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2월 25일 주일설교동영상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삽시다: 벧전 4장 1-6절]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평창 올림픽에 핫이슈는 여성 컬링일 겁니다. 생소했던 게임이 우리 컬링대표들의 선전으로 인해 사람들의 인기를 얻었습니다. 빗질하는 모습이 처음에는 우스꽝스러웠는데 게임법칙을 좀 알고 보니까 재미있습니다. 인터넷상에도 이들의 게임을 패러디한 각종 영상물이 엄청 많이 올라와 있습니다. 아마도 의성의 컬링대표선수들이 성공적인 열매를 맺는 것을 보고 영향 받아 컬링에 입문하는 사람들이 많아 질 것 같습니다.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이렇게 전 국민적인 관심사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여러 상황 속에서 영향을 받고 그 영향에 따라 행동하게 됩니다. 물론 그 영향이 부정적인 것 일수도 있고, 긍정적인 것 일수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지금 어떤 것들과 연결되어 있는가가 참 중요합니다. 오늘 여러분의 삶에 지속적인 영향을 주고 있는 것들은 무엇입니까? 그것들이 내게 지속적으로 좋은 영향을 줄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들도 있을 것입니다.
베드로전서의 독자들 처한 삶의 정황을 보면 고난의 환경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 신앙을 지켜가기에 쉽지 않은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성도들이 고난 가운데 죽는 상황도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들이 그 고난을 넘어 신앙의 경주를 끝까지 지속할 수 있도록 영향을 줄 수 있는 모델이 필요했습니다. 이런 이들을 향해 사도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고난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1절 상반절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고난 받으셨음을 상기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자신의 허물로 인해 죽으신 것이 아니라 성도들을 위해 죽으셨음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일은 참 인간이셨던 예수님께는 기쁘고 즐거운 일이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겟세마네 기도를 보면 처절하게 기도하시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고난의 잔을 피하고 싶은 자신의 뜻보다도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셨던 것입니다.
따라서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전서의 독자들을 향해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누구와 같은 마음이겠습니까? 그리스도와 같은 마음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고난에 직면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았을 때 가졌던 생각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서 스스로를 정신 무장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시며 고난의 길을 가셨을 때 가졌던 생각은 무엇이겠습니까? 좀 전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아버지의 뜻과 아버지의 영광에 있었습니다. 그 길이 힘든 길이지만 하나님의 뜻이기에 순종하셨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들의 삶이 고난으로 점철된 삶이 아닐 겁니다. 하지만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가는 길은 세상적으로 볼 때 불편한 길이기도 합니다.
베드로전서 말씀은 이처럼 고난에 직면해 있던 성도들에게 예수님을 성도가 실천해야 할 삶의 완전한 모범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고난의 자리를 넘어 선 그리스도를 본받으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우리도 내 뜻이 아닌 아버지의 뜻이 우선되는 삶으로 서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갑옷을 삼지 않으면 우리는 100% 뚫리고 말 것입니다.
그와 함께 우리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함께 참여함으로써 더 이상 죄의 노예가 아닌 의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써 우리는 죄에 대해 죽은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 이후에 우리의 삶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사람의 정욕은 하나님의 뜻과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사람의 정욕은 타락한 본성에서 비롯된 모든 죄악된 욕망들로써 하나님의 계시된 의지를 거스르는 것을 가리킵니다. 음란, 정욕, 술취함, 방탕, 향락, 무법한 우상숭배 등입니다. 이것은 이방인의 뜻과 일치합니다. 이것들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른다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구하고, 생명을 살리는 일입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그와 함께 숨겨진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의 구속사에 순종하며 가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 받으심을 통해 구원받았고, 이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신분이 전환되었습니다. 과거 사람의 정욕을 따라 살았던 삶은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방인으로서의 삶은 옛날로 족한 것입니다. 거기에 마음을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죄는 거룩하신 하나님과 공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변화된 우리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하나님의 통치 가운데 있는, 그래서 죄를 떠난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삶아가는 삶으로 전환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 당시 사회에서는 음란, 정욕, 술취함, 방탕, 향락, 무법한 우상숭배, 등 매우 흔하게 자행되었던 폐해이며 악습이었습니다. 그런 속에서 회심한 그리스도인은 세상과 구별되어야 했기에 그런 이들과 같이 있는 것이 불편했고, 반대로 세상 사람들도 그리스도인들이 낯설고 불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적당히 타협하며 살 수는 없습니다. 타협하고 있다면 타협점에서 물러서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과거에 익숙했던 모든 것에 대해서 낯선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전히 낯설지 않다면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무늬만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입니다. 진정 회심한 성도들은 오히려 주변 사람들이 낯설어 하고 불편해 합니다. 그래서 핍박하는 것입니다. 잡아먹지 못지 안달하는 것입니다. 거룩함으로 인해 자신들의 죄가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헤롯 왕이 세례 요한을 왜 죽였겠습니까? 단지 자신의 죄가 드러나니까 불편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나 있는 자들은, 하나님의 뜻에 대적하고,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적대적인 행동을 하는 자들과 함께 하나님 없는 세상은 결국 하나님 앞에서 심판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의 죄악상을 낱낱이 실토해야 하며 그들이 행했던 그대로 하나님으로부터 정죄 받게 될 것입니다.
복음은 두 가지 분명한 사실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구원받아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이고, 그렇지 못한 자들은 영원한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이와 같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셨고, 제자들도 다시 오실 예수님을 증거 하면서 분명히 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면서, 그와 함께 오늘 이 땅에서 과거 옛 사람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우선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의 삶의 온전한 모범이 되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이 고백했던 것처럼 우리의 심장을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이식하고, 그리스도의 뜨거운 마음으로 우리들의 삶에 갑옷을 삼아서 이기는 자로서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 주님이 십자가의 고난을 담당하셨고, 오늘도 그 고난의 자리에 동참하실 것을 우리에게 촉구하고 있습니다. 벧전 2장 21절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복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셨느니라.”
복음의 길은 평안하고 안락한 길이 아닙니다. 복음의 길은 불편한 길이며, 참으로 낯선 길입니다. 좁은 길입니다. 하지만 이 복음의 길 끝에는 우리 구원의 완성인 놀라운 하나님의 선물이 우리를 맞이할 것입니다. 오늘 이 땅에서도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살아가도록 우리를 이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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