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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동영상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눅 1장 26-38절]

by 최수근 2017. 12. 25.

2017년 12월 24일 주일설교동영상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눅 1장 26-38절]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예수생명교회 최수근 목사

이스라엘의 나사렛이란 동네에 살고 있던 마리아는 요셉과 약혼한 사이였습니다. 이렇게 약혼을 하면 일 년 정도 후에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그런 마리아에게 천사 가브리엘이 방문을 하였습니다. 그 방문은 하나님께서 보낸 방문이었습니다. 천사가 방문한다는 것은 신비로운 일이었고, 축복된 일이었습니다. 첫 인사도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였습니다.

급작스런 천사의 방문과 함께 던져진 말을 듣고 마리아가 놀라워하며, 어찌 이런 인사를 천사가 자신에게 하였는지 생각을 하였습니다. 천사의 방문으로 인해 마리아가 놀라워하며, 천사가 던진 인사말로 인해 생각할 때 천사가 말하였습니다.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하지만 이어서 선포되는 천사의 말은 결코 은혜를 입은 것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31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구원자를 낳게 된다는 소식은 이 땅에 누구나 들을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그일 만을 놓고 보면 큰 축복입니다. 큰 영광인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 결혼하지 않은 마리아였습니다. 천사 가브리엘은 그런 마리아에게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될 상황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결혼 전에 잉태하여 아기를 낳게 된다면 이건 경악할 일입니다. 동네 사람들의 비난을 넘어서 마리아가 돌에 맞아 죽을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불행한 일이 펼쳐지게 될지도 모르는 마리아에게 은혜를 입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어찌 타당한 표현이겠습니까?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천사 가브리엘이 망언을 하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는 겁니다.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일이기에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합니다.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이건 지극히 정상적인 질문입니다. 천사가 전 한 것은 인간의 상식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들의 생각을 넘어서는 놀라운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의구심의 눈으로 바라보는 마리아를 보면서 가브리엘 천사가 대답하였습니다.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잉태하여 태어날 아기는 단순한 인간이 아닌,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생리학적인 수준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육체의 질서가 아닌 하늘의 질서, 즉 성령이 능력으로 임하시고, 하나님의 능력이 마리아를 덮으심으로써 이와 같은 일이 이루어지게 될 것을 천사는 이야기 한 것입니다.

우리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이 하시겠다는 것이죠. 이것은 마리아를 통해서 나실 분이 단순한 한 인간이 아니라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를 지사 우리를 대속하실 하나님의 아들, 곧 구원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천사는 마리아가 이런 일을 쉽게 수용할 수 있도록 친족 엘리사벳 또한 늙어서 임신을 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6개월 전에 아들을 임신한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녀 또한 임신할 없는 상태였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임신했다는 것입니다.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그러나 아무리 하나님의 역사라고 해도 지금 닥친 마리아의 상황은 개인적으로, 결혼을 앞두고 있는 처녀로서 참으로 당혹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보통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는 것을 이야기 할 때 이런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은 전혀 아닐 것입니다. 이처럼 전혀 은혜 입을 자의 모습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천사 가브리엘은 마리아를 은혜를 입은 자라고 호칭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주께서 함께 하신다고 했는데, 그녀를 지켜주시기는커녕 군중에게 돌 맞아 죽을 일이 일어난다고 하면 참 당황스러운 상황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세상적인 관점으로 볼 때 결코 마리아는 은혜를 입은 자가 아닙니다. 불행한 상황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마음이 평안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버림받은 것처럼 보여지는데 말입니다. 버림받은 존재가 되어 군중들의 돌팔매로 죽을지도 모르는 자리로 내몰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인간의 수준, 인간의 상식으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반면에 우리는 개인적인 이익의 측면에서 많은 것들을 바라보고 접근합니다. 마리아가 은혜를 입은 것은 인간을 죄에서 구원할 메시야를 잉태함으로 그녀가 구원의 통로, 복의 통로로 부르심 받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복의 시간 이전에 고난의 시간이 있기도 합니다. 그러니 세상의 눈으로 바라보면 하나님의 은혜를 볼 수 없는 것입니다. 하늘의 시각으로 바라보면 보이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어머니이자 마리아의 친척인 엘리사벳이 마리아가 그녀의 집을 방문했을 때 뭐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엘리사벳이 성령이 충만하여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내 주의 어머니가 내게 나아오니 이 어찌된 일인가?”

당장은 고통이고, 이해할 수 없는 상황으로 하나님의 역사는 다가오시지만 거기에 순종하면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32-33절에서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날 아기에 대해 말합니다.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어둠의 나라는 끝나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회복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일에 도구로 쓰임 받는 마리아가 은혜를 입은 것이고 복 있는 여인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라보시는 것과 우리들의 바라보는 것의 시각적 편차는 이렇게 엄청나게 큰 간격입니다. 우리는 단지 좋은 것, 아름다운 것, 형통한 일 등을 은혜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감당할 만하지 못하지만 그것을 부여안고 오직 믿음으로 나아가기를 기뻐하는 것이 은혜를 입은 자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당장 하나님의 뜻은 알 수 없지만 말입니다.

우리는 너무 우리의 욕심과 우리의 작은 이기적인 마음으로 은혜를 분석해버리기 쉽습니다. 은혜를 사모한다고 하면서도 우리 자신이 설정해 놓은 은혜의 작은 틀 안에 안주하려고 합니다. 그래서는 결코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선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리아처럼 말입니다. 38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이해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 무릎 꿇을 수 있는 순종이야말로 하나님께로부터 진정 은혜를 입는 자들의 고백인 것입니다. 그래야 내 삶 속으로 주님이 내 삶의 완고한 틀을 깨뜨리고 들어오셔서 우리를 통치하실 수 있습니다. 의의 도구로 나를 순전하게 드릴 때만이 주님이 나를 통해 일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내 삶으로 훅 다가오셔서 일하시고자 할 때 자신의 자그마한 유익을 위해 막아선다면, 순종하지 않는다면 구원의 은혜는 없습니다. 반면에 은혜 받은 것 같지 않은 상황처럼 보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처한 환경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깊어질 때, 그래서 주님의 뜻이 자기를 통해 이루어지기를 갈망할 때 우리는 진정 은혜 받은 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고, 그 삶이야말로 하늘의 복을 누리는 삶입니다. 45절에서 뭐라고 엘리사벳이 이야기 합니까?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내일이면 성탄절입니다. 매년 우리는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 날까지 이 절기를 지킬 것입니다. 이 절기를 지내며 우리의 삶 속으로 다가오신 예수님과 동행함으로 진정 은혜를 입은 자로서 살아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마리아처럼 우리의 삶에 이루어진 예수님의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물론 은혜를 입은 자라고 하지만 고통과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들이 해소되기보다는 더 가중될 수도 습니다. 주님과 함께 가는 길이 어리석어 보일 수도 있습니다. 오늘같이 이성이 판치는 세상에서 신앙대로 살려고 하는 것이 극단주의자처럼 비출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주변부로 밀리는 인생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세상의 자리에 다른 사람들처럼 서 있기 보다는 세상 속으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들어오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질 은혜에 대해, 그것들을 기대하며 믿음의 경주를 감당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절기를 보내며, 구원자 되시는 예수님과 동행함으로 은혜 받은 자로 주께서 주시는, 세상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기쁨과 평안을 누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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