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25일 주일예배설교문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요 6장 47-58절]
최수근 목사
얼마 전 신문에서 뉴스 하나를 읽으면서 마음이 너무도 아팠습니다. 탈북했던 여인이 6살 아들과 함께 임대아파트에서 굶어 죽은 채로 두 달 만에 발견된 것입니다. 은행 잔액은 제로!! 집 안 냉장고에 먹을 거라고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쌀이 남아돌아 그것 관리하는데 년 4,000억이 들어간다고 하는데, 우리 사회가 점점 무심해져 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우리나라를 넘어 특히 아프리카로 넘어가면 굶어주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자그마치 전 세계적으로 매년 600만 명이 기아로 사망하고 그 중에 2세 이하의 영유아 사망이 500만 명이나 됩니다. 우리가 먹을 수 있다는 것이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하지만 굶지 않고 잘 먹는다고 해서 다 잘 사는 것은 또 아닙니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육식과 인스턴트 음식 중심으로 식생활이 바뀌면서 대장암을 비롯한 암의 발병율이 높아졌고, 당뇨, 고혈압, 심장과 혈관질환 등이 늘어나 사람들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너무 잘 먹어서 각종 질병으로 죽는 이들이 전 세계적으로 그 수가 굶어주는 사람들 수보다 엄청나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굶어서 죽고, 너무 잘 먹어서 죽고!!! 무엇을, 또 어떻게 먹느냐가 중요합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점점 세계가 영적으로 굶주려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 기독교의 영성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기독교 세계가 분별해서 먹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계몽주의 이후 자유주의신학이 출현하면서 영성에 도움 안 되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영역의 날것들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로 인해 유럽교회가 초토화되었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도 마찬가지로 그런 증상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게다가 비기독교적인 다양한 소스들이 공급되면서 교회가 교회로서 갖추어야 할 신령한 영성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공급 루트가 왜곡되었기 때문입니다.오늘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데 그래서 먹거리가 중요합니다.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여전히 그 이전에 삶의 자리에서 누렸던 먹거리들을 공급받고 있다면, 결국 그 사람은 변화 받지 못하고 옛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잠깐 반짝하는 은혜로 버틸 수는 있겠지만, 지속적인 신령한 양식의 공급이 없으면 그 어떤 영적 변화와 성숙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결국 새 생명의 기쁨을 느낄 수 없게 됩니다. 새롭고, 맛있는 것을 먹었을 때 오는 행복함을 누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구원받은 우리가 먹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말씀하셨습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은 자신을 생명의 떡이라 말씀하시면서 출애굽 때 이스라엘 사람들이 먹었던 만나와 살아 있는 떡이신 예수님을 비교하셨습니다. 그 둘의 차이는 죽음이냐 생명이냐로 드러납니다. 만나는 먹어도 수명이 다하면 결국은 죽었습니다. 하지만 살아 있는 떡이신 예수님을 먹으면, 물론 수명이 다하여 마찬가지로 죽겠지만,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함께 그 죽음을 너머 영원히 살게 되는 것입니다.
둘 다 하늘에서 내려왔습니다. 만나도 하나님께서 내려 주셨고,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도 하늘에서 내려오셨습니다. 하지만 만나는 하루가 지나면 썩어지는 양식이었고, 예수님은 영원히 살아 있는 떡이셨습니다.
다시 말해 만나는 한 날의 생명을 위한 양식입니다. 그 한날이 지나면 아무리 많이 챙겨놔도 썩어버렸습니다. 그 점에서 만나는 단지 그들의 육체적인 하루의 배고픔을 채워주기 위한 양식이었을 뿐입니다. 오늘 우리의 눈으로 보면 만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는 임시적인 방편이었지 우리 영혼을 위한 영원한 양식은 아니었습니다.
오늘 많은 그리스도인이 영성으로 풍요해지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일용할 양식, 즉 하나님 주시는 이 땅의 만나에만 모든 관심이 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만나를 먹고 므리바 반석의 물을 먹는 것이 우리 믿음의 목표처럼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만나가 없으면, 반석에 물이 없으면 믿음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와 같은 한시적인 육신의 양식을 넘어 사람들이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도록 만드시는 새로운 양식을 먹도록 선포하시면서 사람들을 초청하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은 떡의 비유를 더 구체화 시켜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생명의 떡을 먹어야 한다고 촉구하셨습니다, 51절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예수님은 반복해서 먹고 마신다는 말을 사용하셨습니다. 이에 유대인들도 혼란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52절에서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자기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 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출애굽 당시 유월절 제정의 장면을 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유월절 희생양을 온 가족이 그 밤에 먹어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먹고 마신다는 말씀을 통해, 사람들을 살리시기 위한 희생양으로 이 땅에 오신 자신을 증거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어떻게 먹을 수 있을까요? 물론 이것은 단순히 음식을 먹는 개념이 아닙니다. ‘먹는다’는 것은 온전히 개인적으로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한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고 생명의 주로 영접하는 직접적인 행동입니다.
47절과 51절에서 예수님은 믿는 것과 먹는 것을 동일시하셨습니다. 47절에서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라고 했고, 51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하였습니다. 54절에서는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말씀하심으로써 믿음의 행동을 먹고 마시는 것으로 더 구체화 시키셨습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영접해야만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육체적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 행위인 먹는 것과 관련해서 보다 실감 나게 전달하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먹는 것은, 내게 그 어떤 의미도 없습니다.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희생양이 되시어서 십자가상에서 부서지고 흘려진 예수님의 몸과 피는 그분을 믿는 행동 안에서 각 개인의 것이 되어야만 합니다. 개인이 음식을 먹는 것과 같습니다. 보는 것으로 음식은 그 어떤 영양분도 제공하지 않습니다. 먹어야 만이 실질적인 영양을 공급받습니다. 내가 음식을 씹어 받아들이는 것처럼 우리가 인격적으로 구체적으로 주님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생각 속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믿음의 행동이 드러나야 합니다.
거기에서부터 그리스도와 성도의 온전한 연합이 이루어집니다. 56절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일은 성도와 예수님의 상호적 ‘거주’로 귀결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한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다소 불편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그리스도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행동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생하고도 충격적으로 전하는 그림 언어이자 믿음의 퍼포먼스입니다.
성서신학자 아돌프 슈라터는 이야기하기를 “우리가 그의 살과 피를 대해야 할 태도는 그냥 씹고 삼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의 십자가에 달리신 몸과 쏟으신 피에서 우리 생명의 근거를 발견하며, 우리가 우리의 신앙과 소망을 바로 그 몸과 피에 두고 거기에서 우리의 사고와 의지를 끌어내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이야말로 이 세상 죄를 위한 희생 제물로 하나님 아버지에 의해 보내심을 받은 분임을 우리의 이성, 지성, 인격을 통해 실제적으로 믿게 되는 것입니다.
거기로부터 시작해서 매일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광야의 만나와 므리바 반석의 생수에 갇혀 있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는 인생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께 집중되어 예수님을 묵상하고 예수님을 누리며 예수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을 더욱 다져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항상 예수님과 함께 하며 예수님으로 채워지는 길입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말하였습니다. “믿으라. 그러면 당신은 먹은 것이다.”
다른 것을 먹으면 잘 먹어도 죽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잘 분별하여 먹지 않으면 죽습니다. 우리의 영적 먹거리를 잘 분별하여, 생명의 떡이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을 사는 은혜를 입기 바랍니다.
58절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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