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6월9일 주일말씀의 피드백
[ 복음증거를 멈출 수 없습니다 : 행4장13-22절 ]
세상의 불의함에 맞선 사람들
세상의 권력자들은 일반 대중들이나 지식층, 또는 반대세력들이 자신의 통치철학과 맞지 않을 때, 단호하게 대처하는 경향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다 숨죽이고 있지 않았습니다. 강력한 독재정권에 항거해서 자신의 목숨까지도 불사하고 숱한 목소리를 내었던 분들이 있었습니다.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탄압
이미 예루살렘에서도 한 차례 광풍이 지나갔습니다. 유대교 종교지도자들은 갈릴리로부터 시작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추종했던 세력을 그들의 지도자였던 나사렛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함으로 다 끝장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오순절 날 갑자기 나타난 베드로의 설교를 통해 3000명이 부활하신 예수를 믿고, 평생 앉은뱅이였던 사람이 고침을 받아 일어나는 사건을 통해 사람들이 술렁거리는 것을 보고 유대의 당국자들은 긴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에 대한 트라우마를 갖고 있던 터라 초장에 사도들의 기세를 꺾어버려야겠다는 생각에 이들 권력집단은 베드로와 요한을 긴급체포하여 옥에 가두었습니다.
성령충만하여
다음 날 종교지도자들이 총출동하여 두 사도를 심문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체포하여 심문했던 것처럼 두 사도에게 똑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지난번 예수님이 잡히시던 날 밤 세 번씩이나 비참하게 예수를 부인했던 베드로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성령 충만한 베드로는 이제 예수님이 체포되던 당시 도망치던 비겁한 베드로가 아니었습니다.
과거 여린 여종에게 조차 부인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성령 충만함으로 위세 등등한 종교지도자들에게 베드로는 담대하게 증거 하였습니다. 더 이상 죽음을 무기로 양심을 압박하는 종교지도자들과 정면으로 맞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였습니다.“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거짓 세력의 위협
유대교 종교지도자들은 담대하게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다”고 담대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것을 보고 놀라워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진실을 쉽게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 일을 어떻게 타개할까 고민하다가 결론을 내렸습니다. 사도들의 입을 틀어막고자 했습니다. 17절“이것이 민간에 더 퍼지지 못하게 그들을 위협하여 이 후에는 이 이름으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종교지도자들이 내세운 방법은 위협이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을 위협하며 경고하였습니다. 18절“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제자들의 입을 봉쇄해버리고자 했습니다.
누구를 위하여 충성할 것인가?
이에 맞서 꿈쩍하지 않고 베드로와 요한은 많은 종교지도자들 앞에서 담대하게 말하였습니다. 19절“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사도들은 유대종교지도자들의 권세보다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의 권세를 더욱 두려워했습니다.
20절“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말씀합니다. 베드로는 더 이상 거짓 증인이 되지 않겠다고 선언하였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자신들이 충성해야 할 분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하면서 세상 권력에 당당하게 맞섰습니다. 베드로와 같은 이가 이처럼 거대한 권력 집단 앞에서 항변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오직 성령에 의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승리
종교지도자들이 오히려 어려운 문제에 부딪쳤습니다. 그들은 두 사람의 교육받지 못한 사도들에 의하여 구석으로 몰렸습니다. 앉은뱅이가 기적적으로 치유되었고, 이 두 명의 성가신 보통 사람들을 압박한다면 군중 사이에서 문제가 생겨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베드로가 주눅 들지 않고 끝까지 복음을 증거 하리라 천명하였을 때 유대 종교자들이 고작 할 수 있었던 것은 두 사도를 더 이상 예수에 대하여 말하지 말라고 위협하며 풀어주는 일뿐이었습니다.
끊임없는 영적 싸움이 오늘도 우리 가운데 벌어지고 있습니다. 세상은 하나님 나라에 대해 중립적이거나 호의적인 무지 상태에 있지 않고 적대적인 대치 상황에 있습니다. 더욱이 세상은 성령을 알지도 못하고 받지도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거룩한 요구에 저항하고 적대합니다. 그 상황 속에서 우리는 분명히 해야 합니다. 그때그때 펼쳐질 상황에 따라 움직일 것인지, 아니면 분명한 믿음의 원칙을 놓지 않고, 우리를 부르신 목적을 이루어가고자 하나님께 보다 분명한 충성을 행할 것인지 결정해야 합니다.
보고 들은 것
그러나 여기에 앞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에게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기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보았습니다. 들었습니다. 위대한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를 보고 들었습니다. 더욱이 그들 속에는 세상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보석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셨습니다. 더욱이 성령의 임재로 그들 속에 그로 인한 감격이 밀려왔습니다. 그러니 속에서부터 치밀어오는 기쁨을 나누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설령 거대한 힘이 그 분출을 억누른다고 해도 소용없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보고 들으셨습니까? 무엇이 여러분 가운데 자리 잡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여러분이 주저앉아 있는 세상 사람들을 향해 “은과 금 나없지만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당당하게 선언하기를 원하십니다. 그 자리를 피하지 않기 바라십니다. 우리는 멈출 수 없습니다. 세상 그 어떤 방해가 있어도 우리는 복음증거의 발걸음을 멈출 수 없습니다.
그 어떤 핍박도, 그 어떤 방해도 감히 우리를 하나님의 손밖으로 끌어내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서 오늘도 우리를 강력하게 보호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말씀의 능력이 세상에 진정한 변화, 진정한 치유, 진정한 새 생명을 가져온다면 그 일을 위해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은, 그 어느 곳에서나 설령이 그 자리가 우리를 핍박하는 자리라고 할지라도, 사람들이 불편하게 느끼거나 거절하는 자리라고 할지라도 점잖게 물러나기 보다는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그 대가는 크겠지만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모든 것을 감수하기를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요청하십니다. 바로 그 자리에서 천하보다 귀한 한 생명이 구원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의 피드백 1. 유대종교지도자들의 위협 앞에서 담대하게 복음을 증거 한 베드로와 요한을 통해 새롭게 깨달은 것은 무엇입니까?
2. 왜 사람들은 복음을 이야기하기에 불편해하고 힘들어하는 걸까요? 당신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잘 할 수 없다면 복음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힘들게 하는 장애물은 무엇입니까?
3. 세상에 맞서 대가를 치른다고 해도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할 마음이 있습니까? 무엇이 당신으로 하여금 예수님을 이야기하도록 만듭니까?
4. 이와 같은 경우들이 당신에게서 일어나게 된다면 하나님께로부터 어떤 도움을 가장 먼저 받고 싶습니까?
5. 오늘 말씀을 통해 한 주간 당신의 삶에서 적용할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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