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 26일 주일설교문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 눅 24장 13-35절]
최수근 목사
이 그림에서 어떤 사람이 보이십니까?
두 얼굴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구속사를 바라볼 때도 그렇습니다. 어떤 전제와 기대, 시각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른 결과를 그려갈 수 있습니다.
복음서를 보면 마지막 부분에서 복음서 기자들은 삼 년 내내 겪어왔던 혼선을 정리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통해 사람들의 기대와 전제가 아닌 하나님 나라의 패러다임으로의 전환과 그 과정에 순종함으로써 하나님 나라의 증인으로 새롭게 세워지는 공동체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 이야기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13절 첫머리에서 “그날에”라고 이야기하는데 바로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입니다. 이른 새벽부터 예루살렘에서는 작은 소동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그 틈에 제자 중 두 사람이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라는 마을로 가고 있었습니다. 엠마오는 예루살렘으로부터 이십 오리, 약 11km 떨어진 마을이었습니다.
몸은 예루살렘을 벗어나 엠마오로 가고 있었지만 그들의 생각은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일로 온통 가득 차 있었습니다. 걸어가는 내내 예루살렘에서 지난 며칠간 일어난 일들에 관해 묻기도 하고 답하기도 하였습니다. 이것을 보면 두 사람은 지금의 상황을 비관하고 도피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여겨집니다. 지난 3년간 들었던 말씀에 대한 혼선을 겪고 있으면서, 지금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알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서로 이야기하며 가고 있을 때 한 사람이 그들에게 다가왔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두 사람이 대화에 몰입하여 가는 사이 슬그머니 다가와 그들이 나누는 말을 들으시면서 같이 걸어가셨습니다. 많은 제자들이 있었는데 예수님께서는 왜 엠마오로 가는 두 사람에게 오셨을까요? 누가는 이 동행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요?
두 제자는 다가와 같이 걷고 있는 사람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16절의 말씀에서는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예수님인 줄 알아보지 못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눈이 가리워졌다고 하는데, 왜 그 눈이 가리어졌을까요? 그들은 예수님이 돌아가셨다는 전제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살아계신 예수님을 상상할 수도 없고 당연히 앞에 있는 분은 예수님이신데도 불구하고 그들에게는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도 빠질 수 있는 무지함의 늪입니다. 올바른 지식이 없다면, 그래서 왜곡된 시각으로 보면 당연히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잘못된 생각, 전제, 시각을 바꾸는 것은 내부적인 힘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외부의 도움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곳 엠마오 도상으로 오신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이 두 사람의 경험을 통해 다음 세대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갈 수 있도록, 복음의 퍼즐이 완성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계시던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17절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예수님의 질문에 두 사람은 가던 길을 멈추어 섰습니다. 그런 그들의 얼굴에는 슬픈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그중에 한 사람인 글로바가 예수님께 의아한 듯이 묻습니다. 18절b “당신이 예루살렘에 체류하면서도 요즘 거기서 된 일을 혼자만 알지 못하느냐?” 글로바는 예수님과 말하고 있다는 것을 모른 채 이 사람이 예수에 관한 소문을 모르고 있다고 핀잔을 주었습니다.
그래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예수님은 제자들이 말하도록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무슨 일이냐?”고 묻습니다. 이에 글로바가 대답합니다. “그건 나사렛 예수의 일입니다.” 그는 예수님에 대해 그가 갖고 있던 정보를 나열하였습니다.
19절 “예수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이셨습니다.
20절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이 그분을 사형 판결에 넘기고, 십자가에 못 받았습니다.”
21절a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희망을 걸었습니다.”
21-24절 “이 일이 일어난 지 사흘이 되었는데, 여자들이 예수의 무덤에 갔다가 천사를 보았는데, 천사가 여인들에게 그분은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이를 제자들에게 전했고, 제자 중에 두 어 사람이 그 무덤에 가서 확인했으나 예수를 보지 못했습니다.”
글로바의 이야기를 다 들으신 예수님께서 두 사람을 꾸짖었습니다. 25절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예수님이 보실 때 이들은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한 것을 제대로 깨닫지도 못했고, 구약의 증언에 대하여 믿음으로 반응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로인해 이들은 잘못된 희망을 갖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 희망은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과 함께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예수님께서 이미 거절하셨던 것입니다. 이들이 바라보는 것은 하나님의 그림과는 너무도 달랐습니다.
그들이 많은 것을 알고 있었지만,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인간을 구원하시고 영광을 받으실 주님을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지금 그들 가운데 부활하사 서 계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들에게 십자가는 상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고난이 아닌 영광의 메시아만을 보고자 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낯선 나그네가 꾸짖기를 “미련하다 마음에 더디 믿는다”하면 마음이 편할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두 사람은 예수님이 이야기하는 것을 그대로 듣습니다. 예수님의 반응에 못마땅해하고 헤어지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경청했습니다. 저는 두 사람의 이와 같은 자세가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마음이 상해서 많이 실족합니다. 더 이상 알아보고 싶은 마음을 상실하는 거죠.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는 달랐습니다. 이들의 이야기에서 이것은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복음의 핵심에 대해 예수님은 분명하게 말씀해주셨습니다. 26절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제자들은 그리스도가 고난을 통해서 영광에 이르시게 되는 것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즉시 성경에 대한 제자들의 중대한 결함을 바로 잡아주셨습니다. 27절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 행동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약속되고 이루어졌는지 성경 전체를 관통하여 설명해주셨습니다.
이 때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말씀이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성경을 하나하나 풀어주실 때 그들의 냉랭했던 마음이 뜨거운 마음으로 변하였습니다. 여기에는 교회 공동체를 향하여 두 가지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하나는 성경을 볼 때, 통전적으로 연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분적으로가 아니라 말씀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하나님의 구속사의 패러다임, 약속된 그리스도의 관점으로 보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 예수님의 길을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말씀을 연구할 때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는 것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보혜사 성령을 통해서 약속하셨습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명확하게 해석하여 주시고, 마침내 예수께서 “떡을 떼는” 장면에서 제자들은 앞에 앉아계신 분이 예수님이심을 깨닫습니다. 그 순간 얼마나 놀랍고 기뻤을까요? 하지만 기쁨도 잠깐, 예수님이 그들 앞에서 사라지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엠마오로 가는 두 사람에게 오신 목적을 이루셨기에 홀연히 그들 곁을 떠나신 것입니다.
사건들은 낱낱이 알고 있었지만 그 사건이 사건으로 그치지 않고 복음으로 다가와 그 구원의 은혜를 입기 위해서는 주님의 도우심, 즉 보혜사 성령을 통해 오늘 우리를 이끌어가시는 도우심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두 사람이 서로 이야기하고 문의 하였지만 두 사람만으로는 결코 진리에 다가갈 수 없었습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께서 우리의 마음과 눈을 열어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제대로 볼 수 있고 그 분 안에 뿌리내려 믿음으로 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떠나가시고, 그들은 엠마오에 더 머물 이유가 없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이 좋은 소식을 함께 나누고자 즉시 사도들과 제자들이 모여 있는 장소로 다시 떠났습니다.
엠마오로 갈 때는 슬픈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을 향해 달려가는 그 순간은 기쁨으로 충만했습니다. 가려졌던 눈이 열렸습니다. 마음에 뜨거움이 회복되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에 확신을 얻었습니다.
혹 아직도 엠마오로 가는 길에 서 계십니까? 그 길은 불확실함과 의구심의 자리입니다. 여전히 서로 이야기하며 토론하지만 혼선이 가득한 자리입니다. 그 불확실함의 자리, 혼선의 자리를 떠나 믿음의 길로 돌아서고 싶으십니까?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에게 다가오셨던 주님의 경험을 갈망하십시오. 그들처럼 주님과 걸어보십시오. 때론 꾸짖고 책망하시더라도 그 분의 말씀에 끝까지 귀 기울여 보십시오. 마음이 뜨거워질 것입니다. 영적인 눈이 열릴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앞에 서 계심을 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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