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10일 주일예배
[ 끝까지 견디는 자가 구원을 얻으리라: 마 24장 3-14절]
어느 시대나 종말에 관한 관심은 지대합니다. 한국교회에서도 종말론은 심각한 문제를 일으켜왔습니다. 사람들의 관심이 극단적으로 쏠려서 그렇습니다. 종말에 대한 두려움과 무서움을 이용하는 종교적인 집단들도 한국교회 안에 있고, 한국의 이단들도 대부분 종말론으로 그들의 입지를 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이비 종말론이 판치는 혼란스러움 속에서 우리가 바른 종말 신앙을 가지고 건강한 신앙생활을 가져가는 것이 필요한 때입니다.
왜냐하면 신앙인이 바른 종말에 관한 이해를 하고 있지 못할 때 매우 위험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앞으로 주님 오심에 대한 기대와 설렘이 있어야 하는데, 오히려 두렵고 무서워하도록 만든다면, 그로 인해 우리 신앙은 왜곡되고 말 것입니다. 오실 주님에 대한 기대보다는 종말 그 자체에 온 초점이 맞추어져 실은 정상적인 생활과 신앙의 삶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소명 자체를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 안에서뿐만 아니라 전체 기독교 역사를 보면 이로 인한 피해가 너무도 큰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마지막 때에 대한 바른 이해를 소유할 수 있을까요? 구약의 묵시문학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역사의 종말에 관한 생각들을 공유하였습니다. 먼저 이것을 우리가 어떻게 제대로 읽어낼 수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이것도 유대 묵시문학이 왕성하게 된 이유와 그들 역사의 맥락에서 먼저 이해되어야 하지 단순히 문자적으로 읽고, 게다가 알레고리 적인 해석을 하면 본문이 말하는 것과는 너무 멀리 가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와 함께 마지막 때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정확한 종말 이해를 해야 합니다. 이것 없이 오직 자기가 계시받았다고 떠든다면 그리고 그것들을 추종한다면 심각한 함정에 빠지게 될 것이고 그 끝은 분명합니다.
예수님은 이미 정확하게 그때가 오직 아버지 하나님만이 아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주님이 명확하게 말씀하셨음에도 종말의 때를 알고자 몸부림을 쳤습니다. 그러다 보니 억지 해석들이 난무하게 되었습니다. 소위 시한부 종말론이 그런 해석의 산물입니다. 이것이 한국교회를 얼마나 많이 흔들었습니까? 많은 사람의 삶이 망가졌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다 거짓임이 드러났음에도 시한부 종말론은 여전히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마지막 담화를 통해 종말의 모습을 들을 수 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을 향한 날카로운 비판이 이어진 상황을 보면 앞으로 벌어질 이들의 대항이 만만치 않을 것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죽음과 부활 승천으로 말미암은 자신의 부재 시에 닥쳐올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제자들을 준비시키시고자 마지막 당부의 말씀을 하신 겁니다. 종말과 재림에 관한 예언 및 교훈을 내용으로 하는 그 유명한 감람산 강화입니다.
오늘 본문은 제자들의 질문으로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을 바라보시면서 이 성전이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이라고 하셨을 때 그것을 마음에 담아두었던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두 가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마 24:3 “예수께서 감람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와서 이르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하나는 역사적인 맥락에서 던지는 질문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언제 예루살렘 성전이 허물어지겠느냐는 질문입니다.
다른 하나는 마지막 때, 즉 종말에 관한 질문입니다.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겠습니까 라고 묻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늘 그 시기가 언제일까에 관심이 지대합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파괴와 재림에 관한 제자들의 질문에 직접적인 대답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와 같은 상황이 다가올 때 하나님의 백성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를 말씀하시는 데 초점을 두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A.D.70년 다가올 성전의 파괴를 넘어서 예수님은 전체 세대와 종말에 권능과 영광으로 다시 오시는 때를 바라보시며 그 종말의 때 모든 제자들이 어떻게 신앙적으로 대처해야 할지를 말씀해 주신 겁니다.
예수님은 먼저 그들이 미혹 받지 않도록 주의를 당부하셨습니다. 많은 사건이 마치 종말이 임한 것처럼 믿도록 제자들을 미혹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 24: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누구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셨습니까? 사람의 미혹입니다. 바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사람들을 미혹시킬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거짓 선지자들은 낯선 자가 아닙니다. 실제로 참 선지자보다도 거짓 선지자들의 감언이설에 속아 넘어갈 때가 많았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반대편에 서 있는 자들입니다. 그러기에 마지막 때 우리 신앙을 온전히 지키려고 하면 영적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성령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항상 성령 안에서 깨어 있을 때 미혹을 받지 않습니다. 미혹되는 것은 순간입니다.
그와 함께 거짓 그리스도가 수없이 일어나 사람들을 미혹시킬 것입니다.
마 24:5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유대의 역사를 보면 거짓 선지자들과 메시아적 구원자들이 다수 출현합니다. 특히 제2 성전 시대에 지배 세력에 대항하는 혁명을 자주 선동하였고, 이런 부류들은 교회가 설립된 뒤에도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습니다. 전 세대를 통해서 여러 사람이 메시아적 신분을 주장했습니다. 이 미혹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참칭 메시아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와 같은 참칭 메시아에게 많은 이들이 미혹 당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무지해서 그럴까요? 미혹은 영적인 문제이기에 머리가 좋고 나쁨에 따라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똑똑한 이들도 미혹을 당합니다. 진리로 채워지지 않는 한 우리는 미혹의 위기 앞에 노출될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나 거짓 그리스도의 미혹도 사람들을 흔들겠지만, 세상을 혼란하게 만드는 난리에 대한 소문도 사람들의 마음을 공황 상태로 몰고 갈 수 있습니다. 제자들로 하여금 마음을 담대하게 하도록 당부하십니다.
마 24:6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대게 보면 한 사회를 혼란하게 만들기 위해 적들은 흑색선전을 펼칩니다. 이 마타도어로 인해 자중지란에 빠지도록 만드는 거죠. 어둠의 권세도 그와 같이 세상을 흔들어 댈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그런 이야기 앞에 두려워하지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이렇듯 난리와 난리 소문이 사람들의 마음을 흉흉하게 하지만, 실제로 발생하는 전쟁과 기근과 지진 같은 일들은 사람들을 공황 상태에 이르게 할 것들입니다.
마 24:7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일어나 참으로 많은 이들이 죽고 삶의 터전이 파괴되고 있습니다. 기근으로 매일 전 세계에서 1만 9천 700명이 굶주림 때문에 사망하는 것으로 추정되며 4초마다 1명꼴로 기아 사망자가 나오는 셈"입니다. 엄청난 대지진과 대홍수, 허리케인 등이 지구 곳곳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실시간으로 그런 뉴스들을 접할 수 있어서 더욱 큰 공황 상태에 빠질 수 있습니다. 이런 공포와 두려움에 기생해서 존재하는 극우 종교 유튜버들은 이것들을 극대 해석해서 사람들을 혼란하게 만듭니다.
이에 사람들은 세상이 다 끝난 것처럼 이야기할 겁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와 같은 일들이 단지 재난의 시작일 뿐이라고 하셨습니다. 그저 진통이 시작된 것뿐입니다.
마 24:8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
그러니 호들갑 떨지 말고 오직 바른 신앙으로 무장하고 자기 삶의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물론 환경적인 많은 어려움이 닥쳐올 것입니다. 하지만 전쟁과 전쟁의 소문, 비극적인 지진, 기근의 시간은 반복되는 고통의 역사를 조망할 뿐입니다. 이는 우리에게 종말이 오고 있음을 상기시키는 역할인 거죠. 이것들로 시기를 해석해내려고 애쓰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 그 누구도, 어떤 예언자라고 해도 인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실 때가 언제인지를 말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이건 아버지의 일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거짓 선지자나 거짓 그리스도에게 미혹 당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만이 아닙니다. 이와 같은 재난들이 예외 없이 누구나 겪는 일이라면 박해는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직접적으로 가해진다는 사실입니다. 필히 당해야만 하는 피할 수 없는 고난과 박해이지만 이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다양한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마 24:9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제자들이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미움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로 인해 환난에 넘겨져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하셨어요. 왜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미움을 받습니까? 그건 제자들이 그리스도와 동일시되기 때문입니다.
딤후 3:1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여기에서 신앙에 대한 참혹한 박해를 견디는 이들도 있겠지만 많은 이들이 그 관문을 넘어서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예수님은 경고하셨습니다.
이로써 많은 사람의 헌신과 열심이 식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마 24:10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참혹한 박해 앞에서 많은 사람이 실족하여 배교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 자기들의 안전을 위해 사람들을 고발하여 넘겨주고 서로 미워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어둠의 권세가 노리고 있는 술수입니다. 자중지란을 노리는 겁니다.
그런 혼란을 틈타 거짓 선지자가 일어날 것이고, 그들은 많은 사람을 미혹할 것입니다.
마 24:11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미혹의 결과 세상의 정의는 무너지고 불법이 난무하게 되고 결국 사람들 사이의 따뜻함은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마 24:12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극한 상황에 다다를 때 사람들은 극단적으로 개인주의에 빠지게 되고 자신의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게 되죠. 그러니 서로를 믿을 수 없게 되고, 세상은 점점 더 냉랭하게 변하게 될 겁니다. 마음 아픈 일이겠지만 이것은 신앙공동체의 모습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이 지경까지 이르기 전 실은 많은 이들이 포기할 것입니다. 교회사를 보면 반복된 박해의 역사에서 고난을 이겨내지 못하고 실족한 이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약한 마음을 아시기에 그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말고 이 모든 어려움을 끝까지 견디라고 제자들에게 요청하셨습니다.
마 24: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이 시기는 믿는 자들에게 많은 인내를 요구하는 시기가 될 것입니다. 끝까지 견딘다는 것은 무거운 짐이나 견디기 힘든 시련이나 박해의 상황에서도 그 자리를 이탈하지 않고 자기 자리를 고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과정이 물론 극심한 고통과 아픔을 수반하게 되지만, 그러나 그럼에도 그 자리를 고수하는 것이 진정한 인내인 거죠.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동일하게 하나님을 사랑하던 동료들 대부분이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저버리는 상황에서 그리고 주위 사람들로부터 미움과 박해를 당하는 상황에서 그 자리를 이탈함으로써 그들과 동화되지 않고, 고통을 감수하면서까지도 그 자리를 고수하며 자신의 소신과 신념을 지켜나간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 대한 진정한 신의를 보이는 값진 모습입니다. 그렇게 끝까지 견디는 자만이 구원을 얻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 방점은 여기에 있습니다. 마지막 환란 날에 어떤 징조가 있고 어떤 일들이 벌어질 것인지를 아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래야 대비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렇지만 안다고 해서 그것을 쉽게 이겨낼 수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미혹되지 않고 끝까지 견디는 자만이 구원을 얻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견디지 못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거짓 선지자와 거짓 그리스도의 미혹에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건 그리스도를 향한 마음을 내려놓는 행동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했던 그 자리를 떠나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 결국은 배교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많은 이들이 배교하고 복음을 떠나도 그 불신과 억압을 뚫고 천국 복음은 온 세상에 전파되어야 합니다. 온 세상, 모든 민족을 향해서 말입니다.
마 24: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예수님의 지상 사역 동안에 제자들의 선교는 다윗의 언약을 성취하기 위해서 이스라엘에만 제한되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 승천 이후 선교는 아브라함의 언약을 성취하는 만방으로 전환이 되었습니다. 그 시작은 마태복음 28장 16~20절의 대위임에서 공식화됩니다.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오고 오는 모든 세대 그리스도인에게 주신 선교 명령입니다. 천국 복음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입니다. 하나님 나라 복음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지금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복음이 전파되게 될 것입니다. 그제야 끝이 온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온 세상에 복음이 전파되지 않은 걸까요? 아직도 미전도 종족이 있다는 의미입니까? 아직 그리스도의 재림이 없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그렇다면 중요한 문제가 생깁니다. 복음이 온 민족에게 전해지지 않은 것이 재림 지체의 주된 이유라고 할 수 있어서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종말이 지구상의 마지막 남은 모든 민족까지 복음화시키는 것을 조건으로 임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마치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에 제자들이 순종하고 혹은 덜 순종함에 따라, 종말의 도래가 지체되거나 앞당겨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오히려 이 말씀은 지리적 혹은 인종적 제한 없이 천국 복음이 널리 전파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유대인들에게 역사적으로 종말은 이미 1세기에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필수적인 조건들이 모두 존재했습니다. 5-12절의 모든 고난을 주후 70년 이전에 모두 겪었던 일입니다. 예루살렘 멸망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정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그러한 고난들은 현시대에 이르기까지 교회가 경험해 온 징조들이었습니다. 종말의 징조는 모든 기독교 세대에 존재했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명확해집니다. 예수님이 말씀하고자 하는 것은 언제 오시는 가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떤 일들이 벌어질 것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서 있는 자리에서 천국 복음을 전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깨어 있어 인내하며 끝까지 견디느냐의 문제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으로 제자들을 위로하고자 하신 겁니다. 종말론에 사로잡힌 자가 아니라 매 순간이 종말인 것처럼 복음에 충실한 삶을 살라는 의도입니다. 그런 자만이 모든 것을 견딜 수 있고 완전한 구원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4-6절의 말씀입니다.
4.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둑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5.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6.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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