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8월 28일 주일예배설교동영상
[새로운 살 길을 살아가는 법: 히 10장 19-25절]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라는 드라마가 지난 몇 달 인기리에 방영되었습니다. 여느 변호사들의 이야기와는 결이 다른 드라마였습니다. 아주 기발한 발상으로 의뢰인을 변론해가는 변호사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현실에서 그렇게 아름답고 승률 100%에 가까운 변호사가 존재할 수 있을까요?
종교계에도 보면 자기 집단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을 갖고 있다고, 자기가 제대로 된 중보자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거룩하신 하나님께로 다시금 나아갈 수 있는 길은 어느 특정한 집단 또는 사람을 통해 열려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런 주장을 하는 자들은 사리사욕을 위해 사람들을 속이는 암적 존재일 뿐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할 수 없습니다. 정확히 말해 이 세상에서 우리의 죄를 완벽하게 변론하고 죄 없다고 주장하고 중보 할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제사장, 대제사장은 변호사와 같은 위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백성들의 죄를 용서받기 위한 변론과 중보의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 일은 매년 반복되는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사람들은 직접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 언약이 가진 한계였습니다. 그런데 새 언약으로 판도가 바뀌었습니다. 히브리서는 1장에서 10장 18절까지 상세하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이야기합니다. 히브리서의 독자들이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도록 자료를 제시한 거예요. 거기에 중심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야말로 새 언약의 중보자요, 대제사장으로서 자신의 몸을 단번에 드린 희생 제사를 통해 사람들이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있는 길을 활짝 열어주셨다는 것입니다.
정확한 정보나 체계적인 시장분석도 없이 주식에 마구 투자하는 일을 소위 ‘묻지마 투자’라고 합니다. 이런 ‘묻지마’ 투자로 피해를 보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그래서 잘 살펴보아야 하듯이 우리 믿음 생활에도 같은 원리가 적용됩니다. 무조건 믿는 것은 광신이고 맹신입니다. 이것은 오히려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이끌어갑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감추어져 있지 않습니다. 비밀이 아닙니다. 성경을 통해 구원의 계획을 분명하게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을 차근차근히 살펴볼 수 있어야 온전한 믿음을 세워갈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단순히 예수 믿고 구원받자고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어떻게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는지 그분에 대해 깊은 통찰을 제공합니다. 구속사의 정점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독자들에게 상세하게 보여줌으로써 바른 선택을 하고, 그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님과의 온전한 관계를 끊지 않도록 독자들을 돕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님이야말로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기에 끊을 이유가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히 7:22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예수님이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는 이유는 예수님이 우리를 위한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히 7:24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장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느니라.” 영원한 대제사장이시니까 또한 항상 살아계셔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여주십니다. 히 7: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영원하신 대제사장 예수님 때문에 우리는 확실한 중보의 혜택을 입게 되었습니다.
옛 언약 아래에서 드리는 제사는 죄를 완전히 없애지 못해 불완전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을 드리는 완전한 희생 제사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습니다. 이처럼 영원한 속죄는 사람들에게 놀라운 선물을 주었습니다. 하나님을 위한 섬김의 길을 열어주신 겁니다. 히 9: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그러기에 히브리서 저자는 구원받은 성도들이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 예배하기 위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다고 선언합니다. 히 10: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이것이 옛 언약과 새 언약의 차이입니다. 옛 언약 백성들은 두려움으로 거룩하신 하나님과 거리를 두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님을 통해 새 언약 백성들은 항상 나아갈 수 있는 새로운 살길을 열어주셨습니다. 히 10: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예수님으로 인해 하나님은 두려운 분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친밀한 아빠 하나님이 되셨어요.
이렇게 우리가 예수님을 힘입어 나아가는 길을 열어주셨는데,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께 어떻게 예배드려야 하는지가 중요합니다. 우리의 태도가 모든 것을 말하여주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10장 22절에서 예배자로서 마음과 믿음의 새로운 차원을 요청합니다. 히 10: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함으로써 우리에게 두 가지 변화가 일어납니다. 하나는 예수님의 피가 우리 마음에 뿌려져 죄로 오염되었던 마음이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또 하나는 우리의 몸이 맑은 물로 씻음을 받습니다. 물로 씻음을 받았다는 것은 세례를 의미합니다. 세례는 그리스도 안에서 죽고 살아 그분과 연합하는 사건입니다. 죄에 대해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여 새로운 생명으로 사는 것입니다. 롬 6: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이와 같은 내적인 변화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때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참 마음이 무엇일까요? 숨김없는 마음, 단순히 깨끗하게 비어있는 마음을 의미하는 걸까요? 문자적으로 그런 의미를 포함할 뿐만 아니라, 참 마음이란 하나님의 새 언약이 기록된 마음이요, 그 언약의 내용이신 예수님으로 충만한 마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내주하신 예수님이 우리 마음을 주관하실 때 우리 인격과 사고, 행동 그리고 모든 것에 효력을 미치지 않겠습니까? 마음이 새로워지지 않고 그대로이어서 속사람이 변화되지도 않았다면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뻔한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런 의미에서 산상수훈에서 마음에 대한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마음이 중요한 거죠. 그렇게 내적 변화 없이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것은 거짓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온전한 믿음으로라고 하셨는데 온전한 믿음은 무엇일까요? 나 자신이 잘 될 거라는 확신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전심으로 의지하고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믿음은 믿음의 대상이신 예수님을 집중하고 바라볼 때 주어집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행하신 일들을 깊이 묵상하여 그것이 삶으로 느껴진다면 변함없이 예수님을 신뢰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우리 믿음은 온전한 믿음이라고 불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와 함께 온전한 믿음은 우리 하나님이 신실하신 분이심을 믿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신실하신 분이심을 믿을 때, 어렵고 힘든 순간이 있어도 절망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소망을 붙잡고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헌신이 일관성이 있기 위해선 약속하신 분에 대한 소망이 견고해야 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지금 마음이 흔들리고 있는 유대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소망을 굳게 잡으라고 권면합니다. 히 10:23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우리 소망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꼭 붙어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실은 우리가 예수님을 붙잡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를 견고하게 하시는 겁니다.
그렇게 우리가 소망이신 예수님을 굳게 잡고 나아갈 때 자신에게 집중되었던 이기적인 행보를 벗어나 우리는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돌아보면서 사랑과 선행을 격려할 수 있습니다. 히 10:24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예수님의 뜨거운 열정 안에서 서로 끈끈함으로 이루어진 공동체가 되어야만 그 신앙공동체는 서로를 돌아보고 격려하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교회가 됩니다. 나아가 모이기를 더욱 힘쓰게 되는 것이지요. 저절로 모여지지 않습니다. 마음이 뜨거워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 때 모든 게 썰렁해지는 겁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요즘 시대가 점점 급박해져 가고 모이기도 힘들어지는 때입니다. 히브리서가 기록된 당시에도 여러 가지 급박한 상황에서 믿음의 동력도 떨어지고 하다 보니 혼자 신앙 생활하려고 하는 이들이 생겼던 모양입니다. 그래야 안전하다고 생각했겠지요. 그러나 히브리서 저자는 그리하지 말라고 강력하게 권면합니다. 히 10: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힘들어도, 피곤해도, 시간이 없어도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함께함이 큰 힘이 되는 것입니다. 혼자만의 힘으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마십시오. 반면에 사탄은 모이기 어려운 핑계를 자꾸 만들어내도록 종용합니다. 인간적인 편리함과 편안함을 이겨내야 합니다. 교회는 사람이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혼자 있을 때 우리는 오히려 넘어지기 쉽습니다. 혼자는 결코 교회를 이룰 수 없습니다. 교회공동체는 지체들이 연합하여 함께 있을 때 강력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을 다스리는 큰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하는 길이 활짝 열렸습니다. 더는 그 앞에 나아가는 것은 두려움이 아닙니다. 은혜가 흐르는 자리입니다. 우리에게 새로운 살길을 열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함께 모여 예배하고, 그 예배의 감동과 은혜 안에서 서로를 돌아보며 함께 성장하여 하나님 나라를 위한 아름다운 헌신이 이루어지는 예수생명교회 공동체를 만듭시다.
이렇게 하나님을 섬김으로써 우리는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받습니다. 히 9:15 “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라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하나님께로 담대하게 나아가 예배하는 자에게는 엄청난 새 언약의 축복이 주어졌습니다. 이곳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살아가는 복입니다. 이 은혜를 참으로 귀하게 여기며 새로운 살길에서 참된 예배자의 모습을 세워가면서 받은 이 은혜를 다른 이들에게 선포하고 나누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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