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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동영상

불확실함을 넘어서서: 히 11장 8-10절

by 최수근 2022. 9. 11.

2022년 9월 11일 주일예배설교동영상

[불확실함을 넘어서서: 히 11장 8-10절]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21세기 세상은 점점 더 불확실해지고 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에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겹치는 여파로 시계 제로, 그야말로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뉴노멀 시대, 예측불허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사람들이 힘들어합니다. “지금 어디로 가고 있지? 잘 가고 있는 건가? 도달하게 될 곳은 어딜까?” 이런 불확실한 상황에 직면한 우리는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어떻게 이 불확실성을 넘어서야 할까요?

히브리서 11장에서 여러 인물 가운데 불확실한 미래를 뚫고 나갔던 한 인물을 볼 수 있습니다. 갈대아 우르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아브라함입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그를 불러 갈 곳도 알려 주지 않으시면서 떠나라고 하셨습니다. 부르심에 대한 아브라함의 행동은 단순했습니다.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습니다. 무모한 것 같은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요?

예수님 믿고 구원받아 믿음의 길을 가고 있지만 어떤 이들은 이런 상황을 여전히 힘들어합니다. 아브라함이야 특별한 사람이라서 그렇게 할 수 있지, 자기는 할 수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11장에 수많은 무명의 사람들은 우리와 같은 이들입니다. 그러기에 아브라함의 여정에서 우리는 우리의 문제와 연약함은 어떤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두려움 없는 강한 믿음으로 전환해야 할지 그 해답을 찾아야 합니다. 그 믿음의 길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주신 놀라운 선물입니다. 선물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히브리서 118절은 불확실한 미래를 직면해 그것을 이겨내고 보이지 않는 것을 마치 보이는 것처럼 여기며 나갈 수 있도록 하는 힘이 무엇인지 알려줍니다. 아브라함과 11장의 다른 여러 인물은 무모하리만큼 전폭적인 믿음을 따라 살았습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아브라함은 미래를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갈 곳이 어디인지 몰랐습니다. 미리 확보한 정보 하나 없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약속과 명령에 따라 장차 어찌 될지 모르면서도 순종하며 떠났던 겁니다. 이것이 첫 번째 원칙입니다. 중요한 것은 삶에서 일어나는 일 자체가 아닙니다. 그것을 대하는 방식입니다. 전폭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삶에 녹아들면 모든 것이 불투명해도 그런 불확실함을 뚫고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함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 길에 어떻게 염려가 자리할 수 있습니까?

대개 사람들은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무슨 일이 닥칠까, 어떤 것을 이룰 수 있을까 하는 관점에서 미래를 생각하고 계획해 이를 토대로 움직입니다. 그러니 계획대로 나오지 않는 결과치에 대해 좌절감으로 힘들어합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따른 길과는 정반대되는 태도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에게 중요한 것은, 삶을 대하는 믿음의 용기입니다.

우리 삶의 형편이 어떠하든, 자신이 가진 것, 자신이 겪는 한계에만 몰두하다간 믿음의 발을 한 발도 뗄 수 없게 불안함과 두려움에 발목이 잡히고 맙니다.

아브라함은 달랐습니다. 그는 갈 곳을 몰랐으나 개의치 않고 나아갔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로드맵도 제시하지 않았다고 해서 불평하거나 염려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염려했던 문제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시종일관 중요한 삶의 원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중요한 문제는 장차 생길 일을 미리 알아내고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무슨 일이 생기든 상관없이 믿음으로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아브라함이 따랐던 믿음의 방식으로 삶을 살지 못한 탓에 안타깝게도 거짓 희망과 불필요한 불안, 실망에 희생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렇게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어디로 가는지는 전혀 몰랐지만, 누구와 가는지는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가시는 것을 알았기에 아브라함은 주저함 없이 길을 떠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사는 삶의 중대한 두 번째 원칙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면 어디로 가든 두렵지 않다는 것이지요.

기독교는 단순히 여러 가지 원리나 개념을 고수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동행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벗이 되어 그분과 동행했습니다. 우주의 창조자, 전능하신 하나님과 사귀며 동행한다는 것이 얼마나 굉장한 일입니까? 전능자와 함께하면 지금 처한 환경과 장소는 그리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동행하고 계심을 안다면 어떤 돌발적인 상황에서도 당황하거나 놀라지 않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알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떠날 수 있었습니다. 갈 곳을 몰랐지만, 하나님이 함께 가는 것만으로 충분했던 거죠. 언제나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과의 사귐입니다. 그 사귐 안에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다면 무엇이 염려가 되겠습니까?

무엇보다도 믿음의 길은 불확실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 대해 큰 계획과 목적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약속의 성격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은 갈대아 우르에 살고 있던 아브라함을 찾아와 널 데려가겠다라고 하셨습니다. 바로 유업으로 받을 땅으로 데려가겠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길을 떠나 유업으로 주실 땅에 도착할 때까지 생길 일들에 대해서는 한 말씀도 하시지 않으셨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중요한 것은 과정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바로 그 유업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 삶의 절대적 기초입니다. 중요한 문제는 여정에서 무슨 일이 생기느냐가 아닙니다. 여정이 아닌 목적지가 중요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었던 이유를 10절 말씀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아브라함은 그 당시 갈대아 제국의 견고하고 웅장한 성들을 보았을 겁니다. 그러나 그는 그와 같은 것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조카 롯은 세상의 웅장함, 세상의 부요를 쫓아갔지만, 아브라함은 그보다 더 나은 것을 기대하였습니다. 그는 세상이 주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장차 올 것을 고대하였습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이 자기 소유가 아닌 땅에서 오랜 세월 동안 믿음으로 살았던 방식입니다.

영원을 바라보는 시각이 없었다면 아브라함은 주저앉고 말았을 겁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믿음의 여정 가운데 있는 우리를 향해 하나님은 요청하십니다. 우리의 시선이 이 땅이 아닌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도록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장차 임할 영광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곳으로 데려가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마침내 시간 너머 저 영원한 영광 가운데 펼쳐질 자리에 서게 될 것을 사모할 때, 세상은 그저 작게 보이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과 함께하며 그가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모든 일에 참여하는 것, 오직 이것이 중요합니다. 아브라함은 그 약속을 들었기에 갈 곳을 모르면서도 나아갔던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그가 우리를 영광으로 데려가신다는 확신이 있습니다. 그때까지 무슨 일들이 일어날까요? 그것은 모릅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히 아는 사실은 우리와 함께하는 하나님이 절대 변함없으시다는 것입니다. 장차 무슨 일이 생기든 변함없이 나의 하나님으로 계시고, 하나님께서 언제나 우리를 위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함께 길을 떠나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13:5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우리가 어디에서 무슨 일을 겪든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우리에 대해 크고 영광스러운 목적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떠나지 않으십니다.

그 길에서 우리가 만나는 어떤 일도 전능하신 하나님보다 강하고 클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8:38-39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무슨 일을 만나든 하나님보다 강하지 않다는 사실, 여러분을 그의 능력에서 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전적으로 확신하십니까?

우리와 함께하는 하나님은 참으로 선하신 분이십니다. 참으로 어렵고 힘든 상황이라 할지라도 함께하심을 믿을 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그야말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하나님이 배열해 가십니다. 8:28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때로는 역경을 겪어야 진정으로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심한 곤궁을 겪어야 아버지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인생을 돌아보며 그 길목마다 하나님이 자기 삶을 이끌어 가셨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가기 시작할 때 우리는 담대하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13:8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이것이 아브라함이 불확실함을 뚫고 나갈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순종하여 모든 것을 뒤로 하고 떠났던 아브라함처럼, 믿음과 승리와 기쁨의 삶, 하나님과 함께하기에 미래를 염려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으십니까?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회복되어 주님은 나를 돕는 분이십니다.” 고백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 약속의 말씀을 전적으로 믿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고, 그 믿음에 따라 행동했습니다. 자기 자신과 자신의 모든 염려를 주저 없이 하나님의 손에 맡겼습니다. 그러면 어떤 시련이 닥쳐도 능히 이겨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는데 무엇이 문제가 되겠습니까?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우리의 도움이신 하나님과 동행합시다. 그분을 알고 그와 함께 한 걸음 한 걸음 걷는 일 외에 아무것도 염려하지 맙시다. 영광의 유업을 소망하면서 앞으로 나아갑시다. 시간이 지나도 이 믿음의 원리는 변함없습니다. 아브라함은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언제 해야 하는지 모를 때에 그냥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지성을 갖춘 한 인간이 모든 불확실한 환경 속에서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믿음으로 모든 상황에 대응했기 때문입니다. 브레넌 매닝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한 단어로 정리하면 신뢰라고 했습니다. 신뢰의 길이란 다 계획되고 정해져 명확히 기술된 미래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모호하고 불확실한 미정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신뢰의 길은 말할 것도 없이 모험의 길입니다.

이 믿음이 우리의 삶을 이끌어가고 있다면 미래의 불확실함 속에서도 우리가 길을 잃지 않고 나아가도록 언제나 길을 밝히는 등불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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