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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동영상

주기도문(I): 마태복음 6장 9-15절

by 최수근 2022. 3. 13.

2022년 3월 13일 주일예배설교동영상

[주기도문(I): 마태복음 6장 9-15절]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관계에 있어 소통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이를 통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을 때 관계가 유연해지고 깊어지지 않겠습니까? 신앙생활에서도 하나님과의 소통은 무엇보다도 최우선적 순위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도라는 소통의 통로를 열어주셨습니다. 모든 성도가 제사장으로 하나님 앞에 서서 기도함으로 영적인 소통을 이루게 해주셨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특권이며 은혜입니다. 우리는 이 놀라운 기도의 선물을 적극적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영적 소통으로서 기도에 중요한 것은 바로 진정성입니다. 의미 없이 오가는 대화만으로는 친밀감이 깊어질 수 없습니다. 깊어지려고 하면 거짓 없는 속마음이 전해질 수 있어야 하죠. 말이 화려하고, 많은 말을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기도가 그런 바리새인의 위선적인 기도와 이교도들의 기계적이고 비인격적인 기도와는 달라야 함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하늘 아버지와의 참된 친교의 자리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도의 영원한 모범이 된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세상 누구보다도 아버지 하나님과 친밀함으로 소통하셨던 그분의 언어와 마음, 관점을 배움으로써 우리 기도에 진지함과 진정성이 더해져 아버지와의 소통을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자 하신 겁니다. 그런 점에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한 것은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대로 똑같이 기도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 정신과 내용과 순서상의 방법에 대한 모범적인 제안을 하신 것입니다. 그 점에서 주기도문은 우리가 지속해야 할 기도의 틀입니다.

물론 주기도문을 외워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많은 이들이 해왔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외어서 생각 없이 반복적으로 기도한다고 하면 그건 인격적이신 하나님과 소통하는 자리는 아니라고 봅니다. 기도는 나의 독백이 아닙니다. 나의 간구함을 들어주시는 분이 내 앞에 계시고 그분께 나의 진솔한 언어로 기도를 채워가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이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이루어갈 수 있습니다.

주기도문의 모든 내용은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기도의 첫머리를 아버지를 향한 외침으로 채우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예수님은 우리의 기도를 받으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 되심을 기도의 첫머리에 고백하게 하셨습니다. 물론 구약 전통에서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 32:6 “그는 네 아버지시요 너를 지으신 이가 아니시냐 그가 너를 만드시고 너를 세우셨도다.” 63:6b “여호와여, 주는 우리 아버지시라 옛날부터 주의 이름을 우리의 구속자라 하셨거늘

그러나 하나님을 친근한 아버지로 부르도록 하신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에게 아바 아버지라고까지 하셨어요.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더는 엄위하신 분만은 아니라는 거예요. 우리를 깊이 사랑하시며 매 순간 돌보시고 항상 함께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그분을 신뢰하고 그분과 친근해지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자신이 진정 하나님의 자녀란 확신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고백입니다. 이 확신 속에서 아버지를 신뢰하며 기도할 때, 하나님은 그런 나를 사랑의 눈으로 바라봐 주시는 거죠. 예수님은 우리의 기도에서 이와 같은 장면이 그려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기도를 들으시는 분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여기에서 하늘에 계신다는 말은 하나님이 우리와 멀리 계신다거나 분리되어 계심을 뜻하는 표현이 아닙니다. 하늘은 하나님이 전적으로 다스리시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왕국을 뜻합니다. 무엇보다도 하늘은 우리가 사는 땅과 연하여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주 저 멀리 계시지 않습니다. 오늘도 우리 가운데 계시기에 우리를 알고, 우리에게 관심을 두고 있으십니다. 우리 기도에 언제나 들을 준비를 하고 계신 겁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향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외치며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을 깨우는 외침이 아닙니다. 아버지 하나님을 부름으로써 그분을 향한 나의 마음을 고백하며 하나님의 임재 안에 서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먼저 무엇을 간구하면 좋겠습니까? 다시 말해 어떤 간구로 기도를 열 때 하나님이 들으시고 기뻐하실까요? 여기에서 순서가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먼저 하나님과 그분의 영광에 대해 세 가지를 간구하게 하셨습니다. 그 후에야 우리 자신과 우리의 필요에 대해 세 가지 간구를 하도록 하셨습니다. 우리 자신에게 관심을 가진 나머지 우리가 필요로 하는 목록을 먼저 드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버지에게 떼를 쓰는 아이가 되지 말라는 거죠. 예수님은 우리 기도가 성숙한 자녀로서 아버지 앞에 서는 모습이기를 기대하십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우리 가운데 아버지 하나님이 우선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향한 첫 번째 간구로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을 향해 당신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소서라는 간청인데, 이 간청이 없어도 하나님은 이미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라고 기도하라 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 자신의 삶에서, 교회에서, 세상에서 하나님께 응당 돌려져야 할 영광이 제대로 돌려지기를 열렬히 원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기도가 말뿐인 것으로 그치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올려드리는 삶이 되라는 것이죠.

그와 함께 이 간구는 하나님! 우리가 하나님을 가장 중요한 존재로 삼게 하소서.”라는 고백입니다. 바로 내 인생 최고의 것으로 하나님께 드리기를 소망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는 삶의 모든 측면에서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올려드려야 하는 자녀로서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우리의 기도가 출발하지 못하면 기도는 언제나 우리 자신에게 집중할 위험이 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떠오르는 생각과 두려움과 갈망으로 나가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기도는 단지 주문이 되고, 자기 하소연, 넋두리로 전락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먼저 아버지 하나님께 집중하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소통의 출발점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향한 두 번째 간구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구하도록 하셨습니다. “나라가 임하시오며이 간구는 이 땅을 하나님이 통치하시도록 하나님께 촉구하는 기도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과 함께 이미 이 땅에 임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간구는 세상 사람들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통치가 확장되어, 하늘의 영광과 아름다움이 이 땅에서도 실현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다스림을 위해 기도하지만 지금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하나님의 통치와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더군다나 세상은 하나님의 영광을 전혀 신경 쓰지 않습니다. 몰락한 신으로 치부하죠. 안타까운 것은 성도라고 하는 많은 이들의 삶 또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 점에서 나라가 임하시오며라고 기도하는 것은 우리의 회개가 전제되어야만 합니다. 예수님도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면서 먼저 회개를 촉구하셨습니다. 4:17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오히려 하나님 나라를 가로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기도가 공허한 외침으로 그치지 않기 위해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징표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 주변의 세속적인 세상과는 다른 믿음의 행진곡에 발맞추어 나감으로써 하나님의 통치 앞에 무릎 꿇는 것이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우리 삶에서 이루어져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기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세 번째 간구는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10b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만약 제자들로서 우리가 세상을 향하신 하나님의 통치를 보고자 열망한다면 우리들의 삶 속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뜻을 아는 일에 집중해야 하고,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뜻이 우선되어야만 합니다.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예수님은 마 5장 첫머리에서 팔복을 말씀하신 후에 517~48절에서 하나님의 뜻이 어떠한 것인지를 가르치셨습니다. 그것은 바리새인들의 배타적인 의가 아니라 더 사랑하고 더 화평하게 하는 의를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이런 삶의 자리로 나아가데 있습니다. 이것은 다시 말해 이 땅에서의 삶이 하늘에서의 삶에 더 가까워지도록 하라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 땅에 머물러 있는 한, 우리는 끊임없이 자기중심적인 세속 문화의 유혹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로 인해 우리의 하찮은 이름과 나라와 어리석고 하찮은 뜻에 관심을 두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와 같은 아버지 하나님을 향한 세 가지 기원을 통해서 우리의 가장 우선적 관심사가 우리의 이름과 나라와 뜻에 있는 것이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과 나라와 뜻에 있어야 함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제자들이 세 가지 우선적 사항을 먼저 기도한 후에 비로소 자신의 필요로 옮겨가도록 가르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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