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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자료/예배

기쁨의 50일

by 최수근 2012. 4. 25.

"기쁨의 50일"

Ⅰ. 들어가는 말

교회가 탄생한 이래 가장 오래된 절기인 부활절기(기쁨의 50일)에 대한 지식부족과 부정확한 의미규정으로 인해 현재 개신교회는 이 절기를 올바르지 못한 방향으로 이끌어가고 있다. 그 때문에 부활 절기를 하루의 특별한 행사로만 지내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부활절은 단 하루가 아닌 성령강림절까지 지속되는 일정한 기간이다. 성경에서도 부활절을 하루가 아닌 일정한 기간으로 이해하고 있다. 부활절에서 오순절에 이르는 기쁨의 50일은 교회력의 절기 가운데 가장 큰 축제의 기간으로 부활절의 기쁨과 잔치 같은 분위기가 그 후에 뒤따르는 주일에도 계속된다. 이 기간의 주일은 일 년을 한 주기로 볼 때 주일에 해당하는 오십일의 중심에 있는 것으로 비유된다. 그리고 성서일과에 따른 성서의 말씀은 이 절기가 담고 있는 풍성하고 다양한 의미를 드러내 준다. 이 시기에 우리는 성령에 관한 것과 성령으로 능력을 받은 초대교회의 삶에 관한 성서 구절을 읽을 때이기도 하다. 우리 가운데에 현존하시는 살아 계신 그리스도를 기억하고 성령의 역사하심을 통하여 우리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알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부활절기의 마지막 날인 오순절에 성령께서 임하신 일을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하여 예언하신 일이고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일이며, 구원 역사를 위한 역사적인 사건이다. 성령의 임하심으로 그리스도의 교회는 사도와 선지자의 터 위에 세우심을 받아 새로이 출발하고 생기를 얻어 성장하게 되었다. 성령의 감동하시는 역사로 말미암아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롭다함을 받아 하나님의 백성으로 성화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오순절에 강림하심을 기념하는 것은 옳은 일이다.

본 글에서는 “기쁨의 50일”(The Great Fifth Days)의 역사적 발전과 기쁨의 50일의 구성과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오늘날 한국교회의 목회현장에서 인식의 부족으로 지켜지지 못했던 부활절기의 신학적 의미, 설교적 접근, 예전적인 접근을 제시하고자 한다.

Ⅱ. 기쁨의 50일

1. 부활절기

부활주일부터 50일간 계속되는 부활 절기는 “기쁨의 50일”(The Great Fifth Days)로 불리며, 부활주일과 오순절 성령강림주일을 연결하는 교회의 첫 번째 절기이다. 즉 부활 절기는 부활주일부터 시작하여 오순절 성령강림주일에 그 절정을 이루는 50일간의 기쁨의 절기이다. 이 절기는 교회가 탄생한 이후 3세기 동안 갖고 있던 유일한 절기였다. 그러므로 이것은 대림절과 사순절보다 더 오래된 절기이다. 초대교회는 부활주일부터 성령강림주일 때까지 50일 동안을 완전한 기쁨과 승리의 기분으로 지속하였다. 이 절기가 갖는 기쁨과 승리의 기분은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도저히 알기 어려울 만큼 초대교회 교인들을 지배하여 왔다. 그러므로 이 50일간의 기쁨의 절기가 차지하는 비중이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현재 부활 절기를 가리키는 용어로는 두 가지가 사용되고 있다. 하나는 “파스카(Pascha)절기” 라는 단어이고 또 하나는 “기쁨의 50일” 이라는 용어이다. 먼저 부활 절기를 가리켜 “파스카 절기” 라고 부른 것은 자칫 “파스카”(Pascha) 라는 명칭이 부활 사건을 지칭하는 것으로만 국한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활 절기를 나타내는 “파스카 절기”라고 부르는 것이 정확하다. 그 다음에 “기쁨의 50일”은 부활절기가 가지고 있는 메시지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기쁨”(A most joyful space of exultation)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초대교회는 부활주일부터 오순절 성령강림주일까지 50일간을 하나의 잔치같이 하나의 “큰 주일”같이 기쁨으로 보냈다. 그러므로 부활 절기를 가리켜 “파스카 절기” 또는 “기쁨의 50일”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래서 이 절기 동안에 금식은 금지되었으며 슬픔과 회개의 표현으로서의 무릎 꿇음은 허락하지 아니하고 서서 기도하였다.

2. 기쁨의 50일의 역사적 기원과 발전

부활절기(파스카 절기)는 부활주일에 시작하여 50일째 되는 주일(성령강림주일)에 종결하는데 이 파스카 절기를 지키는 관습은 해마다 부활주일을 지키는 관례만큼이나 오래된 전통이었다. 초대교인들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기 위해 7주 혹은 50일간의 기간으로 부활절을 확대시켰다. 그런데 원래 부활주일부터 성령강림주일까지의 기간은 유대인의 ‘오순절’(Pentecost:50일)에 해당되는 기간이다. 그러므로 처음에는 이 기간의 명칭이 ‘오순절’이라고 불리었다. 그러나 후에 오순절 성령강림주일(The day of Pentecost)이 오순절(Pentecost)이라는 이름으로 자리매김을 하면서부터 부활절 50일간을 의미하던 Pentecost(문자 그대로 50일이라는 의미)라는 명칭과 혼란이 빚어지게 되었다. 더군다나 오순절이라는 말은 유대교의 3대절기 중의 하나의 명칭이기도 하다. 그래서 현재 전 세계의 개신교회들은 오순절 성령강림주일(The Day of Pentecost)과 유대인의 오순절(Pentecost:50일간)의 혼돈을 막기 위해서라도 부활주일부터 성령강림주일 때까지의 명칭을 “기쁨의 50일”(The Great Fifty Days 혹은 Eastertide)로 부르고 있다. 그리고 “펜테코스트”(Peatecost)라는 단어 부활절기의 마지막 날인 오순절 성령강림주일을 지칭하는 단어로 국한하기로 하였다.

1)역사적 기원

부활 절기는 가장 오래된 절기로서 “성(聖) 50일” 이나 “대(大) 50일”로 불렸다. 처음에는 전체가 하나의 계속된 경축일로 지켜졌다. 그런데 부활, 승천, 오순절 성령강림 등 역사적 사건들이 순서가 분리된 것은 4세기 이후이며 이 절기가 여러 부분으로 분리된 것은 예루살렘에서였다. 학자들은 “파스카 절기”를 “주간들의 주간”으로서 50일간 지키게 된 것은 1세기경 유대인들의 “주간들의 절기”(Feast of weeks) 준수와 그 근원을 관련시킨다. 이 절기는 유대인들에게 있어서는 50일간의 추수감사 절기였다. 그리고 이 절기 준수의 당위성은 레위기 23:15-21에서 찾으며 50일 전체가 단일 기념으로 지켜진 전례는 유대교의 “호멜절”(Omer Days)로 유월절에서 오순절까지 7주간이었다. 이 절기의 원래의 이름은 Shabouth인데 “주간들”이라는 뜻이며, 이 절기는 유월절 안식일 다음날 시작하여 50일째 되는 날 마감하는 7주간의 절기로서 확대되었다.

유대인에게 있어서 7은 가장 성스럽고 완전한 수(Fullness)이다. 이러한 7에 7을 곱한 수는 더욱 완전하다. 그러므로 49일 동안의 기간은 “week of weeks"가 된다. 그리고 50이라는 숫자도 성스러운 의미를 가진다. 레위기 25장의 희년을 생각해 보라. 여기서 50이라는 숫자는 종말론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해방과 복구의 수이며 커다란 기쁨의 숫자이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봄의 49일 동안의 추수의 절기는 새로움(newness)과 기쁨(rejoice)의 사인(sign)으로서의 50일에 의해 끝나는 것이다.

그리고 초대교회에는 이런 중요한 상징을 채택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충만 위의 충만(요1:16) 으로 7✕7로 상징될 수 있다. 교회도 부활을 50일 동안 기뻐했다. 부활절은 50일간의 기쁨의 계절이며, 부활주일은 이 기쁨의 절기의 시작이다. 후에 니케아 종교회의(325년)에서는 이 성격을 분명히 하는 두 개의 금지령을 발표하였는데, 그것은 이 기간 동안에는 “금식과 무릎을 꿇지 말 것” 을 명령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기간 동안의 성만찬은 부활하신 주님과의 만찬을 재현하는 것이 되어야지, 처형된 스승을 기념하는 제자들의 장례식 같은 기념식사가 되어서는 안 되었다.

2)부활절기의 역사적 발전

학자들은 유월절 안식일 다음날부터 시작하여 50일째 되는 날(오순절, 칠칠절, 맥추절)에 끝나는 이스라엘 Sabouth 절기가 바로 “파스카 시기”의 기원이라고 인정한다. 3세기 초 터툴리안(Tertullian)이 “파스카 시기”의 50일간을 “오순절”(Pentecost)이라는 단어와 동일시하여 사용한 것을 보면 이 단어가 50일째 되는 하루를 의미하는 용례와는 달랐음이 확인된다. 아타나시우스는 지금 살아계신 어린양 그리스도가 소유한 기쁨 그 자체가 “기쁨의 50일” 전체에 진하게 배어 있다고 말한다. 그에게 있어 “기쁨의 50일”은 다가올 종말론적 세계에 대한 상징으로서의 의미가 있었다.

성 바질(Basil)은 7이라는 숫자의 7배라는 숫자적 관점에서 이 시기를 논평한다. 7의 7곱은 부활의 첫날에 대한 “영원한 배수”가 된다. 이것은 살아나신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나는 풍성한 생명을 상징화한다는 해석이다. 어거스틴은 이 기간 동안 고백되는 “알렐루야”의 중요성을 언급한다. 이 노래는 요한계시록 19장의 종말론적 승리의 찬가로 묘사된다. 4세기에 이르러 이 “파스카 시기”는 분할되기 시작한다. 세 가지로 나뉘는데 “파스카 팔부(the Pascha Octave), ”절기의 마지막 날로서 50일째 날“(the Fiftieth Day Pentecost Sunday) 그리고 “주님의 승천일”로서 40일째 날(the fortieth Day the Commemoration of the As cension) 등이다.

3. “기쁨의 50일” 의 구성

기쁨의 50일은 부활주일로부터 시작되는데, 이 부활주일은 “파스카 성삼일”(Easter Tridumm)의 셋째 날이자, “파스카 팔부”(the Pascha octave)의 첫째 날이기도 하다. 그리고 “기쁨의 50일”은 40일째 되는 날인 "승천주일"을 거쳐서 50일째 되는 날인 "오순절 성령강림주일"로 끝이 난다. J. White교수는 부활절 절기의 구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1)파스카 팔부(Pascha Octave)

파스카 팔부는 흔히 “흰옷을 입는 주간”으로서 새로 세례를 받은 이들에게 세례 후 교리문답교육을 부과시킬 필요성으로 말미암은 목회적 관심에서 발생하였다. 일반적으로 8일간 지켜지는 이 절기의 뿌리를 유월절과 7일간의 무교절에서 찾는다. 4세기의 증거들에 의하면, 이 절기는 세례 받은 자 또는 신비교육(세례교육) 을 필요로 하는 자를 대상으로 감독에 의하여 새 신자 소집의 필요성에 의하여 제정된 것으로 보인다. 특별한 초점은 이 절기의 8일째 되는 날에 맞추어진다. 이 날은 흰옷을 벗는 일요일이다. 이 표현은 세례 받은 새 신자가 세례식 때 입었던 흰옷을 벗는 데서 유래된 것이다. 신비교육 전수자는 영원한 생명의 신비의 상징으로서 “파스카 팔부”의 8일째의 날을 이야기하는데, 이것은 세례 관련 요리문답의 종결의 날이며, 목회자로서는 세상 가운데에서 신실한 신앙인의 새로운 삶을 살아가도록 호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였다.

2)부활절 두 번째 주일(도마주일: Thomas Sunday)

우리의 기독교 신앙을 재확인하는데 있어서 가장 먼저 등장하게 되는 것이 부활주일 다음주일인 도마의 날이다. 역사적으로 교회는 항상 세속적인 요소들과 투쟁해 왔다. 이 시기는 교회로 하여금 그 본래의 정체성으로 되돌아가라는 촉구의 시간이다. 도마의 이야기는 도마의 의심에 그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의심들 안에서 주님의 만남에 있다. 의심 많은 도마의 믿음은 외적인 증거에 기초하고 있었기에 명백한 증거를 요구했다. 그러나 부활의 명백한 증거는 합리적인 논증에 있지 않고 부활한 신앙 공동체 속에 있다. 즉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악의 권세를 정복하셨다는 부활절의 메시지를 선포하고 증언하는 증인이자 표지가 되라는 부름을 받았으며 부활의 실체를 삶으로 구현하는 부활공도체가 되라는 부름을 받았다.

3)부활절 세 번째 주일(음식주일: Meal Sunday)

부활하신 주님의 나타나심은 제자들과의 음식을 나누는 것으로 일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에게 음식을 베푸시고(누가 24:13-35), 요한복음에는 해변가에서 음식을 장만하시고 저들을 초청하셨다. 그래서 공동성서일과에 의하면 이 주일의 본문들은 모두가 다 음식에 관한 말씀으로 선택되었다. 이 기간 동안 우리가 하는 성만찬은 천국에서의 잔치를 이곳에서 미리 맛보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성찬 성례전은 창조의 중국적인 갱신으로서 약속된 하나님의 통치를 대망하도록 해 주며, 또한 그것을 여기서 미리 맛보는 예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과 우리의 모든 다른 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해방된 것을 기뻐하며 영원한 유월절 음식을 먹어야 한다.

4)부활절 네 번째 주일(선한목자주일: Good Shepherd Sunday)

이 주일은 우리에게는 마땅히 청종해야 하고 그대로 따라가야 할 지도자이자 선한 목자가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 목자는 자기가 맡은 양에게 전적으로 헌신한다. 양을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 놓는 선한 목자의 이미지는 바로 종 된 지도자의 모습이다. 선한 목자이신 예수는 자기 양떼인 우리를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 놓으셨다. 그리고 죽음에서 부활하셔서 이제 우리를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고 계신다. 또한 양떼는 다른 목자는 결코 따르지 않는다. 양은 세례 받아 목자와 연합되어 있고 양은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패턴대로 그를 따라가도록 부름 받는다.

5)부활절 다섯 번째 주일(‘나는… 이다’ 주일: I AM Sunday)

이 주일에 교회는 목회사역의 표지(the sign of ministy)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제자들과 교회는 자신들의 선한 목자이신 예수의 사례를 본받아서 사람들을 섬기는 목자들이 되는 방법을 배워야만 했다. 즉 부활하신 주님께서 이 땅의 교회를 통하여 아직도 자신의 성육신적인 임재를 계속 이어가는 섬김의 목회사역은, 이미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이를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셨던 것처럼 서로 사랑함으로써 교회가 먼저 예수의 계속되는 임재를 체험할 것을 강조한다. “나는 포도나무요”, “나는 길이요”, “나는 진리요”, “나는 생명이니” 라는 등의 말씀들을 읽는다. 그리고 계시록의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하는 등의 말씀을 읽는다. 이런 말씀들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누구 신가라고 하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 준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나는....이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은 출애굽 당시에 모세에게 나타나신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I am who I am, 출 3:14 등)라고 말씀하신 바로 그 하나님이심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6)부활절 여섯 번째 주일

이 주일은 예수의 승천일이 매우 가깝다. 예수께서 성령 하나님의 임하심과 교회 안에서 그분의 사역에 관하여 좀 더 자세한 방법으로, 그리고 좀 더 많이 가르치시던 시기가 바로 이때이다. 예수는 제자들과 함께 할 성령을 보내실 것을 확증하기 위하여 자신과 성부 하나님과의 연합에 관하여 말씀하신다.(요14:17) 그리고 성령과 연합한 자는 예수 자신과 연합한 것이며 결국 하나님과 연합한 자라는 것이다. 성령하나님은 교회나 목회, 사랑, 세례, 그리고 성만찬과 같은 다양한 형태의 표지들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또한 이러한 표지들은 우리에게 연합을 상기시켜 줄 뿐만 아니라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를 소통시켜 준다.

7)부활절 일곱 번째 주일

많은 교회들이 이 주일은 부활절 일곱 번째 주일로 지켜지기 보다는 승천주일로 지킨다. 왜냐하면 승천일은 목요일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중에는 잘 모이지 않는 서구 교회에서는 이 일곱 번째 주일을 승천주일로 지키는 곳이 많다.

8)승천축일(The Commemoration of the Ascension)

이 날은 “파스카 시기”의 40일째 되는 날로서 이 절기에 대한 기원은 “파스카 시기”의 50일째 되는 날인 오순절 성령강림주일의 성장과 관련이 있다. 이는 처음에는 언급되지 않다가 A.D. 300년 엘비라 공회의 법규에서 40일째 대한 기념을 언급함으로써 가속화되었다. 388년 닛사의 그레고리의 설교문에서도 이 날에 대한 기념이 이루어졌음이 확인된다. 그 이후로 동서방 지역에서 이 절기는 확인되고 있으며, 크리소스톰과 어거스틴 등에 의해서도 확인된다.

9)성령강림주일(The Day of Pentecost)

4세기 초까지만 해도 “기쁨의 50일”은 파스카 신비의 풍성함을 기념하는 하나의 통합된 절기였다. 그런데 이 하나의 결합된 절기가 “파스카 팔부”로 인하여 약화되기 시작하면서 이 절기의 50일째 되는 날에 대한 기념의 중요성이 점점 증가되기 시작했다. 이 절기에 대한 최초의 언급은 300년 엘비라 공의회에서 시작된다. 이 법령은 원래 그 동안 40일째 되는 날에 “파스카 시기”를 종결하려는 관습에 대한 교정작업의 일환이었다.

그런데 332년 가이사랴의 유세비우스는 50일째 날이 절기의 종결과 주님의 승천이라는 두 가지 성격으로 지켜졌음을 확인하고 있다. 이러한 양면적인 성격은 384년경 예루살렘에서 거행되었던 예전의 단면을 추론할 수 있는 “이제리아의 여행”(Egeria's Travel)에서도 나타난바 있다. 50일째 되는 날의 두 가지 성격의 예전을 지키던 관례를 그렇게 오래 가지 않았다. 왜냐하면 40일째 되는 승천일이 따로 떨어져 나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4세기 말경에 “파스카 시기”의 50일째 되는 날은 관심을 받게 되었고, 오순절(Pentecost)이라는 명칭을 획득하게 된다. 이것은 아마도 교회의 역동성을 위하여 성령님의 중요성이 강조되어야 할 당위성에 의해서 이루어진 현상일 것이다. 이러한 중요성이 가장 직접적인 결과로 나타나게 된 것은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제기된 성령님의 위격에 관한 선포였다. 그러므로 이 날은 순전히 성령님의 오심을 기념하기 위하여 설정된 날이다. 이러한 독자적인 위치를 획득하고 난 후 오순절 성령강림 주일은 부활주일에 필적할 만한 자리에 오르게 된다.

Ⅲ. 기쁨의 50일의 신학적 의미

지금까지 기쁨의 50일의 역사적 발전과 의미 그리고 7주 동안의 내용을 살펴보았다. 이렇듯 교회가 부활의 기쁨을 단 하루만 지키고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간다고 말하기에는 기쁨의 50일이 담고 있는 의미가 너무 크다. 따라서 기쁨의 50일이 담고 있는 신학적 의미를 찾아 재정립하고 오늘날 교회 현장 속에서 이 의미를 실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먼저 기쁨의 50일이 담고 있는 신학적 의미를 알아가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가 있어야 한다.

먼저 이 절기는 사순절로부터 시작되는 금식의 절기를 전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 성찰의 기회요, 훈련과 새로움을 경험하는 사순절 기간은 고난의 신학을 뚫고 감격하는 기쁨의 신학으로 발전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교회의 새로운 입교인이 된 세례자들이 매년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함으로써 새로운 삶의 구조와 양식을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세 번째로는 주간 단위로 부활을 경험하는 공동체의 현존에 의하여 이 절기가 주는 역동성이 경험될 수 있다는 전제로 접근해야 한다.

이와 같은 전제는 초대교회가 지켰던 그 기쁨과 감격을 오늘날의 교회가 예배의 현장 가운데 보다 더 의미있게 보내게 될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전제로 기쁨의 50일이 주는 신학적 의미를 살펴보자.

1. 기쁨의 신학

기독교 예배가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나타내는 것, 즉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한 그리스도의 승리, 사탄에 대한 확실한 심판,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약속을 경축하여 하나님의 구속 행위를 경축하는 것임을 생각할 때, 기쁨의 50일을 보내며, 그 예배에 함께 동참하는 기쁨의 신학은 예배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특히 “기쁨의 50일”은 사실 확대된 주님의 날이며, 부활절을 7주간으로 확대한 “큰 일요일들”로 매 주의 예배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종말론적 희망이 성취되었고, 주님의 재림에 대한 기대가 공동체 가운데 지속적으로 소망이 되었다. 이에 따른 예전적 특징 또한 기대되는 그리스도의 통치를 예견하는 형태여야 한다. 이 절기가 갖는 영적 분위기는 바로 그리스도께서 현존된 기쁨이요, 그의 통치 안에서 누리는 자유 그 자체이다. 결국 그리스도의 삶, 죽음, 부활을 경축함으로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본받는 삶으로 계속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기쁨의 예배는 그리스도 지향적 예배로,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어 교육하고, 전도하고, 치유하고, 영성을 개발함과 동시에 기쁨이 충만케 된다.

2. 신앙성숙

모든 절기 중 “파스카 절기”는 세례 후 신비교육의 황금시기이다. 이 신비교육이라는 것은 새롭게 세례를 받은 자들에게 그들이 받은 성례의 의미를 교육하는 것이다. 그래서 세례자들에게 알 수 없는 어떤 신비스러운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가 자각할 수 있게 하는 예식을 가르쳐야 한다. 그러므로 이 절기에 강조되어야 할 적합한 교육내용은 소위 “제자훈련”과 “전도학교” 개설 등이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이후의 변화된 삶을 살아가는 제자훈련이라는 이론적 교육과 전도학교라는 실천적인 교육은 보다 역동성 있는 세례 후 교육의 커리큘럼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예배와 전도는 불가분의 관계로 예배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에의 초대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점에서 예배는 일종의 전도라고도 말할 수 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그들이 이웃과 친구들을 일대일의 전도고 교회로 인도하여 그들로 하여금 복음을 듣게 하고, 그리스도에게 헌신하게 하며, 세례와 성찬을 통해 교회의 정식 일원이 되게 한 것은 그 대표적인 예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전도 방법은 오늘날 서구의 많은 교회들이 구도자의 집회와 신자의 예배를 구분함으로써 유용하게 할용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3. 그리스도의 왕권

파스카 절기는 메시아 시대의 완성을 상징화하는 절기로 부활은 완전하고 완전해진(perfect and perfected) 교회의 시대가 도래하였음을 확정해 주는 하나의 완벽한 메시지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부활에 승천이 결부된다는 것은 아주 의미심장한 일이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사실은 이미 그분의 영광과 권능을 충분히 과시하셨고, 그리스도가 하늘에 올라감으로써 그분의 육체적인 임재는 우리들 육안으로부터 거두어 갔지만(행 1:9), 그것은 신자들의 지상순례 생활 동안 그들과 함께 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고, 더욱 효과적인 권세를 가지고 하늘과 땅 모두를 다스리기 위한 것이었다. 그의 육체가 모든 하늘 위에 높이 들림 받은 것과 같이, 그의 권능과 효력도 하늘과 땅의 모든 한계를 넘어 전파되고, 확대된 것이다. 이것은 더 나아가 그리스도의 승천은 단순히 교회적 관심일 뿐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관심이기도 하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리스도의 말씀은 교회뿐만 아니라, 세상을 다스리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왕권은 승천축일과 관련하여 4가지 중요한 초점을 지적할 수 있다. 첫째, 사랑의 원리의 보편성이다. 둘째, 비록 땅에서도 하늘의 현존을 인식한다. 셋째, 삶과 죽음이 실존하는 역사 가운데 기독교 공동체를 유지시키는 방편이다. 넷째, 승천은 부활의 진리와 오순절의 진리 사이를 연결시키는 가교역할을 한다.

4. 선교적 성격

부활공동체의 증인으로서의 책임은 사회적 행동이나 사회적 봉사의 형태를 취하게 된다. 부활에 의하여 생성된 변화는 단순히 개인적인 차원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공동체의 변화 이상의 사회적, 문화적 변화에까지 확대되어야 한다. 따라서 부활공동체는 부활절 세례 후 신비교육 기간으로서의 기능이 선교적 차원으로의 전이가 일어나는 것으로 특징된다.

따라서 주님의 “지상명령“에서 알 수 있는 것과 같이 부활절기 중에는 “자신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세상에게 다르게 생각하고 말하고 존재하고 행동하는 대안사회”가 되어야 한다. 이것은 예배가 피상적이거나 오락적이기보다는 기독교 신앙의 실천으로 선교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양육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마르바 던(Marve Dawn)이 제시하는 예배를 위한 세 가지 본질적 기초를 세우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

첫째, 성경의 하나님이 예배의 무한 중심이어야 하고, 예배는 예배자들이 하나님의 충만한 광휘에 잠겨 그들의 시간을 낭비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예배는 성도들을, 예수님을 따르며 세상의 평화와 정의와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에 헌신된 제자로 빚어야 한다. 셋째, 예배는 회중을 예배, 가르침, 교제, 떡을 뗌, 기도, 찬양, 경이, 상호 보살핌, 사회 참여에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하나님의 모든 백성과 연결된 참되고 포괄적인 기독교 공동체로 빚어야 한다(행 2:42-47을 보라) 이러한 예배의 기초를 중심으로 부활 절기에 대한 예배를 계획하고 준비한다면 보다 더 부활의 증인의 삶을 살아가도록 그리고 교회의 본연의 목적에 부합하는 성도들이 될 것이다.

Ⅳ. 기쁨의 50일의 설교적 접근

기쁨의 50일 절기가 나타내는 주제를 올바르게 부각시키기 위하여 성서일과상의 성서적 연구는 이 절기가 갖는 “의미의 풍부한 다양성”을 제공한다. 설교자는 분명하게 부활과 승천 사이에 있는, 40일 동안 예수의 부활현현 기사들과, 오순절 성령강림을 기다리는 10일간의 기록들을 얼마든지 성서 속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설교자는 더욱 심화된 의미를 여기서 발견해야 한다. 부활하여 살아 계신 우리 주님께서 바로 “우리 가운데” 계신다는 것,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이것을 보다 더 분명하게 알게 하신 것은 다름 아닌 바로 “성령님의 사역”이라는 것이다. 또한 공교롭게도 이 절기는 만물이 약동하는 “새 생명의 계절”에 일어났다는 것을 전제로, “새로운 피조물의 거듭남”을 성서일과에서 강조할 필요가 있다. 이제 기쁨의 50일을 보내며 설교하기에 앞서 설교자가 기쁨의 50일에 설교할 수 있는 설교의 주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기쁨의 50일에 설교에서 강조되어야 할 중심 주제

7주 동안의 부활 절기를 보내면서 설교자들은 특별히 강조해야 할 설교의 주제가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이 교회 공동체에게 주는 분명한 신앙이어야 한다. 즉 이 기간이 “교회의 시간”임에 대한 반영으로 교회 신앙의 복음적 성격을 강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의 세 가지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첫째,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현존이다. 이 주제는 이 절기 자체가 나타내는 대표적인 주제이다. 예를 들면 셋째 주일은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부활 후 식탁교제에 대한 설명으로 이루어지고, 다섯째 주일에는 부활하신 예수께서 나타나심을 확증하는 “나는 ...이다”(I am)라는 말씀에 비중을 둔다. 넷째 주일에는 시편 23편에 나오는 “선한 목자” 말씀과 요한 10장의 “선한 목자”를 병용하여 읽는다. 일곱째 주일에는 요한복음 나타나는 대제사장적 기도로서 그리스도를 계시하는 것들은 모두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현존을 주제로 설교할 수도 있다.

둘째, 성령님의 사역과 현존이다. 이 본문들은 특히 베드로의 설교, 사울의 회심, 예수님의 이름으로 행해진 사도들의 치유사건들, 교회의 연합 등은 교회에 현존하시는 성령님의 활동을 담고 있는 본문들이다. 더 나아가 두 번째 주일과 여섯 번째 주일의 복음서 본문들은 요한복음 14-15장과 20장에서 현존하시는 성령님을 강조하는 것을 보게 된다. 특별히 두 번째 주일에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고, 의심 많은 도마에게 나타났으며, 그들에게 숨을 쉬심으로 그리스도의 영을 주신다는 약속을 하는 요한복음 20장으로 설교할 수 있다.

셋째, 세례 받은 이후의 새로운 삶이다. 요한1서의 본문들은 세례공동체의 가장 기본적인 성격으로서, “사랑의 윤리”에 관심을 갖도록 이끈다. 반면 베드로전서에서는 하나님의 백성된 새로운 생명들에게 복 주심과 그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제공한다. 따라서 이와 같이 부활하신 그리스도, 성령님의 사역, 세례공동체의 새로운 삶의 중요성이 “기쁨의 50일”의 성서일과에 짙게 배어있는 중요한 주제들이다.

2. 부활 절기에 적합한 분몬들

많은 설교자들이 대개 단 한 번의 부활주일 설교 안에 성서 안의 모든 부활 기사를 종합하여 이야기함으로써 각각의 이야기들이 담아내고 있는 나름의 독특한 경험세계와 메시지를 지나치고 있다. 따라서 사순절기의 설교가 예수 그리스도의 자기 비움, 낮아짐, 고난과 죽으심에 대해 말한다면 부활절기의 설교는 회중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의 시작과 부활의 신비에 참여할 수 있도록 다양한 부활의 이야기를 소개할 수 있다. 따라서 부활절기에 적합한 다양한 본문들을 보면 다음과 같다.

부활절기에 적합한 본문들

명칭

본문

1주

부활주일(Easter Sunday)

시 118:1-2, 14-24; 행 10:34-43; 골 3:1-4;

요 20:1-18

2주

도마주일(Thomas Sunday)

시 16; 행 2:14, 22-32; 벧전 1:3-9; 요 20:19-31

3주

음식주일(Meal Sunday)

시 116:1-4; 12-19; 행 2:14a, 36-41; 벧전 1:17-23;

눅 24:13-25

4주

선한목자주일

(Good Shepherd Sunday)

시 23; 행 2:42-47; 벧전 2:19-25; 요 10:1-10;

요 10:1-10

5주

‘나는… 이다’ 주일

(I AM Sunday)

시 31:1-5, 15-16; 행 7:55-60; 벧전 2:2-10

요 14:1-14

6주

승천준비주일

시66:8-20; 행 17:22-31; 벧전 3:13-22; 요 14:15-21

7주

승천주일

시 68:1-6, 32-35 행 1:6-14; 벧전 4:12-14, 5;6-11;

요 17:1-11

8주

성령강림주일

(The Day of Pentecost)

시 104:24-33, 35b; 민11;24-30; 고전12:3-13;

요 20:19-23

3. 설교의 방향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다양한 본문들로 부활절기에 입체적으로 설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주어진 본문을 통하여 부활절기에 어떠한 방향으로 설교할 것인가를 결정짓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다음의 몇 가지를 주의 깊게 염두해 두어야 할 것이다.

첫째, 부활의 감격과 기쁨이 느껴지는 분위기를 연출하는 선포여야 한다. 이 절기에 제공되는 설교사역은 결국 고난의 십자가 신학과 영광의 부활신학이 만나는 형태로 그 균형을 잡아야 한다.

둘째, “Kerygmatic Preaching"에서 ”Didactic Preaching"으로 그 비중을 점증할 필요가 있다. 이 절기가 갖는 신앙적인 명제들 중 하나는 “성숙”이고, 신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는 “성화”로 세례를 새로 받은 새 신자 뿐 아니라, 기존 신자들에게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난 존재로서 합당한 새로운 사고와 새로운 삶의 스타일을 지향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설교의 중요한 포인트가 되어야 한다.

셋째, 설교자는 이 절기의 끝에 성령강림절이 위치하고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성령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에 주님의 현현사건이 이해되고, 승천과 성령강림 사건에서 나타난 제자들의 행동도 이해될 수 있다. 따라서 “기쁨의 50일” 내내 이어지는 기쁨의 능력도 성령의 사역이요, 승천의 초월적인 사건이 확인된 것도 성령의 능력이요, 부활현현 사건의 메시지를 설명하는 것 모두가 다 성령과의 연계성 속에서 설명되어야 한다.

넷째, 이 기간 동안에 설교자는 임마누엘의 신앙을 강조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부활사건의 초점은 임마누엘에 있다.

다섯째, 설교자는 이 절기 동안 선교적 관심을 강조해야 한다. 특히 본 절기에 설교자는 좀 더 에큐메니컬적인 차원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즉 복음을 전파하는 차원(Gospel Mandate)과 사회봉사라는 차원(Cultural Mandate)이 적절하게 균형을 이루어 설교할 수 있어야 한다. 부활에 의하여 일어난 놀라운 변화는 단지 한 개인의 삶의 변화 차원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며, 보다 우주적인 차원으로 확대시킬 필요가 있다. 그것은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모든 영역에서 도전되어야 할 과제이다.

Ⅴ. 기쁨의 50일의 예배적인 접근

1. 예배의 기본적인 전제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부활 절기를 기독교 예배 중 가장 기뻐하며 경축하였다. 그것은 교부들도 그대로 정신을 이어받아 지켜 왔는데 주승중은 어거스틴의 말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주의 부활하심을 기념하는 이 기간은 수난의 기간이 아니라, 기쁨과 평화의 기간이다. 금식을 하지 않고, 부활을 상징하는 뜻으로 서서 기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모든 행사는 일요일 각 제단에서 행해져 왔고, 할렐루야를 불러 우리가 장래에 할 일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 외에 없음을 나타내었다.

어거스틴이 이 부활 절기를 기쁨과 평화의 기간이라고 말한 것과 같이 이 부활절기 기간 동안에 더욱 그 의미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기본적인 전제가 있다.

첫째, “기쁨의 50일” 절기는 사순절 기간 동안의 금식으로 충분히 준비된 전형적인 그리스도의 절기라는 사실이다. 신랑이 함께 있을 때에는 금식하지 않는다는 주님의 말씀에 충분히 근거한 초대교회는 이 절기 동안 금식을 금지하며, 그리스도의 현존을 충분히 즐거워하는 기간으로 삼았다. 그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제자들과 부활의 식탁을 함께 하시는 주님을 회상하기도 했고, 똑같은 형태로 재현하기도 하였음을 성경은 증거하고 있다.

둘째, 교회는 이 절기 동안 서서 기도한다. 이것은 부활을 몸짓으로 표현하는 시도들이며, 이것은 또한 권위와 능력으로 다시 오시는 그리스도의 왕적 통치에 대한 기대를 나타내 주기도 한다.

셋째, 사순절 기간 동안 금지되었던 “알렐루야”로 찬양하는 것은, 천상적인 예전에의 공동체적 참여를 고백한 것이다. 또한 이것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현존 안에서 교회의 기쁨을 노래하는 고백적 성격도 있다.

넷째, 세례 후 실시하는 신비교육의 장이 이 절기동안 이루어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신비가 그의 백성들에게 계시됨을 증거 하는 의식이 요청된다. 그러므로 사순절 동안 세례 성례전의 준비 작업이 이어지는 “파스카 절기”는 기존 회중들의 집단 속에 새 신자를 동화시키는 중요한 의식들이 사용될 필요가 있다.

2. 예배의 중심 주제

부활 절기는 부활의 신비를 전하고 재현하는 중요한 시간이다. 또한 다시 사신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뻐하고, 그분의 임재를 새롭게 경험하면서 그분의 주인 되심과 왕 되심을 선포하는 절기이다. 그러므로 부활주일 예배는 한 해의 모든 예배 가운데 정점에 해당하는 예배였다. 이 예배에서 모든 예배자들은 하나님의 신비와 승리, 그분의 측량할 수 없는 사랑과 설명할 수 없는 자비에 압도되게 된다. 이 부활 신앙은 교회와 성도들의 신앙의 근간을 이루었으며 또한 교회의 활동과 선교에 가장 중요 동기부여가 되었다.

따라서 한국교회는 잃어버린 초대교회의 부활에 대한 확신과 기쁨을 회복하는 것이 오늘 우리 예배 현장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초대교회 예배자들이 기쁨과 감격 속에서 주님의 부활을 기뻐하고 경축하였던 부활 절기와 관련하여 우리가 발견하고 새롭게 해야 할 예배의 중심주제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부활 절기에는 그리스도의 다시 사심에 대한 강조가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다시 사심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완성이며, 하나님의 백성들을 새롭게 하시는 사건이 된다. 이것은 부활하심을 통해 우리들에게 구체적으로 그 사건이 이루어졌음을 강조되어야 한다.

둘째, 부활 절기에 그리스도의 현존하심과 통치하심에 대한 강조가 있어야 한다. 부활 신앙과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다”는 고백은 상호 보완적이다. 그분의 살아계심은 반드시 하나님의 백성들의 공동체 안에 현존하심으로 나타나며, 온 세상을 통치하시는 권능의 주로 나타나게 된다.

셋째, 부활 절기는 기쁨의 절기임이 강조되어야 한다. “기쁨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가장 확실한 표시”이기에 그리스도의 살아계심과 부활하심에 대한 신앙은 반드시 기쁨으로 연결되게 된다. 부활 절기는 다시 사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가운데 현존하시며 통치하심에 대한 감격의 표현으로서 기쁨을 그 중심축으로 한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우리 주님의 부활을 경축하는 부활 절기는 기쁨과 찬송, 경축과 빛의 절기였다.

넷째, 부활 절기는 복음 선포의 절기임이 강조되어야 한다. 주로 이때에 세례가 행해진 것도 복음 선포와 관련이 있으며, 부활의 은총의 나눔으로서의 성만찬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부활절 전야 철야 모임은 세례와 성만찬으로 끝을 맺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부활과 함께 시작되는 새 창조를 상징하였으며 이것은 복음 전도의 위임으로 귀결된다. 부활의 아침에도 그러했지만 가서 부활의 소식을 전하는 것은 부활 절기의 가장 중요한 삶의 덕목이다.

3. 다양한 예전적 시도들

1)부활 상징의 의미 강조

이 절기 동안 분위기 고양을 위하여 점화된 부활절 촛불을 지속시키며, 50일 동안 내내 세례반을 그대로 설치하는 것도 대단히 중요한 예전적인 아이디어라 할 수 있다. 또한 교회의 인테리어는 최상의 모습으로 장식할 필요도 있다. 비록 절기가 갖는 원래의 예전 색깔은 흰색이라 할지라도, 이 절기의 기쁨의 분위기를 종합적으로 연출해 내는 것이 중요한 까닭에, 사용되는 색깔도 금색과 붉은 색깔과 흰색의 조화를 표현해 보는 것도 좋은 발상이라 하겠다.

2)성만찬적 특성

예배의 핵심은 부활 사건을 지속적으로 경축하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예배는 웨버의 지적대로 두 가지 늪에 빠져 있다. 하나는 지나치게 설명에 치중한 예배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과의 낭만적인 관계를 중시하는 예배이다. 따라서 이러한 약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부활하신 주님이 엠마오로 내려가는 제자들과 함께 식사하면서 보여준 모습을 보면서 오늘날 예배의 회복을 말할 수 있다. 즉 “함께 모여 - 복음을 듣고 - 함께 빵을 나누며 - 나가서 다른 이들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성만찬적 예배는 세상을 향한 발걸음으로 연결될 수 있다. 따라서 예배가 하나님의 사역이라는 사실 속에서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구원 행위와 예수의 죽음과 악한 권세에 대한 승리를 위하여 다시 살아나신 예수의 부활을 기억하여 궁극적으로 주님을 만난 사람들의 삶에 변화를 선포해야 한다. 이것은 개인의 체험과 공동체적인 형성을 통해서 부활의 영성을 만들어내게 하는 참된 원동력이다.

이런 의미에서 부활 절기에서 성만찬 성례전적 특성은 매우 중요하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현존과 부활절의 7주간의 확대라는 절기상의 특성을 고려하여, 그 분과 함께 하는 부활 후 식탁교제의 일환으로서 이 기간 동안 만은 매주 성찬성례전을 집례하는 것을 강조할 필요도 있다. 그리고 그 내용은 기쁨에 찬 부활식사라는 맥락으로 이끌어 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3)예전음악

부활 절기에는 기쁨의 음악을 적절히 사용하는 것이 좋다. 기쁨으로 노래하는 것은 인간의 심연에 존재하는 본능적 표현이며, 이러한 태도는 이 절기에 더욱 고양되어야 하며 촉진되어야 한다. 협연이나 칸타타 등 다양한 음악적인 행사들이 있을 수 있는데, 그 모든 음악의 방향성은 바로 천상을 향한 “할렐루야”가 되어야 한다.

4)승천절과 이어지는 주일의 예전

교회는 그리스도의 승천과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시다는 사실에 대한 성경적 근거를 토대로 승천축일의 예전적인 전통을 가지고 있다. 6번째 목요일에 일어나는 이 절기는 단순히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40일간 현현하셨다는 사실만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부활 절기 전체로서의 절정에 해당하는 날로 이해해야 한다. 그러므로 가능하면 6번째 목요일에 특별예배를 드리는 것이 좋으나, 형편에 따라서는 이어지는 7번째 주일에 드려도 무방하다. 그리고 그 예전의 특성은 “부활과 승천의 연계성”을 유지하는 관점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승천은 하나의 독립적인 사건이 아니며, 부활 절기 전체의 의미를 증거하는 하나의 중요한 입증사실 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Ⅵ. 나가는 말

초대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하나님의 사랑의 구체적인 드러내심으로 이해하였으며, 부활하심을 역사 가운데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새로운 구원 행동에 대한 가장 중심적인 증거로 보았다. 그러므로 십자가와 부활하심은 초대 교회의 믿음의 고백과 증언의 가장 중심적인 내용이었으며, 예배의 중심점을 이루었다. 그 중심에 바로 부활절기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중심으로 그리스도를 나타내기 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무엇보도다 부활하신 주님을 경험하고 그 분과 함께 한다는 임마누엘 신앙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기쁨으로 연결 될 것이다. 따라서 주님을 따라가는 성도들의 삶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의 패턴을 따라 살아가는 삶이 되어 이 땅에 참 평화와 기쁨을 전해주는 선교적 사명도 감당하게 될 것이다.

이제 한국교회는 그동안 잃어버렸던 부활 절기를 회복하는 것이 절실히 요청된다. 기독교는 기쁨의 종교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단 하루의 절기로 끝내기 보다는 초대 교회로부터 지켜왔던 "기쁨의 50일" 절기를 회복하여 기쁨과 소망, 경축의 분위기를 성령강림절기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기획한다면 보다 더 풍성한 기쁨과 감격을 경험하는 부활절기가 될 것이다.

 

기쁨의 50일(이창훈 조원).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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