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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설교원고

내 아들의 병을 고쳐주소서

by 최수근 2019. 7. 26.

2019년 7월 21일 주일예배

내 아들의 병을 고쳐주소서446-54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인물은 왕의 신하라고 알려진 자입니다. 그는 헤롯의 신하로 추정됩니다. 그에게는 가나에서 삼십 킬로미터 떨어진 가버나움이라는 동네에 아들이 있었는데, 그 아들이 중병이 들어 사경을 헤매고 있었습니다. 이 신하가 얼마나 노력했겠습니까? 여러 치료방법을 동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병은 호전되지 않고 살 소망이 없어 보였습니다 

아들로 인하여 좌절과 낙심 가운데 있을 때 그에게 한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갈릴리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 갈릴리 사람들이 명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가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보고 갈릴리로 돌아와 예수님의 소문이 자자했던 때입니다. 갈릴리인들 가운데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왕의 신하는 예수님이 돌아오셨다는 소식에 즉시 예수님께로 달려갔습니다. 왜 예수님께로 달려갔겠습니까? 왕의 신하는 필시 예수님이 전에 가나에서 행하신 기적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저분이라면 아들을 고쳐주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에 대한 믿음으로 그는 예수님께 청하였습니다. “예수님! 가버나움의 집으로 내려가셔서 아들의 병을 고쳐주소서. 그 아이가 거의 죽게 되었습니다. 불쌍히 여기시고 치료해주소서”  

병을 고쳐달라고 간청하는 신하의 믿음이 대단해 보이지 않습니까? 그런 그를 예수님께서 마땅히 칭찬하셔야 하는데 예수님의 대답은 의외로 놀랄 만큼 무뚝뚝하셨습니다. 그건 칭찬이 아니었습니다. 48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까칠하게 예수님께서 반응하여 마치 그의 요청을 거부하시는 것처럼 보이자, 왕의 신하는 좀 더 강력하고 좀 더 진지하게 요청하였습니다. 49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그는 예수님의 무뚝뚝한 반응에 전혀 위축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들이 죽기 전에 예수님께서 이 아이에게 가기를 더욱 간청하였습니다. 아마 아버지의 속마음은 이렇게 외쳤을 것입니다. “예수님! 제 믿음을 지적하는 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예수님! 지금은 행동이 필요합니다. 우리 아들이 죽기 전에 가버나움으로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더욱 간절함으로 예수님께 요청하자 드디어 예수님은 반응을 보이셨습니다.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 예수님은 말씀만으로도 충분하신 분이십니다. 그분의 말씀에 반응하는 우리들의 믿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왕의 신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그의 집으로 즉시 갔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하신 것은 뭔가 보여주어야 믿는, 표적과 기사만을 쫓아다니는 믿음을 책망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왕의 신하는 단지 네 아들이 살아있다는 말씀만을 들었을 뿐인데, 확실하게 보여주신 표적이 없지만 아들이 살아 있다라는 주님의 말씀만을 믿고 달려간 것입니다 

신하가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가버나움으로 내려가고 있을 때 가버나움의 집에서는 그의 종들이 왕의 신하에게로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종들은 참으로 기쁜 소식을 주인에게 알리기 위해 달려 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종들과 마침내 신하가 만났습니다. 죽을 것 같았던 아이가 살아났다는 전갈에 왕의 신하가 얼마나 기뻐하였고 얼마나 감사하였겠습니까? 

너무도 주체할 수 없는 기쁜 마음으로 그는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이것이 과연 예수님의 말씀으로 일어난 일인지 말입니다. 신하는 종들에게 아들이 호전된 시간을 따져보았습니다. 52그 낫기 시작한 때를 물은즉 어제 일곱 시에 열기가 떨어졌나이다 하는지라.” 그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바로 그 순간에 아들의 병이 나았음을 확인하였습니다. 그와 신하들은 죽을병을 고치신 예수님으로 인해 놀라워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들의 선택은 이제 하나였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로 믿는 것입니다. 53그의 아버지가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아 있다 말씀 하신 그 때인 줄 알고 자기와 그 온 집안이 다 믿으니라.” 예수님으로 인해 그의 온 집안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인간의 삶을 위협하는 개인적 고통을 치유해주심으로써 예수님은 그 영광을 나타내셨습니다.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치신 이야기는 참된 믿음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믿음은 우리 구원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이지만, 예수님의 능력이 우리들의 삶에서 이루어지기 위해서도 우리의 믿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우리 인간들의 편에서 가져야 할 중대한 요소라는 것은 예수님이 채워주신 그 절박한 필요를 지닌 소년이 어떤 시점에서도 실제로는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드러납니다. 이 점에서 그 기적은 우리의 상황과도 유사합니다. 그 소년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예수님을 실제로 만난 것은 아니지만, 그 때문에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실 수 있는 분의 능력이 제한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믿음이 발휘될 수 있는 배경이 됩니다. 보지 않고 믿는 것이 더욱 큰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는 또한 믿음의 본질을 분명하게 규명해 줍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기적과 표적에만 근거한 믿음에는 한계가 있음을 드러내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차원에서 하나님과 관계를 맺기 시작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만일 당신이 나의 기도에 응답하시려면 내가 요청하는 이것을 내게 주세요. 나를 위해 이런 기적을 행해 주세요. 그러면 당신을 믿겠습니다.”라고 말입니다 

그 요청은 생애의 반려자를 만나게 해 달라거나 취업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는 것일 수도 있고 어떤 갈등을 해결해 달라거나 실패의 결과를 제거해 달라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또는 어떤 심각한 위험을 면하게 해 달라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한 요청의 목록은 끝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기도들이 때때로 응답 된다는 사실은 주님이 얼마나 자비하신 분인가를 말해 줍니다 

하지만 그렇게 응답된다고 해서 표적과 기적에 근거한 믿음을 참된 믿음으로 잘못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지 못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적에 의해 우리를 섬기는 것이 되기 때문이며 우리는 우리가 그분에게 요구사항들을 지시할 수 있다고 잘못 생각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소위 무당과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표적들과 기도에 대한 기적적인 응답들이 하나님의 실재를 인식시켜주는 출발점으로서는 약간 유용할지 모르지만, 우리를 그리스도에 대한 관심으로 이끌지 못한다면 헛된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참된 믿음은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그 분의 약속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관계의 조건들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그분이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분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여기에서 강조되고 있는 믿음의 세 번째 측면으로 이끕니다. 곧 그것은 믿음의 발전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신하의 반응은 표적을 찾는 것으로부터(48) ‘예수님의 하신 말씀을 받아들이고(50) 믿는 것(53)에 이르기까지 뚜렷한 진전을 보입니다. 믿음은 자라나고 발전하는 생명체입니다. 믿음에는 최종적 헌신이라는 중대 국면도 있지만, 나름대로 성숙하는 기간도 있습니다. 기적들 너머에서 우리는 그것들을 행하시는 주님을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분의 명령에 순종하고 그분의 약속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믿음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예수님과의 이 만남에는 아들의 병이 낫는 것보다 훨씬 더 중대한 것이 걸려 있었습니다. 바로 왕의 신하의 심령이 치유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치유가 이루어지고 나자 그것은 그의 전 가족에게 복을 안겨다 주는 수단이 되었습니다(53). 예수님이 찾으시는 것은 바로 이 최종적인 보물이며 예수님은 그것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심각한 괴로움을 경험하도록 상황을 만드십니다. 119:71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우리가 직면하는 많은 문제가 단순히 인간적인 방책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간섭과 예수님의 은혜와 성령님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그것만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고,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치명적인 병들을 고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이르는 것이 믿음의 힘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치유하시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영적인 필요에 대해서뿐 아니라 육체적인 필요에 대해서도, 성숙한 사람들에게뿐 아니라 어린 사람들에게도 예수님의 은혜는 미칠 것입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우리가 도움을 청하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한 분만으로 충분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고 치료하시고 인도하시는 주님께 날마다 섭시다. 기도합시다. 간청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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