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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동영상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마 5장 9절

by 최수근 2021. 12. 5.

2021년 12월 5일 주일예배설교동영상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마 5장 9절]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인류의 역사는 갈등과 다툼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 4장에서 가인과 아벨의 갈등으로부터 시작된 다툼은 최초의 살인으로까지 이어졌고, 오늘까지 사람들이 사는 공간에서는 갈등과 다툼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삶은 화평하십니까? 모든 관계가 원만하십니까? 가정이 화목하십니까? 가족이 아픈 시대입니다. 많은 가족이 전쟁 중입니다. 가족 갈등은 단순히 집안 문제가 아닙니다. 사회문제입니다. 우리 사회도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세대 간 갈등도 큰데, 요즘 한국 사회는 젠더 갈등의 늪에 빠져 있습니다. 국가와 국가, 민족과 민족으로 들어가면 상황은 더욱 악화일로에 있습니다. 중동과 인도차이나, 동북아시아에서, 아프리카에서, 크림반도에서 그리고 그 뒤에 있는 미국과 중국과 러시아 간에 자기들만의 이익을 위해 치열하게 싸우고 있습니다. 일촉즉발의 상황입니다.

세상이 끊임없이 다투고 갈등하는 이유는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요? 다른 많은 원인들, 사회적이고 심리학적인 이유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가장 중요하고도 근본적인 이유를 살펴보고 싶습니다. 본래 창조된 세상은 조화롭고 평화로운 세상입니다. 하지만 인간이 하나님처럼 높아지려는 교만으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고, 사람들은 점점 더 탐욕스러워지고, 상생이 아닌 이기적인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관계들은 더 어그러지고, 서로 싸우고, 죽이고 하는 비극적인 상황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비극적인 상황을 돌이키고자 하셨고, 샬롬을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하셨습니다. 죄로 인해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지 못하고 멀어진 인간들을 위하여 하나님은 먼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기를 기뻐하셨습니다. 죄인 된 우리를 하나님과 화평하게 하고자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화목제물이 되셨습니다. 120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예수님은 십자가의 희생을 통해 화평하게 하는 자의 삶이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 삶인지를 우리에게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다툼과 분열로 점철된 세상에서 우리는 소극적으로 대처할 수 없습니다. 방관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고 화평하게 하는 자가 되기를 명하셨습니다. 그렇게 화평을 만들어가는 삶을 예수님은 복이 있다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5: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화평이라는 뜻인 헬라어 에이레네는 히브리어로 샬롬과 연결됩니다. 샬롬은 구약에서 말하고 있는 평화 개념의 핵심입니다. 하나님, 이웃, 민족과의 관계를 포함한 삶의 모든 영역에서 완전함과 온전함을 의미합니다. 극 최상의 상태입니다. 모든 것이 매우 원만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화평하게 하는 자를 말씀하셨을 때, 이 사람들은 단순히 평화를 위해 무저항이라는 수동적 자세로 꾸준히 참는 사람이 아닙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에이레네행하다라는 뜻인 포이에오의 합성어 에이레노포이오스의 복수형으로 쓰였습니다. 이 말은 평화를 만들기 위하여 노력하는 사람들이란 매우 적극적인 의미를 갖습니다. 이들은 대립과 갈등의 골이 깊은 곳으로 들어가 다투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화평을 이루고자 하는 적극적인 사람들입니다.

화평은 단지 상대편을 너그럽게 용서하고, 사이좋게 지내는 유화(宥和)적인 행동을 넘어서서, 화목을 통한 친밀한 관계 회복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과의 화평함이 없이, 또 사람들과의 화평함이 없이는 결단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어서입니다. 12:14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그러기에 화평을 이루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이렇게 중요한 일이기에 샬롬은 거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희생이라는 대가를 치르고 얻은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화평을 이루시기 위해 자기 아들 속에서 자기를 낮추셨습니다. 우리 역시 화평하게 하는 일에서 우리의 희생이 요구됩니다. 희생 위에 이루어진 샬롬이기에 더욱더 소중한 겁니다. 그렇다고 치르게 될 대가로 인해 걱정하거나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화평은 성령의 열매 가운데 하나입니다. 삶의 자리에서 화평의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성령님이 도와주실 것입니다.

샬롬의 출발점은 하나님이시고, 예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 간에 궁극적인 조화를 가져오십니다. 우리는 단지 하나님의 대리자가 되어, 세상으로 나가 예수님처럼 사람들과 화평하게 살아가기 위해 우리 자신을 대가로 지불하면 되는 것입니다. 샬롬은 절대적인 힘이 아닌 절대적인 희생을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참으로 화평하게 하는 자가 되려면 자기를 그곳에 던지고,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분열과 갈등을 온전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회복을 기다릴 수 있어야 합니다. 무작정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다툼과 갈등 가운데 있는 이들을 위해 진정으로 기도해야만 합니다.

그렇게 헌신과 희생, 간절한 기도로 무장하고 나아가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의 화평을 위해, 또 가정과 이웃과 우리가 속한 모든 공동체의 사람들 사이의 화평을 이루어 내기를 힘쓰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원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결코 화평하게 하는 자들이 될 수 없습니다. 이건 자연적인 인간의 품성으로 이룰 수 없는 영역입니다. 무엇보다도 세상 사람들은 하늘로부터 임한 진정한 샬롬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화평함으로 샬롬의 은혜를 경험한 하나님의 자녀들만이 세상에서 화평하게 하는 자, 샬롬을 이루어가는 자들이 될 수 있습니다. 내게 임한 샬롬이 없는데, 만일 그것을 할 수 있다면 그 평화는 급조된, 그래서 언제고 깨질 거짓 평화일 뿐입니다.

그러기에 화평의 중요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과의 화평을 먼저 이루어가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내면이 부서지고 분열된 채로 살아갑니다. 자기가 정말로 누구인지, 정말로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지 못합니다. 또 많은 경우, 자기 자신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자신을 혐오하기까지 합니다. 이런 이들은 자신을 향해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난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난 절대로 그것을 정확하게 해내지 못할 거야?”“난 실패한 사람이야.” 자신이 무가치하다고 느끼는 자기 비판적인 감정에 함몰되어 있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하나님과 자기 자신의 관계를 신속하게 재고하고 새롭게 해야만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여 그분의 아들, 딸이 되었다는 사실을 제대로 이해하고 믿고 있다면 자신에게 무가치한 사람이라고 말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통해 자신과의 화평을 이루고 이어서 밟아야 할 다음 단계는 모든 가족과 우리가 교제를 나누고 있는 모든 사람과 화평을 이루어야 합니다. 샬롬의 영역을 확장 시켜 가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화평하게 하시는 사역에 응답하여 곳곳에 들어가 화평의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은 화평함을 이루어가는 사람들을 주목하시고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해주시고 저들을 소유하십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게 될 것임이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는 것은 그러한 자로 평가되고 간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긍휼의 하나님, 평강의 하나님을 본받아 그 삶을 살아가고자 하기에 하나님의 아들로 일컬어지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것은 놀라운 축복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고,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권세를 누릴 수 있게 된다는 선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여전히 이 땅은 다투고 갈등하고 분열하고 있습니다. 분열과 갈등으로 얼룩진 세상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화해하게 하는 일을 멈출 수 없습니다. 포기할 수 없습니다. 세상은 원래 소망이 없다고, 화평하게 하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 그냥 세상이 그렇게 흘러가도록 방관하지 말아야 합니다.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샬롬을 위해 지금 내 삶의 자리에서 아주 작은 일이라 할지라도 화평하게 하는 자로 서 있습니까?

하나님은 그런 세상을 모른 체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아들, 딸인 우리들이 하나님의 샬롬을 이루기 위해 할 수 있는 매우 작은 일들이라도 행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만일 우리가 가는 곳마다 다툼과 갈등이 일어나고, 이간질하여 분열이 일어나고 미움이 생겨난다면 그건 분명 화평하게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지만 어느 곳에 갈 때에 형제와 형제 사이에, 성도와 성도 사이에 화목이 있게 되고 서로 간에 분쟁이 해소되고 미움이 사라지고 오해가 사라지고 하나 됨이 이루어지고 화목이 이루어진다면 단언컨대 그런 사람은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화평하게 하는 자입니다.

먼저 그리스도인은 가정에서 샬롬을 이루어야 합니다. 가정이 화평하지 못한데 어떻게 다른 곳에서 화평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그러기에 부부가 함께 화평을 이루기 위한 일들을 해야 합니다. 서로를 알아가고 공감하고 존대하고 설령 마음에 차지 않더라도 기다려주고, 함께 가고자 하는 마음이라면 샬롬은 어렵지 않게 우리 가정 안에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521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이건 주종관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호존중입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서로 헌신하면 가정은 화평하게 될 것입니다.

부모와 자녀 간에 화평도 같은 이치입니다. 부모는 자녀에 대한 소유권과 주장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자녀는 부모님을 인정하고 높여드려야 합니다. 무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의 선한 모습이 흘러가야 하고 서로를 위한 진심 어린 기도가 자리 잡아야 합니다. 이럴 수 있다면 부모와 자녀 간의 샬롬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직장에서 내가 직원이라면 성실한 마음으로 행하고, 사장이라면 일한 것에 대해 잘 보상해주고 격려해주고, 상사로서 아랫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으면 그곳이 화평할 것입니다. 이와 같은 기본 원리는 사회라는 틀 속에서도,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나아가 세계적인 차원에서도 같습니다. 보여주고자 하지 않고, 가진 힘을 내세우지 않고, 없는 자들을 하대하지 않고, 진정 긍휼의 마음으로 섬기고, 예수님처럼 먼저 자기를 희생하려고 한다면 그곳이 어떤 곳이든 간에 하나님의 샬롬이 이루어져 갈 수 있습니다.

물론 화평하게 하고자 하는 우리 노력이 결실 없어 보일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수고는 결코 실패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샬롬을 원하시고, 그것을 마침내 이루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69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말씀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항상 삶의 모든 영역에서 평화의 사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공동체든 사무실이든 학교든 교회든 상점이든 어떤 자리이든지 간에 누구를 만나든지 모든 사람 앞에서 평화의 사도로서 준비되어야 합니다.

오래전 자신의 모든 것을 내 던지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려고 애썼던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상처가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심게 하소서.

오류가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광명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심게 하소서.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며,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며, 자기를 온전히 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이니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과 사람을 화평하게 하시고, 사람들을 하나 되게 하셨습니다. 그럴진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로서 우리는 마땅히 주의 길을 따라 화평하게 하는 자가 되어 다툼과 분쟁이라는 세상의 악취를 내뿜는 대기 속에 하나님 나라의 맑고 평온한 향기를 불어넣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얼마나 행복해지겠습니까?

오늘 이 땅에 하나님의 샬롬을 이루어가는 도구가 되기를 바랍니다. 로마서 1218절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이와 같은 삶은 곧 하나님의 아들, 딸이라 일컬음을 받는 축복의 길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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