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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SION

캄보디아 소개

by 최수근 2018. 1. 18.

[캄보디아(Cambodia)]

 

 

통계 자료

 국명: 캄보디아 왕국(Kingdom of Cambodia)

 면적: 181,035 sq km

 인구: 16,204,486명 (2017년 통계)

 수도: 프놈펜(Phnom Penh)

 인종: 크메르족 90~95%, 이외 중국인, 베트남인 거주

 언어: 크메르어, 불어, 영어

 종교: 불교 95%, 무슬림과 애니미즘도 존재

 

동남아시아 인도차이나 반도 남서부에 위치한 입헌군주국. 정식 국명은 캄보디아 왕국(Kingdom of Cambodia). 수도는 프놈펜. 공용어는 크메르어다. 크메르어는 다른 동남아 언어와 달리 성조가 없다. 소수지만 중국어, 태국어, 프랑스어, 영어도 사용된다. 교육과정에서는 영어와 프랑스어를 사용하지만 영어가 대중적이다 

현재 인구는 약 1,620여만 명. 유아사망률이 높고, 에이즈에 의한 사망률도 높은 편이다. 한국에선 캄보디아 하면 앙코르 와트와 발 마사지를 생각할 것이다. 킬링필드라는 역사상 최악의 사건도 유명하다.

30여년 사이에 국호(國號)3번이나 바꾸었다. 캄보디아(Cambodia: 1953~1970, 1993~), 크메르(Khmer: 1970~75), 캄푸치아(Kampuchea: 1975~93). 참고로 캄푸치아는 '캄보디아'의 베트남식 발음.

이 나라의 언어는 '크메르어(khmêr)', 민족은 '크메르인'으로 부른다. 이는 영어 표기이고 로마자 표기 시 ae 발음을 ê라고 쓰기 때문에 현지 발음으로는 '크마에'라고 해서 한글표기와 실제 발음 간에 좀 괴리감이 있다.

세계 최빈국 중 하나로 1999년에야 비로소 공식적으로 내전이 끝났다. 1993년에 입헌군주제를 채택하여 국왕이 프놈펜의 왕궁에 머무르긴 하지만, 일본이나 영국처럼 실권이 없으며, 총리가 정치를 대부분 맡는다. 그러나 아직 민족주의 의식이 강해서 총리도 중대사, 특히 외교문제를 처리할 때는 국왕 눈치를 조금은 보는 듯하다.

2017년까지도 국왕에게 공식적인 왕비도 없고 자식도 없다. 현 국왕 노로돔 시아모니는 1953년생으로 이미 환갑이 넘었다

태국, 미얀마, 라오스와 마찬가지로 국민 대다수가 상좌부 불교를 믿는다. 2015년에는 러시아 정교회 성당이 건립되었다.

 

지리

 

인도차이나에서 국토면적이 가장 작지만, 그 면적이 남한의 1.4배쯤 되는 관계로 국토가 그렇게 좁진 않다. 전반적으로 평평한 편이고 국경지대로 가면 산이 조금 있다. 산맥다운 산맥으로는 서쪽에 끄라바인(Krâvânh) 산맥이 하나 있는데, 여기에 캄보디아 최고봉으로 해발고도 약 1,800 m인 프놈 우랄이 있다. 위성사진으로 보면 태국-캄보디아 국경이 아주 잘 보이는데, 태국 쪽은 전부 개간된 농지인 반면 캄보디아 쪽은 전부 숲이라 국경이 잘 보인다. 마찬가지로 캄보디아-베트남도 전부 논인 베트남 남부와 캄보디아의 사바나가 두드러져 국경이 잘 보이는 편. 실제로 캄보디아는 태국과 베트남과 달리 아직 자연이 그런대로 보존되었다. 국토 중서부에 톤레삽 호수가 있는데, 건기에도 큰 호수이지만 우기에는 심하게는 10배 가량 커지며, 국토의 동쪽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메콩강의 수량조절역할을 한다.

기후는 강수량이 많지만 우기에 집중되어 있다. 날씨는 건기엔 건조하며 덥고 우기엔 습하며 더운 열대기후가 일반적으로 나타난다. 다만 연교차는 좀 있는 편으로 1월 즈음엔 25정도로 따뜻한 날씨를 띄지만 3월부터 더워져 40가까이 올라가고 5월부턴 비가 차츰 오기 시작하는데 만약 우기가 늦게 시작하면 관개시설이 부실한 연유로 헬게이트가 열린다. 우기는 9-10월쯤 정점을 찍고 난 후부터 기온도 내려가고 비도 덜 온다.

역사

1~6세기 경 현재의 캄보디아에는 중국과 인도 사이의 무역로를 차지하고, 번성을 구가하던 후난(Funan) 왕국이 있었다. 건축과 조각에서 두각을 나타낸 앙코르 시대는 800년 경 자야바르만 2(Jayavarman II)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의 재위 기간에 정교일치의 권한을 가진 데바라자(devaraja;(神王))의 크메르 통치가 성립되었다. 앙코르 주변에 관개시설을 이용한 집약적인 농사가 이루어졌으며, 그 결과 크메르 인들은 고도로 중앙집권화된 국가에서 많은 인구를 부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1863년부터 90년 동안 프랑스가 캄보디아와 베트남을 식민지 통치했으며, 1953년 캄보디아 는 독립을 선언했다. 그후 15년 동안 노로돔 시하누크(Norodom Sihanouk) 왕이 캄보디아 정치를 좌지우지했다(후에 그는 수상, 국가 원수를 거친 다음 다시 왕으로 복귀했다). 하지만 그는 좌우 세력을 오가며 연합전선을 펴는 변덕스러움과 억압적인 정치스타일 때문에 1970년 군부에 의해 쫓겨나 중국으로 망명했다. 1969년부터 캄보디아는 베트남 전쟁에 말려들었다. 미국은 캄보디아 내에 있다고 의심되는 공산군 기지를 부수기 위해 비밀 융단 폭격을 실시했으며, 1970년 쿠데타 후에 미국과 월남군은 월맹군의 뿌리를 뽑기 위해 캄보디아를 침공했다. 그들의 침략은 실패했지만 캄보디아의 자체 혁명 세력인 크메르루즈(불어로 루즈는 붉은색을 뜻한다)를 내륙 오지로 몰아내게 되었다. 이후 캄보디아 전체가 참혹한 싸움에 빠져들었으며 사이공이 함락되기 2주 전인 1975417일 크메르루즈가 프놈펜을 점령함으로써 전쟁이 끝났다. 곧 크메르루즈의 지도자 폴포트(Pol Pot)의 지휘아래 지금까지 행해진 것 중 에서 그 어떤 것보다 급진적이고, 잔인한 사회개조가 시도되었다. 목표는 캄보디아를 농민이 지배하는 사회주의 농업협동조합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이후 4년 동안 식자층을 포함한 대부분의 도시인들이 농촌 지역으로 재배치 되었으며, 고문을 당해 죽거나 처형당했다. 수 많은 사람들이 기생충으로 분류되었고 단지 외국어를 구사한다든지 안경을 썼다는 이유만으로도 간단히 죽임을 당했다. 또한 영양부족,질병, 방치 등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크메르루즈의 정책 때문에 적어도 백만명, 많게는 2백만명의 캄보디아 인들이 1975~79년 사이에 죽었다. 1978년 말 베트남이 캄보디아를 침공했으며, 그 결과 크메르루즈는 태국과의 국경지대에 있는 캄보디아 서쪽의 정글로 쫓겨갔다.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에 걸쳐 크메르루즈는 중국과 태국(간접적으로 미국이 지원)의 도움을 받아 베트남의 조종을 받는 프놈펜 정부에 대항하여 게릴라전을 전개했다. 1993년 중순 유엔의 관리하에 캄보디아에서 선거가 치뤄졌다. 새로운 헌법에 의해 노로돔 시하누크가 다시 왕이 되었다. 이후 독립연합전선(United Front for an Independent)의 노로돔라나리드 왕자(Prince Norodom Ranariddh)가 이끄는 FUNCINPEC(Neutral and Free Cambodia)당과 훈센(Hun Sen)이 이끄는 캄보디아 민중당(Cambodian People's Party)이 합쳐 연정을 이루었지만 1998년 중반 선거를 통해 훈센이 단독 수상의 지위를 확보했다. 한편 크메르루즈는 완전히 와해된 것은 아니지만 19984월 폴포트가 심장병으로 사망하면서 그 세력이 급격히 약화되었다.

문화

크메르 건축은 앙코르 시대에 그 정점에 이르렀다. 이 시대의 훌륭한 건축물들 중 일부가 앙코르왓(Angkor Wat)과 앙코르톰(Angkor Thom)이다. 뛰어난 크메르 조각품의 다수가 프놈펜에 있는 국립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타이댄스와 비슷하고 원류도 같은 앙코르댄스로부터 채택된 전형화된 캄보디아의 고전춤이 전통악단과 여러 사람의 이야기꾼을 동반해서 공연되고 있다. 프놈펜과 시엠레압(Siem Reap;앙코르)에서 고전춤을 볼 기회를 쉽게 가질 수 있다. 크메르 인들은 동남아시아 전체를 통털어 가장 사귀기 쉬운 사람들이다. 태국에서처럼 캄보디아 인들은 손을 기도하듯이 앞으로 모아 허리를 굽히면서 인사를 한다. 그리고 동남아시아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사람을 부를 때는 손바닥을 아래로 해야하며, 어린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면 안된다. (wats; )에서는 상식적으로 행동하면 되는데 몇 가지 주의할 점은 다음과 같다.

반바지나 수영복 모양의 상의를 입지말 것

왓의 마당으로 들어갈 때 모자를 벗을 것

법당(vihara)으로 들어갈 때는 신발을 벗을 것

불상 앞에 앉을 때는 양반 다리를 하지말고 무릎을 꿇을 것

손가락으로 불상이나 사람을 가르키지 말 것

소승불교가 캄보디아에서는 가장 널리 퍼져있으며 1975년까지는 국교였다. 1980년대 후반 소승불교는 국교로 복귀했다. 1975~79년 사이 수많은 캄보디아 승려들이 크메르루즈에 의해 살해 당했으며, 3천 개가 넘는 절들이 파괴되었다. 1990년대 많은 절들과 모스크가 복원되었으며 스님들의 탁발이 다시 일상적인 모습이 되었다. 캄보디아 음식은 이웃의 태국, 라오스 음식과 흡사하며, 베트남 음식과도 비슷하다. 하지만 독특한 현지 음식도 있다. 크메르 요리는 향료가 들어가지 않은 태국 음식같다. 시엠레압에도 좋은 식당이 많지만 프놈펜은 크메르 음식을 먹기에 가장 좋은 곳이다. 더불어 프놈펜에서는 태국, 베트남, 중국, 프랑스, 지중해식 요리도 쉽게 먹을 수 있다. 쌀이 주식이며 밧땀방 지역에서 가장 많은 쌀이 생산된다. 대부분의 캄보디아 음식은 현지에서 chhnang khteak이라고 부르는 오목하게 생긴 큰 후라이팬에서 조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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