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27일 주일예배설교동영상
[우리가 보물을 쌓아야 할 곳은? 마 6장 19-21절]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사람들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할까요? 지난해 미국의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가 한국을 비롯해 17개 선진국 성인 1만 9천 명을 대상으로 ‘자신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가치는 무엇인지’를 물어본 결과, 응답자들이 첫째로 꼽은 가치는 가족(38%)이었습니다. 이어 직업(25%), 물질적 풍요(19%)가 2, 3위를 차지했어요. 그러나 한국인은 조사 대상국 중 유일하게 물질적 풍요를 삶의 가장 큰 의미로 꼽았습니다. 가족은 물질적 풍요, 건강에 이어 3위에 그쳤습니다.
퓨리서치센터의 조사를 보면 한국인의 각박한 삶이 드러납니다. 외국인들은 직업, 친구 관계, 교육과 배움, 자연을 즐기는 삶 같은 것들을 중요한 요소로 꼽았습니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그런 응답지에 거의 손도 대지 않았습니다. 안타깝게도 이와 같은 한국 사회의 배금주의적, 생존주의적, 물질주의적 경향은 다른 연구와 조사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듯 ‘넉넉하고 푸근한 마음’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대단히 치열하고 스트레스 가득한 분위기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린 지금 자발적 피로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겁니다. 거기에다가 사회 분위기는 불평등, 불공정하다고 여기고 있으니 이것이 갈수록 더 심화되는 것은 아닐까요?
이런 한국의 상황은 고스란히 기독교를 비롯한 종교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대한민국의 주요 종교의 등록 신자를 합치면 대한민국 전체 인구보다 클 정도로 종교가 자리하고 있는 나라인데, 한국인 중 삶의 의미의 원천으로 종교를 꼽은 사람은 1%뿐이라는 사실입니다. 교회, 성당, 절을 열심히 다니긴 해도 설문조사 용지를 받아들고 나면, 신앙보다 돈이 더 중요하다고 응답한다는 소리 아니겠어요. 종교가 물질적 풍요의 수단으로 전락한 것이 아닐까요?
며칠 전 엘리베이터 바닥에 전도지 한 장이 찢어진 채 떨어져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예수님 믿으면 복을 받습니다. 복을 받고 싶으신 분들은 예수님을 믿으세요.”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복을 받는다, 정말 듣기 좋은 이야기입니다. 물론 여기에서 복은 물질적 풍요와 연결됩니다. 물질적 풍요를 하나님의 축복과 동일시하는 것이 맞을까요? 이건 소위 번영신학의 논리입니다. 재정적 축복이나 물질적 풍성함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 번영신학의 논리로 볼 때 가난하면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지 못한 겁니다. 번영이 없으면 은혜도 없다는 것 아닙니까?
이런 주장이 먹히는 것은 기독교 신앙에 물질주의, 세속주의가 심각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입니다. 세속주의적인 물질관이 기독교 신앙을 심각하게 왜곡시켜버렸습니다. 세속적 물질관이 팽배한 사회는 물질 제일주의, 황금만능주의에 사로잡혀 살아가게 됩니다. 사람들이 추구하는 가치는 그냥 돈입니다. 안타깝게도 그렇게 물질적 풍요를 추구하는 가치는 인간을 파멸로 몰아갈 뿐입니다. 물질적 특성상 끊임없이 달려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한국 사회는 끝없는 늪에서 사람들이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이 비극적인 삶에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빠져나와야 합니다. 세상이 추구하는 가치에 ‘아니오’라고 외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그 늪에서 나올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이 늪에서 벗어나는 길이 무엇인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의 물질주의, 배금주의와는 다르게 살라는 것입니다.
마 6:19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세속적인 가치관을 벗어나려면 지금까지 다른 이들처럼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는 일을 멈추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이 금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건 저축하지 말라, 무소유라 살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성경 어디에서도 사유 재산을 금하고 있지 않습니다. 저축도 그리스도인들에게 금지되어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경은 겨울을 대비하는 개미의 지혜를 배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잠 6:6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그가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잠 6:8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
예수님이 금하시는 것은 “너희를 위하여”라고 했는데, 다분히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축적입니다. 욕심을 채우기 위해 이 땅의 것에 집착하여 자신의 재능, 시간, 재물, 노력을 쏟아부어 소위 자기를 위한 바벨탑을 쌓아가는 것을 경계하는 말씀입니다. 인간의 탐욕은 한이 없기에 이 땅의 것에 집착하는 한 하늘을 바라볼 수 없고,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실현할 수 없습니다. 이것을 막기 위해 세상의 것들을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가치들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은 재물 자체가 악하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재물은 적절한 사용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고 우리의 삶과 이웃의 유익을 도모하는 수단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재물의 목적을 넘어서는 순간 그래서 재물 자체가 목적이 된다면 우리는 맘몬을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악입니다.
딤전 6: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이것을 막는 길은 그리스도인이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는 일을 멈추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왜 이토록 자발적 피로사회가 되었습니까? 그건 한국 사회가 돈, 아파트, 안정적인 직장 등 매우 한정된 것을 바라보고 어떻게든 그것을 성취하려고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치열한 전쟁에서 이 사회는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로 나뉘어 불평등, 불공정 사회로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가진 것에 따라 계급이 달라진다고 생각하니까 이렇게 치열한 것 아니겠습니까? 이건 다 이룬 것처럼 보이는 상층, 최상층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에게도 불안감은 있습니다. 조금만 삐끗하면 사회적 경제적 위치가 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래서 더 취하려고 하는 겁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렇게 현세에 집착하여 자기를 위해 쌓는 보물은 영원하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자기를 위해 보물을 창고에 잔뜩 쌓아놓아도 안전하지 않은 거예요. 좀 벌레, 쥐들이 다 갉아먹습니다. 녹이 슬고 부식이 됩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의 가옥들은 진흙 벽돌을 사용하여 지어졌기 때문에 도둑이 마음만 먹으면 벽을 쉽게 허물고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지키려고 애써도 소용이 없습니다. 좀이 슬고, 녹슬고, 도둑질당하고, 결국 소용없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신 것입니다.
반면에 오늘날은 표면적으로는 잘 지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선 보안이 굉장합니다. 은행 금고가 돈과 귀중품을 잘 관리해주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집안 깊숙이 숨겨 놓은 개인금고 속에 빳빳한 5만 원짜리 지폐 다발과 금괴로 채워 잘 보관하고 있습니다. 부동산도 있고, 적절하게 나눠서 투자해 놓은 주식과 펀드들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준비해놓은 부가 영원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토록 잘 짜진 포트폴리오도 어느 순간 다 사라질 수 있습니다. 영원하지 않습니다. 부동산도 거품 아닙니까? 사람들의 지갑에도 구멍이 뚫려 있습니다. 영끌 해서 부동산, 주식, 비트코인 등에 투자해서 결국은 평생 맘몬의 노예로 살아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점점 사람들의 마음은 허망해질 것입니다. 잠 23:5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스스로 날개를 내어 하늘을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
설령 재물을 모으고, 누릴 것이 많아졌다 해도 또 불행한 일은 그것을 누릴 우리가 이곳에서 영원히 살 수 없다는 점입니다. 더군다나 세상을 떠날 때 무엇을 가져갈 수 있습니까? 하나도 없습니다.
딤전 6:7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신과 자녀들을 위한다고 이 땅에 보물을 쌓으려는 노력을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소유물과 부를 통하여 이 세상에서 자기의 삶을 보장하며 편안하게 구축하려는 욕망입니다. 게다가 우리 사회가 얼마를 소유했느냐가 그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맘몬에 몰입하다 보면 우리의 삶이 어찌 되겠습니까? 더 높이, 더 많이 외치다가 너무나도 소중한 많은 가치를 잃어버리는 것은 아닐까요? 최고의 학교, 최고의 대학에 가면 최고의 일자리를 얻으리라 생각하면서 우리 아이들을 닦달한 끝에 아이들의 삶의 만족도는 OECD 국가 중에서 단연 꼴찌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가는 일을 멈춤으로써 어떻게 삶을 사는 것이 아름다운 것인가 하는 다른 기준, 다른 가치를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맘몬에게 더는 우리의 마음을 빼앗기지 말라는 겁니다.
마 6:21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마음이 재물에 가 있는 한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결코 드릴 수 없습니다. 절제하며 자족하며 감사하며 살 수 없습니다. 전 5:10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풍요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하지 아니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큰 문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면서도 거짓되게 살아가게 만드는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땅에 우리를 위하여 보물을 쌓는 일을 멈추고, 이젠 우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야 합니다. 이것이 비극적인 삶을 새롭고 놀라운 은혜의 삶으로 만들어가는 길입니다.
20절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 하느니라.”
어떻게 우리가 하늘에 보물을 쌓아 둘 수 있습니까? 물론 이것은 물리적인 축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영원토록 영향력이 지속되는 무언가를 이 땅에서 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땅에서 어떤 선행을 함으로써 하늘에 꺼내쓸 수 있는 일종의 계정을 쌓는 것처럼, 공로의 교리나 공로라는 보물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생각은 은혜의 복음이 아닙니다. 이것을 영속하는 가치개념으로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는 것은 자기만을 위해 현세에 집착하지 말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집중하라는 메시지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에 대해 부요하게 사는 삶이며,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순종의 삶은 썩거나 파괴되거나 도둑맞을 가능성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기억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늘에 쌓아가야 할 순종, 하나님께 무엇을 순종하는 삶입니까? 우리에게 주신 삶을, 즉 재능, 지위, 지식, 재정을 하나님 나라를 위해 드리는 것입니다. 맘몬의 노예로 살지 않고, 정직하고 본이 되도록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들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가장 분명하게 볼 수 있는 것이 재정의 영역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부자 청년에게도 이 영역을 깨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막 10:21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러나 이것은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니었던 거죠.
이렇게 예수님은 하늘에 보화를 쌓아 두는 행위가 곧 자신의 재물을 가지고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행위임을 직접적으로 가르치셨습니다. 눅 12:33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곧 하늘에 둔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둑도 가까이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며 동시에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살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자기의 편리와 비교 경쟁과 재산 가치 이런 것에 중독되어서 자신도 모르게 공동체성을 잃어버리고 사는 것은 아닌지 깊이 생각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에 살 수 있는 이 큰 특권을 주신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은사를 주셨으므로, 어떤 의미에서는 이 모든 것이 나의 것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것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이 땅에 빛과 소금과 같은 작은 역할을 한다면 참으로 하나님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삶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이 진정 하나님과 함께 하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우리는 참으로 값진 영생의 선물을 얻습니다.
갈 6:8 “자기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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