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 19일 주일예배 설교동영상
[들음과 행함: 마 7장 24-29절]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과거에 비해 다양한 말씀의 통로를 접하고 살아갑니다. 기본적으로 공적 예배를 통해서, 그리고 각종 방송매체와 스마트폰 등을 통해서 매일 같이 설교를 들을 수 있습니다. 말씀이 넘쳐나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말씀을 듣는 이들의 경청에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피드백의 문제입니다. 경청의 완성은 피드백으로 이루어집니다. 말씀을 듣는 여러분의 피드백은 어떤 것입니까? “오늘 말씀이 참 좋았어.” “은혜로웠어.” 말로 하는 반응 말고, 이 말씀에 응답하여 삶에서 실천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긴 시간 예수님의 산상수훈을 경청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분명하게 선포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들은 것으로 만족하지 말아야 합니다. 산상수훈을 통해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좁은 문, 좁은 길로 가라 하셨습니다. 세상의 시각으로 볼 땐 이 길이 쉬운 길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이 그 길로 가라 하신 것은 오직 그 길만이 우리를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좁은 문, 좁은 길로 가라고 하시는 말씀에 사람들은 두 가지 반응을 보였습니다. 행하는 자와 행하지 않는 자입니다.
이렇게 듣고 행한 자와 행하지 않은 자에게 예수님은 상반된 결과를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24절에서 예수님은 듣고 행하는 자에 대해 지혜로운 사람 같다고 하셨어요.
마 7: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건축의 공정을 생각해보세요. 집을 지으려면 먼저 터를 다지고 기초공사를 합니다. 기초를 잘 다져야 그다음이 제대로 진행됩니다. 이 과정을 누가복음 6장 48절에서는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과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을 이렇게 땅을 파고 집의 기초를 반석 위에 놓는 과정과 연결을 시키셨습니다. 이것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들어서 안다고 하지만 말씀이 삶의 자리에서 전혀 행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실체가 없는 신앙입니다. 예수님은 건축에서 땅을 파고 기초를 놓는 비유를 통해 피상적인 신앙이 얼마나 부실한 것인지를 보여주시고, 그와 함께 내면으로부터 진실하게 우러나오는 믿음의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왜냐하면 참 제자라면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메시지가 자기들의 삶을 변화시키도록 마음 문을 열고, 그 말씀을 실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거짓말하는 자입니다. 요일 2:4 “그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그러나 예수님과 연합한 자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분의 삶을 따라가는 거죠. 제자이니까요. 요일 2:6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참 제자는 거짓되고 피상적인 자가 아닙니다. 말씀을 듣고 응답하여 들은 말씀을 따라 행하는 자입니다. 말씀을 듣고 실천적으로 응답함으로써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자신의 집을 세워가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말씀대로 살기가 어렵다고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을 듣고 그대로 행한다는 것은 세상 적으로 볼 때 어리석은 일이고, 손해 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을 듣고 지켜 행하지 않는 자가 오히려 지혜롭지 못한 자라고 하셨습니다. 왜 지혜롭지 못한 자입니까? 마 7: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이 말씀도 눅 6장 49절에서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주추 없이 흙 위에 집 지은 사람과 같으니”라고 더 자세하게 이야기하고 있어요. 기초공사를 해야 하는 건축공정이 귀찮아 당연히 있어야 할 기초를 놓지 않고 그 냥 흙 위에 집을 지은 자는 참으로 어리석은 자입니다. 하지만 날림공사를 하면서 자기는 쉽게 잘한다고 지혜로운 일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이 지점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지혜는 세상적인 지혜와 구별됩니다. 집을 어떻게 빨리 지었다가 아니라, 시작과 과정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지혜로운 자인가 아닌가의 문제는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느냐 듣지 않느냐 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들이 듣는 것을 삶의 영역에서 행하느냐 행하지 않느냐 하는 데 있습니다.
이 둘 차이는 우리가 고백하는 예수님의 주권이 우리 삶의 주요한 실체가 되느냐 아니면 되지 않느냐에 따라 드러납니다. 행하는 자는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 위에 집을 지어가지만, 행하지 않는 자들은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어리석은 사람인 것입니다. 크리소스톰은 이렇게 모래 위에 집을 지으려 하는 사람을 심한 표현을 써서 “뇌가 없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정말 아무 생각이 없는 자가 아니고선 모래 위에 그냥 집을 지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두 집은 그 형태와 재료와 기술에 있어서는 같습니다. 다만 집을 지탱하고 있는 기초에서 차이가 납니다. 전자는 기초를 반석 위에 두었지만, 후자는 모래 위에 두었습니다. 이것을 보면 참 제자나 거짓 제자나 겉으로 드러나는 것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이 차이가 언제 드러나게 됩니까? 진정한 그리스도인과 유사 그리스도인이 평상시에는 드러나지 않습니다.
온전하게 세워져 있는지는 두 가지 상황에서 확인될 수 있습니다. 삶이 여러 가지 시험으로 흔들릴 때와 종말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때입니다. 이런 상황을 예수님은 자연적인 재해가 닥친 상황으로 그려주셨습니다. 이건 매머드급 자연재해, 허리케인 수준입니다. 마 7: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폭우를 동반한 강력한 태풍이라고 해도 건축물의 기초가 든든한 반석 위에 지어졌다면 집이 폭삭 무너져 내리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모래 위에 지은 집은 그 말로가 처참합니다. 27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예수님께서 마 7장 25절과 27절에서 묘사하신 말씀은 우리 생의 충실성을 시험하는 하나님의 시험이 얼마나 격렬한지를 보여줍니다. 이뿐이겠습니까? 모든 인간의 생의 끝에는 우리 믿음의 견실성을 시험하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우리 믿음의 진위는 이때 밝히 드러날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지켜 행함으로 하나님 나라의 의로 살아온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을 통과합니다. 우리의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믿음 안에서 순종한 우리의 삶을 지지해주시고, 보증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모질게 시험이 닥쳐오고, 세상이 거칠게 우리를 유혹하며 흔들기 시작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깊이 기초를 내리지 못한 우리 신앙은 맥없이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 대해 종교개혁자 칼뱅은 이야기했습니다. “참된 경건은 시련을 당할 때 비로소 가장된 경건과 완전히 구별된다.”
그러나 우리 신앙의 기초가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 위에 세워지면 그 어떤 고난의 환경 속에서도 상처를 입고, 잠시 흔들릴 순 있어도 무너져 내리지 않습니다. 왜 무너지지 않습니까? 그리스도 위에 세워진 자들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기 때문입니다. 벧전 1:5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예수님께서 분명하게 경고를 하셨음에도 모래 위에 집을 짓는 비극은 교회 안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사람들은 좀 어렵다 싶으면 그건 할 수 없다고 단정 짓습니다. 게다가 사람들은 듣기는 듣데, 선택적으로 듣습니다. 자신의 취향에 맞고, 자신의 이익에 맞는 것만을 선별하여 듣고 행동하곤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보실 때 듣고 행하는 자가 아닙니다. 불행한 것은 이런 이들이 자신이 말씀을 듣고 지켜 행함으로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지혜로운 자라고 착각한다는 데 있습니다. 이건 자기기만입니다.
집은 견고한 기초 위에 세워져야 한다는 데에 동의하는 사람들조차도 여전히 나가서는 모래 위에 자신의 삶을 짓고 있습니다. 이렇듯 사람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지적으로만 이해하고 순종은 좀 보류하려고 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결국 우리는 끝없이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어리석은 자가 될 수밖에 없고, 뻔한 결과 앞에 좌절하고 낙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일이 반복된다는 점입니다.
산상수훈을 들은 무리의 반응을 28절에서 무엇이라고 하였습니까?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니” 사람들의 눈에 선하도록 말씀을 들려주신 예수님을 보면서 놀라워했습니다. 예수님에게서 지금까지는 결코 느낄 수 없었던 말씀의 권위를 느꼈기 때문입니다. 29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그러나 이런 탄성과 놀람은 수용이나 복종과 같은 것이 아닙니다. 단순히 놀라워함은 믿음의 의탁과 같지 않습니다. 은혜를 받았다고 하지만 그것으로 그치는 경우가 참으로 많지 않습니까? 예수님의 초대를 받아들이고 하나님 나라로 들어올 때만이 예수님의 제자가 됩니다. 우리는 감정적인 반응만을 보일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길을 따르기 위해서 모든 것을 버려둔 제자들처럼 행동해야 합니다. 그것이 참믿음입니다. 그 외의 것은 단지 자기기만일 뿐입니다.
미련하고 어리석은 자기기만의 길에서 벗어나, 지혜로운 길로 가고자 한다면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수용되고 순종함으로 그 말씀이 실천되어야만 합니다. 물론 그 말씀을 우리가 어찌 다 실행할 수 있습니까? 산상수훈의 말씀 앞에 서면 우리는 매우 작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을 인정하고, 자기 의가 아닌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그렇게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우리 삶을 건축해 갈 때 우리의 삶이 예수님 때문에 온전하게 서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나의 의지로 세운 것들은 하나님 앞에서 모두 허무하게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고전 3:12-13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우리 의로 세운 것은 하나님 심판의 불 앞에 모두 소멸하고 말 것입니다.
우리가 항상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메인 건축자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시편 127:1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삶이 말씀을 듣고 지켜 행함으로써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 위에 세워져 가야 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진정한 건축자가 하나님이시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밀쳐내고 자기 멋대로 생의 집을 세워가는 일은 쉽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시험대 앞에서 맥없이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그래도 굳이 그 길을 가겠다고 고집을 피우시겠습니까?
오직 말씀에 거하는 삶, 하나님께 위탁한 삶이 될 때 우리 인생은 거룩하게, 건강하게, 아름답게 세워 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최선의 것으로 보여주신 그 길로 달려갈 때 우리는 절대 무너지지 않는 “반석 위에” 세워진 인생을 지어갈 수 있습니다. 진리가 얼마나 분명합니까? 하지만 그렇게 성경을 통해 들어도 늘 갈등한다는데 우리의 약함이 있습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너는 굳건한 반석인 나에게 너의 생명을 세울 것이냐 아니면 단지 네 삶의 즐거운 편리로 인해 다가올 폭풍우 앞에 무기력하게 무너질 모래 위에 너의 생명을 세울 것이냐?” 이 말씀에 어떻게 응답하느냐에 따라 우리는 지혜로운 자가 될 수도 있고, 어리석은 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행하기를 선택해야 할까요? 아니면 그냥 그것을 읽고, 듣고, 참 좋은 말씀이라고 생각하고 단지 감동하고 은혜받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까요? 우리는 분명 주님의 의지를 보았습니다. 그러기에 지식을 채워가기 위한 말씀의 들음이 아니라 순종하여 행하기 위한 들음이 되어야 합니다. 참 제자도는 자기의 삶에서 열매로 드러내어야만 합니다. 말뿐이라면 스스로 속는 것 아닐까요? 약 1:22 “너희는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지난 시간 어떤 선택의 자리에 있었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을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 위에 집을 짓는 지혜로운 사람으로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에 지금 순종하십시오. 성령께서 여러분을 도와 반석 위에 여러분의 인생을 세워가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그렇게 세워진 집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집을 든든하게 지지해주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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