라고 여기며 살 것인지 아니면 성령 안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믿음의 순종으로 좁은 문, 좁은 길에 서 있을 것인가를 분별하고 그 길을 결정 해야 합니다. 중간은 없습니다. 좁은 길이냐 큰길이냐 두 갈래 길 앞에 있습니다. 우리는 너무도 사탄에게 많이 속아 넘어갑니다. 순간순간 영적으로 분별하지 못하면 우리는 쉽게 휘말리고 말 것입니다. 어느 날 깨어보면 생명에 이르는 좁은 길이 아닌 사망에 이르는 넓은 길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때조차도 늦지 않습니다. 자기기만의 늪에서 회개하고 나와 좁은 문이신 주님께로 즉시 돌이키면 됩니다.
그러나 그러기에 앞서 무엇보다도 지금 우리를 헛된 길로, 사망의 길로 이끌어가는 거짓된 자들로부터, 그들의 거짓된 주장들로부터, 그리고 나아가 자기기만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지켜가는 일은 너무도 중요한 일입니다.
이를 위해 성령님께서 우리가 밝히 깨닫도록 분별의 빛을 비추어주시도록 기도하십시오. 성령님의 도우심 없이 우리는 그 어떤 영적 분별도 할 수 없습니다. 성령의 도우심 가운데 말씀이 보이고, 말씀의 잣대로 분별할 때 우리는 참과 진리, 거짓을 정확하게 볼 수 있습니다. 영적인 열정과 육적인 열심이나 열광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것인지, 자기 자신들을 기쁘게 하려 하는 것이지를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이죠.
오늘 이 땅에 교회 안에는 옳은 것과 그른 것이 혼재되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개개인의 신앙에도 옳은 것과 그릇 된 것이 섞여 있습니다. 그러나 염려하지 마십시오. 거짓과 자기기만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주님 앞에서 밝히 드러나고 말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서 온전한 자신의 모습을 위해 매 순간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을 때, 틈을 보일 때 사탄은 우리에게 다가와 우리를 최면에 빠지도록 만들 것입니다. 지금 행하고 있는 것이 전혀 주님의 뜻이 아님에도 주님이 가장 원하신 것으로 믿도록 말입니다. 그로 인해 우리의 길을 제대로 볼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불법의 길을 걸어가는 거죠.
이 최악의 상황에 빠지지 않도록 우리 신앙을 점검합시다. 우리의 사역을 새롭게 합시다. 우리의 고백이 주님을 향한 실체적인 신앙 고백이 되고 있는지, 예수님과의 관계는 온전한지, 우리의 활동이 무엇을 향하고 있는지, 진정 하나님의 뜻에 따라가고 있는지 성령 안에서 보게 된다면 우리는 우리의 길을 온전하게 세워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푯대는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 분을 더욱 더 알아가고 그 분으로 채워지는 것이 우리의 복입니다. 만일 무엇인가가 이 자리를 대신한다면 우리는 잘못된 길에 서 있는 것입니다.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이 무서운 진리에 대면하면서 우리는 오늘도 여전히 믿음의 순종으로 우리에게 진지함을 보여줄 것을 요청하하시는 주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우리 주님과 함께 우리 신앙의 길을 걸어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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