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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동영상

[공부합시다: 히 5장 12-14절]

by 최수근 2022. 8. 7.

2022년 8월 7일 주일예배설교동영상

[공부합시다: 히 5장 12-14절]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메소포타미아의 유물들이 전시 중인데 그중 4000년 전 일상이 적힌 메소포타미아의 점토판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다양한 생활 속 이야기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걱정하고 우선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중에 아들아, 빈둥거리지 말고 학교에 가라. 철 좀 들어라하는 말이 쓰여있습니다. 4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공부하는 일이 즐거운 일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초중고대학까지 12년에서 16, 석박사까지 하면 20년이 넘게 공부하느라 시간이 가버립니다. 그렇다고 학교를 나왔다고 해서 공부가 멈추지 않습니다. 승진하려면 또 공부해야 하니, 즐겁고 행복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 공부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공부 스트레스를 받아왔는데, 또 교회에 왔더니 뭔가 책을 읽고 성경 공부를 하자고 하면 경기 수준의 반응을 보이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교회까지 와서 공부하기는 정말 싫은 거예요. 여기에서는 뭔가 위로받고 싶고, 편안하고 싶은 거죠. 쉬운 것, 듣기 불편하지 않은 것,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것, 재미있는 것 등을 찾습니다. 쉽게 먹을 수 있도록 먹여주기를 원하는 겁니다.

물론 우리 예수님도 세상의 모든 수고와 짐을 십자가 앞에 다 내려놓도록 우리를 초청해주셨습니다. 그렇게 모든 짐을 벗어버리고 쉬게 해주시겠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이 말씀에 이어서 중요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예수님은 내게 배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배움의 목표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배워갈 때 우리 마음에 쉼을 얻을 수 있다고 하셨어요. 배움이 스트레스가 아니라 쉼이라는 겁니다.

기독교는 처음 출발부터 종교적인 경험이나 행동으로부터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기독교는 계시의 종교입니다. 엄청나게 신비스럽고 앞날을 예언하고 그런 것이 아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이 병도 고치시고, 귀신도 쫓아내시고, 이적을 행하기도 하셨지만 가장 주된 것은 가르치는 일이었습니다. 부활하셔서 승천하시기까지 기간에도 예수님은 가르치는 일에 집중하셨습니다. 바로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였습니다. 1:3 “그가 고난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초기의 교회도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면 긴 시간 학습훈련을 하였습니다. 그런 후에 학습이 제대로 되었는지 문답을 하고서 세례를 주었고, 정식 교인으로 교회에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공인을 받고 급속하게 확장되면서 많은 이들이 교회로 몰려들어 오게 되자 이 과정은 점차 약화 되었습니다. 중세 교회를 거치면서는 그리스도인들의 신앙 지식의 수준이 바닥까지 내려가게 됩니다. 성경 자체를 볼 수도 없는데 어떻게 바른 지식을 얻을 수 있었겠습니까? 게다가 모르는 라틴어로 다 얘기하니 알아들을 수 없어요, 중세 성당에 성화가 많은 이유도 이것을 통해서라도 보여주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인쇄술의 발달로 각 나라의 언어들로 성경이 인쇄되고, 종교개혁을 통해 다시금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영적 운동이 일어나면서 교회는 말씀을 배우고 기독교 교리를 배우는 과정이 되살아나게 되었습니다.

한국교회의 실질적인 성장도 베뢰아 사람들처럼 말씀에 대한 열정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렸을 적 말씀사경회를 통해서 아침 점심 저녁으로 말씀을 배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는 학습 과정 6개월, 세례 과정 6개월 총 일 년이 되어야 세례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젠 속성과정으로 다 바꿔 버렸어요. 그냥 교회 와서 예배드리고 4주 세례 과정하고 나서 문답하고 세례받으면 정식 교인이 되는 겁니다. 예수님 믿고 천당 가요 속성과정입니다. 이런 속도에서 어떤 변화와 성장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두려운 것은 많은 그리스도인에게 이게 전부라는 겁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일은 단지 시간이 흘렀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신앙 경험치만을 갖고선 잠깐은 갈 수 있어요. 하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지 끝까지 가기가 어렵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수많은 사람이 예수님의 이적을 목격했지만 다 떠났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경륜을 명확하게 알아야만 그 길을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른 지식을 위한 배움이 필수적입니다. 예수님에게서 배워야 진정한 쉼을 누릴 수 있는 겁니다.

그러나 요즘은 교회보다도 신천지, 구원파 등 이단 들이 말씀과 교리학습에 더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래야 기성교회의 교인들을 포섭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들 학습을 열심히 하여서인지 이들이 기성교회 교인들을 좀 우습게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무것도 모른다고 보는 겁니다. 게다가 여전히 신천지나 구원파, 하나님의 교회 등 이단이 세를 불리고 있습니다. 기성교회 교인들이 유혹에 넘어가고 있다는 거예요. 기독교인들이 기독교에 대한 바른 잦대, 기준을 분명하게 갖고 있으면 이렇게 현혹될 리가 없지만, 허술한 지식으로는 막아낼 수 없습니다. 우리가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선 가는 길에 대한 지식이 필요합니다. 지식의 부재는 우리를 결국 망하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4:6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처음 교회 문을 들어서서는 그래도 뭔가를 배워보려고 합니다. 하지만 대다수가 기초, 입문 편에 서서 그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믿음의 정수를 배우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하지 않아서입니다. 그냥 주일예배 한 번으로 끝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계속해서 성장해야 할 것은 요청하시는데도 말입니다. 기대할 수 없는 거죠.

기독교인들은 단지 천국 가려고 예수님을 믿는 걸까요? 물론 마지막에 천국 가는 것은 맞지만, 복음이 이게 전부는 아니지 않습니까? 지금 구원받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모릅니다. 생활에서 볼 때 예수님 안에 살아가고 있는 것이 어떤 모습인지, 그리고 얼마나 세상 사람들과 다른 차원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려고 하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성숙한 삶을 살고 있어야 합니다. 그와 같은 구별됨은 예수님을 온전히 배울 때 가능한 일입니다.

무엇보다도 복음의 능력은 너무도 놀라운 것입니다. 1:16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그 진가를 알게 된다면 우리는 상상을 초월한 믿음으로 설 수 있을 겁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의 영성이 더 깊어져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초보, 기초의 단계를 벗어나 성숙한 단계로 나아가지 못한다면 우리 스스로 복음의 능력을 제한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몰라도 너무 몰라, 영적 유아기에 머물러 있음으로써 이런 손해를 보고 있다면 우리는 참으로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영적 유아기에 머물러 있는 유대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성장해야 함을 요청합니다. 5:12 “때가 오래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예수님이 정말 어떤 분이셨고,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과 세상에 대해 무엇을 믿고 또 믿어야 하는지, 성경이 무엇을 담고 있는지, 그리스도인이 각자 어떻게 어울려야 하고 또 자신들의 삶과 사고가 복음의 능력으로 어떻게 변화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사람들이 잘 알거라고 기대했는데 실은 잘 알지 못하는 거예요.

히브리서 기자는 유대 그리스도인들에게서 이와 같은 무지함을 발견하면서 그가 큰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하던 이야기를 멈춥니다. 그러면서 안타까운 듯이 말합니다. 5:11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가 듣는 것이 둔하므로 설명하기 어려우니라.” 이와 같은 나태와 무지함으로 인해 우리가 성장하지 못하고 늘 초보의 자리에 머물러 있다 보면 오늘 말씀을 통해서 볼 때 두 가지의 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하나는 하나님 의의 말씀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5:13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말씀의 부재로 인해 복음을 통해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우리가 어떻게 그리스도인으로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지 알 수 없게 됩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의 뜻과는 무관한 자기만의 신앙 세계로 빠져들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보이는 것에 치중합니다. 은사, 성령 체험, 예언, 치유 이런 것에 매어 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을 깊이 묵상하라고 했는데, 쉽지 않은 거예요. 무엇보다도 성이 차지 않는 겁니다.

그게 아니면 단지 천국 가는 것만을 자기 신앙의 목적으로 삼습니다. 하지만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의 단순함을 넘어서 보석과도 같은 주님의 말씀을 경험해야 합니다. 말씀이 지속적으로 공급되지 않는데 어떻게 견고한 믿음을 가질 수 있겠어요. 어려워도, 이해하기 쉽지 않아도 그 말씀을 알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17:11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그래야만 단단한 음식을 먹을 수 있고, 영적으로 건강하고 깊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다른 하나는 영적 분별이 어려워집니다. 5:14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그리스도인이 쉽게 흔들리고 거할 자리가 아닌 곳에 있게 되는 경우들이 이런 이유로 인해서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장성한 자가 되지 못하면 사탄이 다양한 루트로 유혹해 올 때 분별하지 못하고 거기에 말려들 것입니다. 그러나 성장하여 말씀의 잣대가 서 있으면 우리의 상황을 영적으로 분별할 수 있습니다. 기준이 없기에 분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해결하는 유일한 길은 예수님에게 배우는 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으로 들어가는 것이지요. 더 깊어져야 합니다. 어린아이가 아닌 장성한 자가 되어 단단한 식물을 먹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성장합니다. 복음의 진리는 단순한 오락이 아닙니다. 잘 씹어야 할 단단한 음식과 같습니다. 계속 응석을 받아 주고 유동식 음식을 떠먹여 주며 즐겁게 해주길 바라는 어린아이 상태에 머물면 결코 먹을 수 없습니다. 장성한 믿음의 분량에 이르기 위해 우린 단단한 생명의 양식을 먹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더 심오한 복음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때, 그럴 때 복음의 능력 안에서 진정한 쉼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여기에 이르기 위해 우리 열심히 공부합시다. 예수님에게서 배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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