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우리 이웃과 함께!!!
설교동영상

믿는 도리를 굳게 잡으라: 히 4장 14-16절

by 최수근 2022. 7. 31.

2022년 7월 31일 주일설교동영상

[믿는 도리를 굳게 잡으라: 히 4장 14-16절]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사람들은 무언가를 기획하고 진행하려고 할 때, 또는 사업이나 정치를 하려고 할 때, 먼저 든든한 후원자를 잡으려고 합니다. 뒷배경이 든든해야만 그 일을 지속할 수 있고, 자기를 뒷받침해주는 이가 막강할 때 자신감이 넘쳐 일할 수 있다고 믿어서입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경험하였듯이 사람 후원자는 절대 영원하지 않습니다. 한때는 믿었던 구석이었는데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다른 대안이 없기에 사람들은 그것이 썩은 동아줄이 아니기를 바라면서 붙잡고 있습니다. 이렇게 자기 안위를 위해 사람들은 무언가를 의지하고자 합니다. 그렇게 붙들고 있어야만 불안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을 안심하게 만드는 힘은 어디에서 오고 있나요? 그리스도인으로서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붙잡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붙들고 있는 진정한 믿음의 실체는 무엇인가요? 그것이 진정 여러분의 인생을 걸고 붙잡고 가야 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까? 아니면 단지 자기 위안이 될 만한 정도의 것인가요? 만화 피너츠에 등장하는, 실은 스누피로 더 알려진 만화입니다. 거기에 나오는 라이너스처럼 심리적인 안정을 위해 어렸을 적 담요를 붙들고 있는 것처럼 뭔가를 의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유대인들에게는 어렸을 적부터 손에서 놓지 않았던 것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율법이었습니다. 그와 함께 그들이 소중하게 여겨왔던 신앙의 자산들이 많습니다. 그들의 삶에서 결코 떼어놓을 수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는 평생 소중하게 붙들고 있었던 유대교의 신앙적 자산들을 배설물처럼 버렸다고 고백을 하였습니다. 3: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하지만 이건 특별한 바울만이 할 수 있었던 확실한 선택이었을까요? 1세기 유대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유대교와 기독교 사이에서 선택을 고민하며 갈등하던 이들이 상당수 있었던 겁니다.

그 당시 팔레스타인 땅에서는 유대교 안에 새로운 분파로 취급되었던 기독교가 서서히 독자적인 행보를 이어가면서, 두 종파 사이에 갈등을 넘어서 핍박을 가하는 상황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 유대 그리스도인들은 새로운 바람을 따라 기독교인이 되었다가, 박해라는 위기 속에서 다시금 옛 신앙의 자리인 유대교로 돌아가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어려움을 면하기 위해 그간에 붙잡고 있던 믿음의 고백을 슬며시 내려놓고 다시 옛것을 붙잡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그들을 지탱해줄 수 있는 버팀목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연유로 히브리서 기자는 반복해서 외치고 있습니다. 3:6에서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이라고 했고, 이어 히 3:14에서는 우리가 시작 할 때에 확신 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했습니다.

이제 유대 그리스도인들은 다시 돌아가서 과거에 그들이 붙잡고 있던 영원하지 못한 것들을 다시 잡는 것이 아니라 영원불변하신 예수님을 붙잡아야 한다고 히브리서 기자는 천명합니다. 4: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우리가 시작할 때 확신한 것을 끝까지 잡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마지막 날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서서 벌거벗은 것처럼 드러나게 될 것이라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내세울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우리가 행했던 일들을 가지고 변호하겠습니까? 7:22에서처럼 말입니다.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렇다면 우리는 주님의 냉혹한 응답만을 듣게 될 뿐입니다. 7:23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렇다면 자기가 소중하게 쌓아왔던 영적 자산 같은 것들을 자랑스럽게 내세울 수 있을까요? 우리는 다른 그 어느 것으로도 하나님의 눈앞에서 그분의 공의로움을 비껴갈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연약함을 변호해주실 수 있는 분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히브리서 기자는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큰 대제사장이 있다고 했습니다. 왜 큰 대제사장이라고 했을까요? 비교 불가, 대체 불가의 대제사장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알고 있던 구약의 대제사장이 아닙니다. 이 위대한 대제사장은 바로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이십니다. 이분은 승천하셨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매일같이 중보 하시는 대제사장으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이십니다. 바로 이분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다른 것은 전혀 필요 없습니다. 이분만 있으면 됩니다.

우리 신앙의 실체는 분명합니다.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이미 놀라운 분이 우리와 함께하고 계심을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에게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 순간 우리에게 어떤 영적 자산이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굳게 잡아야만 합니다.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라고 했습니다.

믿는 도리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영적 자산인 예수 그리스도를 꼭 잡아야 합니다. 참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매달려야만 합니다. 오직 예수님만을 전적으로 의지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생명을 보증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이분 외에 모든 것은 썩은 동아줄입니다. 결국 끊어질 것입니다. 나락으로 떨어지겠지요.

히브리서 기자는 15절과 16절에서 큰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굳게 잡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분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얻게 되는지에 대해 말씀합니다. 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우리에게 있는 큰 대제사장은 먼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한없이 약한 존재입니다. 언제나 시험과 유혹 앞에서 맥없이 쓰러지곤 합니다. 반면에 위대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그 모든 시험과 유혹을 완벽하게 이기신 분이십니다.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분이시지만 죄는 없으시니라그 분의 승리는 상처뿐인 영광이 아닙니다. 무엇으로 확실하게 이기는지 아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유혹받고 죄를 짓고 하지만 예수님은 그렇지 않으셨습니다.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셨지만, 결코 죄는 없으신 이유입니다.

그런 예수님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 어린 눈길로 바라보시고 우리를 품어주시는 것입니다. 죄 앞에서 무너졌던 우리를 변론해주시는 것이지요. 그것은 우리의 연약함을 공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감당하고 넘어서는 것이 어렵고 힘든 일임을 아시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2:18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무엇보다도 이 일에 공감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진정한 동정심이 나올 수 있겠습니까? 공감하지 못하는 동정심은 거짓입니다. 거기에서 우리가 어떻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느낄 수 있겠어요. 이것이 믿어질 때 그리스도를 굳게 잡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그 당시 유대 그리스도인들은 두려움이 있었던 거죠. 그건 하나님으로부터의 단절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갖고 있던 두려움을 제거하고자 하였습니다. 믿는 도리이신 큰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를 굳게 붙잡아야 하나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갈 수 있음을 선포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영적 자신감은 다른 것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큰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의 능력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바로 큰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힘입어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이 활짝 열려 있습니다. 4: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이 길에서 우리는 두 가지 놀라운 혜택을 입습니다. 하나는 긍휼하심을받고, 다른 하나는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게 될 것입니다. 은혜의 제공에는 제한이 없습니다. 유일한 조건은 그것을 기꺼이 받고자 하는 마음, 즉 그것이 꼭 필요하다고 여기는 생각입니다.

두 가지의 목적을 갖고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 자신의 의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의지하여 우리는 아버지에게서 긍휼하심을 입었습니다. 그러기에 매일같이 아버지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나아가 때를 따라 돕는 아버지의 은혜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믿는 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의 힘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위대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야 거룩하신 하나님에게 가까이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임재 앞에 나아가 우리는 긍휼과 은혜를 입습니다. 이것은 우리를 완전히 가라앉게 할 수도 있는 죄와 그로 인해 일어나는 어리석음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아버지의 긍휼과 은혜는 우리에게 자신감”(파레시아)를 갖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를 강하게 하여 스스로 딛고 일어나서 하나님 나라를 위한 봉사와 증언의 삶을 살도록 우리를 격려하는 강력한 힘입니다.

우리는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라는 든든한 배경을 가진 복된 존재입니다. 무의미하거나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들은 바울의 고백처럼 배설물처럼 버리고 오직 세상의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예수님, 우리가 붙들고 있는 예수님으로 인해 더는 흔들림 없는 영적 은혜가 넘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