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 25일 주일예배설교동영상
[증인과 표적: 막 16장 15-20절]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국회의원을 국민이 선출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필요하고 또 제대로 된 법을 제정해서 사회가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국회를 비롯한 정치권이 국민에게 질타를 받는 것은 저들이 그 일을 게을리 했기 때문입니다. 직무평가로 저들을 바로 퇴출시킬 수 있다면 쫓겨날 사람들이 아마도 많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기대와는 달리 4년 뒤 희한하게도 살아 돌아오는 걸 보면 질긴 생존능력에 놀랄 뿐입니다. 소위 철밥통을 찬 것 같습니다.
또 철밥통 하면 공무원이 떠오릅니다. 웬만하면 정년퇴직과 차별화된 연금이 보장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공무원 시험에 젊은이들이 몰립니다. 참으로 국민을 두려워하며 성실하게 일하시는 분들도 많이 있겠지만 뒤에서 여러 편법 불법을 자행해도 들통나지 않으면 된다는 식으로 일하는 이들이 있어서 문제입니다. 요즘 추가근무 수당을 위한 불법적인 행동들이 곳곳에서 불거지고 있어요. 사회 통념으로 보면 있을 수 없는 일들입니다.
이런 표현이 우습긴 하지만 우리 기독교인들도 철밥통일까요? 한번 예수 믿으면 영원한 구원이 보장되고 천국이 보장되어 만사형통일까요? 많은 그리스도인이 그렇게 생각하고 구원받음에 안도하여 그리스도인 됨을 상실한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왜곡된 신앙과 소명을 갖고 사는 겁니다. 실은 진정한 의미에서 기독교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종교인이지요. 하나님의 은혜를 싸구려 은혜로 전락시키고 있는 부류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은 싸구려 은혜를 양산하는 데 목적이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시고 부르심에는 목적이 분명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세상과 인간을 회복시키기 위한 구원 프로젝트에 우리를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자연인인 인간에 대한 기독교적인 시각은 극히 부정적입니다. 인간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롬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누구도 예외 없이 죄 가운데 있는 자는 하나님께로부터 소외된 존재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죄의 끝은 사망에 이르는 것입니다. 롬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죄 가운데 있는 인간은 그 자리에서 스스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수렁에 빠지면 스스로 빠져나오기 어렵듯이 죄도 수렁과 같아서 빠져 나올 수 없습니다. 결국 거기에 함몰되고 맙니다. 그런 죄에 대한 선택은 인간 스스로 한 것입니다.
그렇게 자발적으로 죄인 된 인간을 하나님은 외면하지 않으셨고 사랑하셨습니다. 롬 5:6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아가페 사랑을 보여주고 확증하시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죄인 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죽으셨던 겁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 받을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롬 1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롬 10: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이처럼 예수를 주로 시인하고 그 분을 믿는 길이 열렸지만, 사람들이 어느 날 스스로 깨우쳐서 예수의 이름을 믿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전파하는 자가 없으면 들을 수가 없는 것이죠. 듣지 못하면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행하신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일은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에 대한 것을 가르치시고 그들을 복음의 증인으로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구원의 길을 열어주신 예수님은 바로 그 구원이 세상에 미치도록 첫 번째 제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즉 복음을 전하도록 명령하신 것입니다. 막 16:15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지난 이천년 동안 예수의 이름을 전하는 일에 그리스도인들은 목숨을 걸고 행해 왔습니다. 미전도 종족을 찾아 구석구석 전하였습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반면에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막 16:16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심에는 구원의 통로, 복음의 증인이 되도록 하시는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의 마음속에는 타자를 향한 영혼 구원에 대한 열정이 자리 잡고 있어야 합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믿지 않아 정죄를 받아도 마음이 편하다면 그것은 문제가 심각한 것입니다. 막 16:16의 예수님 말씀을 믿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믿지 않으니 시급함과 간절함이 없고, 나를 중인으로 부르신 주님 앞에 제대로 응답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다가 오늘 매우 중요한 문제는 새로운 미전도 종족이 우리 주변에서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기독교를 배타적 종교로 보고 있습니다. 왜 예수만 고집하느냐는 겁니다. 세상은 예수 외에도 구원이 있다고 봅니다. 종교 다원주의의 시대에 예수만이 구원의 길이라고 전하는 것은 배타적이고 심히 고집스러워 보이니 교인들도 어려운 길보다는 쉬운 길을 택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상실하다 보니 그리스도인들이 나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증거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거리전도가 사라졌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개인 구원에 만족한 그래서 세상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회복에 대한 마음이 식다보니 복음의 확장성이 동력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여러 복합적인 이유로 점점 교인은 줄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는 처음부터 예견된 일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저지하려고 하는 사탄은 사람들의 마음과 환경을 흔들어 끝까지 저항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이 증인의 길이 나약하거나 지치지 않도록 여러 안전장치를 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믿는 이들에게서 나타나는 표적입니다. 막 16: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예수님을 믿고 그 이름을 들고 나가는 자들에게 여러 표적이 따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복음의 통로로 사용하기 위해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증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결코 외롭거나 약한 길이 아닙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를 통해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표적들을 통해 세상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러나 표적이 사라지면서 세상은 그리스도인들을 약하게 보는 것입니다. 증언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는 복음의 증인으로 서기 위해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표적이 드러나는 증인으로서 회복되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에게서 회복되어야 할 표적을 네 가지 말씀합니다.
첫째,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라고 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축사의 능력은 영적 전쟁에서 참으로 필요한 일입니다. 선교지에 가보면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합니다. 영적 전쟁의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로 지금 우리 삶의 자리도 심각한 영적 전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수많은 현대인도 어둠의 영에 사로잡혀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심령 가운데 들려지기 위해서는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는 어둠의 영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쫓아내어야만 합니다. 더군다나 이 영들이 더욱 간교해졌기 때문에 우리는 영을 분별하고 차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들을 쫓아낼 권세를 복음의 증인들에게 주셨습니다. 그래야 마지막 때에 영적 싸움에서 물러서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들고 나가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는 귀신들을 쫓아내는 것입니다.
둘째, “새 방언을 말하며” 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이후 10일간 마가의 다락방에서 120명의 제자들이 모여 기도할 때 오순절 성령이 임하시고 제자들이 서로 새 방언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제자들이 새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일을 말함을 듣고 놀라워하였습니다. 방언은 새로운 종류의 언어, 즉 천국의 언어입니다. 이것은 성령 충만의 표적입니다. 그러기에 새 방언을 말한다는 것은 우리가 성령의 사람이 되었다는 증거입니다. 이렇게 증인으로 우리가 천국의 언어를 말한다는 것은 우리의 언어도 변화되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생명을 살리는 언어로 말입니다. 우리가 복음의 증인이라 하며 여전히 성령의 살리는 언어로 살아가지 않는다면 어떻게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그 분의 생명이 다른 이들에게 흘러갈 수 있겠습니까? 자기 혼자 취해 랄랄라 말하면서 그 삶과 언어가 진정 성령 충만한 모습이 아니라면 예수의 이름은 그 자신으로 인해 차단되고 말 것입니다.
셋째, “해를 받지 아니하며”라고 했습니다.
막 16:18 “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사도 바울이 로마로 압송되어 가는 과정에서 배가 난파되어 가까스로 오른 섬에서 불을 지피려고 하다가 뱀에 물리는 일이 있었지만 해를 입지 않아 사람들이 놀라워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능력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뱀의 독을 무력화시켰기 때문입니다. 창조주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가 증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지켜주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서 있는 것입니다.
넷째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 즉 나으리라” 하였습니다. 오늘도 전도의 과정에서 병으로부터 치유를 받아 예수님의 이름을 믿고 구원을 받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믿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치유의 능력을 가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통로로 사용하시는 하나님께서 치유해주시는 것이기에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손을 얹을 때 병이 치료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완악하기에 하나님은 이런 표적을 주시는 것이지요. 복음의 능력도 능력이지만 이렇게 드러나는 이적들로 인해 완악한 마음의 외곽에 금이 가야만 그 틈으로 복음의 빛이 비추어지고 마침내 그 사람이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은 우리를 증인으로 부르시고 그 일에 모든 환경을 예비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하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부르심 앞에 증인으로 응답하고 나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 책임을 누가 담당하십니까? 예수님이십니다. 막 16:20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 새 주께서 함께 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주께서 함께 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 지난 주일에도 말씀드렸듯이 증인의 삶은 혼자 가는 길이 아닙니다. 주께서 함께 하시고, 표적이 따르도록 하셔서 말씀이 사람들에게 확실히 증언되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그렇게 팔을 걷어붙이고 우리와 함께 하시고자 하는데, 우리는 증인의 역할에 어떻게 임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부르심에 대한 직무태만과 함께 자기 유익을 위해 우리가 이 자리에 서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마치 영원할 것처럼 생각한다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우리는 나의 구원에 만족함으로 멈추어 있는 자가 아닌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아가는 자여야 합니다.
나의 소홀함으로 나의 옆에 미전도 종족이 늘어나지 않도록 사랑하는 이들이 믿고 구원 받을 수 있도록 증인의 일에 성실함을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심에 온전히 응답하는 모습입니다. 그렇게 응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들고 나가 복음을 전할 때 하늘의 표적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 현장에서 귀신이 물러날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그 어떤 위협도 우리를 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로 인해 많은 사람이 회복되고 살아날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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