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 17일 주일예배설교동영상
[예수를 깊이 묵상하자: 히 3장 1-14절]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보낸 40년을 지켜보다 보면 한 가지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신실하게 지켜가기가 그렇게 어려울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로 바로의 압제에서 해방되어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 전역에 내려졌던 열 가지 재앙과 홍해를 가르시고 백성을 이집트의 막강한 군대로부터 구해준 놀라운 일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했던 겁니다. 그렇다면 그다음에는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예상할 수 있어요. 이와 같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동행하시는데 무엇이 두렵고, 무엇이 걱정되겠습니까? 하나님만을 믿고 나아가면 되는 것 아니겠어요.
그러나 이런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죠. 먹을 물이 없다고 불평하고, 먹을 빵과 고기가 없다고 불평하고, 온통 불평 불평뿐이었습니다. 그들은 40년 동안 하나님께서 행한 일들을 보면서도 끊임없이 하나님의 인내를 시험하였습니다. 히 3:9 “거기서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여 증험하고 사십 년 동안 나의 행사를 보았느니라.”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을 위해 헌신하신 하나님을 불신하며 그렇게 행동하게 되었을까요? 기가 막힌 상황입니다. 그건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의 마음을 지키지 못해서입니다. 광야 생활에서 항상 마음이 미혹되었습니다. 히 3:10 “그러므로 내가 이 세대에게 노하여 이르기를 그들이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도다.” 그러니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할 수 없었던 거죠. 구원의 길을 알지도 못했고, 볼 수도 없었어요. 좀 더 냉철하게 보면 알려고도 하지 않았고 보려고도 하지 않았어요. 그저 자기들의 필요에만 집중했기 때문입니다.
놀라운 은혜를 입었음에도 마음을 끊임없이 지켜내지 못한다면, 그래서 늘 미혹되고 있다면 우리는 언제고 하나님 앞에서 불편한 마음으로 설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을 보았다, 무엇을 경험했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받은 은혜와 사랑을 기억하고자 우리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과 예수님과의 관계에서 우리 마음이 참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우리 마음을 지킬 수 있을까요? 마음을 바꿔 믿음의 길을 돌이키려고 했던 유대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히브리서 기자는 매우 중요한 것을 전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 2장에서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큰 구원을 소홀히 여기지 말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귀를 기울임으로써 구원의 자리를 지켜야 함을 전하였습니다.
오늘 히브리서 3장에서는 한 단계 더 깊어지도록 요청하고 있습니다. 히 3:1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예수님을 더욱 깊이 생각하도록 말씀하고 있습니다. 깊이 생각한다는 것은 자신의 마음을 어떤 것에 부지런히 적용하는 것입니다. 어떤 대상 혹은 사건에 대해 주의와 계속적인 관찰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1절은 우리가 예수님을 깊이 묵상하여 진지하게 그에게 우리 생각을 맞추고, 마음을 그분께 열어 우리 마음의 좌소에 예수님께서 앉으시도록 내어드리라는 의미로 확장해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생각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주되심을 보라는 겁니다.
아무나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지체이기에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고난을 겪으셨고, 죽으셨고, 부활 승천하시어 지금도 우리를 돕고 계시는 바로 그분을 말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오늘 우리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고백한다면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분을 깊이 생각함으로 항상 주를 마음에 품고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을 진정 흠모해야 합니다. 이것이 마음을 지키는 길입니다.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못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묵상의 자리를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생각할 틈이 없습니다. 현대의 삶은 너무나 바쁘고 쫓기고 분주합니다. 조용히 생각하는 시간은 진귀한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에 대한 묵상을 소홀히 하다 보면 영적인 진리에 관한 얄팍한 이해를 하게 될 위험이 커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럴 때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마음이 조금씩 무너지는 겁니다. 다른 것에 마음이 미혹되어서입니다. 그렇게 무너짐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마음을 돌이킬 수 없게 되죠. 우리 인간관계도 그렇잖습니까?
이렇게 마음이 무너져 완고해지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믿지 않는 악한 마음을 품고 가는 것은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지는 지름길입니다. 불신앙은 우리를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나가게 만듭니다. 이집트에서 놀라운 하나님 역사를 통해 구원받은 이스라엘 광야 백성들을 통해 이것은 이미 증명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신 일에 잠겨 있지 않았습니다. 그 은혜를 묵상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그날의 걱정과 염려를 묵상했을 뿐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향해 마음이 완고해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 때문에 고생,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이라는 광야 안에서 각종 유혹과 시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그리스도인들이 그 어떤 상황에서도 그리스도에 대한 영적인 담대함과 헌신을 유지하고 지켜내기 위해서는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하고, 그분께 우리의 생각과 시선을 고정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은혜의 자리, 안식의 자리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일회적인 행동을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상적인 행동의 요구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매우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깊어진 묵상이 자기에게만 내재되는 것이 아니라 지체들에게 흘러갈 수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교회는 다양한 지체들로 이루어진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자신만을 생각하지 말라는 겁니다.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 주님이 기뻐하는 길로 함께 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서로를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게 살아있는 몸입니다. 히 3:13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매일 예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하고 그 말씀을 믿고, 순종할 뿐만 아니라 이것이 다른 이들의 삶에서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 피차 권면하며 나눌 때 죄의 유혹을 이기며 나아갈 수 있습니다.
서로 돌봄이 부재할 때 환경의 다양한 도전 속에서 그것을 이겨내지 못하고 그리스도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이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기에 언제나 서로 힘을 북돋아 주고 격려를 아끼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한 사람 그리스도인이 성공적으로 살고 증거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교회는 중요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힘을 북돋아 주며 격려해 주는 지체들의 사역에 의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모든 지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동료들을 격려하고 돕기 위해 매일 기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광야공동체는 그렇게 서로를 돌보기보다는 집단적인 히스테리에 빠져 하나님께 불순종했습니다. 같이 불평했습니다. 말씀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은혜를 깊이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당연히 들어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그들의 죄로 인해 유기되었습니다. 히 3:11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였느니라.” 이 비극적인 결과를 우린 늘 기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길에서 영적인 긴장감을 늦추지 말아야 합니다.
히 3:12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그와 함께 적극적인 대처가 요구됩니다. 히 3:14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처음 믿음의 길에 들어섰을 때 확신한 것, 우리의 구원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끝까지 잡고 가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집에서 특권을 누리는 일원이지만 그 일원이 되는 것은 무조건적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집의 일원으로서 안전과 은혜를 분명히 함께 누립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끝까지 견고히 잡을’ 때만 가능한 은혜입니다.
그렇게 어떤 어려움이 있던지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우리의 믿음을 지키면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나라에 참여한 자가 될 것입니다.
그러니 끝까지 갑시다. 가다 멈추면 아니 감만 못하다고 했습니다. 멈추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갑시다. 거기에는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의 기쁨과 은혜가 넘칠 것입니다. 지금 보이는 것 때문에 연연해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고 하였습니다.
히 3:6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 하셨으니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
하나님이 내주하는 거룩한 집입니다. 아무런 목적 없는 삶이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 거주하시는 거룩한 집입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인생에 어떤 놀라운 일들이 있을지 기대하며 이 길을 갑시다. 하나님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완악한 마음으로 믿고 순종하여 가지 않으면 우리는 안식에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히 3:19 “이로 보건대 그들이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
우리는 두 가지 결과를 알기에 시급하게 결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앞으로 나아가며 영적으로 유효한 행동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참여한 자가 되시겠습니까? 아니면 들어가지 못한 자가 되시겠습니까?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묵상하며 그 은혜를 힘입어 참여한 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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