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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동영상

[서로 발을 씻어 주라: 요 13장 1-17절]

by 최수근 2017. 4. 13.

2017년 4월 9일 주일설교동영상

[서로 발을 씻어 주라: 요 13장 1-17절]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예수생명교회 최수근 목사

오랜 세월 식민통치 아래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아가 와서 구원해 줄 것을 기대했습니다. 예수가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치며 하나님 나라를 전파할 때 사람들은 그런 기대로 예수를 바라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사람들이 예수님을 열렬히 따라다니니 예수님이 곧 왕이 되실 거라는 기대를 갖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그들의 기대와 다른 길을 가고 계셨습니다.

상반된 목표를 갖고 예수님께서 유월절을 앞두시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유월절을 지키기 위하여 성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나귀를 타고 입성하는 예수님을 보자 사람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호산나 다윗으로 자손으로 오시는 이여 외쳤습니다. 열렬한 환영에 제자들이 얼마나 의기양양했겠습니까? 이런 제자들을 바라보시는 예수님 마음은 어떠셨을까요? 더군다나 자기를 배신할 자가 유다임을 알고 계셨으니 마음이 더 아프셨을 겁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런 이기적인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때가 가까이오자 제자들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일깨워주고자 하셨습니다. 제자들과 식사 중에 예수님께서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허리에 두르시고 물 항아리로 가셔서 대야에 물을 떠오시더니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셨습니다. 갑작스러운 예수님의 행동에 제자들은 당황해 했습니다. 당혹스러운 침묵은 베드로로 인해 깨졌습니다. 베드로의 발을 씻으려 하시자 그는 완강하게 거부합니다. “주여 어떻게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려하십니까?” 고집부리는 베드로를 향하여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7내가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예수님은 자기가 가야할 길을 수차례 말씀하셨지만 제자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발을 씻기시는 행동 또한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무지와 왜곡된 기대가 곧 깨어질 것을 예수님은 예견하셨습니다. 그때가 언제입니까?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부르심의 목적이 저들 속에서 회복되었을 때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발을 씻어주심으로 보여주고자 한 것이 십자가의 대속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이해할 순 없지만 순종하기를 요청받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성에 사로잡힌 우리들은 이해할 수 없으면 순종하기를 주저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어떤 일을 행하시려는지 지켜볼 수 있는 순종과 믿음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지 못했고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한다.” 끝까지 거부했습니다. 그것이 충정이자 겸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고집과 생각만으로 판단하며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 길이 하나님의 길과는 정반대의 길이라면? 그러기에 우리는 성령님의 지혜를 통해 하나님의 오묘하신 뜻을 깨닫고, 하나님 나라 질서와 가치 아래 순종할 수 있기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자기 부인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발 씻기를 거부하는 베드로를 향해 예수님께서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씻어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는 것을 통해 십자가의 죽으심이 저들의 죄를 씻어 주기 위한 대속의 길임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니 발 씻음을 거부한다면, 십자가의 구속을 거부하는 것이고, 그 결과 그리스도와 하나 되지 못하고 영원히 버림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내가 너를 씻어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다:고 말씀하신 겁니다. 단지 예수님께로부터 버림받을 수 있다는 소리에 놀란 나머지 베드로는 참으로 베드로다운 말을 합니다. 9절에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옵소서.” 이건 베드로의 단순함과 영적 무지함을 보여주는 말입니다.

그런 그를 향해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10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이 말씀은 비유적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구원은 완전하여 그 어떤 것도 더 이상 필요 없다는 말씀입니다. 오직 십자가만으로 우리는 온전하게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드려진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직 십자가의 대속으로 죄를 씻음 받아야만 합니다. 하지만 마귀는 다른 곳에도 구원의 길이 있다고 속삭입니다. 그러나 길은 오직 예수님뿐입니다. 많은 선행, 종교적 훈련, 봉사만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으신 후에 예수님은 다시 옷을 입으시고 자리에 앉으셔서 제자들에게 물어보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그러나 그렇게 질문하시면서도 예수님은 제자들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걱정하지 않으셨습니다. 보혜사 성령님이 저들에게 임할 때에 제자들은 지금까지 경험한 모든 것을 깨닫고 이해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지한 제자들을 향해서 지속적으로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래야 그들 속에 깨달을 것이 있지 않겠습니까?

잘 모르신다고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해안된다고 포기 하지 마십시오. 솔직히 잘 몰라도 듣고 또 듣다보면, 조금씩 성령의 도우심으로 깨닫게 되는 날이 옵니다. 그러려면 계속 예배의 자리, 말씀 나눔의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가룟 유다처럼 자기 성격, 자기 목적과 맞지 않는다고 예수님을 떠나버리면 그 인생은 비참하게 마침표를 찍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이 가신 길을 깨닫게 되면 그 다음 단계에서는 그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14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는 것이 옳으니라.”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목적이 군림하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기 위해 오신 것을 명확하게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앞으로 차지할 자리 때문에 다투고 있었습니다. 그런 경쟁자에게 머리를 숙이고 종처럼 발을 닦아주는 일은 차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그런 제자들에게 서로 섬길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15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예수님의 섬김과 사랑은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신 이후 이 땅에 남겨진 교회가 행해야 할 모범이자, 교회 공동체의 중요한 규칙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우리의 죄와 허물을 씻기시고자 겸손하게 몸을 낮추시고 섬기셨다면, 우리도 당연히 서로의 발을 씻겨줄 준비가 되어 있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예수님께서 보여주셨던 것과는 다른 길을 따라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섬기기 위해 오신 예수님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섬김을 받으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혹시 예수님처럼 섬기며 살면 손해를 볼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까? 인생이 뒤쳐질 것 같습니까? 잘난 폼이 망가질 것 같습니까? 그런 우리들을 향해 예수님은 서로가 높아지기 위해 싸우는 치열한 세상을 벗어나서 자신이 섬기신 것처럼 섬길 것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세상의 질서는 사람을 섬기고 세우는 데 있지 않습니다. 상생도 섬김도 없습니다. 상대를 누르고 자기가 올라가야 살 수 있는 것이 세상입니다. 그런 세상의 질서에 맞서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사람들을 섬기셨듯이 우리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를 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야 합니다. 각자가 자기 권리만을 주장하고, 남을 공격하는 한 이 땅에서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살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오직 그리스도의 섬김으로 돌아가 서로 발을 씻기는 자기 겸허와 섬김의 정신이 회복될 때, 사람들의 허물과 연약함을 용서하고 감싸 안을 수 있을 때, 우리가 서 있는 모든 삶의 자리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들이 진정한 섬김과 사랑의 공동체로서 살지 못하면 교회는 더 이상 세상에서 효과적인 복음의 증거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두 길에서 선택해야 합니다. 사랑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사랑 외면하고 이기적인 삶을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주님의 섬김을 따라가는 제자의 삶을 살 것인지 결정해야 합니다. 주의 헌신과 섬김을 지식적으로 알고 있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가치와 축복은 이를 실행하는 데 있습니다.

더군다나 자신의 권리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는 헌신된 삶을 하나님은 결코 그냥 내버려 두시지 않습니다. 책임져주십니다.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하나님은 우리들의 삶을 복되게 하실 것입니다. 이것은 물질적인 복으로 채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 땅의 복은 신기루와도 같습니다. 허망한 것입니다. 이 땅의 복을 쫓아가면 늘 갈급하고 목마를 것입니다. 강남에 커다란 건물 지으면 무슨 소용 있습니까? 경기가 안 좋아 백 억 돈줄이 막혀 있으면 죽을 맛입니다. 반면에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누리게 하시는 복은 물질적인 복이 아닙니다. 삶의 원천이요, 공급자이신 하나님과의 동행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니 우리 인생이 망가질 수 없습니다. 견고합니다. 풍성합니다. 평안합니다.

몸소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던 예수님께서 오늘 아침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내가 주와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라.” 이 말씀에 순종하여 서로 발을 씻기는 섬김과 사랑을 행합시다. 우리 위해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섬기신 예수님을 따라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세상 그 어디에서도, 그 무엇을 통해서도 누리지 못할 하나님 나라의 복을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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