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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설교원고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요 3장 16-21절

by 최수근 2019. 4. 14.

2019년 4월 14일 주일예배설교문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요 3장 16-21절]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성경전체에서 제가 어릴 적부터 들었던 말씀 가운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씀을 꼽으라면 요한복음 316절 말씀입니다. 저 뿐만 아닙니다. 요한복음 316절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다 알고 귀하게 여기는 말씀입니다. 성경 전체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입니다.

이 말씀에는 복음에 대한 가장 뛰어나고도 감동적인 요약이 이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언제 들어도 좋고, 언제 읽어도 위로가 되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사랑의 헤아릴 수 없는 깊이와 넓이와 무게가 강조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여기에서 이처럼은 매우 의미심장한 단어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세상에 대해 나타내신 사랑의 분량과 정도를 지시하고 있어요. 하나님의 사랑의 분량과 정도가 너무도 특별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 안에서 자신의 독생자를 내어 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실 정도로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토록 우리를 사랑하셔서 아들을 주신 것입니다.

사랑을 받는다는 사실은 우리를 매우 힘나게 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결핍으로 인해 실은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엄청난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이 진리의 말씀이 여러분의 삶에 힘이 되고, 위로와 격려가 되기를 바랍니다.

유대인들은 자기들만을 위한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사랑하신다는 가르침은 매우 낯선 것입니다. 그와 같은 사고 속에 있는 니고데모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유대인만을 향한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을 향하고 있다고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놀라워했겠습니까? 하지만 창조 이래로 언제나 하나님의 사랑은 열방을 향해 있었습니다. 그들이 착각한 것뿐입니다. 하나님은 구원과 사랑의 스펙트럼을 명확하게 계시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은 온 세상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그토록 사랑하는 세상은 어떤 세상입니까? 시종 일관 타락되고 하나님께 조직적으로 반항하는 바로 그 세상입니다. 그 가운데 인간들은 어떻습니까? 죄 가운데 있는 인간, 하나님을 떠난 인간, 하나님이 원래 창조 때에 주신 모든 영광스러운 가능성 밖에 살고 있는 인간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과 인간을 그토록 사랑하셔서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습니까? 세상이 하나님께서 본래 아름답게 창조한 세상, 하나님의 다스림으로 세워진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냥 우연하게 생성된 세상이 아닙니다. 아버지 것이시기에 다시 회복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 죄와 불순종 때문에 우리들이 당해야 할 모든 고난과 고통을 예수 그리스도가 대신 담당하도록 하셨습니다.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습니다. 그 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우리의 죄가 대속되고 의롭다 여김을 받는 길이 열렸습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원에 이르는 길이 되셨고, 세상을 향해 말씀은 구원과 영원한 생명에 이를 수 있는 유일한 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믿는 자, 즉 그의 이름을 믿는 자는 하나님 나라의 생명을 받는다는 것을 말씀에서 강조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예수님이 나의 주가 되시고, 나의 구원자가 되시고,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믿는 것입니다.

하늘의 생명은 오직 예수님을 향한 믿음으로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주되심을 믿고 그 분 앞에 순복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인 니고데모를 비롯한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인간의 선한 삶이나 기도나 신앙심 등에 의해 보상해 주신다고 믿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유대인들이 갖고 있던 생각입니다. 말하자면 청구서를 내놓고 보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우리들이 종종 범하는 실수들입니다. “제가 이렇게 헌신했습니다. 저의 문제를 들어주십시오.” 우리의 헌신, 우리의 행함은 사랑받은 자로서의 응답인 것이지 우리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만일 그렇다면 지금 그 자리는 단지 자기 유익을 위한 종교인의 자리일 뿐입니다.

하지만 복음은 그것으로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시작해서 십자가와 빈 무덤을 통과하며, 결국은 복음을 믿는 자들에게 영생을 주시는 것으로 끝을 맺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영생은 하나님의 은혜로 얻는 것입니다. 전적으로 유일하게 철저히 하나님의 선물로 얻는 것입니다. 오직 그를 믿는 믿음의 결과로 얻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생을 얻기 위해 할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의 결과로 얻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이 점에서 잘못된 길로 빠집니다. 우리 스스로 뭔가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예수 그리스도를 간과해버립니다. 우리의 영원한 푯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주님을 주목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가 배제되는 것입니다. 그보다도 그리스도의 의를 통하지 않고 자신의 의를 부각시키다보면 우리는 전혀 유효하지 않은 길을 걸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 끝은 참담함이요 비극인 것입니다.

더욱이 믿지 못하고 불신과 거부의 반응을 보이는 이들에게는 그 참혹한 결과가 아주 엄숙하게 선포됩니다. 결국 멸망하는 것입니다.

멸망한다는 것은 영원한 생명과 대조되는 영원한 죽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선물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소외되고, 현재의 삶이나 미래의 삶에 있어서 모두 소망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사람이 멸망하기 위해서 무슨 엄청난 죄를 지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하나님의 선물을 받아들이는 적극적인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이 곧 멸망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작은 부조리가 우리를 집어삼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이와 같이 우리를 정죄하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 분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것에 있습니다. 17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하지만 그렇게 엄청난 사랑의 선물 앞에 직면했어도 모두가 그 은혜를 누리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인류는 두 종류로 나누어지고 말았습니다. 영생을 얻는 사람들과 멸망하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을 가름하는 잣대는 예수님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 즉 믿음에 달려 있습니다. 다른 어떤 우리의 행위들이 뒷받침되는 것이 아닙니다. 18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예수님의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그 분이 나의 구원자 되심을 믿지 않은 결과는 심판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빛으로 세상에 오셨지만 어두움이 이미 세상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우리 안에 도저히 소망이 없기에 예수님이 오신 것이고, 그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십자가의 죽음을 맞으신 것이지만 사람들은 어두움의 지배에 있기를 더 사랑했습니다.

로마서 323절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며말씀하고 있고, 로마서 521죄가.... 왕 노릇 했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죄 가운데 여전히 거하는 사람들은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계속해서 어두움을 포용합니다. 이렇게 빛을 미워하는 마음이 생겨나는 이유는 타락한 인간이 빛에 의해 자신의 행위가 드러나는 것을 혐오하기 때문입니다.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20). 그래서 예수님은 외치신 것입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회개하지 않고 숨기는 자들은 결국 예수님께로 나올 수 없습니다.

그와 대조적으로 진리를 좇는 자는 빛으로 인해 기꺼이 자신의 행위가 드러나기를 기뻐합니다. 그와 같은 행동은 자신의 의를 과시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오직 빛이신 예수님이 자기들의 삶을 통해 나타나도록 하시기 위해서입니다(21).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다시 말해 진리이신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은 그들의 모든 행위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행한 것이고,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행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연약함 가운데서도 주님 때문에 강해지는 것입니다. 세상 어두움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메시아로 오셨습니다. 한편에서 예수님을 죽이려고 웅크리고 있던 많은 무리들이 있었지만 호산나 호산나 외치며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바라보던 자들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지만 그 사랑을 받는 것은 인간들입니다. 우리는 어느 길에 설 것인지, 지금 어느 길로 가고 있는지, 그것이 영생의 길인지, 아니면 멸망의 길인지를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복음은 권고사항이 아닙니다. 세상을 향한 선포입니다. 믿고 안 믿고의 선택의 사항이 아닙니다. 멸망과 영생을 가르는 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편에 서서 예수님의 주되심을 믿고 예수님과 연합하여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시험 문제를 내고 테스트를 하시기 위하여 예수님을 보낸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극진히 사랑해서 예수님을 보내신 것이기에 우리가 아버지의 사랑에 보답하고 힘써 예수님을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믿는 것과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오늘의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알게 된다면 지금보다 더 큰 감격과 기쁨 속에서 감사함이 넘치게 되리라 확신합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기 자신을 새롭게 조명하게 되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나는 한 인간의 사랑을 받는 자가 아닙니다. 전 우주를 창조하시고 통치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자입니다. 우리가 그 사랑에 응답할 때 세상 그 어느 것도 우리를 아버지의 사랑에서 끊어낼 수 없습니다. 그 사랑을 힘입어 오늘도 찬양과 감사로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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