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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동영상

그 날이 도적같이 이르리라: 마 24장 30-44절

by 최수근 2024. 2. 26.

2023년 12월 24일 주일예배

[그 날이 도적같이 이르리라: 마 24장 29-44절]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여러분은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십니까? 그냥 흘러가는 시간의 기록일까요? 이 땅의 역사는 우연도, 아무런 의미도 없는 하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역사는 실제적 의미에서 그분의 이야기입니다. 그분이 이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분이 이 세상 안에 거주하러 오셨습니다. 이제 그분은 이 모든 것을 끝내기 위해 역사의 끝에 귀환하실 것입니다. 세상의 역사는 그 장엄한 날을 향해 일정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의 희망입니다. 이 소망으로 기다리는 절기가 바로 대림절입니다.

이와 같은 패러다임으로 성경을 바라보고 역사를 바라보며 바른 종말론적 신앙을 살아가려고 하면 성경의 내용들이 선포되던 그때의 상황에서 무엇을 말씀하고자 한 것인지를 해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현재를 통해 미래를 통찰하며 바라볼 때 헛된 것에 미혹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성경은 당시의 상황이나 환경을 건너뛰어 무작정 미래로 달려가지 않습니다. 과거나 현재나 사람들을 현혹하는 부류들은 무작정 미래의 이야기로만 몰아가 오늘을 살아가야 하는 신앙인의 모습을 왜곡시켜버리곤 합니다. 오늘을 바로 살아갈 때 내일을 예비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예수님께서 마지막 감람산 강화를 통해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와 주님의 재림에 관한 말씀을 하실 때도 목적은 그와 같습니다. 두려움을 주고 지금의 삶을 무시해버리라고 하신 것이 결코 아닙니다. 실은 지금 깨어있으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때가 되면 순식간에 주님이 임하시기 때문입니다.

24:27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더군다나 그 시기를 우리는 절대 알 수 없습니다.

24:36 “그러나 그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그러기에 그날은 도적같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24:43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그렇다면 할 일은 분명합니다. 깨어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24:44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그와 같은 대비는 지금의 삶을 온전하게 세워갈 때 가능해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오늘을 살아가면서 내일을 어떻게 예비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예수님의 초림을 통해서 이 땅에 임하였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었으나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두 나라의 시민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오늘 이 시대에도 속하며 장차 임할 시대에도 속하게 되는 겁니다.

이렇게 현재와 미래가 교차하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세상과 차별화되는 거죠. 이 땅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완성될 하나님 나라와 구원을 소망하기에 모든 삶의 자세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걸 종말론적 신앙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길은 허무함과 파괴, 멸망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사라져간다면 지금과 다가올 시간에 우리가 참아내야 할 고난과 역경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바라보아야 하는 것은 지금을 넘어 새로운 시작입니다. 주님의 재림은 이 땅을 통치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로 인해 모든 사람의 운명이 결정지어질 것입니다.

24:40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24:41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그때 사람들은 둘로 나뉘게 될 겁니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라했습니다. 아마도 데려감을 당하는 사람들은 인자가 오실 때 천사들이 모으려고 하는 택함을 받은 자들에 속할 것입니다.

24:31 “그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반면에 버려둠을 당할 자들은 심판이 어떻게 될는지 기다려야 하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이 종말의 때,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인간의 역사를 살펴보면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이 되면서 점진적으로 앞으로 나아갑니다. 과거의 사건을 통해서 오늘을 보게 되고 오늘을 통해서 미래를 예견해 볼 수 있는 거죠.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 속에서도 과거 다니엘이 예언했던 것처럼 주전 167년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 4세의 예루살렘 성전을 더럽히던 때의 모습을 들을 수 있었고, 이것처럼 예루살렘 성전이 폐허더미로 변하게 되리라는 예언을 듣게 됩니다. 아마도 엄청난 환란을 겪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일을 종말론적 사건, 즉 다니엘 예언의 마지막 성취로 이해하였을 겁니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말씀은 리얼하게 다가오지 않지만, 제자들이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들었을 때는 이때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난이 닥쳐올 것이라는 생각을 가졌을 겁니다.

안티오커스 에피타네스 4세에 의해 성전이 더럽혀졌던 것 그 이상으로 주후 70년 예루살렘성이 무너지고 성전이 파괴되었을 때 기록에 의하면 당시 기독교 공동체는 그날이 오면 그의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에서 도망하라고 가르쳐주신 예수의 말씀대로 트랜스 요르단의 산이나 언덕으로 피신했고, 그 결과 많은 사람이 데가볼리의 펠라지방이라는 곳에 정착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에서 놓쳐서는 안 되는 초점이 있습니다. 수십 년 이후에 이루어질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를 넘어 마지막 때, 종말의 때를 내다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냥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로 끝나는 과거에 국한된 사건이라면 오늘 우리가 경청할 수 있는 것이 한정될 수밖에 없습니다. 단지 과거의 역사에서 얻는 교훈일 뿐입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파괴로부터 마지막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보여 주신 겁니다. 그렇게 종말을 향한 시간은 주님의 다시 오심으로 완성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지난 긴 시간 겪어왔던 모든 교회공동체의 고통과 기다림에 진실한 답변이 될 수 있는 것은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인자가 실제로 오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때까지 고통과 기다림의 반복, 그 긴 시간보다 더 쉬운 선택을 제안하는 자들. 즉 고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제안하거나 종말 이전의 종말론적 축복을 약속하는 자들은 예수님 말씀의 잣대로 보면 모두 거짓된 자들입니다.

예수은 제자들에게 아무리 인상적인 기적적 행위를 보여 준다고 할지라도, 또 계속되는 고난으로 고통이 심해지면서 메시아의 출현이 아무 보장도 없이 지연되는 것 같아 보일지라도 거기에 미혹되지 말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종말에 관한 교훈의 긴장 관계를 깨고자 하는 모든 시도와 메시아적 주장으로 혹은 아주 큰 능력 있는 행동으로 하나님 나라를 억지로 오게 하려는 그러한 모든 시도는 거짓되고 위험한 것으로 간주 되어야 합니다. 그건 우리의 방향을 잘못 잡도록 해서 전혀 다른 곳으로 향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이용해 악인들이 자기 유익을 챙깁니다. 지금도 전 세계적으로 예언은, 특히 종말 예언은 엄청난 비즈니스입니다. 저는 그런 걸 너무 많이 보았습니다.

인자의 재림에는 끼어들 다른 것들이 없습니다. 오직 주님의 오심 만이 하나님 백성의 소망으로 남습니다. 이 소망 가운데 깨어 바로 서 있는 이 만이 인자가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것을 놓친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믿는 이로서는 가장 안타깝고 불행한 일이 될 것입니다.

구분되어야 할 것은 종말이 다가옴에 대한 징조와 종말 그 자체에 대한 징조입니다. 전자는 아주 확실하게 알려질 수 있습니다. 반면에 후자의 때는 감추어져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예수의 시대 이래 모든 세대는 종말을 지시하는 징조들의 실제에 직면해 왔습니다.

그리고 인자는 현재의 세대를 포함하여 그러한 세대 중 언제라도 오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재림과 세상 끝에 대한 실제적인 시간은 오직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그 시간을 알 수 없다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인자가 미래에 돌아오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사실을 알려 주신 것은 그것 자체를 위해서도 아니고 미래에 대한 우리의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함도 아니고 그 사건이 일어나기 직전까지 우리를 편안하게 쉬도록 하기 위함도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 우리가 분간할 수 있는 징조들, 종말이 분명히 임박했음을 지시하는 이 모든 것은 우리를 자극하여 우리가 현재에 합당하게 살아가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16:15 “보라 내가 도둑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종말에 대한 신약의 가르침은. 소위 예언자들의 고찰이 아닌 윤리적 삶 속에서 그 가르침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는 한 종말의 덫은 우리 신앙과 삶을 끊임없이 옭아매어 그날의 축복이 아닌 두려움과 비본질에 심취한 그래서 다시 오실 주님에 대한 기대와 설레임이 아닌 종말론에 중독된 자로 살아가게 만들 것입니다.

이걸 벗어나 우리는 현재와 다가올 미래를 동시에 바라보면서 성령님과 동행하는 참 신앙의 모습으로 살아갑시다.

그럴 때 우리 안에 아름다운 믿음의 열매들이 풍성하게 맺히게 될 것이고 그것을 우리 주님이 가장 기뻐하실 것입니다.

21:34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21:35 “이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21:36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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